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대한민국 대표 골퍼. 2016년 선수 생활을 뒤로하고 골프감독, 방송인, 스포츠회사 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인생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눈빛이 강렬했다. 현상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목표를 정하면 앞만 보고 돌진할 것만 같은. 어려서부터 방송을 통해 줄곧 봐온 익숙한 얼굴인데 눈빛만큼은 생경했다.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기 전부터 그의 눈빛과 싸워야 했을지 짐작이 갔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이게 월드클래스의 눈빛이구나!’

박세리가 누구인가. 골프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1996년 프로로 데뷔해 1998년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를 집어삼킨 슈퍼 루키 아닌가. 한국 골프는 박세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입지전적 인물 아닌가.

US 여자오픈에서는 워터해저드(물웅덩이)에 걸친 공을 치기 위해 맨발투혼을 펼쳤고, 모두가 실패할 거라 지레짐작하던 샷을 성공적으로 그린에 올려놓아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 결과는 우리의 자부심이 됐고 무엇보다 당시 외환위기로 고통받던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그 자체가 됐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고. 온 국민이 골프는 몰라도 ‘박세리’라는 이름을 알게 만들었던 주인공이다.

LPGA 25승, 메이저투어 5승. 24년의 선수 생활 동안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세우고 기계처럼 반복된 훈련을 묵묵히 견디며 이룬 결과다. 그는 2007년 LPGA 명예의 전당에 최연소로 이름을 올리고,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도 동시에 오르며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이 됐다. 그 눈빛이 쉽사리 사그라들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과거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96년 프로선수가 되고 1998년 LPGA 우승을 차지했죠.
당시 프로 잡는 아마추어로 주목받던 신예이긴 했지만 미국 진출은 의외였습니다.


“골프를 늦게 시작한 편이에요. 육상을 하다가 중3 때부터 본격적으로 골프대회에 나갔는데 바로 우승을 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 무대에 가서도 계속 우승했고요. 자신감이 가득 차면서 해외 진출을 결심했어요. 일본에 갈 계획이었는데, 저한테 엄청난 기회가 생겼어요. 월드랭킹 20위권 선수를 한국에 초청해 대회를 열었는데 거기 출전할 자격을 얻은 거예요. 그 대회에서 3위를 하고 생각이 완전 바뀌었어요. 세계 무대로 가야겠다고. 막상 미국에 갔을 때는 너무 어려웠어요. 난 분명 잘하고 있는데 성적은 20위권에 머물러 있으니까요. 그만큼 실력이 부족했던 거죠. 최대한 빨리 적응하려고 매주 대회에 나가 쉬지 않고 공을 쳤어요. 그러다 1998년 5월 메이저대회에서 첫 승을 하게 됐고요. 신인이 한 달 뒤 또 다른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했죠. 그해 4승을 하면서 저의 선수 인생이 바뀌었어요.”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인터뷰에서 “디스 이즈 메이저?”라고 되묻던 장면이 기억나네요.
예상보다 빠른 성취에 허무함 같은 건 없었나요?


“그렇진 않았어요. 한 번 우승하고 끝날 게 아니니까. 제 목표는 명예의 전당이었거든요. 당시 다른 선수들에게 무서운 루키로 인식됐는데 7년 동안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는 포인트를 모두 따버렸어요. 투어 10년을 채워야 하는 기준이 있어 포인트를 채우고도 3년을 기다렸다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죠. 제가 하고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해냈다’는 것도 잠시, 저는 다시 제 패턴대로 살았어요. 조심스러웠거든요. 이걸 인정하면 자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돼서 아예 생각을 안 하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추는 박세리를 봤지만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무수한 인내의 시간이 있었겠죠.

“모든 기준이 골프였어요. 24시간 생활 자체가 골프로 시작해서 골프로 끝날 만큼.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준비할 것, 해야 할 것, 조심할 것을 생각하고, 다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생활하고 연습할지도 늘 염두에 뒀어요. 남들은 스트레스 풀려고 취미 생활도 하는데 저는 그조차 주어지지 않았어요. 일반적인 생활 자체가 되지 않았죠.”


