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토마토를 좋아하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지금도 벌써 몇 개를 먹은 지 몰라. 썰기가 바쁘게 옴통지게 입에 넣고 있어

핸드폰 너머 외갓집의 아이가 보이는 듯하다. 입을 참새처럼 오므리고 탄력 있고 쫄깃한 과육을 갓 만들어진 어금니로 오물오물 씹어 넘기고 있겠지. 아이가 잘 먹고 있다니 다행이다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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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앉아 생각했다. 나의 엄마는 몇 번이고 토마토를 잘 먹는 아이를 신기하고 기특해했다. “천천히 먹으라며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토마토를 썰던 엄마는 너도 어릴 때 그렇게 토마토를 잘 먹었어. 언니는 안 먹었는데 너는 혼자 앉아서 여기저기 베어 먹으면서 앉은자리에서 한 개를 다 먹었어했다. 아이가 나를 닮아 그런가 보다 하고는 심상히 넘겼는데 문득 아이가 뱃속에 있던 때가 생각났다.

 양주를 취하도록 먹어본 적은 없지만, 끝없이 속이 쓰리고 울렁이는 입덧이 소주에 맥주에 양주까지 먹은 뒤 깨어난 다음날의 숙취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매일 만취한 수준의 숙취 아니 입덧을 겪어서 그 기간 아이를 시리라고 불렀다. (실제로는 먹어본 적이 없는 양주 시바스 리갈의 줄임말이다.)

 시리가 활약하는 동안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몇 개 없었다. 생수에서도 물향(?)이 났고 수박에서도 이전에 느끼지 못한 알싸한 비릿함이 느껴져 삼키지 못했다. 수박에서 터져 나오는 과즙도 넘기기가 어려웠다. 키위, 자두, 바나나, 참외를 모두 실패하고 찾은 게 토마토였다. 씹는 맛이 유쾌하고 입안에 들어갔을 때 다른 잔 맛이 느껴지지 않는 토마토, 먹고 나면 속 쓰림이 그런대로 잦아드는 토마토는 거의 유일한 식량이었다. 새벽녘 속 쓰림에 잠에 깬 나는 컴컴한 주방에서 냉장고 문을 열고 그 빛에 의지해 서서 토마토를 우걱우걱 씹어 삼키기도 했다.

 설마 그래서인가. 토마토를 잘 먹는 아이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느낌과 감촉과 기분을 기억하고 있는지 학자마다 설이 분분하지만 뱃속에서의 시간이 지금 여기와 연결되어 있는 건 사실이었나 보다.

 그때 좀 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것들을 볼걸..이라는 후회는 사실 하지 않는다. 나는 시리와 함께 고난의 행군기를 지나 보릿고개 같던 토마토 고개를 넘어 이렇게 무사히 만난 것만으로도 감사하니까.

 아이의 제왕절개 수술 날짜가 잡히고, 병원으로 향하던 새벽에 동쪽으로부터 붉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 남편은 운전을 하면서 신호대기가 오자 한 손을 내 배에 올리고는 시리야. 이제 곧 물(양수)이 빠지고 밖으로 나오게 될 거야. 너무 놀라지 마. 곧 만나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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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토마토는 늦가을에 태어나 가을을 좋아합니다

 진통이 있는 자연분만은 아이도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지만 수술은 그렇지 않아서(진통이 오면 수술이 위험할 수 있어서 보통 예정일보다 보름 정도 앞서 수술을 한다) 아이는 유유히 유영을 하다가 물이 빠지고 갑작스레 조명이 쏟아지는듯한 충격을 겪을 수 있다.

 아이는 지금도 물을 좋아하고 토마토를 좋아한다. 나는 아기들 대부분이 양수에 있었기 때문에 물에 들어가는 걸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어서 놀랐다. 물을 좋아하는 건 뱃속 워터파크가 갑자기 폐장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토마토를 좋아하는 건 그때 너도 맛있게 받아먹어서였니. 아이에게 묻고 싶은 게 많은데 언젠간 다 물을 수 있을지,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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