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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떠난 청년들

이루라책방 김명선·이룩한·이루라 책방지기

도시를 떠나 당신의 꿈을…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강화도 석모대교 앞 야트막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루라책방’은 2021년 2월 문을 열었다.
시야를 가리는 빌딩도 없고, 귀를 피로하게 하는 소음도 없는 이곳에서는 하루 온종일 머물며 ‘북스테이’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벌써 입소문이 나 5월에는 예약이 가득 찼다.
책방 주인인 작가 부부와 어린 남매는 강화에 터를 잡은 뒤 도시에서는 몰랐던 삶의 활기를 누리고 있다.

#서울에서가까운 #산과바다의만남 #강화도에이런감성이 #해질녘은더좋아요 #북스테이 #글램핑도가능
책방지기 이루라, 김명선, 이룩한(왼쪽부터).
고개를 들면 바다가 보이고, 눈을 감으면 산새가 우짖는 소리가 귓가에 일렁인다. 해 질 녘의 낙조는 바다와 산을 공평하게 물들인다. 고비사막에서 건너온 매운 황사가 도시를 뒤덮는 중에도, 강화도 산중에는 제법 맑은 바람이 분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남짓 달렸을 뿐인데,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이다. 크기로는 넷째지만 접근성으로는 으뜸이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섬인 강화에는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역사와 전통도 있다.

김명선·이정훈 부부가 도시를 떠나 강화도에 정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강화도 내가면 황청포구로에 아이의 이름을 따 ‘이루라책방’을 열었다. 부부가 모두 작가라 책과는 늘 가까운 사이였다. 김명선 작가는 아이를 위한 동화를 써왔고, 이정훈 작가는 기획과 전략, 독서법을 아우르는 경영서를 써왔다. 서울과는 가깝고도 먼 곳에 부부가 직접 발품을 팔아 땅을 얻고, 집을 짓고, 불을 밝혔다. 누구든 이곳에 온 사람들은 꿈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는데 가장 먼저 꿈을 이룬 건 이들이었다.


시냇물과 달리기 시합 하던 시골에서의 추억

책방 정면으로는 서해의 낙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정훈 작가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김명선 작가는 전북 군산 출신이다. 그는 지금도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면, 동화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걸어서 30분 거리에 학교가 있고, 학교 가는 길에는 시냇물이 흘렀다. 멀지만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다. 시냇물에 흐르는 꽃잎, 풀잎과 달리기 시합을 하며 학교를 오갔다. 그 시절이 얼마나 풍성했는지는 커서야 알았다.

“남편과 아이가 생기면 시골에서 키우자는 얘기를 종종 했어요. 도시를 떠나기로 한 결정적 계기는 첫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였죠. 신혼집이 서울이었고, 한 동짜리 나 홀로 아파트였는데 단지가 작다 보니 놀이터가 없었어요. 길 건너 아파트에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외부인이라고 쫓겨난 적이 있어요. 놀이터를 가려면 겨울에도 15분 이상 아이를 태운 세발자전거를 끌고 가야 했죠. 아이를 키우기에 아파트는 아니란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제가 경험한 어린 시절의 시골 감성을 아이에게 절대 줄 수 없겠구나 싶었고요. 특히 하루 종일 곤충을 관찰하고 잡고,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더더욱 도시는 아닌 것 같았어요.”

이루라책방이 문을 연 건 올해 2월 26일이다. 준비한 지는 2년 정도 됐다. 처음부터 강화도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일단 서울에서 가까운 출판도시 파주로 옮겼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시골’을 생각한 건 아이들이 자라면서다.