정말 지독하게 운동만 했군요.
아무리 좋은 일도 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운동을 하기 싫은 날은 어떻게 했습니까?


“참았어요. 물론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죠. 그렇다고 쉬고 내일로 미루면 나태해질 것 같더라고요. 지금 와서 보면 굉장히 좋지 않은 건데 그땐 그렇게 살았어요. 결국 번아웃이 왔고 슬럼프에 빠졌죠. 내 기준에서 삶을 완벽하게 계획하고 습관화하면 슬럼프가 오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는데 의미가 없었어요. 잘할수록 더 채찍질했으니까요. 힘들고 아프면 표현했어야 하는데 미련할 정도로 참고 생활했어요. 가장 중요한 걸 빼먹은 거죠. 덕분에 지금의 박세리가 있지만 그때 내가 나에게 좀 더 유했으면 더 많은 기록도 남지 않았을까 생각은 들어요.”


일탈해본 적은요?

“한 번도 없어요. 남자친구 만난 정도?”


그게 일탈인가요? 훈련 빼고 잠수 탄 적도 없나요?

“없어요. 바보 같죠? 운동선수들이 그래요. 많은 걸 이룬 듯 보이지만 막상 남는 건 아픈 몸밖에 없어요. 운동을 많이 해서 건강할 거라 생각하는데 그것도 아니에요. 늘 부러지고 찢어지고 수술 자국은 기본이고. 관절, 연골이 닳고 닳도록 훈련하니까요. 그런 걸 생각하면 합당한 대우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은퇴하고 방송하면서 제 브랜드를 활성화하는 이유도 은퇴한 선수들이 뭐든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후배들도 자신감을 얻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살면 몸이 항상 긴장 상태 아닌가요?

“선수 생활 24년 동안 한 번도 긴장을 늦춘 적이 없어요. 하루하루 잘하기 위해 긴장하고 조심했어요. 내 위치에 있기 위해 갖춰야 할 자세 같은 거죠.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그 마음가짐은 한 번도 달라진 적이 없어요. 요즘도 똑같아요. 생활 자체는 이전과 다르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니까요. 저는 은퇴하고 사회에 첫발을 들인 사회초년생이에요. 잘 모르는 게 있어도 부끄러워하기보다 알아가는 과정이니까 배우려고 해요.”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 감독님의 말투에 자신감이 뚝뚝 묻어나면서도 한편으로 행간에 배어 있는 겸손함이 느껴집니다.

“제 행동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어요.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 심정이 어땠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저는 한 번도 제가 톱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부담도 덜 했던 것 같아요. 저 자신을 낮출수록 제가 더 편했어요. 누군가의 말에 의해 더 하고 덜 하는 기준을 두지 않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나 봐요. 부모님도 항상 잘할수록 겸손하고 행동을 조심하라고 가르치셨고요.”


타인과 경쟁보다 스스로와의 경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합니다.
골프라는 특성 때문일까요? 혹은 승부욕이 향한 방향이 다른 걸까요?


“물론 대회마다 선의의 경쟁자는 있어요. 하지만 무엇을 보느냐의 차이 같아요. 제겐 1등이란 자리가 최고의 경쟁자이지, 어떤 선수를 누른다고 해서 1등은 아니잖아요. 언론에서 누가 라이벌이라고 언급했지만 전 라이벌이 없었어요. 제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오로지 하나뿐이었죠.”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잃은 것도 있을 텐데요.

“잃은 건 생각하지 않아요. 얻은 게 있으면 잃은 것도 있는 거죠. 다 가질 순 없잖아요. 선택은 내가 한 거니까 후회도 없어요. 대회에 나가 어떤 클럽을 사용할지 결정할 때, 누군가의 말을 듣고 선택해서 실수하면 화가 두 배로 나지만 내가 선택해서 실수하면 핑계가 되지 않아요.”

