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엔 정말 천재들만 있나요?” “출퇴근이 없다는데 사실인가요?” “사내에 미용실도 있다면서요?”

김은주 구글 UX 수석디자이너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천재는 구글 밖에도 있어요. 다만 구글은 ‘천재여도 되는, 천재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출퇴근이 없는 건 맞지만, 어디에서 일하든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합니다” “머리는 여기서 해줄 테니까 그 시간에 일하라는 이야기죠(웃음).”

그가 구글 내부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답변이고, 그 안에서 바닥을 쳐봤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진실이다. 김은주 디자이너는 2018년 구글러가 됐다. 그의 나이 마흔여섯, 열한 번째 직장이었다. 밖에서 보기에 그곳은 파라다이스였지만 그에게는 낙원이 아니었다. 입사 첫 해에 그는 스스로를 보잘것없다고 느끼며 무기력하고 불안해지는 지독한 ‘가면증후군’을 앓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한동안 내리지 못한 적도 있고, 화장실에 숨어 운 적도 있다. 세계 천재들만 모인다는 이곳에서 자신은 어림도 없어 보였다. 먹을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고, 인터넷 서핑으로 현실을 도피했다. 구글에는 미용사도 있지만 심리상담사도 있다. 그를 만난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완전히 지쳐서 몸이 기능을 유지하려고 고칼로리 음식을 찾는 거예요. 살아야 하니까요. 당신 마음도 쉴 곳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래서 인터넷을 찾는 겁니다. 당신은 지금 최선을 다해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과정이에요. 스스로에게 조금은 관대해져도 괜찮아요.”

자학과 자책을 그만두고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했다.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나니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동료들이 보였다. 그는 용기를 내어 구글 디자인 그룹 메일로 글을 보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자고 떠나왔는데, 바다에 적응하지 못한 개구리가 된 것 같아 괴로웠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우물이냐 바다냐가 아니라 행복하냐 불행하냐였다”고. 그리고 그의 글은 이렇게 마친다. “내 이름은 김은주입니다. 행복한 개구리예요!”


나는 행복한 개구리 김은주입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미국 대학원에 합격한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왔고, 그의 커리어는 열 번의 이직과 열한 번의 취업이라는 기록으로 남았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가 할 줄 아는 말은 “Excuse me, Thank you, I’m sorry”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취업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고, 영어 점수는 없었지만 직접 캠퍼스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어필했다. 부족한 등록금은 “졸업 후 성공으로 기여할 테니 장학금을 지원해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그는 당당히 장학금을 받고 디자인 명문 대학원 일리노이공대 디자인스쿨에 합격했다. 나머지 두 군데 학교에서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중요한 건, “밑져야 본전이다” “아님 말고” 정신이다. 겁내지 말고 자신의 손에 주어진 공을 자꾸 던져봐야 한다. 수많은 파울과 볼을 거쳐야 홈런도 나오는 법이니까.

“요즘도 꾸준히 대학에서 강연해요. 강연 전에 꼭 사전 질문을 받는데, 절반 이상이 ‘○○○이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이에요. ‘대학원을 가야 할까요?’ ‘유학을 가야 할까요?’ ‘너무 늦은 거 아닐까요?’…. 그만큼 무섭고 불안한 거죠. 그런데 당연해요. 한국 사회는 실수와 실패에 너그럽지 않거든요. 청년들에게 겁내지 말라고 말하기보다 겁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같이 노력해야죠.”

첫 직장은 블랙웰이라는 컨설팅 회사였다. 이후 모토로라로 이직해 3년간 일하며 레이저 폰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퀄컴으로 옮긴 그는 앱 개발 플랫폼, 증강현실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2013년 삼성전자로 이직하면서 15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세계 최초 원형 스마트워치 개발을 주도하며 ‘홈런 타자’가 됐다. 이를 계기로 ‘IDEA 디자인 브론즈상’을 받았다. 그리고 5년 뒤 그는 구글 본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실리콘밸리에 터를 잡았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제가 달라졌죠. 처음 미국에서 대학원 졸업하고 취업할 때는 고르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었어요. 취업비자도 없고 영어도 터무니없이 부족했으니까요. 어디든 비자 스폰서 해주고 월급 준다고 하면 땡큐인 상황이었죠. 2017년 12월 구글에 다니는 친구한테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가 구글 리쿠르터와 연결이 됐는데, 그때는 사뭇 달랐어요. 제가 원하는 걸 설명하고 요구했으니까요.”


시도하다 보면 가능성이 열려요


이제 직장 생활 25년 차, 그는 자신의 경험을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라는 책으로 펴냈다. 부제는 ‘25년간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일하며 배운 것들’이다.

