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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장의 독서일기
누군가의 인생 책을 알게 되면 조용히 찾아 읽고 상대의 마음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금융 분야에서 일을 시작해 조금은 특이한 이력의 편집자다. 책 읽는 게 일이자 즐거움인데 책 못지않게 사람도 좋아한다. 일하는 사람들이 읽어두면 좋을 책을 소개한다.
신약 개발자와 영화감독은 닮았다 다시 전염병의 시대가 오는가?
입력 : 2020.02.19

"코로나19의 백신 개발은 18개월이 걸립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발한 지 한 달여 만에 내놓은 발표다. 테슬라가 로켓을 발사해 다시 발사 지점으로 착륙시키는 놀라운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1년 반이라는 시간은 신속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실상은, 몇 차례의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 신약 개발 절차를 감안하면 매우 빠른 속도라고 한다. 의료계에서 코로나19 치료에 말라리아 백신 따위를 적용해보려는 것도, 신약 개발이 어려운 만큼 기존 약을 적용해보는 것이 손 쉽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은 너도나도 나서서 백신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나는 ‘신약 개발’이라고 하면, 과학자처럼 흰 가운을 입은 연구자들이 유리 비커를 들고 엄격한 실험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물론, 제약 산업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제대로 된 약이란 게 없었을 테고 각종 약초에 대한 선인들의 지혜도 아직 축적되지 않았을 때는 얘기가 다를 것 같긴 하다. 배가 아팠는데 무심코 뜯어 먹은 허브에 속이 진정 되었다면, 인류는 그 풀의 효능을 기억 속에 수집해 놓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우연히 ‘약의 바벨의 도서관’이 세워졌다.

헌데 바이오 기술이 첨단을 달리는 지금도 신약 개발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신약 개발은 왜 그토록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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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염 Contagion>의 한 장면

인기 프로그램 <자연인>에는 외딴 산기슭에 살면서 각종 버섯이나 이름도 생소한 어류로 식사를 해결하는 중년 남성들이 나온다.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 것 같아서 종종 ‘미래의 롤모델’로 지칭되는 이들.

자연의 채집물을 먹었을 뿐인데, 저렇게 건강이 좋아졌다니 약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신약 개발의 역사에서 온갖 자연물은 흙을 포함해서 약효가 한번쯤 측정되었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아마존과 호주 자연림의 오지를 돌아다니며 별종 식물과 흙을 채취하는 신약 사냥꾼들이 있다.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은 원서 제목이 Drug Hunters로 신약 사냥꾼이라는 뜻이다. 왜 사냥꾼이라고 썼냐면,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제약회사가 인체에 적용하는 임상시험까지 성공하는 확률이 0.1%로 매우 낮기 때문이다. 매독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고 노벨상을 수상한 파울 에를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약 사냥에 성공하려면 ‘4G’가 필요하다. 바로 돈(Geld), 인내(Geduld), 창의력(Geschick), 그리고 행운(Gluc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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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미라, ‘외치’의 주머니에는 의약용 버섯이 들어 있었다.


신약 사냥은 흥행업을 닮았다

책은 신약 개발 과정을 식물의 시대부터 합성화학을 거쳐, 전염병 의약품 시대별로 각 분야의 원조가 된 의약품이 탄생한 과정을 알려준다. 약으로 본 세계사인 셈인데, 19세기에 가장 악명을 떨쳤던 질병은 콜레라다. 유럽을 휩쓴 그 전염병은 영국의 의사 존 스노우가 콜레라균이 창궐하던 우물을 폐쇄해서 확산을 막았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는 오늘날 질병을 추적하는 역학의 아버지로 칭송을 받고 있지만, ‘운에 좌우되는’ 신약 사냥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스노우는 상당히 운이 좋았다. 실험(원인과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과 달리 역학 연구는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 관련성을 보여줄 뿐이다. 스노우의 사례에서는 희생자의 위치와 수도 펌프의 위치 사이의 관련성이 된다. 사실 물이나 수도 펌프가 전염병의 원인이 아닐 수도 있었다. 스노우의 지도만 가지고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비록 스노우의 결론이 올바른 것으로 드러났지만, 역학 연구는 실험과 비교해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 더 쉽다.”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 》, 10장 역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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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노우의 콜레라 지도(런던)


영화 흥행에 더 가까운 신약 개발

사실 신약 개발은 영화 흥행과 더 비슷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흥행에 성공을 거뒀다고 해서, 그런 스릴러, 유머, 반전 공식을 따라한 영화가 대박을 칠 가능성이 높은 건 아니다. 매번 달라야 하는 영화처럼 신약 개발도 이런저런 테스트를 하다가 우연히 걸려든 경우가 많다. 염색약의 화학 구조를 살짝 비틀어 매독을 치료한 살바르산을 개발했다고 해서, 당뇨병 약을 그와 비슷한 방식을 적용해서 개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정해진 성공 공식은 없다.

