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의 부활

현대판 살롱의 열 가지 속성

때아닌 살롱 부활, 왜?

21세기 현대판 살롱이 부활하고 있다. 사교의 장이자, 지식 교류의 장이던 18세기 프랑스 ‘살롱’이나 1920년대 근대 한국의 다방처럼, 오프라인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토론과 대화를 하는 모임이 늘고 있다. 현대판 살롱의 시작은 2015년 문을 연 회원제 유료 독서 클럽 ‘트레바리’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후 살롱은 취향 중심의 소그룹으로 분화되는 모양새다. 분화된 취향은 점점 더 다양한 형태의 살롱의 진화로 이어진다. 2018년엔 독특한 ‘공간’의 옷을 입고 단단한 ‘콘텐츠’로 무장한 살롱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제 ‘살롱’에 덧씌워져 있던 ‘룸살롱’이나 ‘헤어살롱’의 이미지를 벗고 서서히 살롱 본연의 의미와 역할로 돌아가는 중이다. 심지어 지자체도 살롱의 유행에 힘을 보탠다. 대구의 혁신 신약 전문가들의 학술토론 모임은 ‘혁신신약살롱’, 성북정보도서관 2층은 ‘성북살롱’, 완주군 팝업 스페이스는 ‘누에살롱’으로 명명했다.


취향 공동체

살롱은 취향 공동체의 다른 이름이다. 취향 공동체와 취미 공동체는 다르다. 취미가 여가 시간에 즐기는 ‘거리’라면, 취향은 내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그 무엇으로, 물질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를 포용하는 개념이다. 살롱에서는 커피와 영화, 철학과 와인, 음악과 요리 등 다양한 분야의 취향을 기반으로 세분화된 저마다의 프로그램이 생성된다. 취향만 맞으면 처음 보는 사람과의 대화와 토론도 얼마든지 오케이다. 살롱에서 관계는 저절로 맺어지는 가족이나 이웃, 직장 관계와 달리, 적극적이고 자의적인 관계다. 가취관, 즉 ‘가벼운 취향 위주의 관계’가 특징. 서로를 속박하는 깊숙한 관계 대신, 맘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쿨하게 돌아설 수 있는 느슨한 연대다.


‘물질’보다 ‘가치’ 소비

살롱은 주로 회원제로 운영된다. 형태와 운영 방식에 따라 회비는 천차만별이다. 월 1만 원부터 시즌별 50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강연 방식은 저렴한 편이고, 멤버십 방식은 좀 더 비싸다. 바쁜 시간을 쪼개 긴 시간을 할애하면서, 눈에 보이는 뭔가가 남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살롱 프로그램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경험 소비이자, 가치 소비다. 술을 마시거나 쇼핑을 하는 ‘물질 소비’보다 영혼의 양식이 되고 나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공간’ 안에 ‘콘텐츠’

살롱의 조건 세 가지는 ‘공간’ ‘사람’ ‘콘텐츠’다. 우선 살롱에 어울리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이끄는 ‘운영자’가 있어야 하며, 생판 모르는 이들을 모이게 할 매력적인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취향관이나 최인아책방, 신촌살롱, 연남장처럼 살롱에 딱 어울리는 공간을 가진 모임도 있지만, 월간서른처럼 그때그때 공간이 달라지는 모임도 있다. 2018년부터 살롱이 폭증한 건 2030세대가 이끄는 ‘커뮤니티 스타트업’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밴 공간을 개조해 운치 있는 살롱으로 재생하는 스타트업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공간재생프로젝트그룹 어반플레이가 대표적.


마담 혹은 기획 능력자

현대판 살롱의 꽃은 ‘운영자’다. 18세기 살롱의 중심이 ‘마담’이었듯, 현대판 살롱의 중심은 운영자다. 운영자의 캐릭터와 역량에 따라 살롱의 성격과 품격이 정해진다. 광고 전문가나 마케터, 기획자 출신의 살롱 운영자가 많은 것은 이 때문. 콘텐츠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획력이 탁월하며,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진 인사이터들이 살롱 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끌 가능성이 크다. ‘최인아책방’은 스타 카피라이터 출신의 최인아 대표가, ‘신촌살롱’은 광고 기획자 출신의 원부연 대표가 열었고, ‘아인아르스’를 연 이수정 대표는 기업에서 임직원 대상으로 강연을 하던 콘텐츠 전문가였다. ‘헤르츠’는 칼럼니스트 곽정은 씨가, ‘월간서른’은 마케터 출신 강혁진 씨가 운영한다.


