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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면서? 탐험대원 '하릅'의 언어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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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22

 “부산 사투리 심해서 (과에서) 말이 좀 말 나왔어. 그래서 내가 과대니까 고쳐 달라고 했는데 죽어도 안 고치네. 이거 내가 잘못한 건가? O탱 빠지네.”

 윗글은 벚꽃이 하나둘 져가는 4월 말, SNS를 뜨겁게 달군 게시글의 일부이다. 모 대학에서 ‘과 대표’를 맡고 있는 A씨는, 과에서 방언을 쓰는 부산 출신의 학생과 대화한 메신저 내용을 공개하면서 자신의 사연을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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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언을 쓰지 않는 사람이 방언 화자의 말을 못 알아듣는 일은 흔하다. 그런데 왜 A씨는 많은 사람에게 질타를 받았을까? 바로 방언을 대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그는 방언을 ‘고쳐야 할 존재’로 생각하며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방언 화자가 방언을 자제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삽시간에 여러 곳으로 퍼졌고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너무 뜨거운 반응에 A씨는 당사자에게 사과했다며 사과의 내용을 담은 메신저 내용과 함께 다시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방언 화자가 방언을 자제해야 한다.’라는 그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사람들은 다시 그를 질타했다.

 사람들은 ‘이것은 명백한 지역 차별이다’, ‘사과문에 진심이 담기지 않았다’, ‘방언이 ‘소수어’라니, 얼토당토않다’ 등의 다양한 내용으로 글쓴이를 비판했다.

 

착한 이모티콘을 쓴다고 좋은 말이 되나요?

 그중 좋아요 수를 삼천 개 이상 받은 댓글이 있다.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중간중간 이모티콘 쓴다고 좋은 말이 되나요?’라고 말한 댓글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이모티콘을 쓰며 착하고 둥글게 말하는 척하면서 방언을 차별하는 A씨의 위선적인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옛말에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던데, 왜 메신저에서 부드러운 어휘만 사용한 A씨에게는 고운 말이 오지 않았을까? 긍정적인 어휘만 사용하면 긍정적인 말이 되는 것이 아니던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 ‘사랑한다’, ‘좋다’, ‘아름답다’와 같이 긍정적인 의미를 품은 어휘만 사용해서 문장을 만들어보았다. 이 문장이 과연 좋은 말일지 고민해보자.

  -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다!

이 문장은 좋은 말일까, 나쁜 말일까? 사실 아직 알 수 없다.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자세한 내용을 추가해보았다.

  - (나이아가라 폭포의 경치를 내려다보며)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다!

  - (빚 때문에 재산을 탕진해버린 사람이 소리치며)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다!

 이제 정답이 확실하다. 첫 번째 문장은 긍정적인 어휘로 구성된 ‘긍정적인 말’이다. 그러나 두 번째 문장은 긍정적인 어휘로 구성된 ‘부정적인 말(어쩌면 조금은 슬픈 말)’이다. 두 번째 문장의 화자는 도리어 긍정적인 어휘만 사용해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즉 ‘반어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말로 긍정적인 어휘만 사용하면 긍정적인 말이 되는 것일까?’에 답할 수 있다. 긍정적인 어휘만 사용하여도 긍정적인 말이 될 수 없다. 반어법 또는 ‘꼴 좋다!’와 같은 비꼬는 투의 관용적인 말이 그 증거가 된다. 여기서 언어를 사용할 때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한 사실을 포착할 수 있다. 바로 ‘언어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천의 얼굴을 가진다.’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A씨가 겉으로는 완벽하고 사려 깊은 과 대표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고 입을 모아 평가했다. A씨는 최대한 방언 화자인 학우를 배려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어휘와 말투를 사용했다. ‘부탁 한 가지 하고 싶어서 이렇게 톡 걸었어(웃음)’, ‘너의 말을 못 알아듣거나 하는 일이 생기고 그래:)’, ‘서로서로 양보하고 배려해보는 건 어떨까? 살며시 부탁해볼게’와 같은 문장이 그 예시이다. 그러나 그의 말이 전하고자 하는 본질은 ‘네 말에 귀가 따갑다. 부산 사투리는 이질감이 든다. 그러니까 고쳐주면 좋겠다.’와 같이 민감하고 날카로울 수 있는 내용이다.

 A씨는 서로 배려하자고 말했지만, 오히려 방언 화자를 배려하지 않는 모순을 보인다. 특히 자신의 사연을 쓴 게시글에서 방언 화자에게 ‘O탱 없다’고 말한 그의 태도를 보면, 부드러운 말투로 작성한 표현들이 결국 ‘속없는 말’임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가는 말’이 표면적으로는 고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는 말’들이 곱지 못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의 ‘가는 말’은 고운 옷과는 다른 곱지 못한 뜻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A씨의 사연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고 아름다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향까지 좋은 꽃처럼, 그 의도와 속뜻까지 고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언어는 상황에 따라 자신을 무수히 바꿀 줄 아는 신비한 녀석이라, 겉으로만 아름답다고 해서 ‘고운 말’이라고 할 수 없다. A씨가 한바탕 일으킨 소동 덕분에, 고운 말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탐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릅(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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