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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예찬

박연준 시인과 숲길을 걷다

나에게로 향하는 길, 걷기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숲솔오솔길 #파주에서시와산문을쓰는 #박연준장석주시인부부 #걸어야만나는것들 #나로산다는것
걷는 시간은 나를 만나는 시간인 동시에 나에게서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을 통해 내 몸은 나를 느끼지만, 내 마음은 흐르는 풍경을 따라가면서 한결 홀가분해진다. 지극히 나이지만, 나에게서 벗어나는 시간. 그래서 걷기는 자아 탐색과 맞닿아 있다.

걷기의 속성을 들여다볼수록 박연준 시인이 겹쳐떠올랐다. 걷기가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이라고 한다면, 박연준 시인만큼 충만하게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대체로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애쓰고 또 애쓰지만, 그는 언제부터인가 그냥 매 순간이 곧 자신인 삶을 풍미하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리 보인다.

박연준 시인의 글은 한눈에 티가 난다. 모든 이에게는 저마다의 문체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의 글은 순전한 취향을 감추지 않는다. 무언가를 그저 좋아하는 마음이 넘치고 넘쳐, 흘러넘친 마음을 주워 담으면 저런 언어가 되는 걸까.

보편적 인간의 스무 배쯤 촘촘한 촉수를 세상을 향해 이리저리 곤두세우고, 그렇게 해서 포획된 감각을 자신만의 언어로 녹여낸 그의 글은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경이롭고 낯설다. 그 생경한 글의 에너지는 잠자던 동심을 쿡, 찔러대는 마력을 지녔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단단하던 마음이 몰랑해지면서 잊었던, 아니 잊은 줄 알았던 자기 안의 우물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곤 한다.

7년 전 출간된 그의 첫 산문집 《소란》이 22쇄를 찍으며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는 것도, 시집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9쇄를 찍으며 사랑받는 것도 이런 힘이다. 그의 시와 산문은 뻣뻣한 빨래에 한 방울 톡, 떨어뜨리는 유연제와 같다. 납작하게 말라가던 마음을 한 올 한 올 입체감 있게 되살려낸다.

궁금했다. 미세한 시인의 촉수는 언제 어떻게 파르르 떨리는지. 그 촉수가 까딱이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었다. 그와 함께 숲길을 걸었다. 시인은 경기도 파주의 송골공원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교하도서관으로 이어진 작은 숲길에서는 언젠가 그가 “날 수 없는 작은 새들”이라고 표현한 작은 잎들의 합주로 ‘쏴~’ 파도 소리가 났다.


도시 한가운데에 이런 깊은 숲길이 있다니, 의외예요.
수령을 보니 꽤 오래된 공원 같은데요.


“좋죠? 거의 매일 이 길을 걸어요. 인터뷰가 있으면 제가 주로 서울로 가는데요, 오늘은 이 오솔길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감수성이 남달라서 자연과 교감하며 시골서 자랐을 거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의외로 서울 출신이더군요.

“맞아요. 중랑구 면목동에서 나고 자랐어요. 연탄 쌓인 좁은 골목길. 다닥다닥 가게들이 붙어 있는 곳이죠. 그래서 시골보다 서울에 가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집에 온 느낌이랄까요? 가게가 없는 시골의 전원생활을 견딜 수 없어 해요. 집에서 별명이 다람쥐였는데, 전파상, 쌀집, 작은 가겟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을 다람쥐처럼 다녔어요. 50원, 100원을 쥐고 쭈쭈바 사 먹던 기억이 깊어요.”


이곳 파주에서는 오히려 이방인이군요.

“그래서 여기에 오면 오히려 영감을 얻어요. 새로운 공간이 주는 영감. 호주 시드니 외곽에서 한 달 정도 살았는데 그때도 그랬어요. 너무나 신기해서 글이 막 써졌어요. 2014년 원주 토지문학관에서 세 달 동안 살 때도 그랬고요. 개안(開眼)한 사람처럼 모든 게 신기했어요. 모란이 피는 걸 하나하나 기록하게 되고요. 소음이 없어서 감각이 막 깨어나는 느낌이랄까요.”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라.

