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대한민국 대표 골퍼. 2016년 선수 생활을 뒤로하고 골프감독, 방송인, 스포츠회사 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인생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몸에 밴 관성이란 게 있잖아요. 수십 년을 운동해왔는데 골프채를 내려놓고 몸이 근질근질하진 않던가요?

“전혀요. 현재 프로그램 외에는 골프를 치지 않아요. 은퇴 전에 3년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어요. 미련 갖지 않기, 후회하지 않기. 그래서 골프가 그립지도 않은가 봐요.”


은퇴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원 없이 풀어내서 그런가요?

“직업으로 골프를 하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잘 와닿지 않죠? 컨디션이 좋은데 게임이 안 풀리기도 하고, 몸이 아파 기권하려고 했는데 성적이 좋기도 하고. 그 와중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전략을 사용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결정할 것도 많아요. 하루에 끝나는 종목이 아니라서 장시간 집중력도, 체력도 좋아야 해요. 1분 1초 환경도 달라지는데 모든 걸 컨트롤해야 되니, 스포츠 중에서는 골프가 멘탈 갑이라고 하잖아요.”


그 멘탈 관리를 어떻게 했나요?

“60~70%는 타고났어요. 그다음부터는 노력과 경험이 쌓였고요. 미국에 진출하며 혼자 모든 걸 챙겨야 했어요. 꿈만 생각하고 무작정 간 거였으니까요. 엄청난 클래스의 선수들과 겨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더 완벽해지려고 보강할 점을 생각하고, 성장을 위해 저 자신을 계속 찾았어요. 그러면서 된 거죠. 세상에는 타고난 사람, 노력하는 사람, 타고나서 노력까지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앞의 두 유형은 일정 수준에는 도달하겠지만, 타고났는데 노력하는 사람은 그걸 뛰어넘어요. 저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도 있었지만 노력이 더해져 시너지가 났을 거예요.”


대한민국 골프는 박세리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하죠.
‘세리키즈’가 성장해서 세계 골프 무대를 제패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심정이 궁금합니다.


“사실 부담스러웠어요. 저도 적응하기 바쁜 때라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솔직한 말로 ‘내 나이가 몇인데 키즈라고 하지?’ 생각도 들었고요. 어느 순간 우승이 당연해져 2~3등만 해도 부진이란 평가가 따르던 시점이었어요. 저도 안타까운데 부진이라고 하니까 괜히 잘못한 기분마저 들더라고요. 마침 후배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관심이 분산됐어요. 그동안 혼자 나가 싸웠다면 후배들이 와서 잘해주니 자부심도 생기고 같은 팀처럼 든든하기까지 했어요.”


최근 여러 방송을 통해 매력을 보여주고 있지요.
특히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모여 도전하는 예능 프로그램 〈노는언니〉는 출연진과의 합이 잘 맞아 보는 이도 즐겁습니다.


“운동선수들이 솔직해요. 방송이라고 잘 나오기 위해 일부러 꾸미지 않는 매력이 있고요. 태극마크를 달았던 국가대표 출신들이 자기 종목 외에는 허당미를 보여주는 반전도 신선했죠. 프로그램 이후 종목마다 관심을 갖고 더 많이 알아봐주더라고요. 방송이 나가고 선수들의 성적도 좋아졌어요.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등수도 오르고. 방송을 하면서 자신감이 붙고 기운 자체가 좋아지면서 생긴 결과 같아요. 훈련할 때는 하고, 이렇게 자신의 매력도 자주 보여주면 좋겠어요.”


그래서일까요? 감독님의 골프선수 시절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도 ‘멋진 언니’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인기를 실감하나요?

