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봄밤>, 당신은 설레였나요?

한지민X정해인 마법으로 풀 수 없는 봄밤의 구석구석

유슬기 기자 |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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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수목드라마, <봄밤>

 

 안판석 감독의 작품은 서늘한 구석이 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 사랑을 둘러싼 사회의 구조와 편견, 부조리와 부주의도 함께 드러낸다. 주인공은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는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처지의 두 사람이 빠지게 되는 사랑의 낙차는 곧 계급의 문제이자 신분의 문제, 관념의 문제 같은 것을 드러내는 일종의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칼날이 가장 벼려져 있던 게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였다. ‘제왕적 권력을 누리며 부와 혈통의 세습을 꿈꾸는 대한민국 초일류 상류층의 속물의식을 통렬한 풍자로 꼬집는 블랙코미디였던 이 드라마는 로펌의 대표인 한정호(유준상)의 아들(이준)과 재개발로 하층민으로 전락한 서형식(장현성)의 딸(고아성)이 그만 영어 토론 캠프에서 한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면서 아이를 갖게 되는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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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낙차로 드러나는, 계급과 속물근성  

  논리를 앞세우지만, 로열패밀리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의 절망은 고아성과 그의 가족에 대한 무례로 이어진다. 이어갈 수 없다면, 만들겠다는 이들의 욕망은 아들과 며느리를 동시에 로스쿨에 입학시키려는 계획으로, 며느리를 새로운 인류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계략으로 바뀐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의 사랑은, 그들을 둘러싼 시대를 비추는 맥거핀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밀회><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으로 이어지는 안판석 감독의 드라마는, 이제 더 이상 사랑이 장치로 쓰이지 않는다. 점점 더 사랑과 멜로에 방점이 찍힌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며 달려온 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김희애)이 천재이자 가난한 피아니스트인 이선재(유아인)를 만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 사랑에 몸을 던지는 <밀회>는 계급도, 신분차이도 산화시키는 사랑의 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여기에 알콩달콩한 케미와 눈부신 영상미가 더해졌다. 친구의 누나였던 윤진아(손예진)와 동생의 친구였던 서준희(정해인)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흔하기에 현실적인 동시에, 비현실적으로 설레는 구석이 있었다. 여기에는 정해인이라는 슈퍼 루키가 가져다 준 청량한 에너지가 한 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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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정해인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이들의 사랑과 함께 병행구조로 펼쳐졌던 #한국 #직장내 #성희롱 문제와 여전히 시집 잘 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여기는 속물 엄마의 존재는 진아의 성장기안에 수렴됐다. 윤진아는 사랑을 통해 성장했고, 성장한 그의 자아는 성숙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헤쳐 나갔다.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것 안에는, 진아의 성장과 성숙이 포함되어 있었다.

<봄밤>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여전히 둘 사이에는 아이 딸린 미혼부라는 꼬리표와, ‘오래 사귄 연인'과의 신의의 문제, 집안의 재력과 명예로 자식의 앞날을 좌지우지하려는 가부장적인 세력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들의 사랑이 봄밤처럼 뿌옇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부터가 매끄럽지 않다. 병뚜껑을 따주는 약사의 배려는 흔하지 않지만, 사랑에 빠질 정도는 아니다. 술에 취해 늦잠을 자 씻지도 못하고 나온 여자가 머리를 질끈 묶고 숙취 음료를 마시는 모습에 사랑에 빠졌다는 설정은, ‘한지민이 아니고는 납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고 하자. 그 다음 두 사람의 태도는, 둘 사이만 간지러울뿐 공감하기가 어려운 구석이 많다. 먼저 여자는, 오랜 연인에게 자꾸 트집을 잡아 짜증을 내고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남자의 부주의한 태도가 오랫동안 문제가 되었다면, 여기에는 그런 '뉘앙스'가 아니라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건 속으로 다른 사람을 품고, 상대를 애꿎은 방식으로 긴장하게 만드는 여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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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게 예쁘고 똑부러지는 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  

내 인생, 내 결혼은 내 뜻대로 하겠다고 외치는 이정인은 자기 입으로나 남들의 입으로 눈에 띄고 예쁘고, 똑 부러진다고 하는데, 그건 말로 설명할 일이 아니라 드라마로 납득시켜야 할 부분이다. 정작 자신의 동생(주민경)이 아직 직업이 없는 공시생과 친구가 되었다고 하자 이를 못마땅히 여기는 모습이나, 자유분방한 동생의 처신을 지적하며 내 입장, 혹은 내 남자친구의 입장에 누끼치지 말라고 을러대는 정인은 이 세계 안에서 얼마나 진일보한 인물인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한지민과 정해인은 군중 속에 눈에 띄는 인물이다. 그 때문에 둘이 사랑에 빠지고 흔들리는 내용이라면 이전 작품에서 작가와 감독이 보여준 입체적인 세계관과 날카로운 시점은 한 발짝 뒷걸음질 친 게 아닐까. 무더운 초여름에 초봄의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뭔가 착오로 보일 정도다. 그저 설레라고, 올 해 내리는 마지막 눈이라고, 봄밤의 감수성을 강요하기엔 뭔가 아쉽다. 미세먼지 낀 봄의 저녁처럼 답답한 구석이 있는 공기에 눈살을 찌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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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윤애경   ( 2019-07-01 ) 찬성 : 0 반대 : 0
안판석 작품이 아닌듯. '봄밤'은 개연성이
 너무 떨어져서 배우들이 아깝더군요.실망!
  소소   ( 2019-06-15 ) 찬성 : 1 반대 : 0
너무 공감갑니다 감사합니다
20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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