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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핵폭탄의 어머니'가 되어버린 과학자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 11. 7. ~ 1968. 10. 27.)
입력 :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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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신로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즈벨트(Anna Eleanor Roosevelt)가 주관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리제 마이트너는 말했다.
 “기술 발달이 인류를 어려움에 빠져 들게 했다면, 그것은 과학의 ‘나쁜 정신’ 때문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높은 인간됨’에 도달하는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 여성들은 큰 책임을 지고 있으며 가능한 한 다른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원자 폭탄이 끔찍한 전쟁을 끝내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평화로운 작업을 위해 이 위대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리제 마이트너는 우라늄 원자핵 분열의 과정을 밝히고, 그 과정에서 방출되는 막대한 에너지양을 처음으로 계산해 낸 과학자였다. 그래서 ‘폭탄의 어머니’라는 불유쾌한 별명이 언론에 의해 붙여졌지만, 실제로 그녀는 핵폭탄 개발에 참여하지 않았다.
 근대의 원자론은 19세기 영국의 존 돌턴(John Dalton, 1766~1844)에 의해서 제기되어 한 동안 원자가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 전후로 톰슨(Joseph John Thomson, 1856~1940)이 전자를 발견하고,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가 양성자를 발견하고, 채드윅(James Chadwick, 1891~1974)이 중성자를 발견하면서 원자는 더 작은 단위로 분할되었고, 양자역학(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의 발전과 함께 더욱 구체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원자의 중심에는 10-15 미터 크기의 원자핵(nucleus)이 있고, 원자핵 주위로 약 10-10 미터범위에는 전자구름(electron cloud)이 분포하고 있다. 전자구름이라는 명칭은 전자의 위치를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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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핵은 (+)전하를 띠는 양성자(proton, p)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neutron, n)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핵을 구성하는 입자이므로 그 둘을 묶어서 핵자(核子)라고 한다. 양성자의 개수와 원소 주기율표의 원자번호는 일치한다. 원자번호 1번인 수소(H)의 양성자 개수는 1개, 원자번호 2번인 헬륨(He)의 양성자 개수는 2개, 원자번호 3번 리튬(Li)의 양성자 개수는 3개…, 원자번호 92번 우라늄의 양성자 개수는 92개이다.
 20세기 이전의 인류는 만물에 작용하는 기본 힘이 중력(만유인력)과 전자기력 2가지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자핵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새로운 힘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원자핵을 연구하던 초기의 과학자들은 핵자(양성자, 중성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에 ‘핵력(Nuclear forc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각 세 개의 쿼크1)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이 기정사실화되면서 핵자는 기본 입자가 아니며, 따라서 핵력도 기본 힘이 될 수 없었다.
 1) 쿼크(Quark)는 1960년대에 물리학자 머리 겔만(Murray Gell-Mann, 1929~)과 조지 츠바이크(George Zweig, 1937~)가 각각 독자적으로 제안한 개념이다.(조치 츠바이크는 에이스(aces)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겔만은 쿼크가 +2/3, -1/3 과 같은 분수 전하량을 갖는 쿼크 입자를 제안하고, 양성자와 중성자를 각각 세 개의 쿼크로 묶여진 복합 입자로 가정했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위 쿼크(up quark) ⓤ와 아래 쿼크(down quark) ⓓ가 결합한 구조로 되어 있다. ⓤ는 +2/3의 전하량을 가지며, ⓓ는 -1/3의 전하량을 가진다. 양성자는 ⓤ 2개와 ⓓ 1개가 결합하여 만들어진다. 양성자를 만든 쿼크들의 전하량을 더하면 ⓤ+ⓤ+ⓓ=+(2/3)+(2/3)+(-1/3)=+1 이므로 양성자의 전하량은 +1이 된다. 중성자는 ⓓ 2개와 ⓤ 1개가 결합한 구조로 되어 있다. 중성자를 만든 쿼크들의 전하량을 더하면 ⓓ+ⓓ+ⓤ=(-1/3)+(-1/3)+(2/3)=0이 된다. 양자역학 표준 모델에서 쿼크는 6종(ⓤ 위 쿼크, ⓓ 아래 쿼크, ⓒ 맵시 쿼크, ⓢ 기묘 쿼크, ⓣ 꼭대기 쿼크, ⓑ 바닥 쿼크)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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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자와 중성자의 쿼크 결합 개념도 ]
 현대 물리학에서 핵력은 쿼크 사이에 ‘강한 상호 작용(strong interaction)’의 결과로 나타나는 잔류 힘으로 해석하고 있다. -강한 상호 작용은 ‘강력(strong force)’ 또는 ‘강한 핵력(strong nuclear force)'라는 말로 흔히 쓰였다. 최근에는 ’강한 상호 작용‘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는 추세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개수를 더한 값을 원자의 ‘질량수’라고 한다. 양성자 92개, 중성자 143개로 구성된 우라늄은 질량수가 235(=92+143)이다. 이를 간단하게 로 표기한다.
