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성
와디즈(wadiz) 대표. 대기업·증권사·은행을 거쳐 와디즈를 설립, 국내 크라우드펀딩 생태계를 조성했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이 없는 이들이 펀딩이란 기회를 갖고 조금씩 세상을 바꿔가길 바란다.
Why. 묻고 또 물었다. 어째서 우린 배운 대로 살지 못할까. 원래 그런 거란 말로 가려 나를 기만해야 하나. 당연한 게 당연한 세상이 될 순 없는 걸까. 안 될 이유가 없다. 신혜성 대표가 도출해낸 답은 ‘What is’(왓이즈). 결국 무엇을 해야 할지가 중요했다.

원칙을 고수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 마음에 지지를 표하며 동참할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걸 믿었다. 대안이 없는 이들이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올바른 마음이 모여 세상을 조금씩 움직이는 일이 가능해 보였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뿐. 이는 인생을 허비하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와디즈(wadiz)는 그렇게 시작됐다.

펀딩 플랫폼 와디즈의 구조는 간단하다. 아이디어를 가진 메이커(생산자)가 계획을 공유하면 그 뜻에 동참한 서포터(수요자)가 투자하는 것. 소액 투자자가 다수를 이뤄 메이커는 꿈을 실현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펀딩 프로젝트 다섯 개로 출발한 와디즈는 이제 회원 400만 명, 월 800~1000건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누적 중개금액은 6000억 원에 이른다.

편의점마다 품귀 현상을 일으킨 세븐브로이의 곰표 맥주,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굿즈로 알려진 미미달의 고려청자 시리즈, 원자력 폭발 사고를 소재로 한 재난 영화 〈판도라〉, 이제 소비의 명확한 기준으로 자리 잡은 친환경·비건의 다양한 제품이 와디즈를 거쳤다. 제품·서비스뿐만 아니다. 소방관 처우 개선, 유기동물 사료, 결식아동 도시락, 해외 학교 설립 등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성금을 전달한 사례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적당히 맞춰 살라는 통념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옳다고 배워온 가치를 삶과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신혜성 대표. “올바른 생각이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세상을 만든다”는 와디즈의 지향점에 그의 자세가 진득하게 녹아 있다. 그의 바람대로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까.


벌써 설립 10년이 됐습니다.
당시 ‘금융맨’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는데 와디즈라는 모험을 시작한 이유가 뭔가요?


“현대자동차 마케팅팀에서 일을 시작해 증권회사를 거쳐 산업은행으로 이직했습니다. 그때는 더 큰 회사, 안정적인 회사로 옮기는 게 중요했어요. 창업은 은퇴 후에나 하는 것이란 인식이 강했고요. 흔히 ‘신의 직장’이라 불리던 은행에 몸담았는데도 이곳에 계속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조직의 힘으로 일하기보다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이란 생각 때문이었을 거예요.”


왜였을까요?

“기업에서 금융사로 옮겼을 때는 천직을 찾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을 할수록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이란 무엇인가’ 본질적인 고민이 떠나질 않았거든요. 우리가 집-회사-집-회사를 오가는 환경에서 가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 하는데 회사가 중요하다는 사람은 별로 없더군요. 집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말이죠. 이직해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년이 보장되는 회사에서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면 이직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회사란 대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원인을 찾았어요. 돈을 유통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권한이 오용되고 있던 거예요.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삶도 행복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거죠.”


어떤 변화가 필요해보였나요?

“저는 원칙주의자예요. 확실한 가치관을 갖고 그에 맞는 삶을 사는 사람이고요. 그런데 종종 ‘적당히 맞춰 살아’라는 말을 듣습니다. 뭐, 그게 맞다면야 얼마든지 맞춰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들에게도 바르게 살라고 하고, 도덕을 강조하며 올바름을 교육하는 데는 이유가 있잖아요. 애널리스트로 일할 때 ‘일을 잘한다’는 것에 저마다의 방식과 가치관이 있었어요. 누군가는 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죠. 그래도 저는 제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일해봤는데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선정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방식을 선호하는 고객도 적지 않았던 거예요.”


결국 ‘일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네요.
그래서 답은 찾았나요?


“찾았죠. 일은 소명이었어요. 단순히 먹고사는 수단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이유, 그게 일이더군요. 가정에서 아내와 아이들과의 행복이 중요한 것처럼 회사에서도 동료들과의 행복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왕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일이라면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지금 와서 보면 ESG(환경·사회적 가치·지배구조) 경영을 하고 싶었던 건데 그런 기업이 많아야 보다 다양하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 늘어 우리나라도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와디즈는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찾아낸 방식이었군요.

