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topp 로고
칼럼진
카이스트 이승섭의 교육이 없는 나라
이승섭 교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던 모범생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카이스트 교수가 되어 우리나라의 과학영재들을 바라보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를 '교육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기본기는 무시한 채 잔기술만 가르치다니 ‘교육’은 없고, ‘대학 입시’만 있는 나라
입력 : 2020.01.01

0124201202240799SY00.jpg

특목고와 일반고, 특성화고 입시설명회에 모인 학부모들.(조선DB)

우리나라에는 ‘교육’은 없고, ‘대학 입시’만이 있는 것 같다. 교육은 자신의 삶과 장래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행복감과 자긍심을 키워 궁극적으로 자신과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대학 입시에 필요한 것들을 남들보다 먼저, 그리고 많이 가르치고 배우는 것으로 인식된다.

과거 교육이 보편화되지 못하고 대학 교육이 충실하지 못했던 시절, 대학 입시가 불가피하게 인재 선발의 최종 관문으로 활용되어 그 중요성이 높을 수 있었으나, 오늘날까지 모든 교육이 대학 입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은 국가 전체의 교육 철학과 교육 시스템의 실종으로 밖에는 이해될 수 없다.

정상적인 교육 시스템에서는 고등학교까지는 인성 교육과 함께 다양한 교과목들이 학습되고 적성과 능력에 맞춰 ‘전공과 대학’이 결정되면 대학에서는 직업교육이 진행되는데 반해, 우리 사회에서는 고등학교까지의 모든 교육은 대학 입시를 목표로 하고 대학 입시 점수에 따라 ‘대학과 전공’이 결정되어 학생들은 막상 대학에 가서는 더 이상 공부해야 할 목적과 이유를 상실한 채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대학 입시에서 영어의 비중이 낮아지면 중고등학교에서 영어 과목은 그 중요성이 낮아지고, 논술 시험의 유무에 따라 논술 교육의 유무가 결정될 뿐, 그러한 교육 내용들이 장차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얼마나 활용도가 높고 개인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더구나 세부 교육 내용도 대학 입시를 위한 변별력에 적합하도록 개발되어 실제 생활에는 대부분 쓸모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와 영어 시간에 토론과 작문, 회화와 발음 교육은 행해질 수 없으며, 체육은 청소년 시기 육체적/정신적 건강과 성장에 가장 중요한 과목임에도 대학 입시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항상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이러한 교육 현실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선행 학습이 될 수밖에 없는데, 남들보다 미리 공부하면 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쉽게 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적절한 예습은 권장되어야 하지만, 우리 교육의 현실은 승부에만 집착하는 감독이 어린 선수들에게 기본기와 기초체력은 외면한 채 잔기술만 가르치는 것과 같다. 눈 앞의 시합에서는 승리할 수 있지만, 어린 선수들은 자칫 몸이 망가져 일찍 선수 생활을 마감하거나, 숨어있는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기도 전에 흥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나이에 과도한 공부에 내몰린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재미를 느끼거나 배울 수 없고, 어려운 문제는 잘 푸는 데 기본 개념에 대한 이해는 떨어져, 정작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대학에 들어와서는 전공에 대한 흥미는 물론 학문에 대한 상상력과 열정이 떨어져 점점 낙오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는 고등학교 때 잘 했던 선수가 대학에 가서는 기량이 점점 떨어져, 정작 프로 무대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는 상황에 비유될 수 있다.

더구나, 그렇게 일류 대학에 들어간 사람은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과 우월감 속에서 정작 대학에 가서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진짜 경쟁력을 쌓을 기회를 놓치고, 못 들어간 사람은 열등감 속에 살아가는 것도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대학 입시를 이야기할 때 필자는 서울대를 자주 언급하는데, 그 이유는 학부모님 가운데 대학 입시로 KAIST에 한 맺힌 분은 없지만 서울대에 한이 없는 분은 없고, 이로 인해 필자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더욱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단, 교육과 대학입시와 관련되어 서울대가 언급되는 모든 상황에서 KAIST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은 명확히 하고싶다.) 서울대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가장 선호되는 대학이지만,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서울대를 때로는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래의 두 장면은 서울대와 하버드에 합격한 학생과 가정을 상상한 모습이다.

 

장면 1

“엄마, 저 서울대에 합격했어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활짝 웃는 아이를 엄마는 꼭 안아주며 말한다. “수고했다.” 엄마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고, 아이는 힘들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엄마, 저 서울대에 가면 운동도 하고 여행도 가고 연애도 하고 싶어요.” “그럼, 그래야지.” 그동안 흘린 땀과 노력을 생각하면 이러한 대화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란 생각이다. 일찍 퇴근하는 아버지의 손에는 케익이 들려 있고, 아이는 아버지에게 엄마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다. 그러자 갑자기 아버지가 굳은 얼굴로 말씀하신다. “서울대에 합격했으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아버지의 정색 어린 반응에 집안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진다.


장면 2

“엄마, 저 하버드에 합격했어요!” 엄마는 뛸 듯이 기뻐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고, 아이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하버드에 가면 운동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연애도 할 거예요”


장면 1에서는 자연스러웠던 대화 내용이 이상해지는 것을 우리 모두는 느낀다.

하버드 합격생 가운데, 하버드에 가면 운동하고 여행하고 연애하겠다고 다짐하는 학생이 있을까? 아마도 저녁에 퇴근하신 아버지는 “정말 가겠느냐, 하버드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느냐? 좀 낮은 대학으로 가는 것은 어떻냐?”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것 같고, 아이는 비장한 얼굴로 스스로 굳은 다짐을 할 것 같다.

참고로, 필자가 기억하는 오래 전 뉴스에 한인 학생들의 미국 명문대학 중퇴율이 가장 높다는 내용이 있었다. 한인 학생의 중퇴율이 44%로 유태인(13%), 인도인(21%), 중국인(25%)보다 훨씬 높은데, 학부모들의 지나친 입시 위주 교육 방식이 주된 이유로 한국 학생들은 “자율이 보장되는 대학 생활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인물로 성장하기보다 남보다 뛰어난 학생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서울대 합격을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보다는 훌륭한 교수님들과 엄청난 학습량, 함께 치열하게 경쟁하고 어울릴 최고의 학생들, 즉, 서울대가 줄 수 있는 결코 만만치 않은 최고의 교육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는 사실이어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와 KAIST가 진정한 학문적 경외의 대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합격한 학생들이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기보다 대학 생활을 성공적으로 견딜 수 있을까 걱정하고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굳게 하게 하는, 그래서 우리나라 1%의 수재들을 세계 0.1%의 인재로 내보내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되기를 희망한다.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오늘날 우리 교육의 현실이 필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이승섭 카이스트 교수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