1940년대까지 의학계는 정신질환을 위한 약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한편에서는 정신분석환자들이 프로이트 식 ‘상담 치료’를 한다든지, 언젠가 기적의 신약이 개발되기를 바라면서 외딴 곳에서 요양을 권하는 소수의 의사들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정신의학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는 자가 나타나 정신질환의 신약을 ‘발견’했다. 

“외과 의사 앙리 라보리는 전쟁 기간 동안 수술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약을 찾는 일에 흥미가 생겼다. 환자의 인공 동면을 유도하면 수술 뒤의 쇼크로 인한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게 라보리의 가설이었다. 이어서 라보리는 환자의 체온을 낮추는 약이 있으면 인공 동면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추측했다. 

튀니지의 프랑스 군 병원에서 일하던 라보리는 한 동료로부터 체온을 낮출 수 있다고 하는 새로운 종류의 항히스타민 물질을 얻었다. 클로르프로마진이라는 화합물이었다. 라보리는 수술 후 효크를 완화해주기를 바라며 자신의 수술 환자들에게 이 약을 시험했다. 그런데 미처 마취제를 투여하기도 전에 환자의 태도가 정신적으로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알고 보니, 이 약은 전혀 인공 동면을 유도하지는 않았다.”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 12장

최초의 정신질환 치료제였지만, 의사들이 이를 수용하기까지는 무수한 거부와 오랜 시간의 설득의 시간이 필요했다.


전염병은 이제 우리 미래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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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시리즈 <판데믹 Pandemic>

영국의 왕립 국제 문제 연구소의 팀 벤턴(Tim Benton) 교수는 BBC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항상 동물로부터 질병에 걸려왔다. 사실 대부분의 새로운 전염병들은 야생동물로부터 왔다. 하지만 환경 변화는 이 과정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도시 생활과 국제 여행의 증가는 질병의 확산을 더 급속화시킨다. (중략) 도시화와 불평등이 심화되고 기후변화가 생태계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만큼, 우리는 이런 새로운 질병을 '증가하고 있는 위협'으로 인식해야 한다.”

야생의 숲을 파헤쳐 인간이 들어가 살게 되고, 인간은 야생 동물과 전에 없던 접촉을 하게 된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자연현상의 왜곡을 가져오고 인류는 질병에 취약해진다. 빌 게이츠는 이를 2017년 초에 예견했고, 이번에 바이러스가 퍼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넷플릭스는 다큐시리즈 <판데믹 Pandemic>을 방영했다. 영화는 인도, 아프리카뿐 아니라 미국의 불법 이민자 수용소에서 각종 전염병을 막으려는 의료진의 필사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게다가 <판데믹>에는 약에 대한 불신과 부작용을 겪은 집안 내력을 들어 자녀들의 예방 접종을 거부하는 미국 부모들이 등장한다. 백신과 자폐증의 확산을 연결 지어 믿는 그룹도 나타났다. 홍역은 90%의 접종률이 달성되었을 때, 집단 전체가 질병에서 보호되는 효과를 거두기 때문에, 백신 거부자들이 늘어난 지역에서는 홍역이 다시 전염되고 있다. 

몸을 느닷없이 습격해오는 전염병도 공포스럽지만, 가짜뉴스와 미신이 퍼뜨리는 잘못된 생각의 전염도 현대인을 역습하고 있다. 인종 비하와 타인 기피가 혐오로 치닫기도 한다.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때마가 경계하는 것은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성상 부자연스럽지 않다. 앞으로도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탄생한 신약 앞에는 ‘편견’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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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도서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 도널드 커시, 오기 오거스 지음, 고호관 옮김

정소연 세종서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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