아들 이룩한은 올해 열두 살, 딸 이루라는 일곱 살이다. 첫째는 이전 학교 친구들과 헤어지는 걸 아쉬워했지만 강화도의 학교에 금방 적응했다. 강화도 학교에는 여학우 네 명, 남학우 네 명이 다니고 있다. 여덟 명은 똘똘 뭉쳐서 공부도, 놀이도, 여행도 함께한다. 사교육이 들어갈 틈이 없다. 둘째는 유치원에 보냈다. 부모도 아이도, ‘루라는 사람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방을 열고 알게 됐다. 루라는 책방을 찾는 사람들과 잘 사귀고, 금세 친해졌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오면 루라와 친해지면서 금방 책방에도 적응했다. ‘타이틀롤’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저희가 이사 계획을 너무 첫째 위주로 한 게 아닌가 걱정했거든요. 아무래도 코로나로 유치원을 가다 못 가다 하니까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걸 어려워하더라고요. 저도 책방 준비로 바빠서 아이에게 신경을 못 써준 게 미안했는데, 막상 책방을 여니까 둘째가 손님들과 너무 잘 지내는 거예요.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 보니 또래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요.”


공중에 떠 있는 200권의 책으로 만든 조명


이루라책방에는 책방만 있는 게 아니다.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어 북스테이가 가능하다. 100% 사전예약제로 운영돼 미리 예약하면 글램핑도 즐길 수 있다. 초승달처럼 만들어진 앞마당에서는 공놀이도 불꽃놀이도 가능하다. 책을 이용해서 만든 조명, 초승달을 따라 반짝이는 불빛, 층고가 높은 책방, 후원의 작은 뜰도 모두 부부가 직접 설계했다.

“서로 고생하고 공부하며 만들었죠. 불빛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고요. 강화도가 워낙 저녁에 일몰이 예쁘니까 책방도 밤에 예뻤으면 좋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초승달정원은 초승달 모양으로 밤에 빛났으면 하는 생각이었고, 계단은 칸칸마다 빛났으면 좋겠어서 태양열 전지를 한 땀 한 땀 심었답니다.”

책방 구석구석에 부부의 피땀 눈물이 새겨졌다. 지금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두 사람과 두 아이의 힘으로 책방을 꾸려간다. 엄마 책방지기가 손님들의 마실 것, 쉴 장소 등을 제공하고 아빠 책방지기는 장작을 패고 정원을 정리한다.

“책방을 하면 책도 많이 보고, 작업할 시간도 있을 줄 알았거든요. 책방을 오픈한 지 3개월 차가 되어가는데, 글을 거의 못 쓰고 있어서 속상해요. 눈에 보이는 일 말고도 보이지 않는 일이 참 많아요. 책방이 자리 잡고 책방지기도 노하우가 생긴다면 지금보다 여유가 있겠죠(웃음)?”

2층에는 캠핑 도구가 갖춰져 있어 편하게 글램핑을 즐길 수 있다.
책방지기가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내는 덕분에 북스테이에 온 손님들은 여유롭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일단 여기에는 다른 소음이 없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새 소리뿐이다. 실내에서 책을 읽다가 정원에 나오면 5분 거리의 석모도와 바다가 보인다.

“해가 지면 초승달정원과 벚꽃정원에서 개구리와 새, 산짐승 소리를 들으며 모닥불을 피워요. 큼직하고 달콤한 마시멜로와 쥐포, 쫀드기를 불에 구워 먹기도 하고요. 모닥불이 끝날 때쯤엔 불꽃놀이를 하는데 아이들도 어른들도 좋아해요. 다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루라책방 홈페이지에는 근처 맛집과 배달 가능한 음식도 소개돼 있다. 봄에는 꽃게가 제철이라 꽃게탕과 꽃게찜을 하는 식당도 인기가 많다. 석모도에 있는 하나밖에 없는 중국집은 강화도에도 소문난 맛집이다. 강화도의 쌀과 순무는 맛이 좋기로 유명해서 한식집에서도 충만한 밥상을 받아볼 수 있다. 북스테이를 와서 식도락을 즐기는 것도 또 하나의 백미다. 하지만 시골에 시골의 맛이 있듯, 도시에도 도시의 맛이 있다. 가끔은 도시의 화려함과 편리함이 그리운 순간이 있지 않을까.