“기회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마련해주고 창업비용과 시간을 단축한 서비스였으니까요. 기존에 있던 걸 쉽고 빠르게 판매하기보다 우리 플랫폼이 없었더라면 나타나지 않았을 부가가치를 창출한 거예요. 제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 인생 전체를 관통할 수 있도록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방법이었어요. 100% 가능하진 않지만 가급적 노력하며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안정적인 직장을 떠난다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요.
주변에서도 만류했을 것 같고.


“제3자가 봤을 때는 무모한 행동으로 보였겠지만 제게 안정적인 직장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참 고맙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바로 극소수의 상사들입니다. 퇴사한다고 하자 다들 제정신이냐고 했지만 한 선배가 전화를 했어요. 저는 과장이었는데 선배는 부행장으로 꽤 직급 차이가 났죠. ‘이직한다며?’ 물으시길래 ‘죄송합니다, 창업합니다’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래? 넌 잘할 거야’라는 말을 하시더군요. 제게는 변화의 단계마다 그런 선배들이 있었어요. 그런 점이 직장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하고요.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개인 대 개인으로, 인생에서 그런 존재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봐요.”


왜 하필 펀딩이었습니까.
당시 크라우드펀딩은 국내에서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었는데요.


“창업 아이템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제가 평소 생각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인데 창업 방법론에서도 널리 쓰이는 게 있더군요. 아이디어가 있으면 한 단계씩 낮춰보는 거예요. 만약 커피를 판매하려면 원두나 컵을 보는 거죠. 그렇게 두 단계를 내려가면 둘 중 하나에 봉착합니다. 할 수 없거나, 하기 싫거나. 대부분 후자예요. 좋은 아이디어라 해도 단계를 낮춰보면 현실이 되거든요. 종국에는 ‘나와 잘 맞는지’를 따져보게 되고요. 제가 창업을 통해 변화를 주고 싶은 분야는 파이낸스 즉, 자금 조달이었습니다.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예요. 파이낸스에서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만들어왔기에 자신도 있었고 혁신을 꾀하고도 싶어서 ‘다이렉트 파이낸스’ 개념을 도입한 거예요.”


은행이라는 중개기관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봤군요.

“돈을 빌리러 은행에 가면 바로 빌려주지 않습니다. 재무제표부터 요구하죠. 중요한 건 ‘쩐주’라 불리는 돈의 공급자입니다. 그동안 유통업이 발달해온 건 수요와 공급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점차 중간 역할인 유통업이 축소될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자금 조달이었으니 크라우드펀딩으로 창업을 결심한 겁니다. 은행에서는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일에 누군가는 관심을 가질 수 있잖아요. 또 한편으로는 소비의 다양화, 관심사 기반의 트렌드와 맞아떨어진 거죠. 필요는 몸소 느끼고 있었고 메가트렌드 속에서 해결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고 있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뿐이었죠. 두려움 때문에 인생을 허비하지 말자는 게 제 가치관입니다. 그래서 ‘고(go)’를 외쳤어요.”


와디즈 이후 유사 펀딩 플랫폼이 꽤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와디즈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서 찾나요.


“와디즈 이후 유사 서비스가 50개가량 나왔습니다. 결국 시장을 정리하며 지금에 이르렀는데 그 지점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우리 전략이 탁월했던가?’ 그건 아니더라고요. 와디즈가 추구하는 건 ‘올바른 생각이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세상을 만든다’입니다. 그렇다면 ‘와디즈를 통해 누가 잘되길 원하는가’가 중요했죠. 저는 뭔가 시도하는 사람 중에 가장 대안이 없는 사람이 와디즈를 통해 신뢰 자본을 쌓길 바랐습니다. 결국 우리 서비스는 메이커(생산자)와 서포터(수요자) 사이의 상호작용인데 그 신뢰 자본을 와디즈 안에 탑재해오려는 노력이 와디즈를 와디즈답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와디즈를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은 선(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타적인 비즈니스를 지향하지만 이타적인 생각만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 비즈니스는 이런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죠. 그 뿌리는 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유를 찾자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교육이나 종교적 가치 등 여러 가지가 결합돼 있을 거예요. 와디즈가 얼마나 성장할지는 다음 과제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물을 놓고 봐서는 사업 초기에 저를 향해 틀렸다고 말한 통념들을 깬 듯해 뿌듯하긴 합니다.”

