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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기쁘거나 슬플 때 말고 '중간 표정'을 그린 아이 아홉살 서윤이가 그린 연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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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29

“사람 표정이 기쁘거나 화난 상태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친구들은 사람을 그릴 때 뚜렷한 표정만 그리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중간 표정’이란 것도 있거든요.”

아홉 살 서윤이가 생각에 잠긴 여자를 그리고 난 뒤 한 말이다. 연필 하나로 담백하게 그린 이 그림은 아홉 살이 그렸다 하기에 묘사가 뛰어나서 감탄이 나온다. 특히 인물의 표정에 담긴 독특한 분위기는 일반적인 인물화와 다르다. 연필로 그린 흔한 인물화인데 왠지 자꾸 끌린다. 인물의 표정과 분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서윤이는 ‘중간 표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이 화나거나 슬플 때는 이유가 있잖아요? '중간 표정'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여자는 글을 쓰고 있어요. 글을 쓰다가 잠시 멈추고 글을 어떻게 이어갈까 생각에 잠겨 있어요.”

서윤이는 화실에서 만난 중고생 언니 오빠들의 연필 인물화가 멋져 보여 동경했었다고 한다. 연필로 사실적인 인물화를 그려봤으면 하던 중에 이 그림을 그리게 됐다며, 자기 딴에 최선을 다해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모델은 그림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다. 잠시 턱을 괴고 포즈를 취해 달라 부탁하고 그렸는데, 사실성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작은 디테일 하나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그렸노라고 했다. 선생님의 귀걸이나, 옷에 달린 단추, 스카프의 장식과 스티치 실 자국까지 상세하게 그렸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과연, 최선을 다한 흔적이 그림 곳곳에 보였다.

묘사가 어려운 손은 또 얼마나 잘 그렸는지.  몇 번 지운 끝에 진한 선으로 마무리한 흔적에서 서윤이의 노력과 재능이 동시에 보였다. 무엇보다도 인물화에서 제일 시선이 가는 부분은 안경이다. 눈을 그려 넣지 않아서 안경 너머 어떤 표정이 있을지 궁금하다. 여자의 표정은 그림을 바라보는 이의 생각과 판단에 그 답을 얹혀놓고 있다. 아이가 그것까지 계산해서 의도적으로 눈을 그리지 않은 걸까?

 

눈을 그리지 않은 이유

“눈은 왜 안 그렸어?”
“사실은, 눈이 어려워서 안 그렸어요. 헤헤. ‘중간 표정’의 눈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서요.”
“하하하 그렇구나.”

의외로 단순한 답이 나오니, 오히려 아이다운 순수함에 안심이 된다. 또 그 대답이 그림을 더욱 매력 있게 만든다.

“그런데요, 선생님. 저 뒤의 꽃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린 거예요. 꽃은 생명이잖아요. 그래서 꽃도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제가 꽃을 좋아해서 그린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꽃은 늘 예쁘고 밝을 거라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꽃도 생명이니 감정이 있을 거에요. 그래서 이 주인공 여자의 고민이 전해져 꽃도 웃지 않아요. 보세요! 꽃들이 약간 아래로 쳐진 것 보이세요? 꽃도 같이 고민 중이에요. 단순하게 장식된 꽃이 아니라 같은 생명이고, 생각이 있는 애들이에요.”

이런 깊은 뜻으로 꽃봉오리의 각도까지 생각해 넣었다니 놀랍다. (물론 구석에 있는 작은 화분은 장식이라고 했다) 창에는 가득 산을 그려 넣었다. 자신의 집 뒷산이 생각나서라고 했다. 보통 창에는 해를 그려 넣는 게 흔한 일. 하지만 ‘해가 주는 밝은 기운은 이 여자 표정과 맞지 않는다’며 ‘감정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산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단다.

 

"뚜렷한 것들 사이사이 '틈'을 생각해요"

“저는 남들과 달리 특별한 걸 생각하는 게 좋아요. 그래서 얼굴을 하나 그려도 남들이 보는 표정과 다른 표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뭐랄까, 뚜렷한 것들 사이사이, 틈에 있는 것들을 생각했어요. 표정이 아니더라도, 그런 것들을 더 생각하고 싶어요.”

아이에게 또 배운다. 우리는 혹시 뚜렷하고 두드러진 것들 사이에서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어쩌면 그 사이에 있는, 그래서 잘 드러나지 않아 눈치 못하는 것들이 사실은 정말 우리가 잡아야 하고 또 다듬어 그려내야 하는 건 아니냐고 말이다. 중간 표정, 중간 것들, 잘 안 보이는 것들. 우리 주변에 ‘중간 표정’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한다. 이 한 장의 연필 인물화를 통해서 말이다.

“다 그리고 나니 어떤 기분이 들었어?”
“엄청 기분이 좋았어요. 제가 봐도 정말 잘 그린 것 같아요. 또 제 생각대로 잘 표현한 것 같아 설레었어요. 빨리 엄마에게 가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저 정말 최선을 다해 그렸거든요!”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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