 리제 마이트너는 오스트리아 빈(Wien)의 유대인공동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필립 마이트너(Philipp Meitner)는 변호사였고 헤드비히(Hedwig Meitner-Skovran)와 결혼하여 팔남매를 낳았다. 리제는 팔남매 중 셋째였다. 그녀는 5년제 초등학교를 마치고 3년제 시민학교(Burgerschule)를 다녔다.
 시절 여자들은 학교 교육을 받고 싶어도 기회를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 중등학교인 김나지움은 남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었고, 김나지움의 졸업시험인 마투라(Matura)에 합격한 학생들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여성의 대학 진학을 원천 봉쇄한 것은 아니었다. 독학이나 사교육을 통해 실력을 쌓은 여자는 외부인 자격으로 마투라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평민의 자녀가 혼자서 라틴어를 비롯한 여러 과목들을 공부하고 우수한 성적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리제는 1901년 우수한 성적으로 마투라 시험에 합격하고 빈 대학교(Universitat Wien) 철학부에 입학하였다. 물리학을 좋아했던 그녀는 1902년 가을부터 1906년까지 빈 물리학 연구소에서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Eduard Boltzmann, 1844~1906)의 강의를 4년 동안 수강했고, 1906년 2월 최우등의 성적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 시험을 통과했다.

 1907년 리제는 독일 베를린의 프리드리히-빌헬름 대학 (Friedrich-Wilhelms-Universitat)으로 유학을 떠났다.
 자연은 여자를 어머니와 주부로 설계했다’고 믿고 있던 보수적인 학자 막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858~1947) 교수가 전례를 깨고 그녀를 수강생으로 받아주었기 때문이다.2) 동시에 그녀는 대학의 실험물리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기회도 얻었고, 얼마 후 동료 연구원 오토 한(Otto Hahn, 1879~1968) 박사가 공동 연구를 제의했다.
 2) 막스 플랑크는 볼츠만의 열역학 통계 이론을 응용하여 양자(Quantum)개념을 만들었기 때문에 볼츠만의 제자였던 리제 마이트너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오토 한은 기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마르부르크 필립스 대학(Philipps-Universitat Marburg)에서 화학과 광물학을 전공하였고, 1904년 런던 대학의 연구원으로 방사화학을 연구한 경력도 있었다. 라듐 염을 가지고 실험하던 그는 1905년 방사성토륨(radiothorium; )을 발견했다. 방사성토륨은 토륨()과 양성자 수는 같지만 질량수가 다른 동위원소(isotope)였다. 오토 한은 1906년부터 프리드리히-빌헬름 대학의 에밀 피셔(Hermann Emil Fischer, 1852~1919) 밑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에밀 피셔는 유기화합물인 당과 푸린(purine)의 합성 연구로 19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권위자였다.
 에밀 피셔 교수는 ‘여자는 머리가 길어서 실험하다가 불이 붙으면 위험하다.’라는 괴상한 논리로 여성을 실험실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리제는 학교건물 지하 목공실을 개조한 골방에서 실험을 해야 했다. 화장실은 건너편 식당 건물을 이용했으며, 2년 동안 세미나 특강에도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계단 밑에 숨어서 듣곤 했다. 그렇지만 리제와 오토 한은 연구자로서 궁합이 잘 맞았고, 악티늄C(질량수 211인 폴로늄의 과거 명칭)와 토륨D(질량수 208인 납의 과거 명칭)를 발견하는 개가를 올려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리제는 6년 동안 무보수로 성실하게 일했고, 이를 인정한 에밀 피셔는 1913년 새로 새워진 카이저빌헬름 연구소의 정식 직원으로 그녀를 채용했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연구 활동이 거의 중지되었다.
