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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게인> 30호 이승윤의 형, '천재 유튜버' 이승국

'틀에 박히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이재철 목사의 교육법

유슬기 기자 |  2021.03.19

주님의교회와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선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고 기독출판사 홍성사를 설립하기도 한 이재철 목사, 그는 현재 은퇴 후 거창으로 귀향해 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 그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다

그 중 셋째가 <싱어게인> 30호 가수 이승윤이다. 그의 틀에 갇히지 않은영혼에 감명받은 이들은, 그가 어떤 토양에서 자라 그토록 자유로우나 비뚤어지지 않은 성정을 갇게 됐는지 궁금하다. 그가 어떤 음악을 해왔는지 찾아보고,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찾다가 다다르게 되는 곳은 그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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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이승국'이라는 유튜버로 활동하는 그는, 드웨인 존슨과의 인터뷰로 화제가 됐다, 유튜브

 

드웨인 존슨에게 감동 준, 이승국의 영화 인터뷰  

그의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뜻밖에 반가운 인물을 만난다. 자신을 천재 이승국이라 부르고, 또 그렇게 불리는 유튜버 이승국이다. 유튜버로 활동하던 그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올레TV 등과 함께 영화 인터뷰를 진행했고, 현지인 못지 않게 영어 실력이 유창할 뿐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매너도 겸비한 그의 영상은 화제가 됐다. 그가 헐리우드 배우인 드웨인 존슨과 하와이에서 나눈 5분 남짓한 인터뷰는 2019년에 진행된 만남임에도 현재까지 인기영상으로 600만명이 넘는 이들이 시청했다.

<분노의 질주> 개봉을 앞두고 그에게 할당된 시간은 단 5, 그는 단 세가지 질문을 준비했다. 첫 번째는 나는 어릴 적 영웅이었던 당신을 만나 자랑스럽다. 그런데 당신도 스스로 자랑스러울 것 같다. 이곳 하와이에서 사모아 문화를 전하는 영화를 만들고 개봉할 수 있어서라고 했다.

드웨인 존슨은 프로레슬링 선수이자 영화배우다. 사모안의 혈통에서 태어났는데, 외조부와 아버지가 모두 레슬러 선수였다. 사모아섬은 남태평양에 있고, 이들은 남다른 골격으로 전투민족으로 불렸다. 그의 이런 배경은, 헐리우드라는 거대한 영화 산업에 가려져 있었다. 실제로 그는 2013년부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제치고 흥행순위 1위 배우에 등극하기도 했다.

전 세계 숱한 매체와 인터뷰를 나누었을 드웨인 존슨은 이승국의 질문에 이런 좋은 질문을 던져 주어서 고맙다며 감사를 표했다. 영화 뿐 아니라 사모안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두 번째로 이승국은 <분노의 질주>에서 보여준 히어로 그 이상의 액션에 대해서 세 번째로 그를 이렇게 움직이게 만드는 동기에 대해서 물었다.

현실에 없는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액션에 공을 들인 드웨인은 누구보다 성심성의껏 자신의 영화의 액션을 설명했고, 이렇게 온 몸을 던져 영화를 만드는 동기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사람들을 꼽았다. 이승국에게는 어려서부터 레슬링에서 본 그 선수를 하와이에서 직접 인터뷰한다는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겠지만, 드웨인 존슨에게도 못지 않은 뜻깊은 순간이었다. 그는 인터뷰의 모든 순간을 영상으로 담았고, 이승국에게 진심으로,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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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국X이승윤, 판에 박히지 않은 질문은 던진다는 공통점   

인터뷰란,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을 이야기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걸 그의 영상을 보며 또 한 번 배웠다. 이승국의 질문은 상대방을 감동하게 하고, 이승윤의 노래는 보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둘이 만드는 컨텐츠의 공통점은 판에 박히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절대로 무례하거나, 무리수를 던지지도 않는다. 이들의 반듯한 적정선은 새삼스럽게 진귀하다.

아버지 이재철의 청춘을 돌아보면, 그도 처음부터 목회자는 아니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지만 믿음은 없었다고 한다. 5남매 중 막내였는데 그의 누이 중 한 명이 탤런트 고은아다. 한국외대 프랑스어과를 졸업한 뒤 1974년 홍성통상주식회사를 열어 경영인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나, 이후 회사와 삶에 위기가 닥쳐 이를 계기로 회심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1985년 장신대 신대원에 입학해 신학공부와 목회 수련을 거쳐 1988년 주님의 교회를 개척한다. 그 때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뒤늦게 신대원에 입학할 즈음 둘째 이승국이, 교회를 개척할 즈음 셋째 이승윤이 태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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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철 목사, 조선DB

 

아들을 넷이나 키운다는 건, 이들이 별 탈 없이 건강히 또 무사히 자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품이 드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재철 목사의 가족은 개척 초기 약속대로 10년의 임기 후 사임한 뒤 자원해 총회 파송 선교사로 떠나 스위스 제네바한인교회에서 3년간 섬겼다. 2001년 귀국 후 집필에 전념했는데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의 요청으로 2005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 기념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네 아들을 키우며 그가 강조한 건 바름이다. 그의 책 <아들에게 배우는 아빠>를 보면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가 나를 가르쳤다. 아이들은 나를 비추는 맑은 거울이었다. 그 거울에 비추며 나 자신을 바르게 추스를 수 있었다. 이 귀한 스승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는 필경 내가 아닐 것이다라는 부분이 있다.

 

이승국, 옥스퍼드 제안 거절하고 컴백홈  

둘째 이승국의 경우 어릴적 부터 언어에 소질이 있었다. 그가 어릴 때 영국에서 장학금을 주며 공부를 시키고 옥스퍼드도 보내주겠다는 제안이 왔다. 하지만 이재철 목사 부부는 1년간의 연수 기간이 끝난 뒤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이들이 부모 밑에서 성년까지 사랑을 받으며 자라 인격과 인성을 가진 아이로 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세속적인 성공의 빠른 길보다, 원칙 속의 바른 길을 택했고 아들들은 잘 따라 주었다.

큰 아들 이승훈은 현재 대기업 퇴직 후 변호사로 재직중이다. 막내 이승주는 예술로 유명한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미술 공부 중이다. 이재철 목사는 아이들의 성장기에 한 번도 목사의 아들이니 잘 처신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본인답게 살라 가르쳤다. 다만 성품과 인격, 예의를 강조했다. 실수는 해도 되지만, 무례히 행하는 건 안됐다. 이를 위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 모두 함께 했는데 매주 금요일 저녁은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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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국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출판사인 홍성사에서 책을 내기도 했다. 2009년 스물 네 살이던 그가 영국으로 건너가 한 달동안 이영표 선수와 함께 지내며 쓴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 당시에도 꿈을 찾는 게 꿈이었던 이 청년은 현재도 다방면으로 촉수를 뻗으며 꿈을 찾고, 또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의 유튜브에서 다루는 콘텐츠는 그야말로 장르가 없다. 딱 떠오르는 장르가 없어 '장르가 된' 30호의 음악을 보는 듯 하다. 그의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 사 이제는 소속사도 생겼다. 공교롭게도 Jtbc studio다. 각자의 분투로 Jtbc의 아들(?)이 된 그야말로 용감한 형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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