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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부서진 널판지가 코끼리가 되는 순간 일곱 살 종헌이의 그림
입력 : 2019.04.17
7세 박종헌이 그린 코끼리.

“선생님! 이거 보세요! 이렇게 하면 코끼리 얼굴 같아요!”

부서진 널빤지 두 장을 겹쳐놓고 일곱 살 종헌이가 외쳤다. 이 널빤지는 사실, 태권도 학원에서 송판 격파 훈련 뒤에 버리려고 상자 안에 가득 담아 쌓아둔 걸 내가 가져온 것이다. 나무를 버리는 게 아까워 미술 재료로 재탄생시키고 싶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여러 형태의 부러진 나무판을 보여주며 맘대로 고르고 그걸 이용해 뭘 그릴 것인가 생각해보게 했다.

“선생님~! 이 나무 위에 참새들이 놀고 있으면 예쁠 것 같아요.”

한 아이는 나무를 종이 위에 목공풀로 붙인 뒤, 그 나무와 종이에 걸쳐서 참새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그려나갔다.

“나무 위에 이 옥수수 그리고 싶어요.”

또 한 아이는 인터넷에서 말린 옥수수를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사진을 보더니, 먹물로 나무 위에 옥수수를 그려나갔다. 이렇게 대부분의 아이는 나무판의 자연적인 느낌과 어울릴만한 소재를 찾아 그려나갔다.

그런데 종헌이는 깨진 송판 두 장을 겹쳐놓고서는 코끼리를 떠올렸다. 그 발상이 무척이나 재치있고 사랑스러워서 나는 손뼉을 치며 웃음으로 아이의 아이디어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종헌이의 코끼리 작품이 탄생 된 출발점이다.

코끼리 코가 된 나무판 위에는 펜으로 죽죽 선을 그어대어 코끼리 코임을 강조했고, 눈은 문방구에서 파는 장난감 눈알을 붙여서 그림을 흔들면 눈알이 뱅글뱅글 돌아가게 했다. 얼굴에 이어 그린 몸은 지나치게 작아서 졸지에 얼굴 큰 코끼리가 됐다. 그래서 더더욱 귀엽고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아이의 순수함 그 자체이다. 그림을 그린 아이의 순수함이 코끼리에 그대로 녹아든 것 같다.

 

등뒤엔 늑대와 악어...코끼리의 운명은? 

하지만 아무리 봐도 어딘가 어리숙해 보인다. 너무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코끼리라고 할까? 그걸 알고 있다는 듯이, 등 뒤의 늑대와 물속에 숨어있는 악어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 악어의 웃음을 보라. “키키키, 바보 같은 코끼리. 넌 곧 내 밥이야!”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단순히 깨어진 송판 조각들을 보고 코끼리 얼굴을 떠올렸고, 또 코끼리 하나만 그리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하나의 상황 설정해 각 인물의 캐릭터를 표현한 이 그림은 그래서 아이디어 시작단계부터 완성단계까지 아이다움의 예술로 가득 차 있다. 이 사랑스러운 그림을 보는 어른들의 입에는 미소가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나저나 코끼리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저 잔꾀 많은 악어의 밥이 될 것인가, 아니면 사악하고 무섭게 쳐다보는 늑대의 먹이가 될 것인가? 그러나 아무리 봐도, 코끼리는 먹힐 것 같지 않다. 그저 천진난만함과 단순함, 순진함이 오히려 두 마리 적들에게 역공을 강해 이 위기를 모면하고 훌륭히 탈출에 성공할 것 같다. 그런 믿음이 코끼리 얼굴에서 느껴진다.

때로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것이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때도 있지 않은가? 천진난만하다 못해 천연덕스러운 얼굴이기에, 두 마리 적이 있어도 우리는 마음 안 졸이고 웃으며 이 그림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 그림의 힘은 바로 이런 맑고 순수함, 담백하고 유머스러움으로 어른들의 마음을 착하게 만들어주는 데 있다.

 

단순함이 가진 의외의 힘

코끼리가 마시는 물 한 모금처럼, 우리도 물을 시원하게 한 잔, 얼음 넣어 마시는 것 같다.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책임감과 의무, 그리고 고민, 짐, 그리고 어쩌면 조금은 때탔을지 모르는 마음과 머리에서 벗어나, 함께 다 잊고 물을 같이 마시며 '하하하' 웃을 것만 같은. 

이 그림을 보는 순간만큼은 잠시라도 물 마시는 행위와 물의 시원한 온도, 청량함에만 집중할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매일 엉킨 실타래처럼 스트레스 잔뜩 낀 상태로 살면 얼마나 영혼이 일찍 늙을 것인가? 아무리 어른이라도 단순해질 시간은 필요하다. 단순한 생각의 상태 말이다. 주변에 아무리 우리를 노리는 적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도, 우리는 오히려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엉뚱하리만큼 아무렇지 않게 벗어날지 모른다.

자! 여러분의 적은 무엇인가? 어떤 형태로 여러분을 노리고 있는가? 때로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단순하고 맑은 상태가 되어보시라. 어쩌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답을 찾고 적을 피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지 모른다. 코끼리처럼 어리숙하면서도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을지도.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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