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
만화가·스튜디오 보통 대표. 웹툰 〈아만자〉로 데뷔, 〈D.P 개의 날〉을 쓰고 그렸다.
특히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으며,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살아, 눈부시게!》 등의 책을 썼다.
‘오늘 당장 싫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매일매일 불행에서 도망치는 일’, 이 바람은 생각보다 소박하지 않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 부조리와 불합리를 속으로 삼키고, 싫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주어진 일을 하며 사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월급에는 그 모든 게 포함되어 있다는 불문율. 다들 그렇게 산다는 순응의 내재화. 작가의 눈엔 아무리 봐도 지옥 같은데 평범씨들에게는 그저 ‘우리나라’다.

그런 우리나라에서 넉넉하지 않은 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만기 전역을 하고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다니던, 말기암으로 아버지를 잃은 한 남자는 이 평범한 삶에서 온 힘을 다해 도망친다. 이름을 바꾸고, 가면을 쓰고 가까스로 계급도, 소속도, 이름도, 얼굴도 없는 ‘보통의’ 삶을 겨우 획득한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응시할 수 있게 됐다. 군대에서, 사회에서, 암투병하는 아버지 곁에서 그의 마음에 쌓여 담석처럼 응어리진 이야기들을 그는 글과 그림으로 녹여 세상 속에 꺼내놓았다.

그 담담한 고백이 〈아만자〉와 〈D.P 개의날〉로 나왔다. 겪지 않았다면 알 수 없을 이야기들은 한국의 오늘이자 르포르타주였다. 암의 습격을 받은 청춘들과 폐쇄된 군에 갇힌 청년들이 겪는 ‘평범한 일상’이 이런 모습이었던가. ‘세 명 중 한 명이 암환자’라는 통계나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 된다”는 관용어는 흔하디흔한 폭력이자 이 삭막한 세계를 수호하는 방관이었다.

김보통 작가는 ‘보통의 삶’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이 태어나 자라며 겪는 일들이 다 같이 이런 모양인 건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가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는 동안 게으른 집단의 최면은 조금씩 깨어난다. 암은 ‘나만 아니면 되는’ 랜덤 불행이 아니고, 탈영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상한 세상. 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이 김보통의 이야기에 열렬한 응답을 보내 그의 작품 〈D.P 개의날〉은 넷플릭스에서 시즌2를 준비 중이다.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D.P.〉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주목받았습니다. 혹시 스스로 달라진 건 없나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작품이 인정받으면 그걸로 족하다”는 입장은 변함없는지요.

“특별히 작품으로 말하고 싶다기보다는, 처음에는 만화가를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몇 달 안 할 거 굳이 신상을 공개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감추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신분을 드러내기도 좀 애매한 상황이라 그냥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명세를 바라지도 않지만, 길을 걷다 콧구멍이라도 후빌 때 지나가는 사람이 저를 알아본다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 일이라 지금이 편한 것 같습니다(웃음).”


〈D.P.〉는 작가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작품을 보면서 작가가 군 생활을 하던 시점과 웹툰으로 연재하던 시점, 넷플릭스에 방영된 시점이 모두 입체적으로 포개지는 느낌이었어요.


“마음속에 얹힌 돌이었습니다. 탈영병을 쫓으며 느꼈던 괴리감, 죄책감, 모순됨 등이 긴 시간 동안 쌓이고 굳어 돌이 됐는데 이 돌 때문에 계속해서 통증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마치 담석처럼요. 연재를 통해 그 담석을 빼낼 수 있어서 속이 후련했고, 그게 드라마로 방영돼 잠시나마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 담석도 나름 쓸모가 있구나 싶어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돌도 빼낸 것 같습니다.

“저는 언제나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받으면 사람들도 저마다 저 같은 돌을 얹고 살아왔구나 싶어 애잔합니다.”


〈아만자〉의 암환자 이야기, 〈D.P.〉 속 탈영병을 잡는 군인 이야기 등 극단적인 상황과 경험을 그리면서도 그 안에서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주기보다는 보통의 우리가 겪는 감정과 고민에 집중하게 합니다.

“저는 이야기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길 바랍니다. 대중이 드라마나 웹툰을 통해 원하는 것은 현실이 아닌 다소의 판타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이 원한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지는 않아요. 그것은 잠시의 즐거움을 줄 순 있으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거든요. 물론 서사 과정에는 극적인 요소가 다분하지만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시선과 그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늘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길 바라요.”


작품이 경험에서 시작되는 경우, 당시의 고통과 고민을 작품으로 재현할 때 그 기억과 감정이 생생해졌을 것 같습니다.
괴롭진 않았나요?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 입장에서 기억과 감정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좋은 점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내가 만드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 느낄 감정을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면 이야기가 활력을 얻지 못하죠. 인간은 굉장히 복잡한 존재고, 어떤 상황에서 모순되거나 양가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을 자세히 묘사할 수 있을 때 독자들은 마치 주인공이 살아 있는 것 같고, 내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이입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힘들지 않으면 작품이 망하는 것이니 오히려 힘이 안 들면 걱정하는 편입니다.”