 오토 한은 독일군으로 입대하여 프리츠 하버(Fritz Haber)3)가 책임자로 있는 비밀 화학 무기 부서에 배치되었다.
 
3)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934)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염소(chlorine) 가스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독가스를 개발했다. 1918년 비료 제조에 쓰이는 암모니아 합성법 개발 공로가 인정되어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암모니아는 폭발물 제조에도 쓰인다. 노벨상 사이트에는 비료 제조에 대한 공적만 게시되어 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화학 무기 개발에 앞장선 것을 비관하여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치의 집단수용소는 하버가 개발한 치클론 B(독일어 Zyklon B)를 사용하여 많은 사람을 학살하는 죄악을 저질렀다. 이때 하버 부부의 친인척도 여러 명이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리제 마이트너도 조국 오스트리아의 방사선 담당 간호사로 자원하였고, 오스트리아-러시아 전선에서 X선 촬영을 하며 2년 정도의 기간을 보냈다. 1916년 카이저빌헬름 연구소로 되돌아 온 그녀는 91번 원소인 프로트악티늄(Pa)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그녀의 단독 연구였지만, 늘 그랬듯이 논문에는 오토 한을 제1연구자로 기재했다.
 1918년 40세가 된 그녀는 카이저빌헬름 연구소 방사능 분과의 책임자가 되었다. 1919년부터는 강사 자격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1926년 48세가 되었을 때 별정직 교수(정교수보다 대우가 낮은)로 임명되었다. 그렇지만 원자의 구조와 방사능에 관한 연구 업적이 워낙 탁월했기 때문에 그녀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리제는 학회 활동을 통해 여러 물리학자들을 알게 되었는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그 중의 하나였다. 리제 마이트너의 생일은 11월 17일이지만 학교에서 발급한 증명서에 11월 7일로 잘못 기재되어 그녀는 ‘독일의 퀴리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폴란드의 마리 퀴리 부인과 생일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리제는 프로트악티늄(Pa)을 발견한 공로로 오토 한과 함께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고, 1933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7차 솔베이 회의에도 초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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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년 제7차 솔베이 회의 ]
앉아 있는 여성 과학자 : 왼쪽 2번째 이렌 퀴리, 왼쪽 5번째 마리 퀴리, 오른쪽 2번째: 리제 마이트너
 그림출처: National Archives
 1933년 정권을 잡은 나치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리제 마이트너의 교수직을 박탈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오토 한과의 연구는 지속했다. 1935년 초에는 젊은 화학자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공동 연구에 합류했다. 하지만 1938년 3월 리제의 조국 오스트리아는 히틀러의 군대에 의해 점령당해 합병되었고, 그녀는 연구소에서도 쫓겨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해 7월 중순 유대인 출국금지령이 내려질 것이라는 정보를 들은 리제는 탈출을 감행했다. 그녀는 공식 휴가 전날, 손가방 하나만 챙겨들고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네덜란드 동료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스웨덴으로 망명한 리제 마이트너는 스톡홀름 노벨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갔지만, 더부살이 그녀에게 제공된 실험실은 매우 열악했다.
 독일에 있는 오토 한과는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오토 한은 분석화학자 프리츠 슈트라스만(Fritz Strassmann, 1902~1980)과 함께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기대한 것은 우라늄에 중성자가 더해져서 질량수가 더 큰 초우라늄 물질을 얻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관찰되었다. 슈트라스만은 정밀 분석을 통해 중성자가 우라늄에 충돌하여 바륨(Ba)이 생성된 것으로 파악했다. 바륨은 질량수가 141이므로 질량수 235인 우라늄보다 질량이 훨씬 작은 원소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일까?’ 오토 한은 그와 같은 일은 불가능한 것으로 믿었다. 실험을 잘못한 것인지 혼란스러웠던 오토 한은 ‘중성자 충돌 실험으로 우라늄에서 바륨(Ba)과 마수리움(Ma, 오늘날의 테크네슘 Tc)이 생성된 것 같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내용의 편지를 리제에게 보냈다.