“LPGA 첫 우승이 1998년이니 골프를 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를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골프가 대중적인 종목도 아니고요. 그래도 방송하고 나서는 많이 알아봐요. 연령대가 달라졌어요. 20~30대도 많이 알아보거든요. 또 박세리란 이미지가 운동을 한 강한 사람으로 각인돼 있었는데 생각과는 다른 이미지를 보이게 돼서 많이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리치 언니라는 별명도 생겼어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어요. ‘리치’ 하면 부자가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리치가 꼭 부(富)를 말하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 여유, 열정 등을 넉넉하게 나눌 수 있는 ‘리치’라면 괜찮겠더군요.”


자신에게는 엄격한 사람인 데 반해 방송을 보면 주변에 나눠주려는 마음이 참 커 보여요. 이것도 ‘리치 언니’의 특징일까요?

“워낙 사람을 좋아해요. 아빠도 그렇고, 엄마도 음식해서 나눠 먹는 걸 좋아해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가 봐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안 하는데, 연말이면 항상 세 자매가 모여 음식하고 각자 지인을 초대해 마당 파티를 열었어요. 1년 동안 고생했다고 격려하며 서로의 새해를 응원하는 거죠. 20~30명 정도 오는데 플라스틱 의자를 쭉 두고 음식을 나눠 먹어요. 서로 다 알지 못하는 사이여도 자연스럽게 먹고 놀고 얘기하며 즐겁게 보내요. 북적북적하면 좋죠. 사람 사는 게 뭐 있나요?”


특유의 여유와 안정감이 느껴지는데, 이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긍정적인 생각? 저도 살면서 실수를 하죠. 그런데 꼭 실수가 나쁘진 않더라고요. 경험이 중요한 거죠. 저는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선수라 실수하면서 많이 늘었어요. 괜히 욕심내다가 우승을 놓치기도 했고요. 그래도 그런 경험이 삶에서 도움이 돼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요? 힘든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고 해결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생각하고 이겨내면 돼요.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건 한정돼 있어요. 스스로 성장하고 강하게 만드는 건 긍정적인 생각이 최고예요.”


도전도 주저하지 않죠?

“기회가 매번 오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그때마다 다 잘되는 건 아니지만 기회를 잡아서 하다 보면 또 다른 기회도 오더라고요. 무조건 못 한다고 하면 어느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지잖아요. 1998년 US 오픈대회에서도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양말을 벗고 흰 발목으로 워터해저드에 들어간 순간은) 지금 봐도 그래요. 위에서 내려가기로 결정했지만 막상 내려가 보니 더 높았거든요. 분명 실패라고 생각했지만 선택을 한 거잖아요. 우승을 못 했어도 ‘여기까지 잘 왔지’ 했을 거예요. 만약 그 샷이 실패했어도 저는 여전히 여기 와 있을 거고요. 경험은 해야 늘어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하다 보면 내가 잘하는 게 있고 좋아하는 게 생기는 거죠. 그러면서 인생의 설계도를 그려가면 되고요.”


평소 충전은 어떻게 하나요.

“하루를 끝내고 맛있는 한 끼를 먹어요. 그러면 ‘하루를 보람차게 살았구나, 이래서 내가 열심히 일하지’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반주도 좋아해요. 선수 시절에는 맥주 한잔 마시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별것도 아닌데 참 답답하게 살았죠. 은퇴를 3년 앞두고부터 여유가 생기더군요. 저녁 먹을 때 맥주 한 모금 마시면 답답하고 속상했던 게 쫙 내려갔어요. 그때 슬슬 이 맛을 알게 됐죠. 지금도 저녁에 반주를 하면 기분이 좋아요.”


그동안 수많은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만, 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까?

“교육과 훈련을 같이할 수 있는 학교를 짓고 싶어요. 꿈을 갖고 키워가려는 원석을 찾아 보석을 만들어주는 게 지금 저의 가장 큰 목표예요. 그게 선배의 역할 같아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나아졌겠지, 개선됐겠지 생각해왔는데 정작 선수들의 기량이 엄청 높아진 데 반해 운동 환경은 여전히 열악해요. 골프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도요. 좋은 환경에서 훈련하면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유망주가 계속 나와야죠. 저는 제 꿈을 위해 세계 무대에 진출했는데, 그게 또 누군가의 꿈이 됐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그 꿈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습니다.”