〈나다움을 묻다, 박세리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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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①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시간
선수현
박세리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대한민국 대표 골퍼. 2016년 선수 생활을 뒤로하고 골프감독, 방송인, 스포츠회사 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인생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눈빛이 강렬했다. 현상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목표를 정하면 앞만 보고 돌진할 것만 같은. 어려서부터 방송을 통해 줄곧 봐온 익숙한 얼굴인데 눈빛만큼은 생경했다.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기 전부터 그의 눈빛과 싸워야 했을지 짐작이 갔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이게 월드클래스의 눈빛이구나!’

박세리가 누구인가. 골프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1996년 프로로 데뷔해 1998년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를 집어삼킨 슈퍼 루키 아닌가. 한국 골프는 박세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입지전적 인물 아닌가.

US 여자오픈에서는 워터해저드(물웅덩이)에 걸친 공을 치기 위해 맨발투혼을 펼쳤고, 모두가 실패할 거라 지레짐작하던 샷을 성공적으로 그린에 올려놓아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 결과는 우리의 자부심이 됐고 무엇보다 당시 외환위기로 고통받던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그 자체가 됐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고. 온 국민이 골프는 몰라도 ‘박세리’라는 이름을 알게 만들었던 주인공이다.

LPGA 25승, 메이저투어 5승. 24년의 선수 생활 동안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세우고 기계처럼 반복된 훈련을 묵묵히 견디며 이룬 결과다. 그는 2007년 LPGA 명예의 전당에 최연소로 이름을 올리고,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도 동시에 오르며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이 됐다. 그 눈빛이 쉽사리 사그라들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과거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96년 프로선수가 되고 1998년 LPGA 우승을 차지했죠.
당시 프로 잡는 아마추어로 주목받던 신예이긴 했지만 미국 진출은 의외였습니다.


“골프를 늦게 시작한 편이에요. 육상을 하다가 중3 때부터 본격적으로 골프대회에 나갔는데 바로 우승을 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 무대에 가서도 계속 우승했고요. 자신감이 가득 차면서 해외 진출을 결심했어요. 일본에 갈 계획이었는데, 저한테 엄청난 기회가 생겼어요. 월드랭킹 20위권 선수를 한국에 초청해 대회를 열었는데 거기 출전할 자격을 얻은 거예요. 그 대회에서 3위를 하고 생각이 완전 바뀌었어요. 세계 무대로 가야겠다고. 막상 미국에 갔을 때는 너무 어려웠어요. 난 분명 잘하고 있는데 성적은 20위권에 머물러 있으니까요. 그만큼 실력이 부족했던 거죠. 최대한 빨리 적응하려고 매주 대회에 나가 쉬지 않고 공을 쳤어요. 그러다 1998년 5월 메이저대회에서 첫 승을 하게 됐고요. 신인이 한 달 뒤 또 다른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했죠. 그해 4승을 하면서 저의 선수 인생이 바뀌었어요.”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인터뷰에서 “디스 이즈 메이저?”라고 되묻던 장면이 기억나네요.
예상보다 빠른 성취에 허무함 같은 건 없었나요?


“그렇진 않았어요. 한 번 우승하고 끝날 게 아니니까. 제 목표는 명예의 전당이었거든요. 당시 다른 선수들에게 무서운 루키로 인식됐는데 7년 동안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는 포인트를 모두 따버렸어요. 투어 10년을 채워야 하는 기준이 있어 포인트를 채우고도 3년을 기다렸다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죠. 제가 하고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해냈다’는 것도 잠시, 저는 다시 제 패턴대로 살았어요. 조심스러웠거든요. 이걸 인정하면 자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돼서 아예 생각을 안 하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추는 박세리를 봤지만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무수한 인내의 시간이 있었겠죠.

“모든 기준이 골프였어요. 24시간 생활 자체가 골프로 시작해서 골프로 끝날 만큼.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준비할 것, 해야 할 것, 조심할 것을 생각하고, 다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생활하고 연습할지도 늘 염두에 뒀어요. 남들은 스트레스 풀려고 취미 생활도 하는데 저는 그조차 주어지지 않았어요. 일반적인 생활 자체가 되지 않았죠.”


