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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하늘에서 흘러내린 물감 줄기 5학년 유현승 군이 그린 일출
입력 : 20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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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승作 <일출>

2020년 새해가 왔다. 밀레니엄이라고 온 세계가 떠들썩하던 게 어제 같은데, 그로부터 어느새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이 지났다니 새해엔 더 정신 바짝 차리고 의미 있도록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그 다짐에 참 어울리는 그림을 오늘 소개해 보려고 한다. 5학년 유현승이 그린 일출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출하면 늘 생각하는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 그림은 맞는데, 그 흔한 일출이 이 그림에선 뭔가가 다르다. 그 때문에, 그림을 보자마자 눈이 그림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일단 두 가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강렬한 핑크빛 하늘과 구름으로 그린 듯한 회색빛 하늘의 덩어리에서 흘러내리는 물감 줄기이다. 일출하면 보통 태양을 공들여 그리고, 그 햇살을 강조해서 그리는데, 이 그림은 태양보다는 그로 인해 물들어진 것 같은 핑크빛 하늘이, 그리고 일출에서 어쩌면 방해되는 구름을 태양보다 더 강조해서 그린 게 독특했다.

더구나 깔끔하게 그려낸 구름이 아니라, 자유롭게 물이 흥건한 채 칠해져서, 물감이 뚝뚝 아래로 흘러내리는 구름 표현이 참 신선했다. 자유로움이 강하게 느껴졌다. 또한 일출에 물든 하늘을 표현할 때 보통은 주홍빛 태양의 색을 바르는데, 이건 완전 채도 높은 핑크로만 가득찬 하늘이다.

태양에서 나오는 빛들은 하늘로 뻗게 하는 대신, 출렁이는 바닷물에 주홍, 노랑, 핑크빛의 붓질들을 툭툭 얹어서 표현하고 있다. 진한 푸른 바다색 위로 대비되는 강한 핑크와 밝은 노랑, 그리고 밝은 주황의 색들이 이 풍경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눈을 색으로 강하게 물들인다. 때문에, 일출은 무척 흔한 그림 소재인데, 이 아이가 그린 일출은 흔한 표현이 아니다.

수평선 바다 위에 태양이 떠 있는 것은 똑같은데, 기존에 보아오던 태양의 떠오름과 확연히 다른 느낌의 그림이다. 어찌보면 뻔할 그림을 뻔하지 않게 그린 것이다.

“현승아! 왜 구름에서 물감이 죽죽 흘러내리게 그렸어? 일부러 이렇게 한거야?”

“처음엔 그걸 의도하진 않았는데요, 실수로 물이 많아서 하나가 흘렀어요. 그런데 그게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뭔가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아예 옆에다 계속 붓을 눌러서 다 흘러서 내려가게 했어요.”

“와 그렇구나. 진짜 나도 여기서 이게 너무 멋있어. 자유로움이 느껴져서. 어쩜 너도 똑같은 생각을 했구나!”

물 조절이 안 되어 흘러내리면, 보통은 앗, 실수했네, 빨리 닦아야지 할 텐데, 오히려 거기에서 자유로움의 감성을 느끼고 그걸 맘에 들어했다니 아이의 감성이 보통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 그게 비 내리는 구름같이 보여서도 좋았다고 한다.

“비가 오는 먹구름 사이로 태양이 뜨는 것 같아서요, 그게 그냥 해가 뜨는 것보다 더 멋져 보여요.”

스토리가 있는 일출이다. 역경을 뚫고 나오는 햇빛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하늘을 핑크로 한 이유는 자기는 해가 물들 때의 느낌이 주홍보다는 핑크 느낌이 더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에겐 핑크가 더 예쁘고 인상이 강한 색이라 맘에 더 들어서, 실제로 눈에 보이는 색보다는 자기가 느껴지는 인상의 일출 색을 넣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렇다.

“핑크색이 뒤에서 그렇게 강하게 있고 앞에 커다란 먹구름이 있는 대비가 장엄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제가 장엄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데요, 그런 음악을 떠올리면서 그렸어요. 그런 음악같은 일출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 아이는 바이올린을 오랫동안 배우며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인데, 유독히, 장엄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도 하는 이 아이는 그런 장엄한 부분을 연주할 때 감동이 특히 온다고 말했는데, 아이는 이 하늘을 그리면서 그런 장엄한 음악을 떠올렸던 것이다. 대범한 핑크와 짙은 먹구름 사이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주는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느낌말이다.

그런데 하늘이 대범하고 자유롭게 칠해진 것과 대조적으로, 바다의 햇살 비치는 물결은 제법 꼼꼼히 칠해졌다. 하지만 이 붓질조차도 뭔가 툭툭 편하고 자유롭게 터치한 느낌이다. 아이말이, 바다 위로 비치는 햇빛의 터치에도 자유로움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섬세하면서도 툭툭 던지듯이 붓질을 해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생각과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진다.

태양이 찬란하게 뜨는 바다. 그런데 그 위론 먹구름이 있고, 비까지 흘러내리는 하늘, 그래도 태양은 뜨고, 바다는 태양의 화려한 빛으로 일렁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붓질과 색채와 표현에 이 그림은 자유스러움이 가득하다. 아이가 진심으로 그림을 즐기며 자유로운 마음으로 캔바스 안에 자기 세계를 표현했다는 게 느껴진다.

새해를 맞아, 이 그림의 기운을 받고 싶다. 새해엔 더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더 빛이 가득한 사람이 되고, 무엇보다, 먹구름 속에 비가 내려도 해를 떠올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하며 말이다. 여러분도 이 그림과 같은 한 해가 되시길.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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