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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엑스팻(Expat)이란 외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엑스팻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필자 이철재 변호사가 뉴욕에서의 엑스팻 생활을 풀어나가며 그곳의 일상적 모습 혹은 관광객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곳들을 소개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관람기 下 <호두까기 인형>으로 마친 짧지만 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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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와 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링컨센터 바로 옆에 있는 나의 모교 맨해튼 캠퍼스와 그 옆에 성바오로(St. Paul, the Apostle) 성당을 보여드렸다. 성바오로 성당은 부활절 등 특별한 날에는 성경을 읽는 것부터 기도문 낭송 등 모든 것을 그레고리안 성가로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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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드 음대가 보이는 링컨센터의 모습_셔터스톡

 

다시 링컨센터로 돌아와 플라자 안에 직삼각형 모양으로 누워있는 건물 안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저녁을 대접했다. 몇 년 전 대학 동창회에 갔다가 학창시절 나의 바이올린 연주 반주를 자주 해 주시던 미시즈 포스터를 거의 30년 만에 만났다. 내가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은데 너무 반가워 말을 잇지 못하고 미시즈 포스터만 연발하다 겨우 생각해서 한다는 말이 저 이제 운전면허증도 있어요였다. 미시즈 포스터가 너 학교 때도 운전 하고 다녔잖아?” 했다. 미시즈 포스터도 웃고, 나도 웃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웃었다    

오늘 선생님 내외분께는 그래도 오페라 구경도 시켜드리고, 저녁 대접도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 비슷한 마음이 들면서 나름 매우 뿌듯했다. 우리 자리 바로 옆 창문으로 줄리아드 음대가 보였다. 선생님은 악기 들고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보니 옛 생각이 많이 났나보다. 저녁내 창문 너머를 보며 젊은 아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열심히 공부하니 든든하다고 하셨다. 음식은 돈이 아깝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 가고 싶을 정도로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음에 선생님이 또 오시면 그 때는 진짜 맛집으로 모셔야지 생각했다.

   

별은 빛나건만, 파바로티는 사라졌구나     

선생님과 헤어져 호텔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전화기를 꺼내 토스카 중 <별은 빛나고>를 파바로티의 음성으로 들었다. 파바로티의 레퍼토리의 폭이 넓지 못하다느니, 목소리가 너무 가늘다느니 혹은 정통 이탈리아 식 발성이 아니라느니 하는 비평은 평생 그를 따라 다녔다. 나도 그런 배부른 불평을 가끔 하는 족속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떠나고 난 뒤 10, 나는 아직도 그를 대신할 테너를 찾지 못했다. 뉴욕 하늘에 별은 빛나건만, 내 마음의 별 파바로티는 영원 속으로 사라졌다.     

서울에서 돌아와 처음 곤히 잠을 잤더니 다음날 아침은 일찍 일어났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간밤에 잘 쉬었는지 아니면 피곤이 더덕더덕 붙어있는지는 얼굴에 다 나타나는가보다. 아침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선생님이 머무르시는 호텔로 갔더니 선생님이 날 보자마자 어제보다 얼굴이 훨씬 좋다고 하셨다. 아침식사를 함께하고 두 분 모시고 센트럴파크 산책을 나갔다. 4월 초 센트럴파크는 봄이 완연했다.     

센트럴파크에 가면 바위가 여기저기 울퉁불퉁 튀어나온 것들을 볼 수 있다. 지금부터 3억 년 전 지구상의 모든 땅덩어리가 모두 한 곳에 모여 판제아(Pangea)라는 큰 대륙을 이루었다. 이때 현재의 미국 동부지역에는 아프리카 대륙이 붙어있어 뉴욕은 내륙지방이었다. 공룡들이 뉴욕과 뉴저지에서 아프리카까지 걸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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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에는 판제아의 잔재인 바위들이 남아있다_이철재

 

판제아가 만들어질 때 대륙과 대륙이 서로 엉겨 붙으며 생긴 엄청난 압력으로 인해 땅 위로는 현재의 히말라야 산같이 높은 산들이 치솟고, 땅 속으로는 바다 속 깊은 곳에 있던 미네랄들이 위로 올라와 맨해튼 토양 아래 단단한 기반암(Bedrock)이 되었다. 이 기반암층은 맨해튼의 미드타운과 남쪽 끝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에서 가장 표면에 가깝게 솟아올라있다. 반면 맨해튼의 다른 지역에서는 기반암층이 밑으로 푹 꺼져있다. 자연 미드타운과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의 지반은 맨해튼의 다른 지역에 비해 단단하다. 맨해튼 고층빌딩들이 이 지역에 몰려있는 이유다. 1억 년 전 이 땅덩어리들이 분리되면서 뉴욕은 해안도시가 되었지만, 판제아의 잔재들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바로 센트럴파크의 바위들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분리되면서 흘리고 간 부스러기라고 할 수 있다.

