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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니즘

신하나·박진영 ‘낫아워스’ 공동 대표

육식, 끊기 어렵다면 채식부터 입으세요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비건패션 #우리것이아닌 #선인장가죽지갑
#진짜보다더좋은가죽 #질리지않고오래쓰는

그래, 채식 좋은 건 알겠다. 건강에도 좋고 동물의 희생도 막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줄인다니까. 문제는 실천이다. 고기에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는 것은 물론 음식 맛을 내기 위한 육수나 미량의 고기마저 피하기란 쉽지 않다. 고기 굽는 회식 문화는 또 어떤가. 채식한다고 빠지거나 멀뚱멀뚱 앉아만 있다가는 별난 직원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식단에 변화를 주기 힘들다면 입는 변화부터 시도하는 건 어떨까?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는 일도 엄연한 비거니즘 실천 방법이다. 행동의 범위나 속도는 각자 페이스대로 조절하면 되니까. 비건 패션 브랜드 낫아워스는 입는 비거니즘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낫아워스(not ours)는 말 그대로 우리 것이 아니란 의미다. 우리가 빌려 쓰는 지구와 환경을 최대한 아껴 쓰고 돌려주자는 뜻이다. 또한 불어로 욱스(ours)는 곰을 가리킨다. 곰과 같은 동물의 가죽·털 소재로 제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고 있다.



디자이너 박진영 대표는 2009년부터 채식을 해왔다. 채식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던 때였다. 채식 식단에 담긴 그의 소신을 바라보는 배타적 시선은 견딜 수 있었지만, 패션에 동물성 소재를 아예 사용하지 않기란 어려웠다. 의류, 구두, 벨트 소재를 선택할 때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어느 날 패션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 신하나 대표가 채식을 하겠다고 했다. 다만 결이 달랐다. 매일 먹는 음식을 단번에 바꿀 수 없으니 쇼핑할 때 동물성 소재를 구매하지 않는 것부터 시도해보겠다고 했다. 가능한 일일지 궁금하면서도 뭔가 꿈틀했다.

막상 비건 소비는 쉽지 않았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살 수 있는 게 너무 없었다. 두 사람은 직접 비건 옷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낫아워스의 2017년 첫 번째 프로젝트 ‘페이크퍼 코트’ 제작이 시작됐다. 큰 반향을 일으킨 건 아니지만 펀딩은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음을 입증한 동시에 비건 패션에 관심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낫아워스는 프로젝트 품목을 스웨트셔츠, 페이크레더 가방·지갑 등으로 확대했다.



실크·울·앙고라 동물성 원료 모두 배제

비건 패션 제품은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전체 라인에서 비건을 적용하는 브랜드는 드물다. 퍼나 악어·뱀 가죽 소재를 점차 배제해도 동물성 소재를 모두 빼기까지는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다. 누에고치를 삶아 만드는 실크, 동물의 털을 이용하는 울·앙고라·캐시미어, 옷·신발·가방에 폭넓게 활용되는 가죽 등 동물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기성 브랜드가 완전한 비건 브랜드로 전향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럼에도 낫아워스는 모든 제품에서 동물성 원료와 환경에 치명적인 PVC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유기농 면을 사용하고 동물 가죽은 비건 가죽으로, 자개단추는 야자나무 단추로 대체했다.

또한 낫아워스는 가급적 질리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 유행이 지나 버려지는 옷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특이한 제품을 만들기보다 기능에 충실한 제품 디자인에 방점을 뒀다. 실제 낫아워스 쇼룸을 둘러보면 옷장 속에 딱 있어야 할 기본 아이템만 갖춰둔 분위기가 역력하다.

“트렌디한 제품보다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추구해요. 유행성이 강하거나 품질이 떨어지면 패스트 패션으로 흐를 수 있잖아요. 내구성이 강한 기본 아이템 위주로 만들어요. 면도 유기농, 피마코튼 등 고품질을 사용하고요. 패션도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왔어요. 소비자의 시선이 변하면서 패션기업들의 방향이 바뀌고, 또 다른 소비자도 비건 패션으로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고요.”(신하나)

낫아워스는 1년에 열 번가량 의류, 가방, 지갑, 소품 등 신제품을 내놓는다. 대량으로 생산하기보다 사전 주문을 받아 좀 더 여유 있게 제작한다. 다른 브랜드들이 SS/FW 시즌을 나눠 다양한 제품을 쏟아내는 것과 비교된다. 제품을 많이 만드는 게 과연 좋은 걸까, 되묻는 데서 출발한 방식이다. 덕분에 재고 걱정도 덜 수 있었다.


진짜보다 더 좋은 가죽을 지향하는 낫아워스의 인조가죽 새들백(왼쪽)과 선인장 가죽으로 만든 만두백(오른쪽). 두 제품 모두 비건 소재를 사용했다.
선인장 가방, 예쁘고 가벼운데 착하기까지!

낫아워스에서 눈에 띄는 상품은 단연 선인장 가죽 라인이다.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한 선인장 가죽 카드홀더는 목표 금액 대비 427%를 달성하며 뜨거운 반응을 모았다. 선인장 가죽은 멕시코에서 비와 흙 속의 무기질로만 자란 선인장을 원료로 한다. 선인장 잎을 수확해 3일 동안 햇볕에 말리고 가루로 빻아 다른 성분과 섞어 섬유화 과정을 거친다. 오랜 시간 사용 후 버려져도 퇴비화 조건에서 1200일이면 50%가량 생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간다.

선인장 가죽에는 동물 가죽 제조과정에서 사용되는 중금속, 프탈레이트, PVC 등의 독성 물질도 들어가지 않는다. 동물 가죽과 달리 무두질이 없기 때문에 노동자가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일도 없다. 무엇보다 실용성이 높다. 선인장 가죽 가방은 일반 가죽 가방보다 두세 배 가볍다. 당연히 몸에 가해지는 무게 부담이 덜하다. 동물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인 친환경 소재인 것이다. 최근 패션업계에서는 선인장 외에도 파인애플, 사과, 버섯, 한지 등을 비건 가죽 소재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비건 제품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소재를 볼 때 기존 소재와 비교했거든요. 인조모피가 진짜 모피보다 가벼운지, 따뜻한지, 부드러운지. 하지만 요즘은 아예 다른 소재로 인식하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여요.” (박진영)


변하지 않는 듯해도 세상은 분명 변하고 있다

비거니즘은 철학일 뿐이다. 박진영·신하나 대표는 비건을 얼마나 완벽하게 실천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현대 사회에서 동물성 소재가 언제 어떻게 사용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완벽한 비건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봤다. 다만 비건에 기반해 생활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비거니즘은 동물을 착취하는 모든 것을 배제하는 삶의 방식이에요. 단지 고기를 먹고 안 먹고의 차원이 아니죠.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저희처럼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고르고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에 가지 않고, 동물성 원료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 모두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식이에요.” (신하나)

“할머니, 어머니 세대 때는 모피코트 하나 갖고 있으면 최고였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럭셔리 브랜드에서도 사업성이 좋은 분야임에도 만들지 않고 있어요. 잔인하고 환경에도 안 좋다는 인식이 확산돼서죠. 마찬가지로 식물성 대체 소재도 널리 사용되는 날이 올 거예요.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안 변하는 것 같은데 또 변하는 게 세상이잖아요.”(박진영)
  •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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