박세리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꼽아볼까요?

“그냥 박세리.”


그렇다면 박세리에게 ‘나답다’는 건 뭘 뜻하나요?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요.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최고라고 생각하는 순간 노력이 없어질 거예요.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계속 욕심을 갖고 도전하고 발전해가겠죠. 인생의 설계도도 더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까요.”


“박세리가 누구예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단다. ‘에이, 설마’ 싶겠지만 그가 LPGA 첫 우승을 한 건 1998년. 그즈음 태어난 이들이 20대가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들에게 박세리는 골프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있는 낯선 이름일 뿐이다. 상황이 변한 건 박세리가 인생 2막을 자유롭게 펼치면서다. 2016년 선수 생활을 접은 그는 현재 골프감독, 방송인, 스포츠회사 대표로 지내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와인도 출시했으며 방송 현장 곳곳을 누비며 누구보다 인생을 즐기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전설로 남아 있길 거부했다. 먼지 쌓인 책장 속에 있기보다 현 세대와 함께 호흡하는 동시대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현재 놓칠 수 있는 즐거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자 마법 같은 일이 다시 벌어졌다. 과거 그의 도전과 열정이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줬듯, 20여 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과 에너지를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

대화가 끝을 향해가자 처음과는 또 다른 박세리의 눈빛이 고개를 들었다. 강렬한 눈빛에 살짝 가려져 있던 부드러움이랄까. 그의 눈빛엔 세계를 집어삼킨 강인함과 작은 것도 넉넉한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부드러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혹독하지만 타인을 향할 때는 푸근하게 감쌀 수 있는 넓은 가슴처럼. ‘리치 언니’란 별명이 이보다 잘 어울리는 언니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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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②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시간
선수현
박세리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대한민국 대표 골퍼. 2016년 선수 생활을 뒤로하고 골프감독, 방송인, 스포츠회사 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인생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몸에 밴 관성이란 게 있잖아요. 수십 년을 운동해왔는데 골프채를 내려놓고 몸이 근질근질하진 않던가요?

“전혀요. 현재 프로그램 외에는 골프를 치지 않아요. 은퇴 전에 3년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어요. 미련 갖지 않기, 후회하지 않기. 그래서 골프가 그립지도 않은가 봐요.”


은퇴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원 없이 풀어내서 그런가요?

“직업으로 골프를 하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잘 와닿지 않죠? 컨디션이 좋은데 게임이 안 풀리기도 하고, 몸이 아파 기권하려고 했는데 성적이 좋기도 하고. 그 와중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전략을 사용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결정할 것도 많아요. 하루에 끝나는 종목이 아니라서 장시간 집중력도, 체력도 좋아야 해요. 1분 1초 환경도 달라지는데 모든 걸 컨트롤해야 되니, 스포츠 중에서는 골프가 멘탈 갑이라고 하잖아요.”


그 멘탈 관리를 어떻게 했나요?

“60~70%는 타고났어요. 그다음부터는 노력과 경험이 쌓였고요. 미국에 진출하며 혼자 모든 걸 챙겨야 했어요. 꿈만 생각하고 무작정 간 거였으니까요. 엄청난 클래스의 선수들과 겨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더 완벽해지려고 보강할 점을 생각하고, 성장을 위해 저 자신을 계속 찾았어요. 그러면서 된 거죠. 세상에는 타고난 사람, 노력하는 사람, 타고나서 노력까지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앞의 두 유형은 일정 수준에는 도달하겠지만, 타고났는데 노력하는 사람은 그걸 뛰어넘어요. 저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도 있었지만 노력이 더해져 시너지가 났을 거예요.”