“밤이 지극하다는 걸 느꼈어요. 사람도, 가게도, 소리도 없는 곳에서는 고요하게 밤이 밀려오더라고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지극한 밤에 대한 기억.”


여행지 중에서 머물고 싶었던 곳을 꼽자면요.

“핀란드 헬싱키요. 자연을 좋아하는데, 도시화된 자연을 좋아하거든요. 바닷가라면, 도시와 인접한 바닷가를 좋아하고요. 헬싱키가 딱 그런 곳이었죠. 호주 시드니는 가게 하나 없는 외곽이라서 답답했어요. 그때 깨달았죠. ‘나는 자연에서만 살 수는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요.”


남편 장석주 시인도 걷기에 대한 철학이 깊은 걸로 압니다. 부부가 이 길을 함께 걸을 때와 혼자 걸을 때는 어떻게 다른가요.

“혼자일 때가 훨씬 창의적이 돼요. 같이 얘기하면서 걸으면 하나나 두 개를 얻을 수 있다면, 혼자서는 훨씬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어요. 둘이 있으면 답을 들을 수 있지만, 혼자 있으면 답을 들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생각이 확장되는 걸 느껴요. 스마트폰을 1년 6개월간 끊은 적이 있어요. 시인으로서 위기감을 느껴서요. 궁금하면 바로 뭔가를 검색하게 되다 보니 스스로 인생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검색할 수 없었을 때는 더 많은 걸 얘기해보고, 궁금증을 크게 끌어안고 집에 와서 다른 방식으로 찾아봤잖아요. 그땐 더 많이 간직하고, 더 풍요로웠어요.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정보를 얻는 대신 가난해졌어요.”


가난이 뭔가요.

“돈이 없는 게 가난이 아니에요. 여러 방면에서 작아지는 것. 생각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가치관도 작아져서 획일화되고 갇히는 것이 가난이라고 생각해요.”


‘걷기’ 이야기를 해볼게요. 걷기가 박연준 시인의 정체성과 닮았다고 느꼈어요. 걷는다는 건 나에게로 향하는 길이라는 차원에서요.

“그런가요? 저는 언제나 제가 좋아하는 걸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 같아요. 스무 살 이후부터. 한국 사회는 독자적인 생각을 꾸리지 못하게 시스템화되어 있잖아요. 공식적으로 그래도 된다(독자적 생각을 해도 된다)고 상정하는 나이가 스무 살 같아요. 그 이후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 시간’이었어요. 안정된 직장도, 안정된 수익도 없이 미래가 불안정해서 가끔 후회는 했지만요. 무언가를 결정할 때의 기준은 ‘내 시간이 확보될 수 있는가’였어요. 이게 돈보다 중요했어요. 아까 가난이 뭔지 물어보셨잖아요. 그런 질문을 처음 받아봤는데, 시간을 빼앗기면 가난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사람들은 대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경제 활동을 한다지만, 저는 달랐어요.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저의 자유로운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그런 길을 가지 않았어요. 침범받지 않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내 시간’은 무엇을 하는 시간인가요.

“밖에서 누군가가 보면 한심하다고 느낄지 몰라요. 뭔가를 부지런히 하지는 않아요. 많이 멍 때리고 끄적거려요. 딴생각을 하고요. 비생산적으로 보이지만, 제게는 쓰기 위한 시간이에요. 장석주 선생님은 바로 코드가 켜져서 몰아치듯 쓰시는데, 저는 그게 안 돼요. 요만한 걸 쓰려 하면 이 둘레를 이만큼 돌아야 해요. 그래서 쓸데없어 보이는 시간이 필요해요. 밍기적거리는 시간이 많고, 뭔가가 탁 찾아오면 몰아치듯 써요.”