2020년 1년간 《topclass》에 ‘김보통의 보통사람들’을 연재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밤장수, 여고생, 일터에서 만난 클라이언트 등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구성한 이야기였죠.
그 인터뷰는 어떤 시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쓸쓸해요. 친구들은 먹고사느라 서로 바쁘고, 자식들은 부모 품을 떠나 각자의 삶을 즐기느라 바쁩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온종일 일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업무적인 대화 외에 잡담할 일이 많지 않죠. 하지만 사람은 서로 의미 없는 대화를 하며 위안을 얻고 즐거움을 느껴요. 그것이 설령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쓸쓸한 어른들은 그조차도 반가운 법입니다. 물론 불쑥 말을 걸어 이 얘기 저 얘기 떠드는 제가 실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죠. 하지만 ‘오늘 참 실없는 사람을 만났어. 하지만 즐거웠지’라는 기억을 가지고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면 실질적인 이득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것 나름으로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실없는 아저씨가 되어 쓸쓸한 사람들에게 똑똑똑 노크를 하고 다녔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즐거웠습니다.”


탈을 쓴 김보통과 탈을 벗은 나. 이 둘은 어떻게 다른가요.

“기본적으로는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부캐라거나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든가 하는 건 아니에요. 탈은 일종의 방어막인 셈이죠. 개인으로서 제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거라서 탈을 쓰거나 벗거나 김보통은 김보통입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김보통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아요. 생각해보니 배트맨의 가면과 비슷한 역할을 하네요.”


소위 번듯한 대학을 나와 이름난 대기업에 다니다가 만화가가 됐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요. 그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요.


“어, 많은 분들이 제가 만화가를 혹은 작가를 하기 위해 과감히 회사를 그만뒀다고 생각하시는데, 이건 제가 계속 정정하고 있습니다.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둔 것이라면 그건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저는 회사를 다니기 싫어서, 더는 다닐 수 없어서 그만둔 후 어쩌다가 만화를 그리게 된 거랍니다. 특별히 만화를 그리고 싶어 어떤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우연히 이렇게 된 것이죠. 회사를 그만둔 그때만 놓고 본다면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어요. 당시 저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던 때라 선택이라기보단 도망이 더 맞는 말이에요. 저는 회사에서 도망쳤고, 어쩌다 보니 만화를 그리게 된 셈입니다.”


퇴사 당시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실패한 삶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죠.

“저는 사람들이 실패를 수치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실패는 우리 인생의 대부분이에요. 그러니 실패에 익숙해지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졌지만, 졌다는 사실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은 다시 도전할 수 있어요. 한 번의 성공에 도취된 사람은 반대로 다시 도전하지 못할 테고요.”


최근 온라인으로 ‘실패학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역발상 같은데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들의 성공담 속에서 성공 방정식을 찾으려는 거겠죠.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예요. 그리고 그 극소수의 사람이 오로지 자신만이 아는 어떤 비결 때문에 성공한 것도 아닐 테고요. 자신이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한 사람의 성공에는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어떻게 성공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저 무수히 많은 실패의 연속 중에 어쩌다 잠깐의 성공을 맛봤을 뿐, 이 성공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공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일 거예요. 그들 역시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겪었을 테고, 그 시간 속에 수없이 자신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했을 거예요. 하지만 성공하고 나니 아무도 자신의 실패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성공했는지만 묻습니다. 나름의 성공 철학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그 사람도 크게 보면 실패자예요. 지금 어쩌다 우연히 성공한 것처럼 보일 뿐이에요.”


혹시 오늘도 턱걸이를 했나요?

“네. 매일 50~60개는 하고 있어요. 예전부터 턱걸이를 좋아했습니다. 턱걸이는 대부분의 성인이 한 번도 정자세로 못 하는 운동이에요. 하지만 보름 정도 꾸준히 연습하면 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어느 날 갑자기 턱걸이를 시도하고는 ‘못 하겠다’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턱걸이를 못 하는 채’ 남은 인생을 살아가요. 비단 턱걸이뿐 아닙니다. 정말 많은 것들을 우리는 보름 정도의 꾸준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못 하는 것’이라고 단념하죠. 반대로 보름 동안 꾸준히 하면 상당수는 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할 수 있는 것’을 늘리는 일은 이렇게 쉬워요. 제게 턱걸이는 그것을 알게 해준 고마운 운동입니다.”

