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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밤〉 문상돈 PD

어서 와, 밤 산책의 마법 속으로…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밤마실 #골목길여행 #해질녘 #도시풍경 #모든것이 #제자리로돌아오는
문상돈 PD의 프로그램은 골목길 같다. 코너를 돌면 전혀 다른 풍경이 나온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속살’을 비췄다면, 〈밤을 걷는 밤〉은 ‘낮의 열기가 식은 뒤 만나는 도시의 풍경’을 담았다.

현재 제작 중인 〈거침마당〉은 또 어떤가. 거성 박명수와 침착맨 이말년이 무려 이금희와 함께 토론마당을 벌인다. 이전에 본 적 없는 그림이다. 이 부자연스러운 그림들은 회차가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간다. 제작진은 상황만 제시할 뿐, 반응과 적응은 오직 출연자의 몫이다. 게임을 하지도, 극한의 도전을 하지도, 콩트를 하지도 않는데 웃음이 터진다.

〈밤을 걷는 밤〉은 문상돈 PD가 2019년 MBC 에브리원에서 카카오TV로 이적하며 만든 프로그램이다. 채널과 플랫폼은 달라졌지만 그는 여전했다. 온갖 유명한 것들은 다 볼 수 있는 백화점식 투어 프로그램이 아닌, 후미진 동네 어귀를 비추는 방식을 택했다. ‘밤에 산책’하는 게 전부인 이 프로그램은 모세혈관 같은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피가 돌듯 생기를 얻었다. 카메라는 출연자와 함께 걷고 호흡할 뿐인데 보는 이도 같이 걷는 느낌이었다.


〈밤을 걷는 밤〉의 첫 산책지는 서울 청운효자동이었습니다.
출연자인 유희열 씨가 태어나 스물 몇 해를 살았던 곳이죠.
본인이라면 어디를 가장 먼저 걸었을까요?


“(서울) 강동구 명일동이요. 누구나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찾아가는 거 같아요. 저는 강동구에서 초·중·고를 다 나왔어요. 유희열 씨도 청운효자동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본인이 나온 경복고등학교였습니다. 그리고 첫마디가 ‘야, 여기는 그대로다’였고요. 이미 변한 게 많겠지만 가장 변하지 않은 곳부터 산책을 시작한다면 마음이 남다르겠죠.”


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그때부터 PD가 꿈이었나요?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게’ 꿈이었죠(웃음). 저는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워낙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모여 있다 보니 선호하는 학교나 전공이 거의 비슷했어요. 저는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곧잘 하다가 고등학교에 와서 공부를 놓은 케이스인데, 남들과 같은 길을 가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놀러 다니기도 했고요.”


그래서 현재 남들과 다르게 살고 있을까요.

“남들과 달리 ‘퇴근이 없는 삶’을 살고 있죠(웃음). 아이가 잠든 뒤에 집에 들어가고, 아이가 깨기 전에 집에서 나오는 게 일상이에요. 그래도 가끔 저녁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산책을 나갑니다. 동네 여기저기를 같이 걷다가 슈퍼에 들러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사 먹고 돌아오죠. 저한테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기도 해요.”



지금까지 만들어온 프로그램도 ‘남들과 다른’ ‘이전에 없던’ 콘텐츠인데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외국인 여행자의 시선으로 한국을 보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들의 눈으로 보는 한국의 속살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우리가 외국에 가면 ‘와, 외국에 왔구나’ 실감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에 왔을 때 언제 ‘아, 여기가 한국이구나’라고 느껴지는지 알고 싶었어요.”


본인이 외국인이 되어 해외를 여행할 때는 어떤 스타일인가요.

“무작정 걷는 스타일이에요. 이 나라, 이 도시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알려진 데는 절대 안 갑니다(웃음). 그냥 무작정 걷다가 어느 골목에 들어가고 거기서 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또 걷다가 식당이 보이면 들어가서 밥을 먹고 돌아옵니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요. 이탈리아를 가더라도 피렌체나 두오모는 못 보고 돌아오는 타입이죠.”