뭐가 찾아오길 기다리죠?

“쓰고 싶은 마음이요. 써야 하는 걸 아는데, 차올라야 쓰는 거잖아요. 쓰기 싫은데 억지로 쓰는 것만큼 힘든 게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말이 빨라지는 것처럼,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 에너지를 결정하는 건 하고자 하는 마음이에요. 능동성이죠. 그것만 찾아온다면 아무 걱정 없어요.”


내 안으로 시선이 향하는 시간이 하루 중 얼마나 돼요? 대략?

“거의 대부분일 것 같은데요? 왜냐하면 저는 아기도 없고, 집안일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요즘엔 고양이를 키우긴 하지만, 고양이 보는 것도 제 시간이거든요.”


늘 나로 사는군요.

“만약 나로 살지 못하면 막 화가 나요. 그럴 때마다 직장을 그만뒀어요. 하기 싫을 때 뭔가를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늘 항의를 해왔어요. 연재도 그래요. 내가 막 미치도록 하고 싶은 말이 있다가 조금씩 없어져서 그만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멈춰요. 어떤 분들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하는데, 저는 하기 싫은 걸 안 하는 게 더 중요한 사람 같아요. 하고 싶은 건 유예하면서 가면 되는데, 하기 싫은 걸 하면서 사는 인생은 버틸 수 없어요.”


여기 갈림길이 있네요? 어느 길로 갈까요?

“이쪽 길로 가면 교하도서관이에요. 책 반납을 하러 갈 때 대로 쪽으로도 갈 수 있지만, 일부러 숲속길로 들어와요.”


갈림길에서 판단 기준이 있다면요.

“주로 직관을 따라요. 가고 싶은 길.”


시인에게 걷는 시간은 어떤 시간인가요.

“걷기 위해서 걷는다기보다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걸어요. 저에게 걷는 일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행위 같은 것이에요. 움직임이 주는 힘이죠. 누워 있다가 잠깐 몸을 일으키는 행위도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저는 강연할 때도 펜을 하나 쥐거든요. 이 행위 자체가 중요한 거예요. 로맹 가리 소설의 한 부분이 생각나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중요한 거래요.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손 묶고 눈 가리고 불 붙여주고 입만 벌려서 피우게 하면 아마 끊고 싶을 거예요. 담배를 쥐고, 재를 떨고, 연기를 내뿜는 일련의 행위가 필요한 거예요. 제게 걷는 건 그런 차원이에요. 행위를 통해 다른 기쁨을 얻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일종의 매개.”


실제로 집을 나와서 오솔길을 걸으면 생각이 열리는 게 느껴지나요?

“확실히 생각의 전환이 돼요. 멈춰 있던 나를 움직이게 해서 몸을 쓰면 안 좋았던 것들이 씻겨 나가기도 하고, 가라앉은 마음이 펴지고, 부정적인 에너지가 희석되기도 해요. 걸으면서 나를 잊게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세계를 만나는 거죠. 발레도 그래요. 오롯이 저인데, 저를 잊을 수 있어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신체를 통해 나를 만나는 ‘바디풀니스(bodyfulness)’ 개념과 같은 듯 다릅니다.

“오롯이 나인데 나를 잊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명상의 궁극적인 지점일 수 있어요. 첼리스트나 체조선수는 자신을 의식하면 궁극의 나를 만날 수 없어요. 깊은 몰입에 빠진 몰아(沒我)가 되어야 하죠. 글을 쓸 때도 그래요. 쓰는 나를 의식하면 잘 안 써지고, 쓰기 싫어져요. 아무도 안 본다고 생각해야 재밌어요.”



발레를 한 지 꽤 됐지요? 왜 하필 발레를 택했어요?
요가나 필라테스 등 몸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운동 종목은 많은데요.


