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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생활연구소 캘리X쏘이

비건, 숙제 아닌 축제!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하고싶은만큼 #할수있는만큼 #즐거운비건생활
#어렵지않아요 #비건연대기

“숲속에 한 마리 어린 호랑이가 살았습니다. 호랑이는 사냥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작은 동물이 겁에 질려 도망가는 걸 보면 저절로 발이 멈춰졌습니다. 너무 배가 고프지 않으면 되도록 다른 동물을 쫓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너무 배가 고파 숲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무에서 ‘통’ 하고 열매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열매는 너무 맛있었습니다. 호랑이는 너무 기뻐 열매를 먹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나누어주었습니다.”
비건 동화 《비건 타이거 바라》의 일부다. 이 동화책은 비건 커플인 김국희·이윤백 작가가 각각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비건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두 사람은 비건 패션 브랜드인 ‘비건타이거’와 이름이 같은 걸 알고 놀랐다고 한다. ‘비건타이거’의 양윤아 대표는 “괜찮다”고 했다. 같은 마음으로 만든 것이니, 옷이든 동화든 같은 이름이어도 “상관없다”고.



같은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비건페스티벌’의 문이 닫히면서 온라인 ‘비건생활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2019년 2월 시작한 비건생활연구소는 “비건에 대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모토로 카카오톡 채널을 운영했는데 한 달 만에 5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연구소와 함께 비건 카페 ‘달냥’을 운영 중인 쏘이(강소양)와 캘리(최서연)는 비건생활연구소를 사회적 기업이자 법인으로 발전시키려 애쓰고 있다. 메신저로 소통하던 창구도 ‘앱’이라는 더 안정된 기반으로 빌드업 중이다. ‘달냥’에는 비건 음식뿐 아니라 비건 제품, 비건 동화책과 도서, 다회용 용기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비건생활연구소의 씨앗이 된 비건페스티벌은 홀로 떨어져 있던 비건들이 한데 모여 음식을 나누고, 제품을 공유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이었다. 시작은 채식 식당의 작은 마당에서였다. 2013년 당시 식당의 막내 요리사였던 쏘이는 비건 친구들과 함께 ‘플리마켓’을 열었다. 이 작은 마켓에 수백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외국인도 많았다. 그때만 해도 ‘비건’들이 모일 커뮤니티가 많지 않았다. 이들의 마켓은 흩어져 있던 비건들에게 희소식이었다. 이 마켓이 2~3개월마다 이어져 2016년에는 비건페스티벌이 됐다.

“매년 봄·가을에 페스티벌을 열었는데, 해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페스티벌에 맞춰 한국 여행을 오겠다는 외국인들도 많았고요. 2019년에는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페스티벌을 열었는데 무려 만 명의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행사가 끝나고 정리하는데 쓰레기가 15L 봉투 하나도 채 나오지 않았다는 거예요.”(쏘이)

이렇게 많은 비건이 있었다는 것, 이들은 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이들이 추구하는 건 비단 음식이 아니라 지구에 해를 가하지 않는 ‘생활’이라는 걸 이들 스스로도 페스티벌을 통해 알았다. 축제가 끝난 뒤, 삶이 남았다. 비건의 삶은 음식에서 의식주로 확대되는 동시에 완제품에서 성분 분석으로 세분화됐다. 생명처럼 성장하고 성숙하는 비건의 삶에서 필요한 건 데이터베이스와 네트워크였다. 비건 인구가 많아지고 제품도 늘어나는데 기준점과 정보는 중구난방이었다. 페스티벌로 점처럼 떨어져 있던 비건들이 선으로 연결되었다면, 이제는 ‘생활연구’로 이 선을 입체화할 차례였다. 체계적이고 투명한 데이터시스템의 구축, 이들은 비건을 둘러싼 삶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비건 동화책 《비건 타이거 바라》.
“이름에 속지 마세요, 성분을 보세요”

이제는 골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비건 식당도 많고, 비건 인증이 새겨진 제품도 다양하다. 패션부터 화장품까지 비건의 영역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애매한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필기구가 그렇다. 동물성 잉크와 접착제가 들어간 문구류가 대부분이다. 응고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필기류에는 동물성 지방인 젤라틴이 들어간다. 비용이 저렴해서다.