대한민국 골프는 박세리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하죠.
‘세리키즈’가 성장해서 세계 골프 무대를 제패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심정이 궁금합니다.


“사실 부담스러웠어요. 저도 적응하기 바쁜 때라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솔직한 말로 ‘내 나이가 몇인데 키즈라고 하지?’ 생각도 들었고요. 어느 순간 우승이 당연해져 2~3등만 해도 부진이란 평가가 따르던 시점이었어요. 저도 안타까운데 부진이라고 하니까 괜히 잘못한 기분마저 들더라고요. 마침 후배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관심이 분산됐어요. 그동안 혼자 나가 싸웠다면 후배들이 와서 잘해주니 자부심도 생기고 같은 팀처럼 든든하기까지 했어요.”


최근 여러 방송을 통해 매력을 보여주고 있지요.
특히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모여 도전하는 예능 프로그램 〈노는언니〉는 출연진과의 합이 잘 맞아 보는 이도 즐겁습니다.


“운동선수들이 솔직해요. 방송이라고 잘 나오기 위해 일부러 꾸미지 않는 매력이 있고요. 태극마크를 달았던 국가대표 출신들이 자기 종목 외에는 허당미를 보여주는 반전도 신선했죠. 프로그램 이후 종목마다 관심을 갖고 더 많이 알아봐주더라고요. 방송이 나가고 선수들의 성적도 좋아졌어요.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등수도 오르고. 방송을 하면서 자신감이 붙고 기운 자체가 좋아지면서 생긴 결과 같아요. 훈련할 때는 하고, 이렇게 자신의 매력도 자주 보여주면 좋겠어요.”


그래서일까요? 감독님의 골프선수 시절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도 ‘멋진 언니’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인기를 실감하나요?

“LPGA 첫 우승이 1998년이니 골프를 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를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골프가 대중적인 종목도 아니고요. 그래도 방송하고 나서는 많이 알아봐요. 연령대가 달라졌어요. 20~30대도 많이 알아보거든요. 또 박세리란 이미지가 운동을 한 강한 사람으로 각인돼 있었는데 생각과는 다른 이미지를 보이게 돼서 많이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리치 언니라는 별명도 생겼어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어요. ‘리치’ 하면 부자가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리치가 꼭 부(富)를 말하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 여유, 열정 등을 넉넉하게 나눌 수 있는 ‘리치’라면 괜찮겠더군요.”


자신에게는 엄격한 사람인 데 반해 방송을 보면 주변에 나눠주려는 마음이 참 커 보여요. 이것도 ‘리치 언니’의 특징일까요?

“워낙 사람을 좋아해요. 아빠도 그렇고, 엄마도 음식해서 나눠 먹는 걸 좋아해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가 봐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안 하는데, 연말이면 항상 세 자매가 모여 음식하고 각자 지인을 초대해 마당 파티를 열었어요. 1년 동안 고생했다고 격려하며 서로의 새해를 응원하는 거죠. 20~30명 정도 오는데 플라스틱 의자를 쭉 두고 음식을 나눠 먹어요. 서로 다 알지 못하는 사이여도 자연스럽게 먹고 놀고 얘기하며 즐겁게 보내요. 북적북적하면 좋죠. 사람 사는 게 뭐 있나요?”


특유의 여유와 안정감이 느껴지는데, 이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긍정적인 생각? 저도 살면서 실수를 하죠. 그런데 꼭 실수가 나쁘진 않더라고요. 경험이 중요한 거죠. 저는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선수라 실수하면서 많이 늘었어요. 괜히 욕심내다가 우승을 놓치기도 했고요. 그래도 그런 경험이 삶에서 도움이 돼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요? 힘든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고 해결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생각하고 이겨내면 돼요.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건 한정돼 있어요. 스스로 성장하고 강하게 만드는 건 긍정적인 생각이 최고예요.”


도전도 주저하지 않죠?