“발레와 시는 닮아 있어요. 제가 이 둘을 좋아하게 생겨먹은 사람이라는 걸 얼마 전에 깨달았고요. 시는 일상생활에서 쓸모가 없어요. 제가 지금 시처럼 말하면 얼마나 싫겠어요(웃음). 발레도 평소에는 사용할 수 없는 동작들로 이뤄져 있어요. 그런데 아름답잖아요. 시는 무대 위에 올라간 언어예요. 이해받고 싶지도 않고, 소통하고 싶지도 않고. 또 발레는 중력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거잖아요. 사람은 땅에 있어야 하는데, 자꾸 위로 뜨려고 하니까. 시의 언어가 그렇거든요. 머무르지 않고 허공에 있으려 하고, 멈춰 있는 어떤 찰나를 포획하려 해요. 불가능에 가깝죠. 쓸모없지만 아름다운 것들이고요. 또 둘 다 굉장한 수련이 필요하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하긴 어렵다는 점에서도 닮아 있어요.”


걸으면 나의 에너지가 어떻게 바뀌나요.

“내가 풍부해져요. 정체되어 있는 게 흐르니까. 나를 흘러가게 하는 건 오직 나뿐이에요. 또 누군가와 함께 걸으면 이야기도 더 풍부해지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친구에게 ‘맛있는 거 먹으면서 걷자’는 건 그만큼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고백 같아요.”


《걷기 예찬》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한 사람과 열흘간 함께 걷는다는 건 10년간 함께 사는 것과 같다는.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건 그 사람을 풍경에 두는 거잖아요. 집이나 카페 같은 정체된 곳에서는 그 사람만 보이는데, 함께 걸으면 그 사람을 더 깊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이 나무 아래에 있는 것과 레스토랑의 식탁 앞에 앉아 있는 건 달라요. 나무 아래에 있으면 그 사람에게 미래와 과거가 함께 담기면서 어떤 맥락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에 대해 끝끝내 다 알기는 어려운 존재로 보이거든요.”


연인과 이별할 때도 카페보다 나무 아래에서 헤어지기가 더 힘들 것 같아요.

“우리가 실수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뭔가를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잖아요. ‘너는 이렇잖아’ 식의 닫힌 사고. 카페처럼 닫힌 공간에서는 숲길에서보다 더 닫힌 사고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걷다 보니 깊은 산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이상하게 자연 속을 걸으면 좀 순해져요. 제가 가장 경계하는 자세는 독해지는 거거든요. 어떤 일을 겪고 나면 사람이 좀 강퍅해지잖아요. 저는 그게 싫어요. 늘 말랑했으면 좋겠어요.”


숲길을 걷는 것과 도시의 아스팔트길을 걷는 건 마음이 어떻게 다를까요?

“도시를 걸으면 고독이 더 고독해지는 걸 느껴요. 외로움은 더 외로워지고, 슬픔은 더 슬퍼지고. 감정들이 씻기지 않고 특화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소로(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저자)가 숲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숲에서는 뭉친 것들이 풀리고, 닫힌 것들이 열려요.”


도시를 걸으면 왜 더 고독해질까요?

“도시는 사람이 만든 공간이잖아요. 사람이 속속들이 깃들어 있는 공간. 숲은 사람이 깃들지 않은 자연의 공간이에요. 제가 여기서는 이 나무들의 일에 비하면 작은 돌멩이 하나에 불과한 존재로 여겨져요.”


박연준 시인과 헤어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먼 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그와 나란히 걸었던 작은 숲속 오솔길은 〈사자, 마녀, 옷장 이야기〉의 그것처럼 비현실감마저 안겼다. 마법의 옷장을 통하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처럼, 오솔길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제3의 자아를 만나게 했다. 도시의 효율성에 짓눌려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덮어뒀던 정념의 깊은 우물을. 숲길의 힘일까, 걷기의 힘일까, 아니면 시인의 힘일까.
  •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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