마당으로 나온 커뮤니티

살롱은 ‘광장’과 ‘밀실’ 사이에 존재한다. ‘광장’은 나와 정반대의 취향과 의견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를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완전 개방성’의 공간이고, ‘밀실’은 배타적 속성을 지닌 폐쇄된 공간이라면, ‘살롱’은 공통의 취향이라는 필터로 한 번 걸러진 이들이 모인 ‘반(半) 개방성’의 공간이다. 즉 취향은 비슷하되, 다분화된 취향과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다. 방향성은 같으나, 결이 다른 취향에서 오는 공명을 느끼고 싶은 이들이 찾는다.


SNS 소통 피로감

살롱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오프라인 공간으로 탈출한 성격을 띤다. 온라인 커뮤니티 역시 비슷한 취향과 목소리를 가진 모임이지만,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네트워크 속성상 진정한 소통이 어렵다. 온라인에서 온기 없는 기계적인 소통에 아쉬움을 느낀 이들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온기 있는 정제된 만남을 희구한다. 차가운 디지털 시대로 치달을수록 반대급부로 따스한 오프라인 공간을 찾고, SNS의 과대 포장된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오프라인 공간에서 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희구하기 마련이다.


‘업(業)’에 대한 개념 변화

최근 살롱의 수요가 늘어난 데는 ‘52시간 근무제’의 영향이 크다. 퇴근과 동시에 제2의 직장인 살롱으로 출근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직장’이라는 말보다 ‘직업’이라는 말이 더 일반화된 현실이 살롱 유행의 토대가 됐다. 연령별로 살롱 문화를 향유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10대의 살롱이 취미를 만들고, 2030이 취향을 나누는 자리라면, 4050은 지식 습득의 열망이 만든 인문학 놀이터에 가깝다. 삼겹살과 소주가 지배하던 회식 문화가 서서히 사라지고 ‘문화 회식’을 향유하는 기업들이 하나둘 늘어난 것도 살롱 유행에 한몫했다.


지식과 정보 너머의 갈증

객관적인 정보와 지식은 인터넷 공간에 널렸다. 개개인의 스토리가 더해진 경험이야말로 값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살롱에 모인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같은 경험, 다른 생각’을 알고, 자신의 틀과 자장 밖으로 나아가 성장하는 것이 이들이 추구하는 지점이다. 주로 독서 모임에 이런 형태의 살롱이 많다. ‘토론하고 공부하는 모임’인 최인아책방의 ‘토공’이 대표적. 책을 낸 저자나 전문가를 중심으로 열여섯 명 정도가 모여 읽고 온 책 내용을 중심으로 심층토론을 한다.


집단 문화 대신 개인 문화

밀레니엄 세대(1979~1995년생)의 특징인 ‘자아의 탄생’과 맥을 같이한다. X세대(1969~1978년생)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첫 세대였으나 기존 질서의 한계에 막혀 진정한 자아 세대가 되지 못했다. 밀레니엄 세대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데 조숙한 세대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떨 때 기쁘고 어떨 때 감동을 느끼는지 등 마음의 소리 청취에 강하다.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은 곧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취향 공동체인 살롱 문화의 주축이 밀레니엄 세대라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수직 문화 대신 열린 문화

대부분의 살롱은 가입 조건이 없다. 나이와 성별, 신분, 직업을 막론하고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취향 공동체로 모인 이들에게 직업과 나이 등 스펙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 고유의 콘텐츠가 얼마나 신뢰할 만하며, 대화할 만한 개방성이 있는지 등이 더 중요하다. 과거 프랑스의 살롱이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계층 간 이해의 장이었듯, 현대판 살롱 역시 대화와 토론의 장이 평등하게 활짝 열려 있다.
  •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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