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 6억 원의 세계적인 패션상 수상한 이진윤

글로벌 패션 브랜드 ‘망고’가 선택한 한국 디자이너

지난 4월 말, 국내 패션계에는 큰 경사가 있었다. 스페인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망고’가 주최한 제2회 ‘엘 보톤(El Boton) 패션 어워드’에서 우리나라 디자이너가 당당히 대상을 차지한 것. 재능 있는 패션 디자이너를 발굴, 지원할 목적으로 마련한 이 대회는 전 세계 젊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꿈의 대회’로 통한다. ‘망고’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100 여개국에 1250여 개 매장을 두고 있는 인기 있는 브랜드인데다 대상 수상자에게 돌아가는 상금이 자그마치 30만 유로(약 6억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수상자는 망고의 후원을 받아 유럽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고, 망고의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자신의 제품을 판매할 수도 있으며, 협업은 물론 망고에 입사할 수도 있다.

그만큼 지원 자격은 까다롭다. 나이는 35세 이하, 해외 컬렉션 2회 이상 참가와 함께 수주 경험이 있어야 한다. 아마추어나 학생은 제외된다. 실력이 검증된 프로들의 각축장으로, 이번 대회에도 피터 필로토, 장 피에르 브라간자 등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를 포함해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대거 참여했다. 1차 서류 심사는 컬렉션 실황을 담은 동영상, 그림, 작품 소재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망고 관계자들이 그중 50명을 추리고, 여기서 다시 유럽의 5대 패션 디자인 학교장들이 10명을 뽑아 결선을 치른다. 망고는 이들 10명에게 각각 작품 제작 지원비 명목으로 3000여만 원을 지급하고, 후보자들은 한 사람당 10벌의 의상을 제출한다. 최종 우승자는 단 한 명. 2등과 3등도 단상에서 호명되기는 하지만 거액의 상금은 오로지 대상에만 주어진다. 이처럼 권위 있는 대회에서 당당히 한국 패션 디자인의 위상을 높이고 돌아 온 주인공은 이진윤 씨. 금의환향한 그에게 일약 스타가 된 소감을 물었다. 그는 “솔직히, 이번에는 1등을 할 것 같았다”며 웃었다.

“첫 대회 때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어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결선에 오른 10명의 작품을 한 자리에 전시했는데, 한눈에도 제 작품이 제일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실력이 제일 뛰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제 것만큼 정성을 많이 들인 걸 찾기가 어려웠어요. 제가 사용한 소재가 ‘오간자’라고 한복에 주로 사용하는 천이에요. 모시와 실크를 섞어 하늘하늘한 느낌이 나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얇아서 다루기도 어렵고요. 그러니 제일 눈에 띄었죠.”

결선에 참가한 다른 디자이너들 역시 한국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의 작품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고, 대부분 그의 우승을 점쳤다. 그런데 막상 시상식이 끝나갈 때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아 그는 거의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피터 필로토, 장 피에르 브라간자 등의 이름이 불리는 걸 보고 저는 그 사람들이 수상자라고 생각한 거죠. 너무 화가 나서 제 이름이 호명되는 걸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옆에 있던 뉴질랜드 국적의 한국인 디자이너가 ‘어, 형이 1등이다’ 그러더라고요.”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그는 순식간에 사진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시상식 후에는 6시간에 걸쳐 유명 패션지들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가졌고, 세계 패션계 인사들이 모두 그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심사위원장이었던 오스카 드 라 렌타는 그의 작품을 ‘고급스러운 간결함(simplicity with luxury)’이라고 평했고, <마리 끌레르> 패션 에디터인 니나 가르시아도 “이런 작품을 만나게 돼서 영광”이라고 극찬했다.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세계무대 진출은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사실 결선 발표가 나기 전, 비비안 웨스트우드에서 일하기로 결정이 된 상태였어요. 런던행 비행기표를 예약해 두고, 출국을 위해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던 중에 ‘파이널 10명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았죠. 잠깐 고민했지만 런던행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스페인으로 날아갔어요. 세계적인 대회에서 제 실력을 검증받고 싶었거든요.”


전 세계 ‘망고’ 매장에서 작품 의상 전시

‘엘 보톤 패션 어워드’ 시상식.
그의 작품 의상은 전 세계 망고 매장에서 전시된다.
이쯤 되면 그가 유학 경험이 있거나, 집안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패션 공부를 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다. 경북 영천이 고향인 그는 학창 시절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보내주는 학비로 공부를 했고, 졸업 후에는 여성복・남성복・아동복 가리지 않고 온갖 프로젝트에 참여해 컬렉션 참가비용을 마련했다. 학구열도 대단해 2년제인 영남이공대학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국민대 편입학을 거쳐 홍익대 대학원에 진학, 현재 박사과정 중이다. 지금도 농사일로 생계를 꾸려 가는 어머니가 언젠가 자신에게 했던, “내가 무식하게 번 돈을 네가 좋은 공부하는 데 잘 써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그는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한다.

큰 대회를 통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는 학창 시절 내내 독특한 아이디어와 남다른 감각으로 각종 공모전을 휩쓸었다. 중학교 때 ‘이웃 사랑’을 주제로 한 포스터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은 한국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사랑이 뭐길래>의 시작 부분에 사용되었고, 8년 전 패션가에서 대대적인 화제를 모았던 ‘파티 청바지’도 그의 작품이다.

당시 국민대 의상디자인학과 학생이었던 그는 동대문 의류상가인 ‘두타’에서 개최한 벤처디자이너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해 그 부상으로 두타 지하 매장을 1년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그곳에서 판매한 것이 바로 청바지에 레이스나 보석 등을 달아 화려하게 장식한 일명 ‘파티 청바지’였다.

이 새로운 청바지는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그 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적인 의류박람회 ‘매직쇼’에 출품돼 150만 달러어치의 주문을 받았다. “파티 청바지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겠다”고 하자 그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기대를 많이 했는데 9・11테러가 터져 일이 틀어졌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만 크게 남았어요. 사실 그동안 옷으로 돈을 벌지는 못 했어요. 국내 패션업계는 신인 디자이너들이 성장하기에는 너무 척박한 환경이에요. 열심히 컬렉션에 참가하고, 새로운 작품을 발표해도 판매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요. 외국 디자이너의 경우 재고까지 백화점이나 편집 매장이 다 알아서 해 주지만 국내 디자이너는 재고까지 모두 떠안아야 해요. 이번에도 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국내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랐는데, 유감스럽게도 관심을 갖는 곳이 없더라고요.”

대신 그는 내년 2월 열리는 뉴욕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다. <마리 끌레르>의 니나 가르시아가 그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고, 오스카 드 라 렌타를 통해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바이어도 소개받을 예정이다.

“이번 대회 때 출품했던 10벌과 같은 작품 의상을 25~30벌 더 만들어야 해요. 뉴욕 컬렉션을 마치면 전 세계 망고 매장에 제 의상이 전시될 예정입니다. 워낙 제작비가 비싼 옷이라 판매용은 아니지요. 망고 매장에서 실제 판매할 의류 제품을 디자인 할 기회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제가 만든 옷이 전 세계에 팔리게 되는 거죠. 생각만 해도 참 뿌듯하고 행복해요.”

자신에게 이런 기회를 열어 준 ‘망고’처럼, 디자인으로 돈을 많이 번다면 반드시 후배 디자이너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이진윤 씨.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하는 첫 한국인 디자이너가 될 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존 갈리아노, 마크 제이콥스, 칼 라거펠트 같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우리도 한 명쯤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과 함께.

사진 : 김선아
  • 200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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