〈나다움을 묻다, 김보통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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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①
D.P는 맘속에 얹힌 돌이었다!
유슬기
김보통
만화가·스튜디오 보통 대표. 웹툰 〈아만자〉로 데뷔, 〈D.P 개의 날〉을 쓰고 그렸다.
특히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으며,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살아, 눈부시게!》 등의 책을 썼다.
‘오늘 당장 싫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매일매일 불행에서 도망치는 일’, 이 바람은 생각보다 소박하지 않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 부조리와 불합리를 속으로 삼키고, 싫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주어진 일을 하며 사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월급에는 그 모든 게 포함되어 있다는 불문율. 다들 그렇게 산다는 순응의 내재화. 작가의 눈엔 아무리 봐도 지옥 같은데 평범씨들에게는 그저 ‘우리나라’다.

그런 우리나라에서 넉넉하지 않은 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만기 전역을 하고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다니던, 말기암으로 아버지를 잃은 한 남자는 이 평범한 삶에서 온 힘을 다해 도망친다. 이름을 바꾸고, 가면을 쓰고 가까스로 계급도, 소속도, 이름도, 얼굴도 없는 ‘보통의’ 삶을 겨우 획득한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응시할 수 있게 됐다. 군대에서, 사회에서, 암투병하는 아버지 곁에서 그의 마음에 쌓여 담석처럼 응어리진 이야기들을 그는 글과 그림으로 녹여 세상 속에 꺼내놓았다.

그 담담한 고백이 〈아만자〉와 〈D.P 개의날〉로 나왔다. 겪지 않았다면 알 수 없을 이야기들은 한국의 오늘이자 르포르타주였다. 암의 습격을 받은 청춘들과 폐쇄된 군에 갇힌 청년들이 겪는 ‘평범한 일상’이 이런 모습이었던가. ‘세 명 중 한 명이 암환자’라는 통계나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 된다”는 관용어는 흔하디흔한 폭력이자 이 삭막한 세계를 수호하는 방관이었다.

김보통 작가는 ‘보통의 삶’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이 태어나 자라며 겪는 일들이 다 같이 이런 모양인 건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가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는 동안 게으른 집단의 최면은 조금씩 깨어난다. 암은 ‘나만 아니면 되는’ 랜덤 불행이 아니고, 탈영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상한 세상. 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이 김보통의 이야기에 열렬한 응답을 보내 그의 작품 〈D.P 개의날〉은 넷플릭스에서 시즌2를 준비 중이다.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D.P.〉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주목받았습니다. 혹시 스스로 달라진 건 없나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작품이 인정받으면 그걸로 족하다”는 입장은 변함없는지요.

“특별히 작품으로 말하고 싶다기보다는, 처음에는 만화가를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몇 달 안 할 거 굳이 신상을 공개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감추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신분을 드러내기도 좀 애매한 상황이라 그냥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명세를 바라지도 않지만, 길을 걷다 콧구멍이라도 후빌 때 지나가는 사람이 저를 알아본다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 일이라 지금이 편한 것 같습니다(웃음).”


〈D.P.〉는 작가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작품을 보면서 작가가 군 생활을 하던 시점과 웹툰으로 연재하던 시점, 넷플릭스에 방영된 시점이 모두 입체적으로 포개지는 느낌이었어요.


“마음속에 얹힌 돌이었습니다. 탈영병을 쫓으며 느꼈던 괴리감, 죄책감, 모순됨 등이 긴 시간 동안 쌓이고 굳어 돌이 됐는데 이 돌 때문에 계속해서 통증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마치 담석처럼요. 연재를 통해 그 담석을 빼낼 수 있어서 속이 후련했고, 그게 드라마로 방영돼 잠시나마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 담석도 나름 쓸모가 있구나 싶어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돌도 빼낸 것 같습니다.

“저는 언제나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받으면 사람들도 저마다 저 같은 돌을 얹고 살아왔구나 싶어 애잔합니다.”


〈아만자〉의 암환자 이야기, 〈D.P.〉 속 탈영병을 잡는 군인 이야기 등 극단적인 상황과 경험을 그리면서도 그 안에서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주기보다는 보통의 우리가 겪는 감정과 고민에 집중하게 합니다.

“저는 이야기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길 바랍니다. 대중이 드라마나 웹툰을 통해 원하는 것은 현실이 아닌 다소의 판타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이 원한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지는 않아요. 그것은 잠시의 즐거움을 줄 순 있으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거든요. 물론 서사 과정에는 극적인 요소가 다분하지만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시선과 그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늘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길 바라요.”


