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상주의자지만, 제 삶은 굉장히 현실적이에요.

현실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상을 현실로 바꿀 수 없어요.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삶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해온 것 이상으로 노력해야 해요.

이상하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내가 하는 것 이상으로 노력할 것,

이상을 이룰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상주의의 삼박자예요.

책에 “삶의 중요한 순간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움직인다”고 썼죠. 쉽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음에도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던 변곡점이 있을까요.
“시기마다 변곡점이 된 일들이 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친구들이 생겼어요. 전학을 세 번 다니면서 친구가 없었는데, 처음으로 등교를 같이할 친구가 생긴 거예요. 아무 말도 못 하던 ‘소심한 코찔찔이’가 ‘말할 사람 생긴 코찔찔이’로 바뀐 거죠(웃음). 점점 더 밝고 활기찬 사람이 됐고, 내 인생이 너무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두 번째는 군대 다녀와서입니다. 이대로는 살지 말아야겠다, 내 삶에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강렬한 마음이 들었어요.”

군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때만 해도 내 세계가 세상의 전부였어요.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당구장 가는 게 일상이었죠.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그러다 군대에 가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된 거예요. 동기 한 녀석이 자기는 뉴질랜드를 다녀왔대요. 돈이 많은가 보다 했는데, 워킹홀리데이라고, 일하면서 돈을 벌어 다녀왔다는 거예요. 영어도 한마디 할 줄 모르면서 그냥 갔대요. 놀랐죠. 그전까지 저는 공부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잘사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으로만 세상을 나눠서 봤어요. 군대에서 인간 집단의 다양성을 처음 접한 거죠. ‘이렇게도 살 수 있는 거야?’라는 질문과 호기심이 생겼어요. 해외를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라크 파병을 자원했습니다. 이전과는 다른 세상에 놓이고 보니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세상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전역 후 해외로 더 나가게 됐죠.” 

군대에서 정신 차리고 돌아온 전형적인 복학생이었다고요(웃음).
“놀 만큼 놀아봤으니, 이제는 제대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 차린 복학생의 전형이었죠. 그때부터 술, 담배, 친구 다 끊고 공부만 했어요. 매일 하루 열다섯 시간씩 공부했어요. ‘엉덩이 파워’는 있었나 봐요(웃음). 이라크 파병 이후 한 달간 휴가 받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하루 네 시간만 자면서 공부했죠. 주변에서 진짜 ‘독한 놈’이란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아요. 8개월 만에 일본어 자격증 2급을 따면서 제 인생 첫 성취를 맛봤습니다.”

교환학생으로 미국도 다녀왔죠?
“복학해서 장학금을 처음으로 탔고, 방학하자마자 일본에 갔어요. 워킹홀리데이로 두 달간 머물면서 일본어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토익 240점 받을 때였죠. 하루 열 시간 이상 공부하며 교환학생 준비를 했어요. 영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토플 책을 사서 통으로 외웠고, 1년 반 만에 교환학생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저를 정말 독하다고 했어요. 사법고시 준비하듯이 영어 공부를 했으니까.”

의지력이 삶을 지탱한 힘이군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산 순간이고, 자랑스러워요. 하나를 이루고 나니 하나 또 이루고 또 이루고. 매 학기 장학금을 받았는데, 졸업할 때 세어보니 총 스물여덟 개더라고요. 교환학생도 미래에셋에서 장학생으로 보내줘서 일하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요. 너무 간절한 마음으로 갔기 때문에 한국인 없는 곳에서 현지인들과 어울리며 한국말을 전혀 쓰지 않았어요. 기숙사에도 안 들어갔고요. 돈 아껴 쓰면서 빵과 칠면조 다리로 1년을 버텼죠. 스스로 해냈다는 데에 자부심이 있어요.”

돌아와서는 바로 취업했나요.
“저 나름의 돈 계산 법칙이 있었어요. 취업 전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산하고 들어왔죠. 아산시청에서 아프리카 연수생 10여 명을 데리고 와서 동시통역할 사람이 필요하다기에 신청해서 일을 시작했어요. 그곳 기숙사에 머물며 두 달간 열심히 일해서 400만 원 정도 벌었죠. 그 돈으로 신촌에 고시원을 잡아서 매일 한 끼 1000원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취업 준비를 했고, 두 달 만에 BC카드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퇴사를 앞둔 지금도 여전히 대리고요(웃음).
“육아휴직 하면서 대리인 채로 12년을 보냈어요. 회사는 열심히 다녔지만 육아휴직을 망설이진 않았어요. 2018년에 4개월, 2019년에 6개월, 2020년엔 1년을 꽉 채워 육아휴직을 썼고, 2021년 6개월, 돌아와서 1년 있다가 또다시 휴직. 의미 없죠. 회사도 아마 제가 그만둘 거란 걸 알았을 거예요.”