“기회가 매번 오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그때마다 다 잘되는 건 아니지만 기회를 잡아서 하다 보면 또 다른 기회도 오더라고요. 무조건 못 한다고 하면 어느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지잖아요. 1998년 US 오픈대회에서도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양말을 벗고 흰 발목으로 워터해저드에 들어간 순간은) 지금 봐도 그래요. 위에서 내려가기로 결정했지만 막상 내려가 보니 더 높았거든요. 분명 실패라고 생각했지만 선택을 한 거잖아요. 우승을 못 했어도 ‘여기까지 잘 왔지’ 했을 거예요. 만약 그 샷이 실패했어도 저는 여전히 여기 와 있을 거고요. 경험은 해야 늘어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하다 보면 내가 잘하는 게 있고 좋아하는 게 생기는 거죠. 그러면서 인생의 설계도를 그려가면 되고요.”


평소 충전은 어떻게 하나요.

“하루를 끝내고 맛있는 한 끼를 먹어요. 그러면 ‘하루를 보람차게 살았구나, 이래서 내가 열심히 일하지’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반주도 좋아해요. 선수 시절에는 맥주 한잔 마시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별것도 아닌데 참 답답하게 살았죠. 은퇴를 3년 앞두고부터 여유가 생기더군요. 저녁 먹을 때 맥주 한 모금 마시면 답답하고 속상했던 게 쫙 내려갔어요. 그때 슬슬 이 맛을 알게 됐죠. 지금도 저녁에 반주를 하면 기분이 좋아요.”


그동안 수많은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만, 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까?

“교육과 훈련을 같이할 수 있는 학교를 짓고 싶어요. 꿈을 갖고 키워가려는 원석을 찾아 보석을 만들어주는 게 지금 저의 가장 큰 목표예요. 그게 선배의 역할 같아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나아졌겠지, 개선됐겠지 생각해왔는데 정작 선수들의 기량이 엄청 높아진 데 반해 운동 환경은 여전히 열악해요. 골프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도요. 좋은 환경에서 훈련하면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유망주가 계속 나와야죠. 저는 제 꿈을 위해 세계 무대에 진출했는데, 그게 또 누군가의 꿈이 됐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그 꿈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습니다.”


박세리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꼽아볼까요?

“그냥 박세리.”


그렇다면 박세리에게 ‘나답다’는 건 뭘 뜻하나요?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요.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최고라고 생각하는 순간 노력이 없어질 거예요.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계속 욕심을 갖고 도전하고 발전해가겠죠. 인생의 설계도도 더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까요.”


“박세리가 누구예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단다. ‘에이, 설마’ 싶겠지만 그가 LPGA 첫 우승을 한 건 1998년. 그즈음 태어난 이들이 20대가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들에게 박세리는 골프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있는 낯선 이름일 뿐이다. 상황이 변한 건 박세리가 인생 2막을 자유롭게 펼치면서다. 2016년 선수 생활을 접은 그는 현재 골프감독, 방송인, 스포츠회사 대표로 지내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와인도 출시했으며 방송 현장 곳곳을 누비며 누구보다 인생을 즐기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전설로 남아 있길 거부했다. 먼지 쌓인 책장 속에 있기보다 현 세대와 함께 호흡하는 동시대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현재 놓칠 수 있는 즐거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자 마법 같은 일이 다시 벌어졌다. 과거 그의 도전과 열정이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줬듯, 20여 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과 에너지를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

대화가 끝을 향해가자 처음과는 또 다른 박세리의 눈빛이 고개를 들었다. 강렬한 눈빛에 살짝 가려져 있던 부드러움이랄까. 그의 눈빛엔 세계를 집어삼킨 강인함과 작은 것도 넉넉한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부드러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혹독하지만 타인을 향할 때는 푸근하게 감쌀 수 있는 넓은 가슴처럼. ‘리치 언니’란 별명이 이보다 잘 어울리는 언니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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