누군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필기류는 계속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성분을 꼼꼼하게 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대부분의 비밀은 성분 안에 숨어 있거든요. 비건들이 다크초콜릿을 찾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도 우유가 들어가기도 해요. 어떤 제품에는 전지분유가 들어가고 또 어떤 제품에는 탈지분유가 포함되잖아요. 탈지분유는 건조 후 가공된 전지를 한 번 더 가공한 형태거든요. 이렇게 하면 유통기한이 더 늘어나요. 과자나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이 길 수 있는 비결이죠. 이를 다 소진하지 못하면 또 한 번 가공을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시즈닝’이란 단어로 더 감춰지죠.”(쏘이)

우유를 가루로 만들면 유통기한을 1년 이상 늘릴 수 있고 부피도 줄어든다. 그만큼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에 많은 가공식품 제조에 쓰인다. 전지분유는 우유를 그대로 건조한 상태, 탈지분유는 여기서 지방을 제거해 한 번 더 건조한 가루 형태다.

“해외에서는 식품의 성분 분석을 엄격히 해요. 문제가 되는 성분이 들어 있다면 이 제품을 전량 폐기하기까지 기관에서 관리하죠.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기업 중심인 경우가 많아요. 성분을 공개하라는 요구, 어떤 성분을 사용하지 말라는 목소리는 소비자들이 힘을 합칠 때 가능하죠.”(캘리)

비건 생활은 ‘윤리적 소비’로 이어진다. 다른 생명을 착취하는 제품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실제 제품의 성분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실천된다.


“자책할 필요 없어요, 평생 할 거잖아요!”

비건생활연구소에도 2년 사이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비건 컨설팅 사업을 해온 김승현 씨가 소장을 맡고, 비건페스티벌 운영진이었던 쏘이·캘리·휴리 그리고 비건업계 종사자였던 김미화 씨가 함께했다. 이들이 다루는 사업 영역이 커지면서 김승현 소장은 유통으로, 김미화 씨는 스마트스토어의 주인장으로 진출했다.

“비건과 관련한 창업을 지원하거나 네트워크를 구축해 교육도 같이 진행하려고 해요. 비건 생활은 일시적인 게 아니라 평생이니까요.”(쏘이)

대학 동기인 쏘이와 캘리는 이제 비건 20년 차에 접어든다. 이들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쏘이의 경우 우유, 치즈와 이별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 지금은 비건을 시작하는 초보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것도 이들의 역할 중 하나다.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는 “완벽한 비건의 삶에 실패한 이들의 절망과 자책”이다. 이들은 주눅 든 목소리로 ‘고해성사’를 하듯 연구소의 문을 두드린다. 쏘이와 캘리는 비건의 길에 들어선 이들이 너무 엄격하게 자신을 검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비건으로서의 삶이 너무 무겁지 않기를 바라서다.

“‘제가 실수로 고기가 들어 있는 육수를 먹었어요. 전 이제 버린 몸(?)이에요. 어쩌죠?’ 이런 식의 고민을 상담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저희는 그래요. 괜찮아요, 어차피 평생 할 거잖아요. 다시 시작하면 돼요.”(캘리)


성분을 꼼꼼히!
슬기로운 비건 생활



➊ 삼베로 설거지하자, 예고은삼베
설거지 세제는 물론 수세미도 성분이 중요하다. 예고은삼베는 삼베로 수세미·행주·커피필터·스크럽타올·의류·스카프 등을 만든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수세미와 달리, 독성이 없는 데다 땅에 묻으면 썩어서 사라진다. 삼베는 친환경 섬유다. 삼베의 섬유질 자체에 항균·항독·방충성 기능이 있다. 재배할 때부터 살충제와 독성 비료를 쓰지 않는다.



➋ 용기 성분도 친환경, 허로우 립밤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전 제품 라인이 비건이다. 법적으로 동물 실험이 필요한 국가에는 수출도 하지 않는다. 제품을 담은 상자도 100% 재활용 가능하고, 립밤 용기도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이다. 달콤하지만 너무 달지 않고, 촉촉하지만 너무 끈적이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다.



➌ 커피 찌꺼기로 만든 펜, 거북이보호작업장
글을 쓸 때마다 커피 향이 난다.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드는 수공예 펜인데,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했다. 사용 후에는 펜심만 분리해 땅에 묻으면 바로 퇴비가 된다. “느리지만 천천히 함께 가자”는 의미로 ‘거북이보호작업장’이라는 이름을 쓴다.
  •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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