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김성조 ‘패브리커’ 공동대표

천으로 아트퍼니처 만드는 두 남자

2012년, 문래동 철공소 골목

푹푹 찌는 날씨에도 철을 깎는 굉음이 가득한 곳. 아트퍼니처 기업 ‘패브리커’의 작업실은 시멘트 칠이 벗겨진 건물 3층에 있었다. 삐뚤빼뚤한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섰다. 무지갯빛 테이블과 의자, 화사한 꽃 모양 조명등 두 개가 회색 벽 한켠을 밝혔다. 아담한 규모의 작업실 곳곳에는 색색의 천들이 쌓여 있었다.

패브리커는 버려진 가구나 일반 가구를 예술가구로 탈바꿈시키는 회사다. 가구의 변신을 위해 그들이 사용하는 소재는 다름 아닌 천이다. 커튼, 이불, 의류 등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이용해 가구에 새 옷을 입힌다.

패브리커의 작업은 길고 긴 인고의 과정이다. 천을 한 겹 붙이고 접착제인 에폭시를 바른 다음 또 한 겹의 천을 겹쳐 붙이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다. 이렇다 보니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테이블은 2~3주, 손이 많이 가는 의자는 두 달에 걸쳐 제작된다. 그 시간은 나이테처럼 작품에 고스란히 새겨진다. 갖가지 색의 천이 겹쳐진 테이블 옆면은 마치 차곡차곡 쌓인 지층과 같은 모습이다. 천으로 만든 조명등도 그들의 대표작이다. 하늘하늘한 천으로 꽃잎을 형상화한 조명등은 2010년 조명회사 필룩스가 주최하는 라이트아트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조명 위에 천을 덧씌워 유령과 흡사한 모양을 낸 ‘고스트’라는 조명등은 올해 초 개봉한 영화 〈러브픽션〉에서 소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패브리커는 가구 만들기뿐 아니라 공간 연출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카페, 백화점을 비롯해 잠실종합운동장, 경복궁 내 콘서트장인 ‘오르골하우스’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았다. 김성조 대표는 가구 만들기와 인테리어 디자인 모두 “이야기를 담아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희가 하는 작업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만드는 일이에요. 저마다 이야기를 담아 가구와 공간을 재탄생시키는 거죠.”

청바지에 운동화, 사이좋게 나눠 낀 듯한 뿔테안경. 패브리커의 두 대표를 만나자마자 ‘쌍둥이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마주 앉아 보니 두 대표의 미세한 차이점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김성조 대표의 안경테는 굵고, 김동규 대표의 안경은 가늘다. 김성조 대표는 잔잔한 콧수염을 길렀고, 김동규 대표는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 김성조 대표의 목소리 톤이 김동규 대표보다 약간 더 높다. 같은 듯 다른 두 대표는 3년 전부터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2009년, 대학 캠퍼스

성균관대 서피스(surface)디자인과 선후배였던 두 대표는 졸업 작품에 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에서 섬유디자인을 공부했는데, 전공을 살려 천을 사용하는 작업을 함께 하기로 했죠. 전시용 작품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것을 만들기로 결정했고요.”(김성조)

두 사람은 수시로 만나면서 의견을 나눴고, 예술성과 실용성을 두루 갖춘 아트퍼니처를 생각해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아트퍼니처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터라,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색깔을 지닌 아트퍼니처를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천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천을 단단하게 만들어 새로운 기능을 갖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천의 고유한 질감은 살리면서 쉽게 닳는다는 천의 약점을 보완한 아트퍼니처를 만들어냈죠.”(김동규)

가구 위에 천을 쌓듯이 덧붙인다는 발상은 신선했고, 두 사람이 만든 가구를 사려는 사람은 늘어났다. 그러나 갓 대학을 졸업한 두 대표에게는 마음 놓고 작품 활동을 할 만한 자금이 없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았어요. 주차장 발레파킹부터 치킨 배달까지 가리지 않고 했죠. 그렇게 푼돈을 모아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을 판 돈으로 또 다른 작품을 만들고…. 정신없이 흘러오다 보니 3년째 이 일을 하고 있네요. 하하.”(김성조)

지금은 2인 기업 패브리커의 공동대표로 한길을 걷고 있지만, 그전까지 두 사람의 삶은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2001년, 미술학원

고등학생이었던 두 대표는 각기 다른 시간, 미술학원 앞에 서 있었다.

“저는 교내 활동을 활발히 하던 학생이었어요. 학생회장도 맡고, 동아리 활동도 열성적으로 했죠. 입시학원을 알아보러 갔다 근처에 있는 미술학원에 잠깐 들렀던 게 여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있었거든요.”(김성조)

“저는 건축공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질 않았죠. 고3이 되어서야 다른 길을 찾았는데, 친구가 미술학원에 간다기에 따라 나섰어요.”(김동규)

미술학원에 간 두 대표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 ‘아, 내 길이구나.’ 그들은 그날부터 학원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했고,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차례로 입학해 선후배가 되었다. 그러나 삶의 방식이 달랐던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마주칠 일이 없었다. “성조가 1학년일 때 저는 학교에 잘 안 가고 겉돌고 있었어요. 성조는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했고요. 군대에 갔다 와서 학교 공부에 재미를 붙여갈 쯤 성조를 만나 친해졌죠.”(김동규)

두 대표는 작업 스타일도 다르다. “저는 전체적인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디자인도 쉽게쉽게 하는 편이죠. 반면 형은 세심하고 꼼꼼해요. 작업할 때 각 하나, 작은 부분 하나까지 모두 신경 써서 만들죠.”(김성조)

서로의 차이점이 작품을 만드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두 대표 모두 손사래를 친다.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어서 오히려 도움이 돼요. 저희는 어떤 작품이든 함께 만들어요. 틈날 때마다 만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죠.” (김동규)


2012년, 다시 문래동 작업실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부탁하자 두 대표는 건물 옥상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옥상에는 의자, 테이블, 화장대 등 다양한 가구가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 왕관 모양 의자가 눈에 띄었다. 현재 제작 중인 작품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구를 들고 작업하는 모습이 익숙해 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하는 현재의 삶에 100퍼센트 만족한다는 두 대표는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저희가 만든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어요. 지금껏 국내에서만 전시를 해왔는데, 해외 진출도 추진하고 있습니다.”(김동규)

두 대표는 노트를 늘 가지고 다니면서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스케치를 한다. 같은 가구를 그린 두 사람의 그림이 사뭇 다르다. 김동규 대표가 그린 가구는 뾰족한 각을 살린 예리한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러 번 그은 연한 선 위에 어렴풋이 가구의 형태가 드러난 김성조 대표의 그림은 둥그스름한 모양이었다. 두 그림을 반반씩 닮은 가구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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