〈나다움을 묻다, 신혜성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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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성 ①
나에게 일은 살아가는 이유
선수현
신혜성
와디즈(wadiz) 대표. 대기업·증권사·은행을 거쳐 와디즈를 설립, 국내 크라우드펀딩 생태계를 조성했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이 없는 이들이 펀딩이란 기회를 갖고 조금씩 세상을 바꿔가길 바란다.
Why. 묻고 또 물었다. 어째서 우린 배운 대로 살지 못할까. 원래 그런 거란 말로 가려 나를 기만해야 하나. 당연한 게 당연한 세상이 될 순 없는 걸까. 안 될 이유가 없다. 신혜성 대표가 도출해낸 답은 ‘What is’(왓이즈). 결국 무엇을 해야 할지가 중요했다.

원칙을 고수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 마음에 지지를 표하며 동참할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걸 믿었다. 대안이 없는 이들이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올바른 마음이 모여 세상을 조금씩 움직이는 일이 가능해 보였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뿐. 이는 인생을 허비하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와디즈(wadiz)는 그렇게 시작됐다.

펀딩 플랫폼 와디즈의 구조는 간단하다. 아이디어를 가진 메이커(생산자)가 계획을 공유하면 그 뜻에 동참한 서포터(수요자)가 투자하는 것. 소액 투자자가 다수를 이뤄 메이커는 꿈을 실현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펀딩 프로젝트 다섯 개로 출발한 와디즈는 이제 회원 400만 명, 월 800~1000건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누적 중개금액은 6000억 원에 이른다.

편의점마다 품귀 현상을 일으킨 세븐브로이의 곰표 맥주,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굿즈로 알려진 미미달의 고려청자 시리즈, 원자력 폭발 사고를 소재로 한 재난 영화 〈판도라〉, 이제 소비의 명확한 기준으로 자리 잡은 친환경·비건의 다양한 제품이 와디즈를 거쳤다. 제품·서비스뿐만 아니다. 소방관 처우 개선, 유기동물 사료, 결식아동 도시락, 해외 학교 설립 등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성금을 전달한 사례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적당히 맞춰 살라는 통념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옳다고 배워온 가치를 삶과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신혜성 대표. “올바른 생각이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세상을 만든다”는 와디즈의 지향점에 그의 자세가 진득하게 녹아 있다. 그의 바람대로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까.


벌써 설립 10년이 됐습니다.
당시 ‘금융맨’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는데 와디즈라는 모험을 시작한 이유가 뭔가요?


“현대자동차 마케팅팀에서 일을 시작해 증권회사를 거쳐 산업은행으로 이직했습니다. 그때는 더 큰 회사, 안정적인 회사로 옮기는 게 중요했어요. 창업은 은퇴 후에나 하는 것이란 인식이 강했고요. 흔히 ‘신의 직장’이라 불리던 은행에 몸담았는데도 이곳에 계속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조직의 힘으로 일하기보다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이란 생각 때문이었을 거예요.”


왜였을까요?

“기업에서 금융사로 옮겼을 때는 천직을 찾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을 할수록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이란 무엇인가’ 본질적인 고민이 떠나질 않았거든요. 우리가 집-회사-집-회사를 오가는 환경에서 가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 하는데 회사가 중요하다는 사람은 별로 없더군요. 집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말이죠. 이직해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년이 보장되는 회사에서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면 이직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회사란 대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원인을 찾았어요. 돈을 유통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권한이 오용되고 있던 거예요.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삶도 행복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거죠.”


어떤 변화가 필요해보였나요?

“저는 원칙주의자예요. 확실한 가치관을 갖고 그에 맞는 삶을 사는 사람이고요. 그런데 종종 ‘적당히 맞춰 살아’라는 말을 듣습니다. 뭐, 그게 맞다면야 얼마든지 맞춰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들에게도 바르게 살라고 하고, 도덕을 강조하며 올바름을 교육하는 데는 이유가 있잖아요. 애널리스트로 일할 때 ‘일을 잘한다’는 것에 저마다의 방식과 가치관이 있었어요. 누군가는 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죠. 그래도 저는 제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일해봤는데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선정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방식을 선호하는 고객도 적지 않았던 거예요.”


결국 ‘일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네요.
그래서 답은 찾았나요?


“찾았죠. 일은 소명이었어요. 단순히 먹고사는 수단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이유, 그게 일이더군요. 가정에서 아내와 아이들과의 행복이 중요한 것처럼 회사에서도 동료들과의 행복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왕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일이라면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지금 와서 보면 ESG(환경·사회적 가치·지배구조) 경영을 하고 싶었던 건데 그런 기업이 많아야 보다 다양하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 늘어 우리나라도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와디즈는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찾아낸 방식이었군요.