MBC 에브리원에서 카카오TV로 이적한 뒤 처음 만든 프로그램이 〈밤을 걷는 밤〉이었는데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잘되면서 ‘작은 채널의 희망’이라는 말도 들었어요(웃음). 그때까지 최고시청률이 2%대였는데, 〈어서와〉는 5%를 넘기기도 했으니까요. 새로운 채널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내가 궁금하고, 보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이에요. 도시의 낮이 생활의 공간이라면 밤은 휴식의 공간이잖아요. 20대 때 밤 12시에 명동에 간 적이 있었는데, 낮이랑은 완전히 다르게 한적하더라고요. 그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어요. 낮과는 다른 밤의 풍경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 이질적인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에 대해서요.”


밤에는 걷는 것도 낮과는 다르죠.

“열기가 사라진 도시처럼, 뭔가 힘을 빼게 돼요.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몸이 식으면서 차분해지고요. ‘밤에’ ‘걷는다’는 그 외에 설명할 말이 별로 없어요. 기획안을 낼 때도 쓸 말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들으면 딱 떠오르는 풍경과 정서가 있잖아요. 유희열 씨도 기획 의도를 듣고는 ‘좋은데?’ 하더라고요.”


제작진은 “아무 말 없이 그냥 걷기만 해도 된다”고 했는데, 가는 곳마다 새로운 이야기보따리가 풀려 나왔습니다. 여느 인터뷰보다 인간 유희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느낌이고요.

“워낙 서울 곳곳을 잘 아는 분이었고, 어느 골목을 걷느냐에 따라 나오는 이야기도 달랐어요. 어릴 적 이야기, 지인들 이야기, 음악 이야기…. 밤 산책을 본인이 좋아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15분 포맷이라 다 담지는 못했는데, 보통 두 시간 남짓 걸었거든요. 카메라가 꺼진 쉬는 시간에도 이야기를 나눴어요(웃음).”



뇌의 활동이 장소 이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하죠.
우리 뇌는 장소가 바뀔 때나 새로운 장소에 갈 때 활성화된다고도 하고요.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얻을 때 걷기가 도움이 되나요?


“PD들의 창의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매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니까요. 제 경우에는 창의력이 아니라 관찰력이 중요한 거 같아요. 걸으면서도 늘 주변을 관찰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왜 그렇지?’ 하고 궁금해지는 부분이 생기고요. 그런 게 누적되다가 어느 순간에는 콘텐츠로 만들어져요.”


콘텐츠만큼 중요한 게 섭외일 텐데요.
〈밤을 걷는 밤〉은 유희열 씨 외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어려운 직구라면, 〈거침마당〉의 이금희 씨는 방송 경력 32년 만의 첫 예능 도전이라는 변화구이기도 했어요.


“그건 박명수 씨의 공입니다. ‘거침’마당은 원래 ‘거’성 박명수와 ‘침’착맨 이말년의 토론으로 기획되었어요. 그 균형을 잡아줄 인물이 누구일까 고민하던 중 박명수 씨가 ‘아휴, 이금희 선배만 아니면 되지 뭘~’이라고 농담을 했는데, 이거다! 싶더라고요. 결론적으로는 아주 좋은 선택이 되었고요.”


PD 역할에는 관찰력과 기획력 외에도 ‘경청’이 중요하네요.

“제가 PD를 준비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양대 산맥이 있다면 김태호 선배와 나영석 선배잖아요. 김태호 선배가 천재형이라면, 나영석 선배는 장인형이고요. 두 분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싶을 때가 있어요. 저는 둘 다 아닌 것 같긴 한데(웃음), 다만 이런 건 있어요. ‘정말 여기가 끝일까?’를 늘 질문해요.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건 없나?’ 그렇게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밀어불여서 ‘여기가 정말 끝이다. 더는 없다’ 싶을 때 뭔가 만족스러운 콘텐츠가 나오는 거 같아요.”


치열한 낮을 보낸 뒤, 서늘한 여름밤을 걷다 보면 끈끈한 땀이 말라가듯 축 처진 마음도 뽀송해진다. 밤 산책에는 그런 마법이 있다. 긴장이 누그러지고,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진다. 스스로를 혹독하게 밀어붙이고, 그 후에야 편안하게 잠이 드는 문상돈 PD도 밤마실을 나갈 때만큼은 헐렁한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는다. 선명하고 쨍한 장면은 그렇게 흐릿하고 느슨한 시간에 태어난다.

그 산책의 끝에는, 하루 종일 애쓴 나를 기다리는 우리 집이 있다. 유희열은 마지막 산책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한 곡이라며 시인과 촌장의 ‘풍경’을 소개했다. 가사는 단 두 줄의 반복이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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