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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콘돔 만드는 박진아 인스팅터스 대표

우리 사랑 이대로 괜찮을까?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비건콘돔 #크루얼티프리 #PETA인증콘돔
#비건이아니어도 #안전한관계를위해

콘돔이 처음 고안된 시기는 명확치 않다. 다만 확실한 건 콘돔 덕분에 성병과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이다. 17~18세기만 해도 콘돔은 동물의 창자·맹장으로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사랑을 나누는 사이, 다른 생명체는 고통받고 있었던 것. 19세기 들어 콘돔 재질이 고무로 바뀌며 실용성을 갖춰갔지만 동물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콘돔은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동물 실험을 거친다. 가장 잔인한 실험 중 하나는 토끼를 대상으로 한 질 자극 테스트다. 암컷 토끼 질에 콘돔 조각을 넣고 봉합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토끼의 질을 적출해 독성 유무를 확인한다. 이때 토끼가 받는 쇼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검사가 끝난 토끼는 모두 안락사된다.


인스팅터스 이브콘돔은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착한 콘돔인 동시에 고무 냄새가 전혀 나지 않으면서도 촉촉함이 장시간 유지되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브콘돔 공식몰(evecondoms.com)을 비롯해 쿠팡, 11번가, 롭스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건강까지 챙긴 국내 최초 비건 콘돔

이러한 비극 없이 콘돔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는 없을까. 사람을 위해 동물을 희생하지 않는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는 이와 같은 배경에서 탄생했다. ‘학대가 없다’는 뜻으로 동물 실험을 하지 않거나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윤리적 소비의 제품·서비스다. 이미 해외에서는 동물 실험의 잔인함을 통감하고 크루얼티 프리 섹슈얼 제품으로 선택권을 넓혀가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스테인 내추럴, 굿 클린 러브 등의 기업이 대표적이다.

섹슈얼 헬스케어 브랜드 인스팅터스는 크루얼티 프리를 지향하는 이브(EVE)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건강·자연·평등이란 가치에 입각해 콘돔, 윤활제, 외음부세정제, 생리컵 등을 판매한다. 박진아 인스팅터스 대표는 “유해 성분 사용하지 않기, 유기농 원료 함량 90% 이상 유지하기,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제품 구현하기 등을 추구한다”며 “민망한 성인용품으로 여겨지는 콘돔에 대해 ‘이러한 해석도 가능하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화장품이나 패션처럼 콘돔도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선택 범위가 넓어지면 콘돔에 대한 심리적 접근도 가까워질 거라 믿는다. 성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에 주저하지 않고 나선 이유기도 하다.

이브콘돔은 과거 제품 데이터를 활용해 추가적인 동물 실험을 차단했다. 그 결과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의 비건 인증을 받았다. 페타는 “이 회사는 어떠한 형태로든 제품, 원재료, 배합 등에서 동물 실험을 수행하거나 지원하지 않는 곳이며, 제품에 동물성 원료를 첨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증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건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 더바디샵 등이 활용하는 인증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이브콘돔은 국내 최초 비건 콘돔이 됐다.


박진아 대표는 “화장품은 법률상 동물 실험을 금지하고, 동물 실험이 불필요한 경우도 많아 크루얼티 프리를 실천하기 더 수월한 반면 콘돔은 의료기기로 분류돼 동물 실험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물 실험 외 대체 실험을 인정하거나 안전성을 증빙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소비층 2030세대

인스팅터스의 문제 제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5년 콘돔 속 니트로사민 문제를 발화한 것. 니트로사민은 고무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로 2등급 발암물질에 해당한다. 전자담배에서 검출되는 발암물질이 생식기에 닿는 콘돔에서 발견됐지만 대부분의 소비자가 모른 채 사용하고 있었다. 인스팅터스가 이 문제에 불씨를 지피면서 한국소비자원은 시중에서 판매 중인 27개 콘돔 제품을 대상으로 N-니트로사민류 잔류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15개 제품에서 1~3종의 N-니트로사민류가 검출됐다. 이후 인스팅터스를 시작으로 다른 브랜드들이 제품의 안전성을 개선해나갔다. 콘돔 업계에 불어온 건강한 변화였다.

“콘돔의 본질은 결국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친밀한 순간에 서로의 건강을 배려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해석에 공감하는 소비자가 는 것 같아요. 하나를 사용해도 더 좋은 걸 쓰고 싶은 분들이 이브콘돔을 선호하고 있어요. 물론 감촉이 좋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높지만요.”

이브콘돔의 주요 소비층은 2030세대다. 특히 이 땅의 이브(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콘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착향료·착색제가 없고 고무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다는 점이 부각돼서다. 꼭 비건이 아니어도 비거니즘에 공감하고 비건 제품을 찾으려 하는 소비층도 흡수했다.

한국 콘돔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인스팅터스는 2015년 설립 이래 매년 277% 성장하며 영향력을 입증해왔다. 2020년 매출액은 약 50억 원을 기록했다. 박 대표는 2018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이름을 올렸다.


크루얼티 프리 제품 선택부터

박진아 대표는 매주 월요일을 ‘고기 없는 날’로 정해 식단에 신경 쓴다. 유연한 채식주의자이지만 채식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간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구조적 문제에 공감할 뿐 아니라 축산업·어업 등이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서다. 비건·유기농 제품을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비건 제품이 다양하게 확대되는 게 실감이 나요. 다만 식품에 집중하는 성장이 아쉬워요. 우리 일상에서 동물성 원료는 정말 예상치 못하게 많은 제품에 들어가거든요. 식품 외에 크루얼티 프리 마크가 있는 제품을 고르는 것도 비거니즘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작은 선택들이 사소해 보여도 꾸준히 누적되면 세상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거예요.”

이브콘돔은 묻고 있다. 다른 생명체의 고통 위에 우리 행복을 쌓아도 되는 건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분명 대체재가 존재함에도 말이다. 가까스로 이 문제를 외면할지라도 안전성은 다른 차원이다. 콘돔으로 피임과 성병 예방을 지켰어도 당신 몸까지 진짜 안전했는지 생각해봄 직하다. 나와 소중한 사람을 위해, 설마 아무거나 준비하진 않을 테니까.
  •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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