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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평범한 선인장의 변신 열 살 지효와 열한 살 규리, 열아홉 살 민정이가 그린 선인장
입력 : 2019.12.03

선인장_이지효_10세.jpg

10세 이지효 作

"음...제가요, '똥 손'이거든요. 그래서 식물을 좋아하는데도, 잘 못 키워요, 자꾸 죽여요. 그런데 우리 엄마도 '똥 손'인데  식물을 좋아해요. 그래서 엄마랑 제가 같이 키울 수 있는 게 선인장이에요. 선인장은 '똥 손'도 키울 수 있거든요."

파스텔 톤이 가득한 예쁜 선인장을 그린 열 살 지효에게 선인장을 왜 그리고 싶었는지 묻자, 한 말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그림을 그리기 바로 전날 엄마랑 선인장을 잔뜩 사 왔다고 했다. 기분이 좋아서 선인장을 그리고 싶기도 했지만, 선인장을 그린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고 했다. 가시에 찔리게 하는 선인장이기에 많은 친구가 선인장을 안 좋은 식물이라고 생각하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지 않다고, 선인장은 좋고 착한 식물이라고 그림을 통해서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림을 예쁘고 따뜻한 색으로 그리면 선인장에 대해 친구들이 좋은 인상을 받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평상시 특별히 돌보지 않고 집에 혼자 자라게 내버려 두는 선인장에 대한 미안함을 그림에서나마 회복하고 싶었다고 했다. 예쁜 색으로 꾸며주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성공이다. 파스텔 색조가 전체적으로 물들어 있는 그림은, 초록색을 기본으로 두면서도 초록색을 조금씩 다르게 해 연노랑 빛이 나는 올리브색과 민트색, 연두색, 청록색 등의 변화를 주었고, 그 모든 색에는 흰색을 섞어서 부드러운 색조로 표현했다.

특히 위로 난 가시들은 선인장마다 모양도 색도 다 다르게 해서 어떤 것은 가시처럼, 어떤 것은 동그란 점처럼, 어떤 것은 긴 선으로 가시를 표현했는데, 선인장 몸체와 비슷한 색도 있고 그와 완전히 다른 분홍색이 올라가기도 하고 해서 색들이 음표처럼 춤을 추면서 아름다운 노래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배경색 좀 보라. 하늘색의 바탕도 예쁘지만, 특히 땅의 산호색은 정말 예쁘고 따뜻하지 않은가? 그림의 대부분 색인 초록계통의 색과 반대의 색이 들어가서 선인장들을 잘 살려주는 역할도 하고, 마무리를 잘하며 이 그림에 마침표를 찍어 준 듯한 색이다. 그래서 그림의 색들이 이 바탕 때문에 더 따뜻하게 살아있게 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씬 스틸러 같은 색이라고 할까?

 

선인장_김규리_11세.jpg

11세 김규리 作

열한 살 김규리의 선인장은 지효의 그림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색이 아름다운 건 마찬가지나, 규리의 색은 지효의 부드러운 색과 달리 쨍하고 선명하다. 일단 바탕에 강렬하고 환한 오렌지색을 아크릴 물감으로 칠하고 시작한 것이 그림의 전체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규리는 선인장의 가시에 집중했다. 선인장의 가시는 선인장 종류마다 다른 것이 볼 때마다 신기해서 가시 표현을 다 다르게 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가운데에 눈에 띄는 핑크 가시는 이쑤시개에 물감을 묻혀서 찍어 나갔고, 오른쪽 아래의 흰색 가시 표현은 휴지에 물감을 묻히며 표현했으며, 그 바로 위에 검은 선인장 위는 흰 물감을 물방울처럼 뿌려서 만들었다. 왼쪽 아래의 초록색에 흰 가시는 부챗살 모양으로 된 붓을 찍어서 나타냈다. 또 다른 선인장은 나이프로 위의 색을 긁어내어 아래 깔린 색이 보이게 하면서 가시를 만들었다. 나름 고민하면서 이렇게도 표현해보고 저렇게도 표현한 게, 평소 선인장 가시를 보면서 신기해하던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아이 말이, 이렇게 화려한 색으로 선인장을 표현한 것은 선인장이 그냥 흔하게 보는 평범한 식물이고 주변에 늘 있는 식물이어서 그걸 연예인처럼 변신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평범하고 가시 때문에 가끔 밉기도 한 선인장이기에 다른 시각에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러자 옆에서 친구들도 말한다. “맞아요! 선인장이 연예인 같아요!”

잎이 가시로 되어서 신기하지만, 화려하고 다양한 모양의 커다란 잎들을 가진 아름다운 다른 식물들과 달리, 조용히 있는 식물. 물을 안 줘도 군말 없이 잘 커 주는 식물. 그것을 그림에서만큼은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화려한 '연예인 선인장'이 되게 했다.

선인장_서민정_19세.jpg

19세 서민정作

열아홉 살인 민정이의 마음도 비슷했다. 자기 집구석에 늘 있는 선인장은 호흡처럼 늘 그대로 그 자리에 오랫동안 있어서 어떨 땐 있는지 조차 의식 없을 때도 있다고 한다. 민정이에게 선인장은 그러므로, 그저 자기 주변의 일상, 아니면 일상에서 눈에 안 들어오는 특별하지 않은 존재들에 대한 일종의 대변인 같은 상징이라고 한다.

민정이가 선인장 그림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환상을 꿈꾸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해내는 마음이다. 그래서 민정이의 선인장은 솜털 같은 가시가 있는데, 그 위로 민정이가 작은 요정 같은 인간이 되어 팔 베게 하고 누워있고 까만 하늘에는 동화 같은 별들이 가득하다. 선인장과 함께 한 방향으로 별을 바라보는 중이라고 한다.

선인장은 초록보다는 환상의 느낌을 더해주는 보라색이 더 많이 감돌고 있다. 작은 동화 같은 이 유화 한 점을 바라보면 '선인장이 이렇게 아름다웠었나' 하며 다시금 생각하게 해보고, 또 마음의 휴식이 찾아옴을 느낀다.

세 아이의 선인장은 옆에 평범하게 늘 있는 선인장을 평범하지 않게 만들고 싶었던 작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 늘 일상으로 존재하는 것들, 그래서 그것의 소중함이나 아름다움, 또는 특별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 아주 사소한 그런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오늘 한번 주위를 둘러보고 찾아보면 어떨까? 환상도 일탈적인 꿈이 아니라, 일상에서 찾을 수 있고, 아름다움도 주변의 소박하고 평범한 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 그림은 늘 이렇게 그림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주어서 참 좋다.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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