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제일기획 부사장을 지냈다.
강남 한복판인 선릉역과 역삼역 부근에 각각 최인아책방 1,2호점을 열고 ‘혼자력’과 ‘사색력’을 모색하고 전파한다.
‘과연 될까?’ ‘저게 가능해?’ 생각되는 것들에 뛰어들어 결국은 돌파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은 그들을 개척자라고 부른다.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면서 누리는 편리와 안전, 평등과 평화 같은 물적·정신적 토대는 사실, 앞서간 개척자들의 노고에 기댄 부분이 크다. 그 개척자들의 노고에는 단순히 ‘노고’라는 말로 치환할 수 없는 거룩함이 깃들어 있다. 작게는 눈물과 땀부터 크게는 죽음을 불사한 용기까지.

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의 삶이 그렇다. 그는 ‘최초’의 발자국을 여기저기 꾹꾹 남기며 단단하게 걸어왔다. 그가 돌파해낸 세계는 크게 두 영역에 걸쳐 있다. 하나는 ‘일하는 여성’으로서 세계, 또 하나는 우아하고 지적인 ‘생각의 숲’이라는 세계다.

먼저 ‘일하는 여성’의 세계를 보자. 여성 직원은 이름이 아닌 ‘미스 ○’로 불리던 시절, 제일기획에서 그는 여성 최초로 대리 직함을 달았고, 결국 삼성그룹 최초의 여성 부사장이 됐다. 그런가 하면 임금 체계 혁신에도 공을 세웠다. 동일 노동을 하면서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낮은 호봉을 받던 체계에 반기를 든 그는, “전례가 없어서 안 된다”는 사측의 입장을 뚫고 결국 남녀가 평등한 월급 체계를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생각의 숲’은 최인아 대표가 인생 2막에 조성한 지적 생태계다. 박수 칠 때 부사장직에서 과감히 내려온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품어온 생각의 씨앗을 발아시키고, 싹이 나게 한 후 돌아왔다. 나는 그즈음 최인아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추상적인 포부를 말했다. “한국인들이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느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생각의 숲을 조성하고 싶다”는. 그 막연한 포부는 생각지도 못한 행로로 이어졌다. 강남 한복판에, 그것도 4층에 자신의 이름을 단 ‘최인아책방’을 연 것.

모두가 갸우뚱했다. 건물주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런 용감무쌍한 시도를 할 수 있을까. 서점계에서는 예의주시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노심초사의 시선이 강했다. 하지만 6년 차, 최인아책방은 순항 중이다. 그곳에선 매일 사색과 모색이 무르익는 북토크와 주제별 강연이 이어지고,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지며, 책에서 인생의 해답을 간절하게 찾는 이들이 책꽂이 앞을 서성인다. 이제 최인아책방은 ‘우아하고 지적인 사색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2년 전쯤, 역삼역 근처에 최인아책방 2호점까지 열었다. 이어령 교수는 최인아책방을 “강남의 자존심이자 지식인들의 자부심”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무언가를 ‘되게’ 하는 사람이다. 모두가 “안 된다” “망한다”고 할 때 과감히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이뤄냈다. 생각만 하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건 다른 문제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 그것이 되게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남들이 다 안 된다는 걸 과감히 옮기는 저 용기는 어디에서 왔으며, 그것을 되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인생 1막과 2막 사이, 전환의 시간이 궁금합니다.
삼성 최초의 여성 부사장직을 내려놓을 당시 어떤 마음이었나요.


“42~43세부터 내가 주목한 건 시간이었어요. 시간이 줄고 있다는 자각이 아주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돈에 비유하자면 추가 수입 없이 통장 잔고에만 의지해 사는 삶이에요. 잔고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돈을 아껴 쓰게 되잖아요. ‘시간이 줄어드는데 이렇게 쓰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강했어요. 우리는 번아웃을 겪거나 큰 계기를 만나면 보통 ‘어떻게 살지?’ 하는 질문을 하게 되잖아요. 이 질문은 추상적이어서 생각의 출발점을 발견하기 어려워요. 생각을 바꿔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도 될까?’로. 그렇게 생각하니 회사를 그만두는 게 아주 쉬웠어요.”


월급이라는 안정적인 수익을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쉽지 않았지만, 끊어냈어요. 스스로에게 ‘잘했어’ 합니다.”


회사를 그만둔 걸 후회한 적은 없었는지요.

“없어요. 단 한 번도.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보통 회사 밖은 춥다고들 하는데, 나에게 퇴사는 어디가 춥고 따듯하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시간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었죠.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은 삼성에서도 여성 사장이 나와야 한다고 했고, 실제로 내 이름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나는 만약 사장이 되더라도 그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광고계는 디지털포메이션이 화두였어요. 에너지와 시간을 아주 많이 쏟아야 따라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때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은 ‘너 거기에 에너지를 그렇게 쏟을래?’ ‘네 시간을 그렇게 보낼래?’였어요. 답은 ‘노’였죠.”


