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홀 무대에서 환상의 하모니 선보인 ‘부산 소년의 집’ 관현악단

소년의 집 아이들을 변화시킨 음악의 힘

부산시 암남동에 위치한 ‘부산 소년의 집’(마리아수녀회 운영)은 지금은 도심에 속하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주변이 온통 논밭이었다고 한다.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어 밤이면 불빛을 뿜어내는 이 집을 바닷가에서 보고 호텔인 줄 착각해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모여 사는 이곳이 음악의 빛을 세상에 뿜어내고 있다.
‘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로 구성된 ‘알로이시오 관현악단’은 지난 2월, 뉴욕 맨해튼 카네기홀 무대에서 청중에게 감동을 안겼다. 전문 연주단체가 아닌 아마추어 관현악단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마단조 작품 64’를 완벽하게 소화해내 큰 박수를 받았고,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영화음악 ‘타이타닉’ 등 다양한 음악을 선사해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볼 때는 ‘최고’가 아니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만큼은 ‘최고’라는 평을 들었고, 그만큼 감동적인 무대였다.

카네기홀 연주를 주선한 것은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4년 전 ‘알로이시오 관현악단’의 연주를 듣고 “호흡이 너무 잘 맞는다. 특별한 스피릿(spirit)이 느껴지는 연주다”라고 감탄한 그는 아들 정민 씨에게 이 관현악단의 지휘를 맡으라고 권했다. 그 후 이 관현악단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유진박, 피아니스트 김대진 등 최고의 연주자와 협연하면서 크고 작은 무대에 서왔고, 카네기홀까지 진출한 것이다.

미사 때마다 연주하는 알로이시오 관현악단.
개인 레슨을 받기 어려운 소년의 집 아이들이 어떻게 정상급 연주를 할 만큼 기량을 닦을 수 있었을까(정명훈 예술감독이 ‘발견’하기 이전부터 말이다). 그런 의문을 안고 부산 소년의 집으로 향했다.

‘알로이시오 관현악단’이 창단된 것은 1979년, 미국인 신부인 고(故) 알로이시오 슈왈츠 몬시뇰에 의해서였다. 처음에는 소년의 집에 살고 있는 중・고등학생 중 음악에 소질 있는 아이들을 뽑아 현악합주단을 만든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연주할 악기도,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칠 선생님도 변변히 없었다. 겨우겨우 악기 지원을 받고, 선생님을 찾았을 때 이곳을 찾아온 사람이 부산시향 바이올린 주자였던 안유경 씨였다.

“부산시향을 통해 ‘소년의 집에서 아이들을 지도해줄 선생님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단순히 ‘내가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자원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이 미사 때 연주할 수 있을 만큼만 가르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임했지요.”

같은 악기끼리 그룹을 만들어 방과후에 늘 함께 연습한다.
주말마다 음악지도를 위해 소년의 집을 찾던 그는 차츰 이곳의 식구가 되어갔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이 크고 작은 대회에서 입상을 하면서 재능을 발견하고, 음악가로 커나갔다. 관현악단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이곳저곳에서 자선 음악회도 열었다. 공연 수익금은 관현악단 운영과 소년의 집의 학교, 병원 시설에 쓰였다. 그에게 “그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한결같이 봉사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안유경 씨는 “왜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그저 매주 아이들을 만나는 게 즐거웠다고 한다.

그의 지도를 받아 음대에 진학한 학생만 30여명. 음대 졸업 후 부산-울산-마산시향 등에서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이도 많다. 그의 덕에 ‘부잣집 아이들’이나 되는 줄 알았던 음악가의 꿈을 이곳 아이들도 꾸게 되었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안유경 씨는 아이들에게 다른 악기도 가르치고 싶어 스스로 첼로 등 악기 연주를 새로 배우고, 시향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그래도 많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가르치기란 역부족.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악기끼리 그룹을 만들어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고 이끌게 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선후배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소년의 집을 나간 선배들이 주말이면 후배들을 찾아와 지도하면서 점차 ‘음악 선생님’도 늘어났다. 모두들 감탄하는 알로이시오 관현악단의 ‘특별한 하모니’는 이런 ‘특별한 선후배 관계’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고등학교 2학년인 박민혁 학생은 음악 공부를 하면서 음악만이 아닌 리더십도 배운다고 말한다.

“파트마다 멘토가 있는데, 지금은 제가 그 역할을 해요. 그 자리에 있으니 후배들에 대해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우리끼리 방과 후 모여 연습하지요. 무대에 오르면 정말 진지해져요.”

