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1위 기업을찾아서| 후세인이 끌어안고 있던 바로 그 난로!

석유난로 세계 1위 파세코 유병진 대표

예전에는‘북극의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판매하는’일본 사람들의 상술에 혀를 내둘렀지만 이제는 그게 우리 이야기가 돼 버렸다. 국내 기업 중 열사(熱沙)의 나라 중동, 정글과 밀림의 상징 아프리카에 석유난로를 수출하는 회사까지 생겼으니까. 그것도 세계 시장 점유율 40%이고, 중동·아프리카 시장 점유율은 70% 이상을 차지, 석유난로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이다. 이 회사 이름은 ‘파세코’(PASECO). 파세코란 사명(社名)은 완벽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뜻(Perfect product, Ace service, Smart Electronic Company)을 담고 있다.

파세코는 품질 면에서‘업계 최강’소리를 듣고 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UL(미국 안전규격) 승인을 받았고, 세계 굴지의 전자회사인 삼성전자와 GE에서 OEM 파트너로 파세코를 선정할 정도다.

중소기업인 파세코가 세계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은 끊임없는 기술 투자 덕분이다. 전체 사원의 15%가 연구 인력이고, 매출 대비 7%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고 있는 것을 보면 파세코가 얼마나 신기술 개발에 목말라하는지 알 수 있다. 유병진 파세코 대표의 말이다.

“기업 경영은 자전거 타기와 비슷합니다. 바퀴를 계속 돌리지 않으면 쓰러집니다.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파세코란 회사명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좀 엉뚱한 계기 때문이었다.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2003년 12월 자신의 고향인 북부 티크리트 지역의 한 민가에 굴을 파고 숨어 살다가 미군에 체포됐다. 묘하게도 은신처에서 후세인이 ‘파세코’ 석유난로를 끌어안고 있다가 붙잡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

실제로 후세인이 파세코 난로를 끌어안고 있다가 붙잡혔는지 알 수 없지만, 은신처를 샅샅이 훑던 방송 카메라에 파세코 난로가 잡힌 것은 사실이다. 유병진 대표의 설명.

“이라크 주민들이 트럭에 짐을 싣고 피난 가는 장면이 방송에 나오면, 그들이 실은 짐에는 꼭 우리 난로가 있습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우리가 정말 수출을 많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병진 대표는 1960년대 말 고향인 충남 서산에서 무작정 상경해 첫 직장으로 들어간 게 세운상가 심지 납품가게였다. 몇 년 후 독립하긴 했지만 직원 한 명을 둔 영세 상점에 불과했다. 유병진 대표가 ‘신우직물’이란 이름으로 난방산업을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파세코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석유풍로’의 추억을 더듬어야 한다. 레버를 돌려서 심지가 나오게 하고, 성냥불을 켜서 심지에 불을 붙이는 난로와 곤로 말이다. 가스레인지가 없던 시절 이것이 집집마다 하나씩 있었다. 회사명 ‘신우’ 뒤에 ‘직물’이 붙은 것은 창업 초기 석유풍로 심지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심지가 괜찮은 사업이었어요. 석유풍로가 생활필수품이어서 수요가 많았을 뿐 아니라, 심지는 소모품이었거든요. 제가 처음 세운상가에서 이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국내에 심지공장이 120여 개나 될 정도로 호황이었습니다.”

신우직물이 생긴 후 몇 년 만에 심지공장 중 세 곳만이 살아남았다. 신우직물이 심지를 워낙 꼼꼼하게 잘 만들어 국내 심지 시장의 60~70%를 장악해 버린 것이다.

1986년 유 대표는 신우직물을 법인으로 전환했고, 회사명도 (주)우신전자로 바꾸었다. 회사 규모가 커진 탓도 있지만, 더 이상 심지만으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후 석유난로와 가스버너를 직접 생산했고, 1987년부터 미국에 가스버너 수출을 시작했다.

중동과 유럽으로 수출되는 난로 모델. 왼쪽 모델이 후세인이 은신처에서 끌어안고 있던 것으로 전해지는 모델이다.
파세코는 일본 상품이 주를 이루던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석유난로 시장의 80%를 장악했다. 성공한 비결을 묻자 “우리는 납품일자를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 대표의 인간미도 큰 역할을 했다. 그와 한번 인연을 맺은 바이어는 평생 동지가 된다. 바이어가 한국을 방문하면 꼭 자기 집에 초대해 가족들을 소개시켜 주고 파티를 열어 주며 친지처럼 대한다. 이렇게 형제처럼 인연을 맺은 외국인 바이어가 수십 명에 이른다.

“사업 파트너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것은 곧 품질과 납품일자죠. 이 두 가지는 목숨을 걸고 지켜 왔어요. 우리가 적당히 하면, 바이어들이 당장 눈치를 챕니다.”

오늘날 파세코는 직원 수 400여 명, 연 매출 1,300억 원에 달한다. 이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가량. 2004년 무역협회로부터 ‘5,000만불 수출탑’을 받았고, 3년 안에 ‘1억불 수출탑 수상’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돼서 난로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온다면 몰라도….


회사의 운명을 건 모험

그러나 파세코가 줄곧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1994년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석유스토브 UL(미국안전규격) 승인 신청은 사활을 건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을 제외한 해외시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UL 승인을 받는 절차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유병진 대표는 제품을 배에다 실어 놓고 UL 승인을 기다렸다. 실패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제가 업계에서 ‘백발의 소년’이라고 불립니다. 좀 유순하다는 뜻이죠. 그러나 저는 모험을 즐기는 편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위기가 항상 존재합니다. 모험을 즐기느냐 피하느냐의 싸움이 계속되는 거죠. 그때 배에 제품을 실어 놓는 ‘벼랑 끝 전술’을 펼치지 않았다면, UL 승인을 못 받아 냈을지 모릅니다. 모험을 제대로 즐겼던 셈이죠.”

파세코는 석유난로가 주력상품이지만 난로 외에도 각종 히터와 에어쿨러, 비데와 김치냉장고, 선풍기와 공기청정기, 각종 주방용품을 생산하는 가전제품 종합상사다. 삼성전자에서 판매하는 김치냉장고를 비롯한 열 관련 가전제품 중엔 ‘제조원 파세코’ 직인이 찍힌 것들이 많다.

매출로만 따지면 석유난로나 가스스토브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석유난로 세계 1위’라는 자부심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부가가치를 가져다준다. 산업자원부가 선정한 ‘품질경쟁력 우수기업’에 3년 연속(총 6회) 선정된 것도 ‘세계 1위’가 가져다주는 프리미엄이다. ‘세계 1위’라는 수식어보다 더 가슴 설레는 말이 있을까?

종합 가전상사로 변신하고 있는 파세코는 더 큰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2006년부터 세계적인 가전제품 회사인 GE와 손잡고 ‘가스오븐레인지’ 생산에 들어가고, 순차적으로 다른 가전제품으로 거래를 넓혀 갈 예정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매출이 두 배 이상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서 말한 ‘1억불 수출탑’ 이야기가 빈말이 아닌 것이다. 열사의 나라에 난로를 팔고 있는 것처럼, 이제는 어쩌면 추운 나라에 에어컨을 팔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야말로 무한경쟁시대라는 걸 절감합니다. 주춤거리면 도태됩니다. 그러나 두렵지 않습니다. 품질만큼은 자신이 있으니까요. 우리가 바로 세계 1등 기업 아닙니까.” ■
  • 2006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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