이루라책방은 홈페이지에서 미리 신청하면 북스테이도 가능하다.
“요즘 인터넷 쇼핑몰이 워낙 잘되어 있어서 시골에서도 필요한 일상용품은 그때그때 살 수 있어요(웃음). 저희 단골손님 중에 코로나로 당분간 석모도에 와서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분이 있는데 다시 도시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벌써 아쉽다고 하시던데요?”

시골에 가면 막연히 불편할 것이다,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서울촌놈 그러니까 도시인의 무지였다. 자연의 하루는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오히려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첫째 룩한만 해도 강화에 온 뒤로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북스테이를 신청하면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조용한 쉼을 누릴 수 있다.
“룩한이는 지금 수학여행을 준비하고 있어요. 학교에서 일정을 짜서 아이들을 인솔해 가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직접 일정을 짜보도록 했어요. 교통편부터 스케줄까지 아이들이 직접 계획하고 실행하는 거죠. 선생님은 아이들과 동행하긴 하지만 일절 관여하지 않고요. 얼마나 신나 하는지 매일 친구들이랑 계획을 짠다고 제일 바빠요.”

강화에 와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학교에서 아이의 교육을 전담해준다는 것이다. 애초에 학원에 보낼 생각도 없었지만, 방과 후에도 아이들의 학습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선생님은 여덟 명뿐인 아이들을 그만큼 더 정성껏, 친밀하게 지도하고 돌본다.


남들과 같은 길은 재미없잖아요

입구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이루라책방에서 200권의 책으로 만든 반짝이는 책 조명을 볼 수 있다.
“젊었을 때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직장과 아이들 학교 때문일 텐데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남들과 같은 길을 가는 건 조금은 재미없고 정답만 좇는 일 아닐까요? 어린 시절은 다시 오지 않잖아요. 나중에 돈이 생겨도 살 수 없는 거고요.”

책방 문을 연 지 이제 3개월 차, 주인에게나 손님에게나 허니문 같은 시간이다. 그만큼 알아갈 것도 맞춰갈 것도 많다. 아직은 수익이 나기보다 투자할 것이 많지만 아깝지 않다. 이들은 이루라책방과 백년해로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랄 동안에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작정이다.

“책방 초기 투자비용이 엄청 나죠(웃음). 지금도 계속 투자하고 있고요. 손님이 많이 늘었지만, 책방을 열고 나니 손 가는 데가 더 많아요. 책방을 방문한 손님들이 만족하고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지금은 솔직히 남는 게 없어요. 아직 생계는 아빠 책방지기가 본업에서 벌어온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어요.”

현재 책방의 수지타산은 남는 게 없지만 그래도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아이들에게 풍요로운 유년기를 채워준다는 점이니까. 여기에서 룩한이는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룩하길, 루라는 본인의 꿈을 이루어가길 바랄 뿐이다.

“아빠 책방지기가 본인 이름이 너무 흔하다며 아이 이름은 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이름을 고민하느라 출생신고 기간을 넘겨 벌금까지 냈을 정도로요. 아들은 이룩한이라는 이름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길 바랐어요. 아주 큰 걸 이루는 것도 좋겠지만 한 가정만 잘 이룩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이루라는, 돌림자를 쓰지 않고도 오빠 이름과 뜻이 같길 원했고 좋은 것들을 무엇이든 이루어봐라고 지었습니다.”

김명선 작가는 산새가 지저귀던 유년의 뜰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꿈을 책방을 통해 이뤘다. 이정훈 작가는 아이들을 통해 ‘흔하지 않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는 바람을 이뤘다. 이렇게 마음의 소리를 따라 살아가는 일, “목적한 바를 이룬다”는 성공(成功)은 먼 어딘가가 아니라 우리 집 앞마당에 초승달처럼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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