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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이승섭의 교육이 없는 나라
이승섭 교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던 모범생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카이스트 교수가 되어 우리나라의 과학영재들을 바라보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를 '교육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공부는 언제 가장 열심히 해야 하나? 공부 잘 하는 아이, 시기별로 다르다
입력 : 2019.12.23
사진=조선DB

“공부는 언제 가장 열심히 해야 하나?” 

필자가 강연을 할 때 시작 멘트로 던지는 질문이다. 보기로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3학년, 대학교 2학년, 그리고 박사과정을 예로 주는데, 강연 대상은 때에 따라 중·고등학생, 대학생, 학부모님, 선생님들로 다양하지만 필자가 원하는 답을 듣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때로는 너무 뻔한 답으로 인해 질문하는 필자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뻔한 답은 당연히 고3이다. 고3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더 나은 직장을 얻어 보다 낳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사회 통념 때문이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중2도 가능한 답인데, 영재고, 과학고, 자사고의 입시가 중3 봄부터 시작되고, 해당 고등학교 학생들의 일류 대학 합격률이 높은 현실을 고려할 때, 중2는 입시 전략상 매우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청중들은 교수인 필자의 의도를 지레 짐작해 박사과정이라고 답하기도 하지만, 박사과정은 연구를 할 시기이지 열심히 공부할 시기는 아니다. (연구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가장 낮은 응답률을 보이는 답은 대학교 2학년인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필자가 원하는 답이다. 왜 대학교 2학년일까?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 답변이 왜 우리 사회에서는 이렇게 어색하고 생뚱맞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래 표는 필자가 생각하는 각 교육과정에서의 성공 요인이다. 

 구분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성공 요인  성실, 철, 엄마, 학원, 지능 꿈, 재미  열정, 도전 

가장 열심히 공부할 시기는 대학교 2학년

고등학교까지는 성실하고 일찍 철이 든 학생들이 공부를 잘한다. 엄마의 열성과 정보력도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고(혹자는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의 성적과 비례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사회의 교육 현실을 꼬집기도 한다), 좋은 학원도 사교육이 중요시되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같은 시간대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양을 학습하고 어려운 문제를 남보다 빨리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학습적 지능 또한 중요한 요인이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학생들은 대부분 철이 들고, 엄마와 학원의 영향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며, 생각하는 시간을 충분히 주는 대학 교육의 특성상 학습적 지능도 그렇게 중요한 요인은 못 되는 것 같다. 대학에서 성공하는 요인은 꿈과 재미이다. 즉, ‘전공 적합성’이다. 대학 교육은 자신이 평생 하고 싶은 일을 배우는 전공 혹은 직업 교육이 핵심이다. ‘진리 탐구’라는 말로 거창하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 경우에도 수학과 학생은 수학, 법학과 학생은 법학, 공대생은 공학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의 진리를 찾아간다. 

‘수학의 정석’을 공부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고등학생을 찾기는 어렵지만, 대학에서 전공과목을 들으면서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학생들은 매우 많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학생이 촬영기법과 영화이론을 배울 때, 자동차에 빠진 학생이 엔진을 직접 뜯어보고 연소이론과 구조설계를 배울 때, 의대생이 해부학을 배우고, 법대생이 형사소송법을 배울 때, 학생들은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성취감과 함께 재미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학교 2학년을 꼭 집은 이유는 전공의 핵심개념들이 전공필수 과목으로 처음 소개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대학 간의 수준 차이를 언급하며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겠지만, 우리나라 대학들은 지난 수십 년간 크게 발전하여 학사과정의 경우 대학 간 수준 차이는 사회 통념과 달리 크지 않다. 오히려 일류 대학의 경우 교수들은 대학원 과정의 연구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학회나 위원회 등의 잦은 외부 활동으로 학사과정 교육을 소홀히 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심지어 일류 대학 진학이 더욱 중요하게 간주되었던 필자 세대의 오늘날 상황을 살펴보더라도, 일류 대학 진학보다 대학 진학 후에 행해진 노력들이 사회에서의 성공과 상관관계가 훨씬 높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학교 성적과 사회 성공은 관련이 없다거나 팔자소관이라는 말로 피해 가기도 하지만, 그 경우 앞에서 언급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고3’ 논리와 모순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사회를 향해

지금까지 부모님과 선생님들로부터 ‘일류 대학에 가면 성공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겠지만, 오늘날 필자가 하는 말은 ‘대학 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 대학이 물론 일류 대학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더욱 중요한 것은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참고로, KAIST 대학원생들의 출신 대학은 일류, 이류 혹은 삼류로 간주되는 대학들로 다양하지만 대학원에서의 성적과 연구 능력은 차이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많은 교수들은 일류 대학 졸업생들보다 이류 혹은 삼류 대학에서 뒤늦게 정신차리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해야 할 때’는 ‘고3’이 아니라 ‘대학’ 시절이고, 또 그래야 한다. 사회에 나가 직업 현장에서 활용할 전문 지식의 대부분을 대학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필자는 고3 때까지 열심히 공부했던 내용들이 사회 심지어 대학에서까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당혹감을 느꼈다. 어느 날 언론계에 있는 죽마고우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갑자기 ‘너만은 잘 써먹고 있는 줄 알았다’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 친구는 오랜 세월 수많은 사회 저명인사들을 만나고 그 분들의 성공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도, KAIST 교수인 필자만은 ‘수학의 정석’을 잘 써먹고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대학을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사회’가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사회’로 바뀌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필자를 더욱 당혹스럽고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간혹 우리나라가 아니고 미국의 경우라는 토를 다는 때인데, 그 경우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 2학년을 답으로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잘못된 교육제도로 인해 우리 사회와 아이들은 엉뚱한 곳에 쓸데없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와 아이들은 억울하고, 국가는 경쟁력을 잃어간다.

 

 

이승섭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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