 편지를 받은 리제 마이트너는 중성자 포격에 의해 우라늄이 물방울 갈라지듯이 깨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조카이자 물리학자인 오토 프리쉬(Otto Robert Frisch, 1904~1979)와 의견을 나눈 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서 도출된 질량-에너지 등가 공식 E=mc²을 이용하여 우라늄 원자 1개가 분열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약 2억 전자볼트(eV)인 것으로 계산4)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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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중성자의 포격에 의해서 핵이 둘로 갈라지는 현상에 ‘핵분열(Nuclear fiss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분열(fission)은 생물학에서 세포가 둘로 나뉠 때 쓰이는 용어로 물방울이 두 개로 갈라진 후 둥글게 뭉치는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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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2월 리제 마이트너는 조카 오토 프리쉬와 공동 명의로 논문 ≪중성자를 이용한 우라늄의 분열; 새로운 형태의 핵분열≫을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1944년 12월 오토 한은 핵분열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 수상자에 선정되었다. 그런데 오토 한은 리제 마이트너의 공적에 대해서 언급을 회피했고, 자신의 공적을 알리는 데에 열중했다. 공동 연구자인 프리츠 슈트라스만도 수상에서 제외되었는데, 노벨상위원회의 이해와 정보 수준이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리제 마이트너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망명자로서 궁핍하고 고독한 생활을 지속해야 했다. 1945년 6월 그녀는 오토 한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지만, 보내지는 않았다.
 “당신들은 모두 나치를 위해 일했어. 당신도 그저 수동적인 저항밖에 하지 않았지. 물론 여기서 저기서 박해받는 사람들 몇몇을 구해주면서 스스로의 양심을 매수하려 들었겠지만,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살해당하는 가운데…, [누가 그러기를] 당신들은 처음에는 동료들을 배신했고, 그 다음에는 자기 자녀들을 범죄 전쟁의 판돈으로 내놓았고, 그리고 결국에는 독일마저 배신했다고. 이유인즉 전쟁이 이미 가망이 없어졌던 시점에서, 독일을 파괴하는 무의미한 짓에 맞서기 위해 무기를 들고 나선 사람은 당신들 중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지.” - 존 콘웰(John Cornwell) ≪히틀러의 과학자, Hitler's scientists: science, war, and the devil's pact(2003)≫ p411, 원문 의역은 한국어 위키백과 인용-
 그녀는 나중에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도 후회하고 반성했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았을 때 바로 독일을 떠나지 않고 5년이나 카이저빌헬름 연구소에 머물며 일했던 것을 스스로 ‘중대한 도덕적 잘못’이라고 평가했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리제는 그때까지도 원자폭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헤럴드 트리뷴(현 뉴욕타임즈) 신문이 8월 8일자로 “리제 마이트너 박사의 수학적 계산이 원자폭탄5)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고 보도하는 바람에 스웨덴에 은거하다시피 하던 그녀는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었다.
 5) 2차 세계대전 원자폭탄은 ‘대체 자원 개발(Development of Substitute Materials)’이라는 가짜 사업을 내걸고 비밀리에 진행된 계획에 의해서 제조되었다. 이 계획의 미국 암호명이 ‘맨해튼’이었기 때문에 흔히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라고 불린다. 리제 마이트너는 핵폭탄 제조와는 무관한 인물인데도, 언론은 그녀를 ‘폭탄의 어머니’로 묘사했다. 리제 마이트너의 논문을 이해하는 사람은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과학자들이었으므로, 그들 중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마이트너에 대한 정보를 언론에 흘렸을 개연성이 있다.
 1946년 1월 리제 마이트너는 미국 가톨릭대학의 객원교수로 6개월 특강에 초빙되어 미국을 방문했고, ‘미국 전국 여성 기자클럽’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으로 뽑혀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 부부를 만났으며, 4개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1946부터 1968년까지 스톡홀름 왕립공과대학의 연구교수로 재직했고, 1966년 엔리코 페르미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몇 차례의 뇌졸중을 겪었고, 1968년 오토 한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지 3개월 후, 90세를 일기로 요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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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트너의 묘 ]
그림 출처: dineanddivine.com
 그녀의 묘비명은 조카 오토 프리슈가 다음과 같이 썼다.
 「Lise Meitner: a physicist who never lost her humanity.(리제 마이트너: 인간미를 결코 잃지 않았던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는 평생 독신으로 원자핵과 결혼하여 살다간 물리학자였다. 1982년 발견된 109번 원소는, 그녀의 이름을 기려 ‘마이트너륨(Mt, meitnerium)’이라고 붙여졌다.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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