자문자답하면서 답을 찾아가는군요.

“내가 나에게 칭찬해줄 게 몇 가지 있어요. 하나는 내 것이 아닌 걸 정확하게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에게 중요한 건 뭐지?’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는 거예요. 후배들이 종종 찾아와 물어요. ‘창업을 할까요, 말까요’ 하고.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건 질문이 아니에요. 자네에게 중요한 건 뭐지? 연봉이야? 기회를 갖고 성장하는 것? 아니면 워라밸?’ 식으로요. ‘그냥 다녀도 될까?’는 자기 고민이 아니에요. 타인의 기준을 따라서 붕 떠 있는 상태의 고민이죠. 그러면 답이 안 나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이거구나!’ 하는 답변이 찾아오나요?
그렇다면 언제 어떤 형태로요?


“네, 와요. 많은 경우 우리 고민은 ‘어떤 것이 나에게 유리할까?’ 혹은 ‘나에게 더 좋을까?’죠. 물론 이 질문도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흔 살 이후에는, 즉 반생 정도를 산 이후엔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고민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계속 살 거야?’를 물어야 합니다. 그 질문을 품고 돋아나는 생각을 지웠다가 새로 들였다가 하면서 숙성시키다 보면 ‘아~ 이거구나’ 하는 답이 찾아옵니다.”


자기 질문을 오래 품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의문을 품으면 발효가 일어나요. 콩이 발효되면 된장이 되고, 메주가 되고,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잖아요. 된장과 메주와 두부는 DNA는 같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죠. 그런 단계가 질문을 품는 순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어요. 그게 나의 문제 해결 방식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질문을 품고 생각하는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문하라고 하면 대개 방법론을 물어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하는. 그건 도둑놈 심보예요. 노력하지도 않고 도달하겠다는 심보이자, 지름길을 구하겠다는 겁니다.”


평소와는 달리 말투가 좀 과격한데요(웃음).

“이건 좀 과격하게 써주세요. 지름길에는 덫이 있어요. 강남의 영어학원 간판을 보세요. 죄다 ‘단기 속성’을 내세웁니다. 단기로 몇 달 만에 영어를 배우는 사람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요? 모면하겠다는 거죠. 그러면 해법이 안 생겨요. 방법은 결국 스스로 찾는 거예요. 저마다 해결 방법은 다 다르거든요. 나에겐 효과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겐 안 맞을 수 있어요. 왜? 우리는 서로 기질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어떤 시스템을 도입할 때는 신중해야 해요. 무언가를 시작할 때 무턱대고 해외 선진 시스템을 들여온다고 되나요? 안 되잖아요. ‘왜 그럴까?’에 대한 생각이 선행되어야 해요.”


입사 초기 남성 위주의 시스템에서 부당한 대우가 많았던 걸로 압니다.
그 시스템을 겪어내면서는 어떤 질문을 품었는지요.


“이화여대에서 배운 여성학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그건 당위에 불과합디다. 현실은 달랐어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했어요. 그런 시선은 언어에서부터 나타났습니다. 일하는 여성을 ‘사무실의 꽃’이라고 했고, 나는 최인아라는 이름 대신 ‘미스 최’로 불렸고, 여성을 대상화한 광고 카피는 ‘사랑받으시겠어요’ 하던 시대였어요. 이건 제일기획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였습니다. 이 시스템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시스템이라는 건 오랜 시간에 걸쳐 생겼기 때문에 이걸 바꾸는 데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죠. 물론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을 안 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시스템이 안 바뀌어도 일을 해야 하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잖아요. 그때 나의 질문은 ‘순종할래? 뛰쳐나갈래?’의 선택지가 아니었어요.”


그러면요?

“‘이들을 어떻게 하면 내 편으로 만들까’였어요.”


회피도, 정면 승부도 아닌, 제3의 길을 찾아낸 거군요.

“그 생각이 돋아난 순간을 나는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으로 봅니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 거예요. 입사 후 40여 일 지나서 학교에서 사은회가 있었어요. 그때 교수님이 한마디 하라고 하셔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회사에서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미스 최로 불립니다. 함께 입사한 남자 동기들은 이름으로 불리는데, 왜 나와 여자 동기들은 미스 O로 불릴까요. 그 이유를 생각해봤어요. 그들로선 에너지를 줄이는 겁니다. 이름을 부르려면 내 이름 석 자를 기억해야 하는데, 열등한 존재에는 에너지를 덜 쓰려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라면 ‘저를 최인아 씨라고 불러주세요’라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회사에서 소수 민족이고, 내가 내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려면 이들을 적으로 돌리면 그 길은 요원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다움을 묻다, 최인아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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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아 ①
자문자답을 통해 해답을 얻다
김민희
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제일기획 부사장을 지냈다.
강남 한복판인 선릉역과 역삼역 부근에 각각 최인아책방 1,2호점을 열고 ‘혼자력’과 ‘사색력’을 모색하고 전파한다.
‘과연 될까?’ ‘저게 가능해?’ 생각되는 것들에 뛰어들어 결국은 돌파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은 그들을 개척자라고 부른다.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면서 누리는 편리와 안전, 평등과 평화 같은 물적·정신적 토대는 사실, 앞서간 개척자들의 노고에 기댄 부분이 크다. 그 개척자들의 노고에는 단순히 ‘노고’라는 말로 치환할 수 없는 거룩함이 깃들어 있다. 작게는 눈물과 땀부터 크게는 죽음을 불사한 용기까지.