보통은 아이들이 원해서 악기를 배우는데, 고등학교 2학년인 노건형 학생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터 선생님의 권유로 첼로를 배웠다고 한다.

“어릴 적 주의가 산만해 크고 작은 사고를 많이 쳤는데, 선생님이 악기를 배우면 차분해질 거라며 권하셨지요. 지금은요? 무대에 설 때가 가장 행복해요. 자신감도 생겼고요.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카네기홀 무대에 오른 관현악단. 재학생과 졸업생 100여 명이 참여했다.

관현악의 힘은 개인의 기량이 아니라 마음을 합한 ‘하모니’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연주

안유경 씨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까’ 궁리하다 아이들 모두에게 지휘를 가르치기로 했다. 한 아이에게 지휘를 맡기는 게 아니라 돌아가면서 지휘자 자리에 서게 했다.

“제가 시향에서 연주 생활을 해보니, 지휘자야말로 음악 전체와 단원 하나하나를 속속들이 알아야 하더군요. 그 위치에 있으면 본의 아니게 연주자들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서 화합하자는 의미에서 모두 지휘자의 위치에 서게 했습니다.”

안유경 선생님 지휘로 여러 차례 자선음악회를 해왔다.
음악은 연주자의 실력 하나하나가 플러스되어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닌,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음악을 가르친 아이가 졸업 후에도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 그에게는 제일 큰 보람이자 기쁨이다.

“삼성에 취업한 한 아이는 사내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며 소식을 알려왔어요.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지요.”

소년의 집은 관현악단을 하겠다는 아이들에게 조건을 붙인다. “음악도 좋지만 미래의 직업을 위해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잘 따라왔다고 한다. 아이들이 음악을 취미로 택하든, 음악가로 진로를 정하든 음악은 아이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줬다. 아이들에게 음악에 대해 물으면 “음악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요. 제게 가장 소중한 존재예요”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부산마라톤 출전을 준비하고 있는 고3 전인채 학생은 관현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알로이시오 관현악단’을 책임지는 김소피아 수녀와 1979년부터 아이들을 지도해온 안유경 선생님.
“안유경 선생님이 매일 연습량을 정해 숙제를 내주시고 검사를 하시는데, 중학교 때는 운동을 더 하고 싶어서 ‘왜 이리 숙제를 많이 주시나’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차곡차곡 실력을 쌓은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평소에는 쑥스러워서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카네기홀에 가면서 선생님이 가장 많이 생각났습니다. 함께 가면 좋을 텐데, 하고요. 기초를 잘 다져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아이들과 선생님은 ‘말’을 생략해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관계로 보였다. ‘알로이시오 관현악단’은 연습생까지 합해 현재 60여 명. 연주회를 할 때는 졸업생까지 합세해 100여 명이 된다. 이들 100여 명이 카네기홀 무대에 섰다. 카네기홀에서 더블베이스를 연주한 고등학교 2학년 이정욱 학생은 “처음 카네기홀 무대에 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어요. 매일 대여섯 시간씩 연습했지요. 공연 전에는 졸업한 선배들까지 합류해 연습을 하고, 주말 새벽이면 서울로 올라가 서울시향 선생님들께 파트별로 레슨을 받았습니다. 카네기홀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바라고, 노력하면 안되는 게 없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음대에 진학해 좋은 음악가가 되는 게 꿈이에요”라고 말한다.

이 관현악단을 관장하는 김소피아 수녀는 “1979년부터 아이들을 가르쳐주신 안유경 선생님, 카네기홀 연주를 주선해주신 정명훈 선생님, 그리고 지휘를 해주신 정민 선생님 모두에게 감사드려요. 선생님 지도에 따라 열심히 연습하고, 북한 어린이 돕기 자선 음악회 등 뜻있는 공연을 해온 우리 아이들도 대견하고요”라고 아이들 칭찬을 빼놓지 않는다.

이들은 3월 21일, ‘천원의 행복’을 주제로 <사랑의 콘서트>(부산문화회관)를 열었다. 입장료가 전석 1000원으로, 카네기홀 공연과 같은 레퍼토리로 연주했다. 음악이 아이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또 관현악의 힘은 한 사람 한 사람 잘난 연주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하모니’에서 나오는 것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사진 : 진구
사진제공 : 부산 소년의 집
  • 201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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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야   ( 2017-10-15 ) 찬성 : 11 반대 : 16
운동부는업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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