   

나의 테마송, 나는 뉴욕에 있는 한국사람     

센트럴파크 산책 잘 하고, 커피 한잔 마시고 선생님 내외분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펜스테이션에 도착해 늘어선 긴 줄의 맨 뒤에 가서 섰다. 탑승 전 줄을 서서 기다릴 때면 늘 스팅(Sting)“Englishman in New York”을 듣는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뉴욕으로 이사를 한 뒤로 나는 그 노래를 내 테마송이라고 부른다. 그 노래 후렴이 “I am an alien. I am a legal alien. I am an Englishman in New York(나는 체류자. 나는 적법 체류자. 나는 뉴욕에 있는 영국사람)”이다. 나는 늘 이 노래를 따라 부르다. “I am an Englishman in New York”“I am a Korean man in New York”으로 바꿔 부른다.     

기차는 정확히 오후 1시에 시라큐스로 향했다. 집을 떠나 서울에 있다 돌아오자마자 내 애견 부도와 사흘 함께 지내고 또다시 이별하고 맨해튼으로 왔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부도와 쉬고 싶었다. 뉴욕 펜스테이션에서 떠나 40분쯤 북으로 올라가면 허드슨 강 위 한 섬에 오래된 건물의 폐허가 남아있다. 배너만 캐슬(Bannerman’s Castle)이다. 캐슬이라는 이름과 달리 무기 만드는 공장이었다. 지금은 폐허만 남았는데 나는 그 폐허가 아름다워 지날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매번 달리는 기차에서 찍으니 사진이 잘 나올 리 없다. 이번에도 잔뜩 긴장하고 기다리다 찍었는데 아주 마음에 들지 않게 나왔다. 미국 기차 느리다고 흉을 보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리지도 않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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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가 다녀간 곳으로 알려진 유티카의 유니온역_이철재

 

금요일에 시라큐스에서 뉴욕으로 올 때는 수월하게 왔는데 집으로 가는 길은 정체가 심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쯤 늦게 오후 6시가 거의 다 되어 유티카(Utica)의 유니온역(Union Station)에 도착했다. 유티카는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의 장편소설 <<아메리카의 비극(An American Tragedy)>>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 이제 1 시간만 더 가면 집이다라고 생각하며 길게 기지개를 펴다 창밖을 보니 저녁 6시가 거의 되었는데 4월 초의 태양이 높이 걸려 있었다. 유티카 역은 1869년에 세운 오리지널 건물을 허물고 1911년 그 자리에 현재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내부에 화려한 기둥과 천장이 특징이다. 이곳은 또한 러시아의 유명한 작곡가 차이코프스키가 1891년 카네기홀 개관기념공연 지휘를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가려고 여행을 하다 기차를 갈아탄 곳이다    

우리 집에서 2시간 쯤 가는 곳에 유명한 여름 오페라축제가 있다. 그 축제에서 매달 보내주는 이메일 소식지에 의하면 차이코프스키는 유티카 역에서 기차를 갈아타려 기다리는 동안 러시아에 있는 그의 동생 모데스트(Modest)에게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에 들어갈 <사탕요정의 춤(Dance of the Sugar Plum Fairy)>의 구상을 편지로 적어 보냈다. 차이코프스키는 엄청난 메모광이었다. 미국 여행 중에도 <<미국 여행기>>라는 일기를 남겼는데 거기에 누구에게 어떤 내용의 편지를 썼다는 이야기까지 다 들어있다.     

나머지 한 시간 기차 타고 가면서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을 들었다. 18914월의 어느 날 차이코프스키는 뉴욕에서 기차 타고 오면서 내내 머릿속에 <<호두까기 인형>>을 구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내가 서 있던 유티카 역에 내려 동생에게 편지를 쓰면서 처음으로 그 구상이 머리 밖으로 나온 것이다    

집에 도착해 짐 풀고 기절하듯 쓰려져 잤다. 꿈속에 사탕요정들이 나와 춤을 췄을 법도 한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서울에 다녀와 또다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맨해튼을 다녀왔다. 출장차 갔던 일도 잘 되었고, 선생님도 뵈었고 몸을 혹사하며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또 만날 때까지 맨해튼이여, 안녕!

 

 

 

이철재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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