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김종관 감독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순간

글 : 서경리 기자  / 사진제공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청춘은 한없이 아름답지만 초라하며, 가득 찼지만 쓸쓸하고 공허하다. 사랑하고 아파하고 이별하고 성장하는 모든 순간이 그러하듯, 영화 〈조제〉가 그리는 청춘은 아름답고도 아프다. 김종관 감독이 연출을 맡은 클래식 멜로 〈조제〉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과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예전 영화를 그대로 가져가는 건 창작자와 배우 입장에서 의미가 없다. 그 안에서 영화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김 감독의 말처럼 원작과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청춘이라는 아름다운 삶의 순간에서 아파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멜로를 따르지만 통속적인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주인공 조제(한지민 분)와 영석(남주혁 분)이 그려낸 사랑에는 사람이 사람으로 향하는 시선이 더 진하게 묻어 있다.

영화는 철저히 지금의 대한민국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청춘의 모습을 담고 있다. 고시원과 헌책방, 고물상 같은 공간은 물론 지방대생, 가난과 취업, 장애인 복지 등 지금 한국이 마주한 불우한 단면들이다. 그 안에서 배우들은 저마다 청춘의 단상을 만들어가며 분투한다.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으로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은 김종관 감독은 〈최악의 하루〉(2016), 〈더 테이블〉(2016)을 지나 〈페르소나-밤을 걷다〉(2018), 〈아무도 없는 곳〉(2019), 〈달이 지는 밤〉(2020) 등에서 삶의 빛과 그림자를 그려왔다. 찰나의 순간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이야기의 층위를 쌓아온 그다. 〈조제〉 또한 김종관 감독이 걸어온 길에서 보자면 낯설지 않다.



원작과의 비교는 숙명처럼 안고 가야 할, 또 풀어야 할 숙제예요.

“20대에 그 영화를 봤어요. 청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개인적인 추억과 맞물려서 잊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원작 이전에 원작이 가진 메시지를 좋아해요. 우리 영화에는 감독인 저와 배우는 물론, 한국의 현재라는 개성이 담겨 있죠. 배우들 각자의 성격이나 외모, 질감에서 보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영화 〈조제〉와 원작의 가장 큰 차이라면, 조제와 영석의 연애 과정이 좀 더 길고 농밀하게 그려졌다는 점이다. 반면 이별의 순간은 짧고 가볍다. 또 원작이 20대 또래의 연애를 다뤘다면, 김 감독은 조제라는 인물에 30대 중반의 나이를 입혔다. 둘만의 연애 방식도 원작과 다르다.

“대한민국의 현재를 배경으로 어떤 것이 지금 이야기에 맞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원작에서는 남녀가 서로 연민하고 사랑하면서 스스로의 이기심으로 줄타기하고, 변화하고 흔들리고 헤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있어요. 원작이 이별에 초점을 맞췄다면 우리 영화는 사랑의 과정이 길고 이별이 함축적이에요.”


관객 입장에서는 왜 이별했나,
짐작해볼 수 있겠지만 영화는 설명해주지 않죠.


“이별에는 ‘왜’라는 말이 있을 수 없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이별에 ‘왜’가 있지만 또 ‘왜’가 없기도 하죠. 사랑의 기억이나 과정 속에,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맡기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과정. 인물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어떤 것인지, 사람을 감싸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식의 인간적인 감정들을 들여다보면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는 클래식한 멜로를 보여줘요.
비대면이 일상화된 이 시기에 오히려 더 필요한 정서라고 보이는데요.


“멜로라는 장르에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있어요. 그 안에 통속성이 있지만, 누가 밉고 싫고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시선을 얻는 거죠. 사람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과정, 그게 이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조제의 집으로 가는 거리, 유원지, 헌책방 등 쓸쓸한 공간이 많이 나옵니다.
폐쇄적인 삶을 사는 조제의 취향이 담긴 공간은 꽉 찼지만 공허하죠.