작품이 경험에서 시작되는 경우, 당시의 고통과 고민을 작품으로 재현할 때 그 기억과 감정이 생생해졌을 것 같습니다.
괴롭진 않았나요?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 입장에서 기억과 감정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좋은 점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내가 만드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 느낄 감정을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면 이야기가 활력을 얻지 못하죠. 인간은 굉장히 복잡한 존재고, 어떤 상황에서 모순되거나 양가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을 자세히 묘사할 수 있을 때 독자들은 마치 주인공이 살아 있는 것 같고, 내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이입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힘들지 않으면 작품이 망하는 것이니 오히려 힘이 안 들면 걱정하는 편입니다.”


2020년 1년간 《topclass》에 ‘김보통의 보통사람들’을 연재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밤장수, 여고생, 일터에서 만난 클라이언트 등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구성한 이야기였죠.
그 인터뷰는 어떤 시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쓸쓸해요. 친구들은 먹고사느라 서로 바쁘고, 자식들은 부모 품을 떠나 각자의 삶을 즐기느라 바쁩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온종일 일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업무적인 대화 외에 잡담할 일이 많지 않죠. 하지만 사람은 서로 의미 없는 대화를 하며 위안을 얻고 즐거움을 느껴요. 그것이 설령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쓸쓸한 어른들은 그조차도 반가운 법입니다. 물론 불쑥 말을 걸어 이 얘기 저 얘기 떠드는 제가 실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죠. 하지만 ‘오늘 참 실없는 사람을 만났어. 하지만 즐거웠지’라는 기억을 가지고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면 실질적인 이득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것 나름으로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실없는 아저씨가 되어 쓸쓸한 사람들에게 똑똑똑 노크를 하고 다녔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즐거웠습니다.”


탈을 쓴 김보통과 탈을 벗은 나. 이 둘은 어떻게 다른가요.

“기본적으로는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부캐라거나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든가 하는 건 아니에요. 탈은 일종의 방어막인 셈이죠. 개인으로서 제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거라서 탈을 쓰거나 벗거나 김보통은 김보통입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김보통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아요. 생각해보니 배트맨의 가면과 비슷한 역할을 하네요.”


소위 번듯한 대학을 나와 이름난 대기업에 다니다가 만화가가 됐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요. 그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요.


“어, 많은 분들이 제가 만화가를 혹은 작가를 하기 위해 과감히 회사를 그만뒀다고 생각하시는데, 이건 제가 계속 정정하고 있습니다.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둔 것이라면 그건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저는 회사를 다니기 싫어서, 더는 다닐 수 없어서 그만둔 후 어쩌다가 만화를 그리게 된 거랍니다. 특별히 만화를 그리고 싶어 어떤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우연히 이렇게 된 것이죠. 회사를 그만둔 그때만 놓고 본다면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어요. 당시 저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던 때라 선택이라기보단 도망이 더 맞는 말이에요. 저는 회사에서 도망쳤고, 어쩌다 보니 만화를 그리게 된 셈입니다.”


퇴사 당시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실패한 삶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죠.

“저는 사람들이 실패를 수치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실패는 우리 인생의 대부분이에요. 그러니 실패에 익숙해지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졌지만, 졌다는 사실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은 다시 도전할 수 있어요. 한 번의 성공에 도취된 사람은 반대로 다시 도전하지 못할 테고요.”


최근 온라인으로 ‘실패학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역발상 같은데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들의 성공담 속에서 성공 방정식을 찾으려는 거겠죠.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예요. 그리고 그 극소수의 사람이 오로지 자신만이 아는 어떤 비결 때문에 성공한 것도 아닐 테고요. 자신이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한 사람의 성공에는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어떻게 성공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저 무수히 많은 실패의 연속 중에 어쩌다 잠깐의 성공을 맛봤을 뿐, 이 성공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공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일 거예요. 그들 역시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겪었을 테고, 그 시간 속에 수없이 자신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했을 거예요. 하지만 성공하고 나니 아무도 자신의 실패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성공했는지만 묻습니다. 나름의 성공 철학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그 사람도 크게 보면 실패자예요. 지금 어쩌다 우연히 성공한 것처럼 보일 뿐이에요.”


혹시 오늘도 턱걸이를 했나요?

“네. 매일 50~60개는 하고 있어요. 예전부터 턱걸이를 좋아했습니다. 턱걸이는 대부분의 성인이 한 번도 정자세로 못 하는 운동이에요. 하지만 보름 정도 꾸준히 연습하면 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어느 날 갑자기 턱걸이를 시도하고는 ‘못 하겠다’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턱걸이를 못 하는 채’ 남은 인생을 살아가요. 비단 턱걸이뿐 아닙니다. 정말 많은 것들을 우리는 보름 정도의 꾸준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못 하는 것’이라고 단념하죠. 반대로 보름 동안 꾸준히 하면 상당수는 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할 수 있는 것’을 늘리는 일은 이렇게 쉬워요. 제게 턱걸이는 그것을 알게 해준 고마운 운동입니다.”

〈나다움을 묻다, 김보통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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