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의 삶이 그렇다. 그는 ‘최초’의 발자국을 여기저기 꾹꾹 남기며 단단하게 걸어왔다. 그가 돌파해낸 세계는 크게 두 영역에 걸쳐 있다. 하나는 ‘일하는 여성’으로서 세계, 또 하나는 우아하고 지적인 ‘생각의 숲’이라는 세계다.

먼저 ‘일하는 여성’의 세계를 보자. 여성 직원은 이름이 아닌 ‘미스 ○’로 불리던 시절, 제일기획에서 그는 여성 최초로 대리 직함을 달았고, 결국 삼성그룹 최초의 여성 부사장이 됐다. 그런가 하면 임금 체계 혁신에도 공을 세웠다. 동일 노동을 하면서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낮은 호봉을 받던 체계에 반기를 든 그는, “전례가 없어서 안 된다”는 사측의 입장을 뚫고 결국 남녀가 평등한 월급 체계를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생각의 숲’은 최인아 대표가 인생 2막에 조성한 지적 생태계다. 박수 칠 때 부사장직에서 과감히 내려온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품어온 생각의 씨앗을 발아시키고, 싹이 나게 한 후 돌아왔다. 나는 그즈음 최인아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추상적인 포부를 말했다. “한국인들이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느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생각의 숲을 조성하고 싶다”는. 그 막연한 포부는 생각지도 못한 행로로 이어졌다. 강남 한복판에, 그것도 4층에 자신의 이름을 단 ‘최인아책방’을 연 것.

모두가 갸우뚱했다. 건물주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런 용감무쌍한 시도를 할 수 있을까. 서점계에서는 예의주시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노심초사의 시선이 강했다. 하지만 6년 차, 최인아책방은 순항 중이다. 그곳에선 매일 사색과 모색이 무르익는 북토크와 주제별 강연이 이어지고,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지며, 책에서 인생의 해답을 간절하게 찾는 이들이 책꽂이 앞을 서성인다. 이제 최인아책방은 ‘우아하고 지적인 사색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2년 전쯤, 역삼역 근처에 최인아책방 2호점까지 열었다. 이어령 교수는 최인아책방을 “강남의 자존심이자 지식인들의 자부심”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무언가를 ‘되게’ 하는 사람이다. 모두가 “안 된다” “망한다”고 할 때 과감히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이뤄냈다. 생각만 하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건 다른 문제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 그것이 되게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남들이 다 안 된다는 걸 과감히 옮기는 저 용기는 어디에서 왔으며, 그것을 되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인생 1막과 2막 사이, 전환의 시간이 궁금합니다.
삼성 최초의 여성 부사장직을 내려놓을 당시 어떤 마음이었나요.


“42~43세부터 내가 주목한 건 시간이었어요. 시간이 줄고 있다는 자각이 아주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돈에 비유하자면 추가 수입 없이 통장 잔고에만 의지해 사는 삶이에요. 잔고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돈을 아껴 쓰게 되잖아요. ‘시간이 줄어드는데 이렇게 쓰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강했어요. 우리는 번아웃을 겪거나 큰 계기를 만나면 보통 ‘어떻게 살지?’ 하는 질문을 하게 되잖아요. 이 질문은 추상적이어서 생각의 출발점을 발견하기 어려워요. 생각을 바꿔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도 될까?’로. 그렇게 생각하니 회사를 그만두는 게 아주 쉬웠어요.”


월급이라는 안정적인 수익을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쉽지 않았지만, 끊어냈어요. 스스로에게 ‘잘했어’ 합니다.”


회사를 그만둔 걸 후회한 적은 없었는지요.

“없어요. 단 한 번도.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보통 회사 밖은 춥다고들 하는데, 나에게 퇴사는 어디가 춥고 따듯하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시간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었죠.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은 삼성에서도 여성 사장이 나와야 한다고 했고, 실제로 내 이름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나는 만약 사장이 되더라도 그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광고계는 디지털포메이션이 화두였어요. 에너지와 시간을 아주 많이 쏟아야 따라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때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은 ‘너 거기에 에너지를 그렇게 쏟을래?’ ‘네 시간을 그렇게 보낼래?’였어요. 답은 ‘노’였죠.”


