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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엑스팻(Expat)이란 외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엑스팻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필자 이철재 변호사가 뉴욕에서의 엑스팻 생활을 풀어나가며 그곳의 일상적 모습 혹은 관광객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곳들을 소개한다.
맨해튼 1박 2일 출장 일기 上 뉴욕행 기차 타고 여섯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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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12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서울에 다녀와 그 다음날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이발소에 가는 일이었다. 맨해튼 출장을 가야 하는데 그간 이발을 하지 못해 머리가 산발(散髮) 상태였다. 나는 단골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습성이 있어 웬만해서는 서울에 가서 머리를 깎는 일이 없다. 늘 답답해도 참고 있다가 시라큐스에 돌아오자마자 이발부터 한다.

나의 단골 이발사 디노(Dino)는 내가 로스쿨 다닐 때부터 내 머리를 만졌으니 우리가 알고 지낸 것만도 20년이다. 그 때는 자신의 삼촌이 운영하는 이발소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애송이 때였다. 한 10년 전에 삼촌이 은퇴하면서 옆자리에서 이발을 하는 동생과 그 옆자리에 매제와 이발소를 인수해 지금은 사장님이기도 하다.

이번 이발은 더욱 특별한 것이, 디노가 삼촌 때부터 40년간 세 들어 있던 건물을 나와 새로 이사를 했다. 새 이발소를 처음 가는 것이라 원두커피 한 봉지 사가지고 가서 선물로 주고 머리를 깎고 왔다. 디노는 새 이발소가 자랑스러웠는지 머리 깎는 내내 “어때? 좋지?”하고 대여섯 번 물어봤다. 시차 적응을 못해 졸음이 쏟아졌지만, 나의 탈모 고민을 늘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나의 대머리 이발사 디노를 위해 나도 연신 “와, 너무 좋다” “기가 막히다”하고 맞장구를 쳐줬다.

 

새마을호보다 느린 미국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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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날 아침 여전히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해 헤매면서 아침 7시 기차를 타고 맨해튼으로 향했다. 미국의 기차는 상당히 후졌다. 서울과 부산 거리의 시라큐스-맨해튼을 가는데 6시간이나 걸린다. 새마을호보다 더 느리다. 게다가 단선철도가 많아 가다 서다를 유난히 반복하는 날은 6시간을 훌쩍 넘길 때도 있다.

이렇게 후진 기차지만 그래도 내가 비행기보다 기차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출발 2시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 비행기 여행과는 달리 기차 도착 5분 전에 승강장으로 올라가 기다리다 타면 된다. 가는 동안 넓은 공간 안에서 스트레칭 하고, 컴퓨터 꺼내 놓고 일하고, 책도 읽다가 한숨 자면 지루한 줄 모르고 도착한다. 그것도 시내 한복판에 도착한다. 공항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40~50분, 길 막히면 1박 2일 걸려 시내로 들어가는 비행기 여행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편리하다.

무엇보다 기차가 좋은 점은 비행기 여행과 달리 합법적인 물건이면 무엇이든 다 갖고 탈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바이올린을 갖고 한국에 갈 때는 미 국내선을 타지 않으려고 시라큐스에서 기차를 타고 맨해튼에 가 하루 자고 뉴욕-서울 직항 비행기를 탄다. 국내선 비행기들은 너무 비좁아 바이올린을 게이트 체크인 하라고 하는데, 악기를 다루는 사람에게 그건 비행기 타지 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전문 음악인이 아니니 바이올린은 그냥 집에 두고 다니면 되지만, 기차 여행 할 때만 누리는 호사가 또 한 가지 있다. 나는 커피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누구를 만나거나 여행 할 때를 제외하고 밖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일이 거의 없다. 그 많은 종이컵도 아깝고, 커피 입맛도 까다로운 편이라 웬만하면 집에서 커피를 타서 보온병에 담아 가지고 다니며 마신다. 기차 여행을 할 때는 커피가 가득 찬 보온병을 아무 제약 없이 들고 탈 수 있어 좋다.

 

허드슨강을 따라 뉴욕시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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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기차에 올라 자리에 앉으니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아무리 있어도 기차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6시 55분이었다. 역에 도착하니 기차가 있어 시간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탔는데 기차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승객을 다 태우고도 떠나지 않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연착을 상습적으로 하는 미국 기차지만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너무 일찍 도착해 출발 시간이 될 때까지 떠나지 못하고 기다리는 날이 있다.

기차는 정각 7시에 떠났다. 책을 읽으려고 펼쳤는데 두 단어 정도 읽다 잠이 들었다. 잘 자고 깨어보니 중간 지점인 알비니로 들어서고 있었다. 계속 동쪽으로 달리던 기차는 뉴욕주의 동쪽 끝인 알바니에 이르러 방향을 남쪽으로 틀고 허드슨강을 따라 내려가다 뉴욕시에 도착한다.

뉴욕시에는 큰 기차역이 두 개 있다. 42가에는 주로 통근 열차들이 들어오는 그랜드센트럴 터미널(Grand Central Terminal)이 있고, 내가 시라큐스에서 타고간 앰트랙(Amtrak) 열차들은 31가에 펜스테이션(Penn Station 원명은 Pennsylvania Station)으로 도착한다. 

그랜드 센트럴은 한 때 도시계획에 따라 헐릴 위기에 처했는데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여사가 적극 나서 기적적으로 철거 계획이 취소되었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무척 아름다운 건물이다. 그런 건물을 허물려 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 현재는 시 지정도 아니고, 주 지정도 아니고 국가 지정 사적이다. 당분간 헐릴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이에 비해 내가 늘 도착하는 펜스테이션 역은 더럽고 건물도 못생겼다. 작년에 펜스테이션 수리를 하느라 한동안 앰트랙 열차도 그랜드센트럴로 도착해 좋았는데 다시 더러운 펜스테이션으로 돌아갔다. 

프렌치 프레스에 4분간 우려 보온병에 담아 온 코스타리카 싱글 오리진 커피가 바닥 날 즈음 종착역 뉴욕시에 도착했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우산 장사가 우산 사라고 쉼 없이 소리를 질렀다. 속으로 ‘나는 집에서 우산 가져 왔지롱’ 하면서 우산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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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마자 바로 회의에 가도 될 옷차림으로 왔기에, 짐은 배낭과 커피 담아온 보온병이 전부였다. 호기심에 여태 묵어 본 적이 없는 알곤퀸(Algonquin) 호텔에 예약을 했다. 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44가에 있다. 짐도 별로 없고, 거리도 멀지 않아 걸어갔다. 뉴욕시에서 어중간한 거리는 택시 탔다가 길이 막혀 낭패 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나는 웬만하면 걷자 주의다. 맨해튼을 방문할 때면 거짓말 조금 보태 하루에 2만보 정도 걷는 것 같다. 

 

 

글·사진 이철재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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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최정환   ( 2019-04-17 ) 찬성 : 4 반대 : 0
센트럴스테이션만큼 아름다웠던 펜스테이션도 60년대초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역사와 매디슨 스퀘어 등 복합건물을 지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후회를 했다고 하네요. 유튜브에는 아름다웠던 건물이 파과되는 당시 동영상 등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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