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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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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 망원경을 처음 발명한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년 2월 15일 ~ 1642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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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04

분산되어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도 주둥이가 넓은 깔때기를 이용하여 한 곳으로 모으면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지게 할 수 있다. 희미한 별빛도 그처럼 한곳에 모은다면 먼 거리에 있는 별을 훨씬 밝고 또렷하게 볼 수 있는데, 그와 같은 집광 장치가 바로 천체 망원경이다.

 최초의 망원경은 1609년 리페르세이(Hans Lippershey, 1570~1619)를 비롯한 몇 명의 네덜란드의 안경 제조업자들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안경업자들이 만든 망원경은 배율이 3~4배 정도로 성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광학 지식을 이용하여 그들이 만든 것보다 열 배나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제작했다. 그가 만든 망원경은 볼록렌즈로 빛을 모은 후에 오목렌즈로 빛의 경로를 똑바로 펴서 보는 방식이었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이용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입증하는 증거를 발견하고 천동설을 혁파하는 데 선봉장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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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4년 피렌체 공국(이탈리아)의 피사에서 태어난 갈릴레이는 어릴 적에 수도사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강요로 피사대학(Università di Pisa)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의학 대신 수학과 물리학 공부에 전념했고 학위를 마치지 않은 채 수학 개인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586년 천칭을 이용하여 물체의 무게를 측정하는 원리를 설명한 ≪작은 천칭, La Bilancetta≫과 몇 권의 책을 출간한 갈릴레이는 1589년 피사대학의 수학 강사를 하다가 1592년 파도바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갈릴레이는 파도바에서 마리나 감바(Marina Gamba, 1570~1612)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채 딸 둘(1600년, 1601년)과 아들(1606년)을 낳았다.1) 

1609년 20배율의 망원경을 제작한 갈릴레이는 가을부터 관측 활동을 시작하여 달이 울퉁불퉁한 산과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어서 목성을 관찰하여 위성 4개를 발견하였고, 은하수가 무수히 많은 별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알아냈으며, 토성은 동그라미 세 개가 붙은 형태인 것으로 파악했다(실제로는 고리 원반 형태임). 갈릴레이는 이러한 발견들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1610년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Sidereus Nuncius(별의 소식)≫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했다. 그는 서문에 「고귀하신 토스카나의 네 번째 대공 코시모 드 메디치 2세 전하께」라는 찬양의 글을 싣고 목성 주위를 돌고 있는 4개의 행성2)에 대공의 가문 이름을 붙여서 ‘메디치 별(Medicean stars)’3)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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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의 달 스케치(왼쪽), 목성과 4개의 메디치 별.(목성의 4대 위성,오른쪽) 출처: https://en.wikipedia.org

갈릴레이의 관측 이전의 달은 천상의 세계에 있는 존재로 매끈하고 완전한 구로 여겨지고 있었다. 또한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었다. 목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천체가 있다는 것은 우주 운동의 중심이 2개 이상이라는 것이었으므로 천동설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자신의 믿음이 뒤집어지는 것을 재앙처럼 여겼던 사람들은 갈릴레이의 관측 결과를 부정하고 반박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반대는 ‘망원경이 우리의 감각을 속이는 물건일 수 있다’라는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갈릴레이의 관측은 정확했고 분석과 추론은 타당성이 높았기 때문에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출판 이후 갈릴레이는 유명 인사가 되었고 대공의 수학자로 임명되었다. 

이후 갈릴레이는 태양의 흑점을 발견하여 이것이 태양 표면에서 나타나는 현상임을 밝히고 흑점의 이동 방향과 움직임을 통해 태양의 자전 주기를 알아냈으며, 금성의 위상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천동설이 잘못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천동설에서 완전무결했던 태양이 검은 반점들로 얼룩지고, 금성은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천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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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6월 23일 갈릴레이의 태양 흑점 스케치. 출처: www.iau.org

