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10대 트로트 소년의 이야기

천하무적 정동원

류버들 온라인팀 기자 |  2020.09.17

아야 뛰지 마라 /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미스터트롯> 본심이 있던 날, 13세 소년의 노래 <보릿고개>, 원곡자이자 마스터인 진성은 눈물을 훔쳤다. 그가 딱 저만한 소년기에 겪었던 일을 담은 노래라 했다. 눈을 감은 3분의 시간 동안 그는 심사도 잊고 그 시절로 돌아갔다. 아이는 겪어보지 않은 세월의 노래를 어떻게 흉금에서 길어 올려 부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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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트롯, TV조선

 

하동이 보듬고 할아버지가 키워낸, 작은 거인

 저희 할아버지가 지금 폐암으로 투병 중이신데, 할아버지 힘내시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경상남도 하동에서 온 정동원 군은 이 말을 다 마무리 하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보릿고개> 역시 할아버지에게 배웠다. 보릿고개 때 먹던 초근목피가 풀 뿌리와 나뭇가지 껍질이라는 것도 할아버지가 알려주었다. 동원의 소원은 어떤 암이든 이길 수 있다는 소문을 들은 1억 짜리 주사를 할아버지께 맞게 해드리는 일. 이를 위해 동원은 12살 이후부터 이 고장, 저 고장의 크고 작은 잔치며 축제에 초대 가수로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오르면 그를 소개하는 말은 안녕하십니까. 하동에서 트로트 신동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동원입니다였다. 그가 신동임을 알아본 건 3살 때부터 그를 품안에서 기른 조부모였다. 할아버지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손자가 안쓰러워 노래도 들려주고, 악기도 가르쳐주었다. 결국 노래의 가락이 그를 자기만의 방에서 꺼내 주었다. 낯가림도 많고 내성적이던 동원은 무대에 서면 다른 사람이 됐다. 뽀글뽀글한 베이비펌을 한 머리로 <전국노래자랑> 함양편에 출연해 우수상을 받은 게 정동원 세 글자를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됐다. 당시 그가 부른 노래도 <보릿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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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원은 예선과 본심을 거쳐 최연소 출연자로 <미스터 트롯> ‘TOP 7’에 올랐다. 경연 중에 그가 미성년이라, 최연소라 적당히 관대한 평가를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런 계급장(?) 없이도 그는 현역, 성인 가수들과 자웅을 겨루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경쟁자를 능가했다. 순간적인 집중력, 무대에 대한 완벽주의, 그럼에도 음악을 대하는 순수함은 그의 무대를 다른 환희로 이끌었다. 보통 신동의 무대가 재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소년의 무대에는 숭고함이 있었다. ‘트롯 에이드패밀리가 떴다팀의 마지막 무대에서 핀 조명 아래 정동원이 부른 <희망가>는 대표적이다. '이 풍진 세상을..' 세 단어로 보는 이들은 흐느꼈다. 담담해서 더 슬픈 가락은 긴 잔상을 남겼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트롯 에이드 경연을 준비하던 중, 정동원의 가장 오랜 벗이자 큰 아름드리 나무였던 그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도 손자의 무대를 보면 통증을 잊는다던, 눈웃음이 손자와 꼭 닮은 할아버지는 정동원이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려 힘찬 날개를 펼치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장례식장에서 소년은 통곡하거나 흐트러지지 않고,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장손의 자리를 지켰다. 생전에도, 할아버지가 행여 신경 쓸까봐 할아버지 앞에서는 더 까불던 속깊은 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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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콜센타, TV조선

 

정동원은 이제 신동이 아닌 완성형 트롯 가수가 됐고, <미스터 트롯>을 통해 형제같은 삼촌과 형들을 얻었다. 정동원이 있어서 <미스터 트롯><사랑의 콜센타>의 외연은 더 폭넓어 졌고, 경연이 끝나자 거기에는 키는 한 뼘 더 자라고, 노래는 한층 더 깊어진 정동원이 서 있었다.

그의 유명세에 KBS에서는 <인간극장>-토로트 소년 정동원- 편을 재편성했다. 거기에는 하동의 외딴집에서 조부모의 사랑을 담뿍 받으며, 층간소음 따위 신경쓰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정통 가요를 듣고 부른 지금보다 훨씬 햇빛에 그을리고 개구진 어린 동원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3일 밤낮으로 손수 망치질해 지은 정동원 음악실에서 그는 독학으로 색소폰을 배웠고, 악보보는 법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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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함께 출연한 <인간극장>, KBS

 

전국민에게 효도하는, 희망백신

 누군가는 신동이라, 누군가는 천재라 부르며, 현재는 삐약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미스터 트롯>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 햄버거 송을 불러도 구성지고, 아이돌 노래를 불러도 찰떡인 국민 손자. 그의 진가를 보여주는 건 역시 트로트인데 무대 안팎을 종횡무진 누비는 그에게는 소년의 청량함이, 무대 위에 오른 그에게는 현자의 속깊음이 느껴진다. 안에 노인 한 분이 들어앉아 계신 느낌이다.

 그건 아마 그의 음악 인생을 함께한, 그가 그의 할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에게 1억 짜리 주사는 놓아드리지 못했지만, 이제 그는 전 국민의 마음에 희망백신을 놓는 존재가 됐다. 보석같은 손자를 살뜰히 키워낸 촌부의 정성에, 전국민이 효도받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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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와우굿   ( 2020-09-19 )    수정   삭제 찬성 : 4 반대 : 0
글이 너무 따뜻하고 시선이 좋네요 감사합니다.. 건승하세요
  이미영   ( 2020-09-19 )    수정   삭제 찬성 : 5 반대 : 0
너무 따뜻하게 느껴지는 말들입니다. 읽는 내내 제 마음과 같이 글을 써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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