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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표준어, 또 하나의 차별은 아닐까? 탐험대원 로운의 언어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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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15
KBS '불후의 명곡' 방송 화면 캡처

 작년 중국 여행 중 TV 방송을 보고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TV 속 드라마, 뉴스에서 분명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화면 아래로 중국어 자막이 또 나오는 것이었다. 그 때는 그냥 궁금증을 남긴 채로 넘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지역마다 말이 다르기 때문에 자막을 이용하여 소통을 돕는 것이라고 하였다.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지역마다 다른 방언을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방언과는 달리 아예 다른 언어처럼 서로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보통화’(중국의 표준어)를 강요하지 않고 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의 경우와는 다른 듯하다. 누구나 ‘표준어’로 쓰인 교과서로 교육을 받고, ‘표준어’로 시험을 보며 학창시절을 보낸다. 또한 사회로 나온 이후에도 서울에서 직장을 얻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표준어’ 사용이 요구된다. 흔히 ‘사투리’라고 불리는 방언이 ‘고쳐져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요즘은 그나마 지역어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서 영화나 예능 등의 매체에서는 그 활용도가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서울말’을 쓰기 위해 새로운 어휘를 익히고 억양을 교정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중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의 경우, 표준어는 단지 다른 지역 사람들의 소통을 돕기 위한 방안일 뿐이다. 즉, 그들은 표준어를 편리함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표준어를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잣대로 놓고 표준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구별하고 선을 긋고 있다.   

대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이러한 ‘선’이 존재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방언학 강의에서 학생들이 겪은 사투리 일화에 ‘소외감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사투리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소외감을 느끼고 결국 사투리를 완전히 고치게 되었다는 사례가 있었다, 사투리 사용에 대한 타인의 시선이 한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의 사투리를 따라하는 행위가 당사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처음에는 이 말에 의아함을 느꼈는데, 사투리를 따라하는 것은 사투리에 대한 관심표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투리’를 따라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사투리를 ‘뭔가 이상한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난 후, 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서울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사소한 행위가 당사자들에게는 차별로 느껴질 수 있음을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이외에도 ‘선’의 존재를 보여주는 사례는 매우 많다. 포털 사이트에는 표준어 억양으로 바꾸어 주겠다는 학원 광고가 넘쳐난다. 또한 사투리를 고쳐야 한다는 조건으로 입사했다거나, 일을 잘해도 사투리를 고치지 못해서 압박을 받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표준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사실, 처음 표준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이유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통일된 글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글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현재, 세련되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표준어를 강요할 이유는 없다. 직장에서 표준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대부분 표준어가 전문적이고 세련된 말이며 친절해 보인다는 등이다. 즉, 원하는 이미지를 위해 표준어 억양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그 이외의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이다. 

표준어 억양을 사용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필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방언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블루베리 스무디’를 표준어 억양으로 발음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표준어 발음연습을 위해 ‘블루베리 스무디’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블루베리 스무디’를 표준어 억양으로 해야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억양으로 하든, 그 뜻은 변하지 않는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굳이 표준어 발음으로 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처럼, 굳이 표준어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표준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서울말을 기타 방언에 비해 우위로 두고 있다는 증거이다. 방언에 대한 차별이 사회 곳곳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표준어를 없애고 방언을 권장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니 그 다름의 차이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 한 옳음이 있으면 남에게도 한 옳음이 있는 것을 인정하여서 남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 해서 그를 미워하는 편협한 일을 아니하면 세상에는 화평이 있을 것이다.”

도산 선생의 주장처럼 나와 다름의 인정, 존중에서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로운(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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