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평범했고, 남들 다 하는 외식만큼만 외식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어도 평범했고, 짜장면 하나에 너무나 평범했지. 야이야이야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평범하고 그렇게 또 평범했지.

평범한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평범함을 흘리고 다니던 학창시절,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마치 귀신영화의 그 귀신처럼 압도적인 무존재감, 그리고 그건 현재분사로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압구정동 언저리에 멍하니 서 있으면 어느새 청담동 아주머니가 고급 외제차 키를 살며시 건넵니다. 그럼 저는 그 키를 받아 발렛파킹 아저씨한테 살포시 건네지요.

“저쪽 분께서 발렛 주문하셨습니다. 찡긋.”

또 예를 들면 야외 촬영 중에 액션을 기다리며 집중하고 있는데 본인 앞으로 승용차 한 대가 살포시 정차하고 창문이 징 내려갑니다. 아주머니 가라사대, “여기 이렇게 길을 막고 촬영하시면 안 되죠. 아저씨.” “네?” “여기 사는 사람도 생각해주셔야죠. 왜 길을 막고 찍어요.” “그쵸. 저 사람들 이상하죠. 저도 지금 그 생각하고 있었어요.” “스태프 아니구나. 죄송해용~” “아닙니다. 제가 혼구녕을 내도록 하죠~”

못하는 것도 없지만 잘하는 것도 딱히 없는, 잘생기지 않았는데 개성 있게 생겼다기엔 한끗이 부족한, 못돼 처먹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걸 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아주 애매한 선상에 위치한 인간, 이른바 과도기적 인간, 나쁘게 말하면 그냥 좀 찌질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랬었던 한 소년이, 곱슬머리 안경잽이 공부벌레 구타유발자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한 한 학생이 지금 남들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군요.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면 큰어머니들이 “우리 정민이는 인물이 훤해. 잘생겨서 좋겠다”고 습관처럼 실언들을 내뱉지만 않으셨어도 본인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솔직히 정민이가 잘생긴 건 아니지. 연기파지 연기파”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회피 스킬 +1 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래서 연기를 합니다.”

 

commonB6P0BNBL.jpg
©영화 '시동' 스틸컷

 

아직도 집중받는 걸 극히 혐오하고, 사람이 많은 공간에선 숨조차 제대로 못 쉬는 인간이 연기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서 연기를 합니다.”

화도 잘 못 내고, 좋으면 좋은 티도 안 내고, 눈치 보고, 쭈뼛쭈뼛 전형적인 찌질이의 모습이 싫어서, 연기를 한다고 얘기합니다. 무대 위에선, 카메라 앞에선 내가 화내는 걸 사람들이 이해해주니까. 내가 웃는 걸 사람들이 건방지다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연기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딱 그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재미가 있습니다. 감독님의 ‘카트’ 소리 후에는 무시무시한 자괴감과 후회막심함이 다가오지만 뭐 그 순간만큼은 즐거우니 더할 나위 없습니다.

근데 갑자기 이 얘기는 왜 하냐, 뭐 우리더러 연기하라는 거냐. 라고 하신다면,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란 말씀도 드리겠지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찌질이들이여, 힘내라.”

라는 겁니다. 이 세상의 8할은 찌질이라고 봅니다. 난 찌질이 아니니까 들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이 찌질이일 가능성이 가장 농후합니다.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닙니다만 한살 한살 먹을수록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급격히 줄어들고 어느새 방 안에서 소주 한 병과 샅바싸움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찌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신도 어느 순간 이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

“찌질이들이여, 해방구를 찾아라.”

분명 해방구는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조카사위가 되는 게 해방구라면 뭐 그것조차 해방구는 존재하니 해방 좀 하자는 겁니다. 너무 그렇게 찌질하게 방 안에서 자책하고 있을 필요 없습니다. 좀 잔인하지만 사실, 세상은 당신들한테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크게 걱정 말고 해방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세요. 얻어맞고 다니기 일쑤였던 한 소년이 딱 12년 후 한 영화에서 누군가를 쥐어 패기도 하고 그래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거 보여줍시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찌질하다의 반대말이 뭡니까. 특별하다? 잘나간다? 바지통 육 반으로 줄이고 머리에 젤 바르는 상남자 스타일? 아닙니다.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찌질했었다, 입니다.
모두, 행복하십쇼.

박정민 배우
ⓒ topclass.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