“기회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마련해주고 창업비용과 시간을 단축한 서비스였으니까요. 기존에 있던 걸 쉽고 빠르게 판매하기보다 우리 플랫폼이 없었더라면 나타나지 않았을 부가가치를 창출한 거예요. 제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 인생 전체를 관통할 수 있도록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방법이었어요. 100% 가능하진 않지만 가급적 노력하며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안정적인 직장을 떠난다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요.
주변에서도 만류했을 것 같고.


“제3자가 봤을 때는 무모한 행동으로 보였겠지만 제게 안정적인 직장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참 고맙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바로 극소수의 상사들입니다. 퇴사한다고 하자 다들 제정신이냐고 했지만 한 선배가 전화를 했어요. 저는 과장이었는데 선배는 부행장으로 꽤 직급 차이가 났죠. ‘이직한다며?’ 물으시길래 ‘죄송합니다, 창업합니다’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래? 넌 잘할 거야’라는 말을 하시더군요. 제게는 변화의 단계마다 그런 선배들이 있었어요. 그런 점이 직장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하고요.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개인 대 개인으로, 인생에서 그런 존재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봐요.”


왜 하필 펀딩이었습니까.
당시 크라우드펀딩은 국내에서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었는데요.


“창업 아이템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제가 평소 생각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인데 창업 방법론에서도 널리 쓰이는 게 있더군요. 아이디어가 있으면 한 단계씩 낮춰보는 거예요. 만약 커피를 판매하려면 원두나 컵을 보는 거죠. 그렇게 두 단계를 내려가면 둘 중 하나에 봉착합니다. 할 수 없거나, 하기 싫거나. 대부분 후자예요. 좋은 아이디어라 해도 단계를 낮춰보면 현실이 되거든요. 종국에는 ‘나와 잘 맞는지’를 따져보게 되고요. 제가 창업을 통해 변화를 주고 싶은 분야는 파이낸스 즉, 자금 조달이었습니다.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예요. 파이낸스에서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만들어왔기에 자신도 있었고 혁신을 꾀하고도 싶어서 ‘다이렉트 파이낸스’ 개념을 도입한 거예요.”


은행이라는 중개기관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봤군요.

“돈을 빌리러 은행에 가면 바로 빌려주지 않습니다. 재무제표부터 요구하죠. 중요한 건 ‘쩐주’라 불리는 돈의 공급자입니다. 그동안 유통업이 발달해온 건 수요와 공급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점차 중간 역할인 유통업이 축소될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자금 조달이었으니 크라우드펀딩으로 창업을 결심한 겁니다. 은행에서는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일에 누군가는 관심을 가질 수 있잖아요. 또 한편으로는 소비의 다양화, 관심사 기반의 트렌드와 맞아떨어진 거죠. 필요는 몸소 느끼고 있었고 메가트렌드 속에서 해결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고 있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뿐이었죠. 두려움 때문에 인생을 허비하지 말자는 게 제 가치관입니다. 그래서 ‘고(go)’를 외쳤어요.”


와디즈 이후 유사 펀딩 플랫폼이 꽤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와디즈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서 찾나요.


“와디즈 이후 유사 서비스가 50개가량 나왔습니다. 결국 시장을 정리하며 지금에 이르렀는데 그 지점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우리 전략이 탁월했던가?’ 그건 아니더라고요. 와디즈가 추구하는 건 ‘올바른 생각이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세상을 만든다’입니다. 그렇다면 ‘와디즈를 통해 누가 잘되길 원하는가’가 중요했죠. 저는 뭔가 시도하는 사람 중에 가장 대안이 없는 사람이 와디즈를 통해 신뢰 자본을 쌓길 바랐습니다. 결국 우리 서비스는 메이커(생산자)와 서포터(수요자) 사이의 상호작용인데 그 신뢰 자본을 와디즈 안에 탑재해오려는 노력이 와디즈를 와디즈답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와디즈를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은 선(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타적인 비즈니스를 지향하지만 이타적인 생각만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 비즈니스는 이런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죠. 그 뿌리는 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유를 찾자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교육이나 종교적 가치 등 여러 가지가 결합돼 있을 거예요. 와디즈가 얼마나 성장할지는 다음 과제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물을 놓고 봐서는 사업 초기에 저를 향해 틀렸다고 말한 통념들을 깬 듯해 뿌듯하긴 합니다.”

〈나다움을 묻다, 신혜성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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