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잡지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 만든 방송작가 천준아

결혼 안 한 당신에게 건네는 유쾌한 인생지침서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하지영 

지난 5월 세상에 나온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 창간호는 총 500부를 찍었고 석 달 만에 400부 이상 팔렸다.
혼자서 기획, 집필, 제작, 마케팅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독립잡지의 특성상, 눈에 띄는 성과다. 500부 찍는 데 들어간 돈은 140만원. 당연히 자비다. 이 책을 만든 사람은 15년 경력의 베테랑 방송작가 천준아(39)씨. 노처녀에서 ‘NO처녀’가 되어 노처녀 잡지를 만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른 살 때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대체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그가 서른일곱에 쓴 데뷔작이더군요. 서른일곱이 되면 이 사람처럼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됐어요.”

2012년, 서른일곱 천준아씨는 아쉽게도 밀란 쿤데라처럼 걸작을 쓰진 못했다. 봄 개편으로 맡고 있던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하지만 덕분에 시간적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고 재정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알게 된 독립출판물 워크숍 <마가진가쎄>(‘잡지가 있는 거리’라는 뜻의 독일어)에 참여하게 됐다.

“워크숍 중에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은지 질문을 받았어요. 당시 저도 노처녀였고 주변에 노처녀가 많은 게 생각나서 노처녀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고 말했죠. 겉보기엔 다들 괜찮은 ‘훈녀’인데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못 하는 이유를 알아보고 싶었거든요.”

그야말로 ‘소재는 반경 1미터 안에’ 있었다. 방송작가군은 여초가 심한 대표적인 직군에 속한다. 프로그램 제작에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다 보면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이른바 ‘올드미스’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외모, 성격, 일,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그들이 연애조차 쉽지 않은 이유는 뭘까.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잡지다.


맨땅에 헤딩, 깨진 만큼 배운다

천준아씨는 <마가진가쎄> 워크숍을 마치고 두 달 만에 〈July Come She Will〉이라는 독립잡지를 만들었다. 제목만 봐서는 무슨 잡지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했더니 “바로 그걸 노린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노처녀 중에 자신이 노처녀라는 걸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걸요? 결혼 못(안) 한 게 죄도 아닌데 말이죠. 들고 다녀도 노처녀 잡지인 줄 모르게 일부러 애매모호한 제목을 달고, 표지도 아방가르드하게 디자인했죠.”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의 준비호 격인 〈July Come She Will〉은 340부를 찍었고, 제작비 150만원은 자비로 충당했다. 원고는 대부분 직접 썼고 외고는 인맥을 동원했다. 마케팅은 그해 7월에 열린 독립출판마켓 ‘어바웃북스’에 출품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덕분에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작은 책방에 입점도 했다. 알음알음으로 지인들을 통해 판매도 했다.

“〈July Come She Will〉을 만들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일단 원고료를 줄 수 없으니까 지인들에게 외고를 부탁했는데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아는 사람이라 오히려 ‘빽’을 줄 수 없더라고요. 편집디자인도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친구가 해줬는데 결과물이 좋지 않아서 결국 마감을 이틀 앞두고 새로 했죠.”

첫 번째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우선 잡지 만드는 방법을 몸소 깨쳤다.

인터뷰이였던 연애칼럼니스트 곽정은씨에게는 연애의 기술을 배웠다. 심리상담가 이미림씨는 자기 분석법을 알려주었다. <마가진가쎄> 측에선 책 만든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보라며 강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다. 수많은 노처녀 동지들과 글로써 공감과 연대했음은 물론이다. 뜻밖에 노총각들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노처녀여, 너 자신을 알라


“연애나 결혼이 잘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거였어요. 자기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일에 행복해하는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거죠. 그리고 정신적으로 성장이 멈춘 지점이 있다는 것도요. 여자의 경우, 아버지와의 관계도 큰 영향이 있어요. 저도 그랬고요.”

천씨는 〈July Come She Will〉을 낸 후, 대학 때 알고 지내던 이성친구와 연락이 닿아 연애를 하고 이듬해 봄 결혼했다. 바로 임신, 출산을 했고 그러는 통에 잡지 만드는 일은 훗날을 기약해야 했다.

“노처녀 잡지 편집장의 배신이라고 놀리더라고요. 편집장이 ‘NO처녀’가 됐으니 책 안 내는 거 아니냐고…. 오히려 책을 만들면서 궁금증이 늘더라고요. 그리고 ‘노처녀’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좀 더 객관적으로 그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요?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아졌어요.”

이쯤에서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의 목차를 훑어보자. 노처녀의 연애, 노처녀의 과거・현재・미래, 노처녀의 성, 여가, 미혼남녀 심리분석, 해외의 노처녀까지. ‘노처녀 인생’의 모든 것을 다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0여 쪽에 달하는 글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30~40대 여성의 삶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나 홀로 여행 이야기를 담은 ‘비행 노처녀’는 여타 잡지에서는 볼 수 없는 글이다. 진흙 속의 진주 같은 필자는 어떻게 찾아낸 걸까?

“필자 섭외의 기본은 ‘폭풍 검색’이죠. 그다음에는 진심을 담은 장문의 메일을 보내는 거예요. 지금까지 잡지 두 권을 만들면서 원고 청탁을 거절 당한 적은 없어요. 원고료가 없는데도 말이죠.”

책 만드는 데 큰돈이 드는 건 아니더란다. 대신 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고. 지금은 11월에 나올 가을호 준비에 한창이었다.

“과연 몇 살부터 노처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이로 따진다면 김태희는 노처녀일까요? 노처녀라 할 때는 나이보다 외모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가을호에서는 외모 이야기를 다뤄보려고요. 외모 자신감은 자존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외모에 대한 자기 평가보다 타인의 평가가 20% 정도 후하다는 걸요.”


짝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천준아씨는 자신의 프로필에 이렇게 적었다. “좋으면 무조건 과한 짝사랑부터 하고 보는 사람. 그러면 재미있는 일들이 수순처럼 따라온다고 믿는다”라고.

그의 인생 궤적이 이를 증명한다. 가수 김건모 사생팬 하다 방송국에 들어가면 그를 볼 수 있을까 싶어 방송작가가 됐고, 소설가 박민규의 열혈팬 하다 그의 책 후기에 실린 적도 있다. 두산베어스 광팬 하던 중 야구 관련 라디오 프로그램도 했다.

그가 지금 빠져 있는 건 무엇일까?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에 빠져 있어요. 이 세상 모든 노처녀의 멘토죠. 인터뷰에 응해만 준다면 자비를 들여 일본에 갈 거예요. 인터뷰 내용은 당연히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에 실어야죠.”

요즘 유행하는 말로 ‘운짱’의 천준아씨. 물론 그가 운이 좋아 하는 일마다 잘된 건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운을 타고나는 ‘운짱’보다 실패를 경험하는 보통사람이 더 많다. 하지만 보통사람이라고 겁먹지 말자. 특히 젊은 세대라면 그의 마지막 이 한마디를 꼭 기억하자.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로만 상상하지 마세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든지 일단 부딪쳐보고 해보세요. 좀 뻔뻔해지는 게 좋아요. 진정성을 갖고 하다 보면 길이 열리고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여러분의 조력자가 되어줄 겁니다.”
  • 2014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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