“영화는 공간과 인물이 전부입니다. 인물이 드라마를 만들어주는 것이고요. 저는 공간을 다루면서 많은 매력을 느껴요. 이전 영화에서는 주로 아는 공간을 담았는데, 이번엔 모처럼 살던 동네를 떠났어요. 그래서 낯설지만 익숙한 세계, 추억을 만나는 영화 같아요. 관객들이 영화 속 공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겠어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공간으로요. 버려진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 바로 조제입니다.”


감독님에게 조제는 어떤 인물로 다가왔나요.

“조제는 원래 스스로를 아끼지 못해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게 되죠. 영석 또한 자신을 모르던 사람이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둘은 선택의 기로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선한 선택을 합니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시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울 수 있는 시간들을 지내죠. 저 또한 방황하지만 아름다울 수 있는 시기를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웃음).”



영화에서 조제의 취향도 눈여겨볼 만했어요.
위스키병을 모으는 장면 같은.


“조제는 요리는 대충하지만, 술에 대한 취향이 분명한 캐릭터죠. (한지민 배우에게) 조제가 폐쇄적인 삶을 오래 살았지만, 취향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취향이 있는 사람은 덜 불행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조제에게 심은 취향이 제가 가장 잘 아는 코드인 위스키였어요. 할머니가 폐기물을 모아 오니까 빈 위스키병으로 취향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후반부에 나오는 스코틀랜드와도 잘 맞아떨어지고요.”


조제와 감독님이 닮은 구석이 있군요.

“의도하지 않아도 닮는 부분이 있어요. 제 취향이 반영된 부분이죠. 위스키를 좋아하거나 책, 특히 추리소설을 읽는 장면들. 주변에서는 한지민 배우가 연기한 조제를 창조할 때 저를 반영했다고 해요(웃음). 창작자 입장에서 객관화하고 싶은 부분은 있지만, 캐릭터가 자신을 닮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감독님의 20대는 어땠나요.

“실수도 많이 했고, 방황했고…. 영화는 20대 후반부터 시작했어요. 저 역시 뭔가 좋아하는 일이 생긴 것도 그즈음이었어요. 그때 좀 더 방황하면서 놀걸, 이도저도 아닌 채 마냥 불안해했던 것 같아요. 지나고 보면 그 순간이 아름답지만, 그땐 더 앞으로 가길 바랐죠.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아름답다고 생각 못 한 게 가장 아쉬워요.”


이 시기를 지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실패의 과정을 즐기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 만든 단편 영화가 ‘칸’에 갈 확률은 희박하듯이. 초기의 많은 시도들은 실패하며 성장하는 시간입니다. 지금은 경계를 허물어가는 시기예요. 어떤 경험을 하는가가 중요하죠. 자기 인생에서 선택만큼은 신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나로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평생 그걸 찾는 과정 같아요. 저는 끝없이, 계속해서 방황하고 고민하는 사람이고요. 하나를 알게 되면 또 나이를 먹기에 늘 인간적인 결핍이 있어요. 결핍은 끊임없이 생기죠. 지금은 제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개봉했으니, 또다시 일상이 찾아오겠죠. 평소엔 뭐 하고 지내시나요.

“제가 걷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영화에 걷는 장면이 많이 나오죠. 보통은 네다섯 시간 천천히 걷고, 스트레스받으면 더 빨리 걸어요. 창작을 앞두고 있거나 구상할 때는 20km씩 걷기도 합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요. 위스키도 좋아하지만 책 읽고 차 마시기를 즐겨요. 재주나 취향이랄 정도는 아니고. 평소엔 눈앞의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살아요. 대출 상환이나 통장 잔고 같은 번잡한 생각들. 저 스스로 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굴러가고 있는 바퀴 위에 올라타 있어요. 어디로 방향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고요.”


어려운 시기에 영화가 나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라면.


“개봉을 앞두고 많은 것들을 자문했어요. 이런 시기에 영화를 보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 영화는 아름답지만, 삶의 빛과 그림자 중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예요. 조금은 슬픈 영화일 수도 있죠. 이런 시기일수록 억지로 웃으라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슬픈 감정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죠. 이런 시선의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관객들을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김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 나오기 전 휴대폰 메모장에 이런 글을 적었다고 했다. “우리 영화는 사람과 사람을 서로 이해하고 아끼게 되고 사랑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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