금성을 몇 개월 이상 망원경으로 관찰하면 초승달, 반달, 보름달 모양을 모두 볼 수 있다. 금성의 시직경 크기 변화도 매우 크다. 금성이 보름달 모양일 때는 태양의 뒤쪽에 위치하게 되어 작게 보이며, 초승달이나 그믐달 모양일 때는 지구와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지기 때문에 크게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은 천동설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는 금성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경우 금성에 그림자가 항상 드리워지기 때문에 반달보다 큰 위상은 나타날 수가 없고, 거리의 편차도 크지 않아서 시직경의 차이도 두드러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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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년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확실히 주장하는 문제의 책 ≪대화; Dialogue, 원제; 두 가지 주요 세계관에 관한 대화; Dialogo dei due massimi sistemi del mondo≫를 출간하였다. 책의 서문에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낫지만 실제로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본문을 읽으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옳다는 것을 절로 알게 하는 내용이었다. 등장인물인 살비아티는 해박한 지식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설명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대변하는 심플리치오는 순진하면서도 멍청하기 짝이 없다. 심판의 역할을 맡은 사그레도는 살비아티의 설명에 감탄하며 맞장구치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나흘 동안의 대화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첫째 날 태양의 흑점과 달의 지형, 둘째 날 지구의 자전, 셋째 날 지구의 공전, 넷째 날 밀물과 썰물에 관한 내용4)을 주로 다룬다. 갈릴레이는 이 책에서 치밀한 솜씨로 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추론의 정수를 보여준다. 원래 ≪대화≫는 갈릴레이와 친했던 교황 우르바누스(Urbanus) 8세의 반승낙을 얻고 집필한 것이었으나, 서문만 검열을 받고 출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윽고 책이 출판되고 본문의 내용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로마 교황청은 분노와 당혹감에 휩싸여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에 회부했다. 로마 교황청은 32년 전인 서기 1600년에 종교재판을 통해 이탈리아의 수도사이자 철학자인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2.17)를 화형에 처한 전력이 있는 터였다. 브루노는 마치 21세기에서 16세기로 돌아간 시간여행자처럼 ‘우주는 무한하여 중심이 없으며 항성들은 태양과 같은 천체이고 회전하는 지구와 같은 행성은 우주에 무수히 많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로마 교황청은 그의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주장을 철회하도록 압박했으나 브루노는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텼다. 결국 브루노는 쇠로 만든 재갈을 쓰고 사제들에 의해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혀와 입천장을 관통 당한 후 거리를 끌려 다니다가 발가벗겨져서 화형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갈릴레이는 브루노처럼 화형을 당할 수도 있는 처지였으므로 결국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참회문을 읽고 서명했다.

 「(상략) 저는 진심으로 말하건대, 이런 틀린 개념과 이단,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어떠한 실수든 포기하고, 저주하고, 혐오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다시는 입을 통해서든 글을 통해서든 이와 비슷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단 행위를 하면 저는 그를 이 종교 재판소에 고발할 것이며, 제가 지금 있는 위치에 놓이도록 만들 것입니다. 저는 이 재판정에서 제게 요구하는 어떠한 속죄 행위라도 지키고 따를 것임을 맹세합니다. (중략) 신이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저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성경에 손을 얹고 위와 같이 맹세하고, 서약하고, 약속하고, 다짐합니다. 증인들 입회하에 제 손으로 이 맹세를 쓰고 이것을 읽습니다. 
 1633년 6월 22일, 로마 미네르바 교회에서 저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위와 같이 제 손으로 이 맹세를 썼습니다.」 ≪대화≫ 옮긴이(이무현)의 글 발췌 인용. 사이언스북스. 2016