책 《갓생 천재》에 “조직이라는 나무보다 내 인생에서 숲을 봐야 한다”고 썼어요. 내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삶에 대해 생각하는 걸 좋아해요. 인생에 거품이 많은 사람이지만, 허언증이 아니라 이상주의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하잖아요. 어제 강연 시간에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해요. ‘이상주의자라고 하면서 극현실주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고요. 맞아요. 저는 이상주의자지만, 제 삶은 굉장히 현실적이에요. 현실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상을 현실로 바꿀 수 없어요.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삶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해온 것 이상으로 노력해야 해요. 이상하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내가 하는 것 이상으로 노력할 것, 이상을 이룰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상주의의 삼박자예요.” 

 

 

강연에서 어떤 질문을 자주 받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궁금합니다.
“학생들의 경우 진로 고민을 가장 많이 해요. 진부한 질문이지만 ‘좋아하는 걸 해야 하나요,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나요’를 제일 많이 물어요. 저는 가장 쉬운 질문이라고 답하죠. ‘뭐든 해라’.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는 있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고민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제일 바보 같은 짓이에요. 그게 오답이에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거나 했어요,가 정답이에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못 했다는 건 핑계예요.”

버킷리스트가 많잖아요. 요즘 새로 생긴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7월에 가족끼리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가려 해요. 한번 다녀와 보니 좋더라고요. 그래서 매년 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뒷벽을 가리키며) 벽면에 붙여놓은 쪽지들이 다 제 버킷리스트예요. 이룬 것도 있고, 아직 못 이룬 것도 있죠. 그 중간에 내가 있어요. 버킷리스트를 다 채우고 나면 그땐 스스로 잘 살았다는 말이 나오겠죠. 지금은 내 사람을 찾는 게 가장 큰 버킷리스트예요. 어떤 사람을 뽑아야 나와 걸음을 맞춰 성장해갈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퇴사하고 사람을 뽑는 일. 그리고 저도 승진을 하는 거죠. 대표로.”

내 인생을 내가 승진시킨 셈이네요.
“아무도 나를 라디오에서 찾아주지 않아서 라디오 영상을 올렸고, 아무도 나를 모델로 써주지 않으니 굿즈를 만들어서 모델을 하고, 아무도 나를 승진시켜주지 않으니까 내가 사장을 하는 거죠. 세계관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내 세계관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요즘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면?
“질문은 매일 던지는데, 오늘은 ‘내가 지금 사람을 뽑는 게 맞나? 퇴사하는 게 맞나?’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그랬더니 ‘넌 이미 회사를 안 다니잖아, 사람을 빨리 구하는 게 좋지. 괜찮아, 넌 더 성장할 거고 그 단계에 있어. 정 안되면 망하고 다른 일을 하면 되지’라는 말을 해요. 현실적인 계산기는 그게 아닌데, ‘넌 계속 성장할 거야, 잘하고 있어’라고 되뇌고 있죠. 선언하는 거예요. 지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그런 지금, 행복한가요.
“매 순간 불행과 행복은 오갑니다. 어떤 한 가지가 내 삶을 규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누가 더 빨리 행복할 이유를 찾는가의 게임인 것 같아요. 저는 날씨가 좋아서 좋고 또 날이 흐려서 좋아요. 좋은 일들이 주변에 많아요. 그런 순간이 많아질수록 행복하죠.”

부러운 삶이네요.
“저도 제 삶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웃음). ‘바라는 삶을 살고 있네? 퇴사하고 나서 제주도 한 달 살기라니, 내가 봐도 부러운데?’라고요. 좋은 시절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이야기 말미에 ‘조용한 사직’에 대해 한참의 썰을 풀어놨다. 요약하자면 조용한 사직이 인생의 낭비 같다는 말이다. 

“내가 하는 일만 딱 하고 다른 이들에게 관심 없는 사람을 누가 좋아할까요. 저는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게 좋아요. 제 기준에선 그래요. 대놓고 사직하며 더 좋은 곳을 찾아라, 지금 여기서 즐거움을 찾든지, 나가서 즐거움을 찾기 위해 대놓고 이직을 준비하든지.”

그래서 그는 ‘대놓고 퇴사’를 외친다. 내 삶의 주체가 나이기에, 남의 눈치 보지 않는다. 다만 상대를 배려할 줄은 안다. 조용히 떠나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행복을 찾아 떠나노라, 요란스럽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당당하게 말할 줄 안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이 스스로 행복을 찾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행복을 찾아가는지 몸소 나서서 보여주려 한다. 그가 삶의 키를 쥐고 힘차게 나아가는 한, 아이들도 당당한 아빠의 모습에서 스스로 배워가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일보다 중요한 건 내 삶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