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진이라는 경우의 수

그는 예능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뜻밖에 좋은 패다

유슬기 기자 |  2020.12.17

경수진이라는 배우는 지명도 1순위를 달리는 배우는 아니다. 주연과 조연 그 사이 어디쯔음에 그의 위치가 있다. 하지만 그가 등장했을 때,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는 자신을 선택한 이들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지난 주 첫방송된 허쉬>를 보며 그 생각은 확신이 됐다. 단 2회 등장만으로 그는 드라마의 스모킹건(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단서)이 됐다.


늘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배우

경수진이 맡은 역할은 최고령 인턴 기자이자 지방대 출신 흙수저의 슬픔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최고점을 받지만 출신 학교의 이름이 다른 이들과 달라 정규직의 땅을 밟지 못한다. 이런 현실을 자신의 몸을 던져 고발한다. 그의 투신은 한 편의 기사였고, 경수진이 야간당직 후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울먹이며 창 밖을 보는 장면은 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한 편의 스토리였다.


드라마 , jtbc


경수진은 처음 손예진을 닮은 배우로 각인 됐다. 실제로 그는 드라마 상어>에서 손예진의 아역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손예진과 닮은 건 외모뿐, 그의 후광에 가리기엔 감춰진 패가 많다. 이 진가를 처음 알린 건 혼자 산다>를 통해서 였다. 첫 등장부터 ‘경반장’이라는 심상치 않은 별칭을 공개한 그는 사다리를 쓱 타고 올라가 드릴을 슥 박고 내려오는 걸크러쉬를 연출했다. 방송을 위한 설정이라기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고, 그의 지인들은 이미 그의 숙련된 정비 실력을 익숙하게 알고 있었다.

나 혼자 산다>에 자신의 일상을 일회성으로 공개하고 사라지는 임시 회원들 중 하나일 줄 알았던 그는 이후 무지개 운동회, 무지개 패션쇼 등에 등장하며 든든한 회원이 됐다. 특히 운동회에서 선보인 요리 실력이나 패션쇼에서 보여준 워킹 실력은 거듭 그를 다시 보게 했다. 늘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거나,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게 경수진이라는 카드였다.


경반장의 진가를 알린 의 행운

요리를 하기엔 좁은 원룸의 주방, 패션 모델로 서기엔 왜소한 체구와 키는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듯 자신의 장애물은 가뿐히 뛰어 넘었다. 패션쇼에 성큼성큼 걸어나오는 그의 시원시원한 걸음걸이는 보는 이들의 마음도 시원하게 만들었다. 막걸리를 담그겠다고 산에 올라 약수를 떠서 물 한 통을 지고 내려오는 모습이나,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땀에 절은 옷을 입고도 꿋꿋이 오르막길을 걸어 오르는 모습 등은 그의 근성을 보여주었다.


나혼자산다, MBC


이를 그의 반전매력이라 보긴 어렵다. 그를 손예진 닮은 꼴, 청순가련 배우라는 틀을 지운 건 그 자신이 아니라 대중일 뿐이었으니까. 그는 담담히 자기의 진가를 스스로 증명했다. 물론 그에게 관찰예능이라는 기회가 왔고, 그 기회가 아무에게나 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자기 편으로 만드는 건 본인 몫이다. 그가 평소에 자신의 삶을 알차게 꾸려오지 않았다면 스스로 만든 정원과 스스로 담근 매실청, 스스로 만든 캠핑카 등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배우의 흥망성쇠는 데뷔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작품을 만나 어떤 배역을 맡느냐에 따라 갈릴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중 소수는 꾸준한 작품으로, 그렇게 롱런하다 만나게 되는 우연한 기회로 자신의 진가를 증명한다. 경수진은 후자다. 처음엔 누군가의 닮은 꼴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다른 누구의 무엇도 아닌 경수진 세글자로 자신을 증명했다.

그는 여전히 작은 집에 살고, 작은 차를 탄다. 이렇게 드라마와 CF가 늘어나면 그도 어느새는 연예인 같은 집에 연예인 같은 차를 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배우란 30대 여성의 하나의 직업일 뿐이며, 현재의 행복을 미루지 않기 위해 온힘을 다해 노력하는 경수진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답다. 숱한 별들이 뜨고 지는 이 업계에서 그는 새삼 흥미롭게 빛나는 경우의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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