“원래 창작은 고통 후에 꽃을 피우나 봐요. 구글로 이직해서 힘든 적응 시간을 보냈고 ‘우물 안 개구리’ 글에 위로받는 동료들을 보면서 글이 가진 힘을 새삼 깨달았죠. 마침 올해는 경력 25주년이라서 제 커리어 인생을 정리해보는 의미도 있고요.”

열한 번의 이직 기록만큼이나 그의 경험치도 다채롭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일관되다. 그가 책 메시지에 ‘생각이 많은’ ‘서른 살’을 염두에 둔 것도 그래서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시도를 안 하면 가능성 0%지만, 시도를 하면 가능성이 생긴다고요. 스스로 나의 가능성을 0%로 만들지 말라고요.”

그는 지금도 스스로 강연을 하겠다고 메일을 보내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는 먼저 손을 들고 나선다. 이런 경험은 누구보다 자신에게 공부가 된다. 그가 몸담고 있는 UX 디자인은 User Experience, 즉 사용자 경험을 다룬다. 사용자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갖는 지식·기억·행동·감정 등을 아우른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기본인 분야다.

“굳이 전문 서적을 읽지 않더라도 드라마나 예능 프로를 보는 것도 많은 공부가 돼요. 그리고 무엇보다 구글의 지적 인프라가 큰 재산이죠.”

얼마 전 휴가차 한국에 왔을 때 그는 공부 차원에서도 즐겨 보던 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기도 했다. 무려 ‘지구촌 능력자들’ 편이었다.

“사전 질문지도 없고, 그러니 리허설도 없고, 심지어 유재석·조세호 두 MC는 촬영 들어가고 인사하면서 만났어요. 〈유퀴즈〉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하고 놀랐죠.”

그가 40대 후반에 다시 바다 건너, 게다가 경쟁 치열한 실리콘밸리 구글로 이직한다고 하니 그의 친구는 물었다. “구글은 언제까지 다닐 거냐”고. 김은주 디자이너는 “구글이 재미없어질 때까지”라고 답했다. 물론 ‘아, 정말 못해먹겠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 하루하루는 지난한 협의와 미팅의 연속이고, 이런저런 타협을 하다 보면 콘셉트가 누더기 되어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니까. 하지만 풀기 어려운 문제를 푸는 희열이 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천재인지 아닌지 고민하지 않는다. 구글 만 3년 차, 그는 ‘개구리일 수 있고’ ‘개구리여도 되는’ 이곳이 여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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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구글 수석디자이너
미래의 나를 믿고 일단 저질러요
유슬기
“구글엔 정말 천재들만 있나요?” “출퇴근이 없다는데 사실인가요?” “사내에 미용실도 있다면서요?”

김은주 구글 UX 수석디자이너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천재는 구글 밖에도 있어요. 다만 구글은 ‘천재여도 되는, 천재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출퇴근이 없는 건 맞지만, 어디에서 일하든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합니다” “머리는 여기서 해줄 테니까 그 시간에 일하라는 이야기죠(웃음).”

그가 구글 내부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답변이고, 그 안에서 바닥을 쳐봤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진실이다. 김은주 디자이너는 2018년 구글러가 됐다. 그의 나이 마흔여섯, 열한 번째 직장이었다. 밖에서 보기에 그곳은 파라다이스였지만 그에게는 낙원이 아니었다. 입사 첫 해에 그는 스스로를 보잘것없다고 느끼며 무기력하고 불안해지는 지독한 ‘가면증후군’을 앓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한동안 내리지 못한 적도 있고, 화장실에 숨어 운 적도 있다. 세계 천재들만 모인다는 이곳에서 자신은 어림도 없어 보였다. 먹을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고, 인터넷 서핑으로 현실을 도피했다. 구글에는 미용사도 있지만 심리상담사도 있다. 그를 만난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완전히 지쳐서 몸이 기능을 유지하려고 고칼로리 음식을 찾는 거예요. 살아야 하니까요. 당신 마음도 쉴 곳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래서 인터넷을 찾는 겁니다. 당신은 지금 최선을 다해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과정이에요. 스스로에게 조금은 관대해져도 괜찮아요.”

자학과 자책을 그만두고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했다.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나니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동료들이 보였다. 그는 용기를 내어 구글 디자인 그룹 메일로 글을 보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자고 떠나왔는데, 바다에 적응하지 못한 개구리가 된 것 같아 괴로웠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우물이냐 바다냐가 아니라 행복하냐 불행하냐였다”고. 그리고 그의 글은 이렇게 마친다. “내 이름은 김은주입니다. 행복한 개구리예요!”