자문자답하면서 답을 찾아가는군요.

“내가 나에게 칭찬해줄 게 몇 가지 있어요. 하나는 내 것이 아닌 걸 정확하게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에게 중요한 건 뭐지?’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는 거예요. 후배들이 종종 찾아와 물어요. ‘창업을 할까요, 말까요’ 하고.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건 질문이 아니에요. 자네에게 중요한 건 뭐지? 연봉이야? 기회를 갖고 성장하는 것? 아니면 워라밸?’ 식으로요. ‘그냥 다녀도 될까?’는 자기 고민이 아니에요. 타인의 기준을 따라서 붕 떠 있는 상태의 고민이죠. 그러면 답이 안 나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이거구나!’ 하는 답변이 찾아오나요?
그렇다면 언제 어떤 형태로요?


“네, 와요. 많은 경우 우리 고민은 ‘어떤 것이 나에게 유리할까?’ 혹은 ‘나에게 더 좋을까?’죠. 물론 이 질문도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흔 살 이후에는, 즉 반생 정도를 산 이후엔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고민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계속 살 거야?’를 물어야 합니다. 그 질문을 품고 돋아나는 생각을 지웠다가 새로 들였다가 하면서 숙성시키다 보면 ‘아~ 이거구나’ 하는 답이 찾아옵니다.”


자기 질문을 오래 품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의문을 품으면 발효가 일어나요. 콩이 발효되면 된장이 되고, 메주가 되고,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잖아요. 된장과 메주와 두부는 DNA는 같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죠. 그런 단계가 질문을 품는 순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어요. 그게 나의 문제 해결 방식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질문을 품고 생각하는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문하라고 하면 대개 방법론을 물어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하는. 그건 도둑놈 심보예요. 노력하지도 않고 도달하겠다는 심보이자, 지름길을 구하겠다는 겁니다.”


평소와는 달리 말투가 좀 과격한데요(웃음).

“이건 좀 과격하게 써주세요. 지름길에는 덫이 있어요. 강남의 영어학원 간판을 보세요. 죄다 ‘단기 속성’을 내세웁니다. 단기로 몇 달 만에 영어를 배우는 사람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요? 모면하겠다는 거죠. 그러면 해법이 안 생겨요. 방법은 결국 스스로 찾는 거예요. 저마다 해결 방법은 다 다르거든요. 나에겐 효과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겐 안 맞을 수 있어요. 왜? 우리는 서로 기질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어떤 시스템을 도입할 때는 신중해야 해요. 무언가를 시작할 때 무턱대고 해외 선진 시스템을 들여온다고 되나요? 안 되잖아요. ‘왜 그럴까?’에 대한 생각이 선행되어야 해요.”


입사 초기 남성 위주의 시스템에서 부당한 대우가 많았던 걸로 압니다.
그 시스템을 겪어내면서는 어떤 질문을 품었는지요.


“이화여대에서 배운 여성학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그건 당위에 불과합디다. 현실은 달랐어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했어요. 그런 시선은 언어에서부터 나타났습니다. 일하는 여성을 ‘사무실의 꽃’이라고 했고, 나는 최인아라는 이름 대신 ‘미스 최’로 불렸고, 여성을 대상화한 광고 카피는 ‘사랑받으시겠어요’ 하던 시대였어요. 이건 제일기획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였습니다. 이 시스템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시스템이라는 건 오랜 시간에 걸쳐 생겼기 때문에 이걸 바꾸는 데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죠. 물론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을 안 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시스템이 안 바뀌어도 일을 해야 하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잖아요. 그때 나의 질문은 ‘순종할래? 뛰쳐나갈래?’의 선택지가 아니었어요.”


그러면요?

“‘이들을 어떻게 하면 내 편으로 만들까’였어요.”


회피도, 정면 승부도 아닌, 제3의 길을 찾아낸 거군요.

“그 생각이 돋아난 순간을 나는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으로 봅니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 거예요. 입사 후 40여 일 지나서 학교에서 사은회가 있었어요. 그때 교수님이 한마디 하라고 하셔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회사에서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미스 최로 불립니다. 함께 입사한 남자 동기들은 이름으로 불리는데, 왜 나와 여자 동기들은 미스 O로 불릴까요. 그 이유를 생각해봤어요. 그들로선 에너지를 줄이는 겁니다. 이름을 부르려면 내 이름 석 자를 기억해야 하는데, 열등한 존재에는 에너지를 덜 쓰려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라면 ‘저를 최인아 씨라고 불러주세요’라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회사에서 소수 민족이고, 내가 내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려면 이들을 적으로 돌리면 그 길은 요원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다움을 묻다, 최인아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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