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이 만들 수 있는 풍경, <싱어게인>

탈락한 무대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유슬기 기자 |  2020.12.16

2009년 슈퍼스타 K>가 등장한지 10년이 넘었다. 트로트 신드롬까지 이어져 각 채널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립하는 중에도 참가자는 매년 늘어나고, 슈퍼루키는 등장한다. 대한민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이다지도 많았던가. 매번 놀라고, 매번 감동한다.


얼굴이 사라진, 이름이 잊혀진 슈가맨들

싱 어게인>은 결이 조금 다르다. 노래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다시 말해 노래로 유명해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얼굴 없는 가수’가 아니라 얼굴이 사라진 가수, ‘이름 없는 가수’가 아니라 이름이 잊혀진 가수들이 그저 번호표 하나 달고 나와 오직 노래로만 정면 승부를 펼친다.

싱 어게인> 제작진은 앞서 슈가맨>을 제작한 바 있다. 한 때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가수를 찾아내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제목은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서 차용했다. 2012년 제작된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는 미국에서는 고작 음반이 6장 팔린 로드리게스의 음악이 남아공에서 흘러 들어가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억압받던 민중들에게 희망의 노래이자 국민가요가 되어 주었다. 남아공 국민들에게 그의 노래는 달콤한 마법이었다.

싱 어게인>은 국소적인 의미의 슈가맨 찾기 프로젝트다. 한 시대를 풍미하지도, 세상을 뒤흔들지도 않았지만 누군가의 인생에는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그 숱한 무명씨들을 찾는다. 그래서 이들이 무대에 올라 자신의 노래를 부를 때 우리는 ‘앗!’하고 만다. 맞아, 이런 노래가 있었지. 맞아, 이런 목소리가 있었지 하는 반가운 기시감이다.


가수가 되기도 어렵지만, 유명한 가수가 되기는 더 어렵다

지난 10년 동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학습한 바는, 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후의 1인이 되기도 어렵지만, 그 1인이 톱가수가 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오디션 프로그램은 점점 더 촘촘해진다. 먼저 1라운드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독보적인 가수인지를 증명해야 하고, 2라운드와 3라운드에서는 그 독보성을 기초로 타장르를 넘어 타인과도 얼마나 조화로울 수 있는지 그 유연성과 잠재력도 증명해야 한다. 요컨대 독보적이면서도 조화로워야 하고, 조화로우면서도 독보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원자들의 간절함과 실력은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야 만다.

싱 어게인>은 무명 가수들의 무대다. 이미 자신의 대표곡 한 곡은 있는 이들이 그럼에도 달콤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온 슈가맨들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선다. 다음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르는 심사위원들은 이들과 동시대를 혹은 이후 시대를 풍미한 뮤지션들이다.

싱 어게인>의 최고령 참가자였던 45호 가수는 ‘김창완과 꾸러기들’로 활동했던 꾸러기 중 한 명이었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활동했던 포크 가수 그룹이다. 꾸러기 중에는 가수 최성수도 있었다. 지금 그의 무대를 심사하는 심사위원 중에는 그의 활동기에 태어나지 않은 이도 있다. 하지만 그는 담담히 노래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무대에 부른 노래는 2NE1의 ‘어글리’였다.


음악만이 가능한, 어떤 풍경들

밝게 웃어보지만 내 맘에 들지 않아 / 난 예쁘지 않아 아름답지 않아 / 노랠 불러 보지만 아무도 듣지 않아 /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다는 45호 가수의 사연과 겹쳐져 노래는 그야말로 심금을 울렸다. 늘 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부르던 그는 2010년대의 노래의 템포를 놓치는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그의 동료였던 1호 가수벤티는 차분히 그의 템포를 찾아주었고 두 사람은 나란히 한 곡의 노래를 완주했다.


1호 가수 벤티와 함께한 노래 어글리

그리고 두 사람은 나란히 탈락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실수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고, 유희열의 말대로 “음악만이 가능한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싱 어게인>의 목표는 어쩌면 우승이 아니다. ‘다시 노래할 수 있는’, 그 하나다. 이 무대로 우리는 윤설하라는 이름의 가수를 다시 기억한다. 누구나 마음 속에 슈가맨 한 명 쯤은 있다. 그는 2020년에 찾아온 슈가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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