 교황청은 책의 판매를 금지하고 갈릴레이에게 평생 가택 연금 판결을 내렸다. 갈릴레이는 가택 연금 상태에서도 연구를 지속했다. 망원경으로 태양을 관찰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무척 위험한 일이다. 태양 광선이 한 개의 초점에 모인 후 동공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에 성능이 좋은 필터(빛을 약하게 걸러주는 장치)를 쓰는 경우에도 장시간 관측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이는 태양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다가 1937년에 이르러 한 쪽 눈을 실명했고, 이듬해에는 나머지 한 쪽 눈의 시력마저 완전히 상실했다. 그와 같은 역경 속에서도 갈릴레이는 틈틈이 집필한 원고를 네덜란드로 빼돌려 1638년에 ≪새로운 두 과학에 대한 대화와 수학적 증명; Discorsi e Dimostrazioni Matematiche, intorno a due nuove scienze≫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는 전작 ≪대화≫의 주인공들(살비아티, 심플리치오, 사그레도)이 고스란히 등장하고, 이야기의 얼개 또한 동일하여 나흘 동안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첫째 날의 이야기는 구조물의 강도, 충격에 대한 저항, 진공의 힘, 빛의 속력을 재는 아이디어, 물체의 비중, 물체의 낙하 법칙, 진자의 운동, 물체의 운동과 공기의 저항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대로)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먼저 땅에 떨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연결해서 떨어뜨리는 경우는 어떨까?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려 하고 가벼운 물체는 늦게 떨어지려 할 것이므로, 그 결과는 처음의 무거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늦고, 가벼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빨리 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 물체가 연결되어 있어서 전체 무게는 더 무거우므로 더 빨리 떨어져야 옳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갈릴레이는 이처럼 모순된 두 결론을 제시하여 처음의 가정이 틀렸음을 논증하고 무거운 물체나 가벼운 물체나 동시에 떨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공기의 저항이 작용하기 때문에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약간 먼저 떨어진다는 추가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닮은꼴 물체의 경우 길이를 반으로 줄이면 무게(부피)는 세제곱에 비례하여 1/8로 줄지만 표면적은 제곱에 비례하여 1/4로 감소하므로, 작은 물체가 표면적 비율이 높아서 공기 저항을 더 많이 받는다는 설명이었다. 아울러 물체의 낙하 속도는 시간에 비례하고 낙하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등가속도 법칙, 진자의 주기는 진동 폭에 상관없이 항상 일정하다는 진자의 등시성 원리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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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날의 이야기 주제는 지렛대의 원리와 구조물 기둥의 여러 가지 형태에 따른 강도에 대한 것이었다. 갈릴레이는 원기둥이나 각기둥의 무게가 자신을 부수려는 힘으로 작용하는데, 기둥이 버티는 힘은 기둥의 단면적에 비례하고 기둥의 무게는 세제곱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닮은꼴 모양이라면 큰 기둥일수록 약하며, 사람의 뼈 또한 그러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거인의 뼈의 생김새 비율이 보통 사람의 뼈와 같다고 하면, 거인의 뼈는 약해서 부러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뼈의 크기가 커지면 길이보다 굵기가 더 늘어나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림으로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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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iscorsi e Dimostrazioni Matematiche≫ Abebooks.com

 

셋째와 넷째 날의 이야기는 물체의 운동과 속력, 쏘아 올린 물체의 포물선 운동, 공기 저항, 진자의 진동에 관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는 낙하 물체가 비탈면을 내려가는 가장 빠른 길은 미끄럼틀과 같은 직선 경로가 아니라, 아래로 휘어진 원의 곡선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라고 기하학적으로 논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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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원호를 따라 내려오는 것보다 실제로는 사이클로이드(cycloid) 곡선의 경로로 내려오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이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지고 정의되었다.

사이클로이드는 직선 위로 바퀴가 구르듯이 원을 굴렸을 때 원 위의 한 점이 그리는 곡선 경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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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의 A에서 B까지 물체가 이동하는 경우, 직선이나 원호보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따라 떨어지는 물체가 중력에 의한 초기 가속이 가장 크기 때문에 바닥 B에 도달하는 시간이 가장 짧으며, B 지점에서의 속력 또한 최대가 된다. 독수리가 지상의 먹잇감을 낚아채기 위해 상공에서 지상으로 낙하하는 경로가 바로 사이클로이드 곡선과 같고, 놀이공원의 레일 기차가 최고의 가속을 내는 경로 또한 사이클로이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맹인이 된 상태에서 진자의 법칙을 이용한 진자시계의 설계도를 1641년에 완성하고 아들이 이를 제작하도록 지도했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갈릴레이는 1642년 1월 8일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갈릴레이가 죽고 340년이 흐른 뒤(1980년) 가톨릭교회는 갈릴레이와 지동설에 대한 재판이 잘못된 것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1)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낳은 두 딸(Virginia, Livia)은 호적이 없었으므로 결국 수녀가 되었다. 아들(Vincenzo)은 류트 연주가로 훗날 호적을 인정받았다.
2) ‘위성’이지만 갈릴레이는 ‘행성’으로 표기했다.
3) ‘메디치 별’은 훗날 천문학자들에 의해서 ‘갈릴레이 위성(Galilean moons)’으로 불리게 된다. 갈릴레이 위성은 목성에 가까운 순서대로 이오(Io), 유로파(Europa), 가니메데(Ganymede), 칼리스토(Callisto)’를 통칭한다.
4) 갈릴레이는 밀물과 썰물이 지구의 회전 운동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추측했을 뿐, 달과 태양의 인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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