정말 지독하게 운동만 했군요.
아무리 좋은 일도 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운동을 하기 싫은 날은 어떻게 했습니까?


“참았어요. 물론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죠. 그렇다고 쉬고 내일로 미루면 나태해질 것 같더라고요. 지금 와서 보면 굉장히 좋지 않은 건데 그땐 그렇게 살았어요. 결국 번아웃이 왔고 슬럼프에 빠졌죠. 내 기준에서 삶을 완벽하게 계획하고 습관화하면 슬럼프가 오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는데 의미가 없었어요. 잘할수록 더 채찍질했으니까요. 힘들고 아프면 표현했어야 하는데 미련할 정도로 참고 생활했어요. 가장 중요한 걸 빼먹은 거죠. 덕분에 지금의 박세리가 있지만 그때 내가 나에게 좀 더 유했으면 더 많은 기록도 남지 않았을까 생각은 들어요.”


일탈해본 적은요?

“한 번도 없어요. 남자친구 만난 정도?”


그게 일탈인가요? 훈련 빼고 잠수 탄 적도 없나요?

“없어요. 바보 같죠? 운동선수들이 그래요. 많은 걸 이룬 듯 보이지만 막상 남는 건 아픈 몸밖에 없어요. 운동을 많이 해서 건강할 거라 생각하는데 그것도 아니에요. 늘 부러지고 찢어지고 수술 자국은 기본이고. 관절, 연골이 닳고 닳도록 훈련하니까요. 그런 걸 생각하면 합당한 대우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은퇴하고 방송하면서 제 브랜드를 활성화하는 이유도 은퇴한 선수들이 뭐든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후배들도 자신감을 얻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살면 몸이 항상 긴장 상태 아닌가요?

“선수 생활 24년 동안 한 번도 긴장을 늦춘 적이 없어요. 하루하루 잘하기 위해 긴장하고 조심했어요. 내 위치에 있기 위해 갖춰야 할 자세 같은 거죠.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그 마음가짐은 한 번도 달라진 적이 없어요. 요즘도 똑같아요. 생활 자체는 이전과 다르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니까요. 저는 은퇴하고 사회에 첫발을 들인 사회초년생이에요. 잘 모르는 게 있어도 부끄러워하기보다 알아가는 과정이니까 배우려고 해요.”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 감독님의 말투에 자신감이 뚝뚝 묻어나면서도 한편으로 행간에 배어 있는 겸손함이 느껴집니다.

“제 행동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어요.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 심정이 어땠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저는 한 번도 제가 톱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부담도 덜 했던 것 같아요. 저 자신을 낮출수록 제가 더 편했어요. 누군가의 말에 의해 더 하고 덜 하는 기준을 두지 않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나 봐요. 부모님도 항상 잘할수록 겸손하고 행동을 조심하라고 가르치셨고요.”


타인과 경쟁보다 스스로와의 경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합니다.
골프라는 특성 때문일까요? 혹은 승부욕이 향한 방향이 다른 걸까요?


“물론 대회마다 선의의 경쟁자는 있어요. 하지만 무엇을 보느냐의 차이 같아요. 제겐 1등이란 자리가 최고의 경쟁자이지, 어떤 선수를 누른다고 해서 1등은 아니잖아요. 언론에서 누가 라이벌이라고 언급했지만 전 라이벌이 없었어요. 제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오로지 하나뿐이었죠.”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잃은 것도 있을 텐데요.

“잃은 건 생각하지 않아요. 얻은 게 있으면 잃은 것도 있는 거죠. 다 가질 순 없잖아요. 선택은 내가 한 거니까 후회도 없어요. 대회에 나가 어떤 클럽을 사용할지 결정할 때, 누군가의 말을 듣고 선택해서 실수하면 화가 두 배로 나지만 내가 선택해서 실수하면 핑계가 되지 않아요.”

〈나다움을 묻다, 박세리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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