나는 행복한 개구리 김은주입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미국 대학원에 합격한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왔고, 그의 커리어는 열 번의 이직과 열한 번의 취업이라는 기록으로 남았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가 할 줄 아는 말은 “Excuse me, Thank you, I’m sorry”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취업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고, 영어 점수는 없었지만 직접 캠퍼스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어필했다. 부족한 등록금은 “졸업 후 성공으로 기여할 테니 장학금을 지원해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그는 당당히 장학금을 받고 디자인 명문 대학원 일리노이공대 디자인스쿨에 합격했다. 나머지 두 군데 학교에서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중요한 건, “밑져야 본전이다” “아님 말고” 정신이다. 겁내지 말고 자신의 손에 주어진 공을 자꾸 던져봐야 한다. 수많은 파울과 볼을 거쳐야 홈런도 나오는 법이니까.

“요즘도 꾸준히 대학에서 강연해요. 강연 전에 꼭 사전 질문을 받는데, 절반 이상이 ‘○○○이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이에요. ‘대학원을 가야 할까요?’ ‘유학을 가야 할까요?’ ‘너무 늦은 거 아닐까요?’…. 그만큼 무섭고 불안한 거죠. 그런데 당연해요. 한국 사회는 실수와 실패에 너그럽지 않거든요. 청년들에게 겁내지 말라고 말하기보다 겁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같이 노력해야죠.”

첫 직장은 블랙웰이라는 컨설팅 회사였다. 이후 모토로라로 이직해 3년간 일하며 레이저 폰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퀄컴으로 옮긴 그는 앱 개발 플랫폼, 증강현실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2013년 삼성전자로 이직하면서 15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세계 최초 원형 스마트워치 개발을 주도하며 ‘홈런 타자’가 됐다. 이를 계기로 ‘IDEA 디자인 브론즈상’을 받았다. 그리고 5년 뒤 그는 구글 본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실리콘밸리에 터를 잡았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제가 달라졌죠. 처음 미국에서 대학원 졸업하고 취업할 때는 고르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었어요. 취업비자도 없고 영어도 터무니없이 부족했으니까요. 어디든 비자 스폰서 해주고 월급 준다고 하면 땡큐인 상황이었죠. 2017년 12월 구글에 다니는 친구한테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가 구글 리쿠르터와 연결이 됐는데, 그때는 사뭇 달랐어요. 제가 원하는 걸 설명하고 요구했으니까요.”


시도하다 보면 가능성이 열려요


이제 직장 생활 25년 차, 그는 자신의 경험을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라는 책으로 펴냈다. 부제는 ‘25년간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일하며 배운 것들’이다.

“원래 창작은 고통 후에 꽃을 피우나 봐요. 구글로 이직해서 힘든 적응 시간을 보냈고 ‘우물 안 개구리’ 글에 위로받는 동료들을 보면서 글이 가진 힘을 새삼 깨달았죠. 마침 올해는 경력 25주년이라서 제 커리어 인생을 정리해보는 의미도 있고요.”

열한 번의 이직 기록만큼이나 그의 경험치도 다채롭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일관되다. 그가 책 메시지에 ‘생각이 많은’ ‘서른 살’을 염두에 둔 것도 그래서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시도를 안 하면 가능성 0%지만, 시도를 하면 가능성이 생긴다고요. 스스로 나의 가능성을 0%로 만들지 말라고요.”

그는 지금도 스스로 강연을 하겠다고 메일을 보내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는 먼저 손을 들고 나선다. 이런 경험은 누구보다 자신에게 공부가 된다. 그가 몸담고 있는 UX 디자인은 User Experience, 즉 사용자 경험을 다룬다. 사용자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갖는 지식·기억·행동·감정 등을 아우른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기본인 분야다.

“굳이 전문 서적을 읽지 않더라도 드라마나 예능 프로를 보는 것도 많은 공부가 돼요. 그리고 무엇보다 구글의 지적 인프라가 큰 재산이죠.”

얼마 전 휴가차 한국에 왔을 때 그는 공부 차원에서도 즐겨 보던 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기도 했다. 무려 ‘지구촌 능력자들’ 편이었다.

“사전 질문지도 없고, 그러니 리허설도 없고, 심지어 유재석·조세호 두 MC는 촬영 들어가고 인사하면서 만났어요. 〈유퀴즈〉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하고 놀랐죠.”

그가 40대 후반에 다시 바다 건너, 게다가 경쟁 치열한 실리콘밸리 구글로 이직한다고 하니 그의 친구는 물었다. “구글은 언제까지 다닐 거냐”고. 김은주 디자이너는 “구글이 재미없어질 때까지”라고 답했다. 물론 ‘아, 정말 못해먹겠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 하루하루는 지난한 협의와 미팅의 연속이고, 이런저런 타협을 하다 보면 콘셉트가 누더기 되어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니까. 하지만 풀기 어려운 문제를 푸는 희열이 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천재인지 아닌지 고민하지 않는다. 구글 만 3년 차, 그는 ‘개구리일 수 있고’ ‘개구리여도 되는’ 이곳이 여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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