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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현 임오반 대표

어머니의 손맛을 잇는 젊은 병과 장인의 꿈

글·사진 : 서경리 기자

눈 쌓인 성북동 골목길, 통유리창 너머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네 평 남짓 자그마한 가게가 있다. 간판도 없고 한옥 지붕 서까래 아래로 테이블 서너 개와 커다란 부엌이 전부인 공간. 곳곳에 오래된 다기와 도자기, 소반이 아기자기하게 진열돼 마치 누군가의 부엌을 훔쳐보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떡시루 위로 김이 뽀얗게 퍼져 나가는, 떡 짓는 냄새가 구수한 병과점 임오반의 겨울 풍경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즐겨 찾으며 알음알음 알려진 임오반은 한식 디저트 가게다. 대학에서 한식을 전공한 청년 요리사 임오현 대표는 우리 전통 병과 본연의 맛을 알리고자 3년 전 가게 문을 열었다. 병과는 떡과 한과를 말한다.

임오반의 메뉴는 주인장이 평소 즐겨 먹던 전통 한식 디저트류에 기반한다. 막걸리를 발효해 만든 증편에 푸성귀와 제철 과일을 얹은 ‘임오반 새참’이나 끈적이지 않고 결대로 바삭하게 부서지는 개성식 약과, 100일 동안 숙성한 유자주머니를 올린 셔벗 등 전통 음식에 그만의 색을 입혔다. 그는 본연의 한식 조리법을 따르되, 모양새나 재료의 변화로 현대를 담아낸다. 재밌지만 결코 유치하지 않은, 맛의 변주다.

임오반은 임오현 대표의 이름 두 자와 ‘상차림’을 뜻하는 ‘반(盤)’을 붙여 만든 이름이다. 말 그대로 청년 병과 장인 임오현의 손맛이 담긴 한 상 차림이다. 임오반을 즐겨 찾는 이들은 성북동 인근 대학생들과 외국인들이 많다. 20대가 주 고객층. 차 마니아들도 단골로 찾는다.


임오반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어려서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저의 성향을 알아본 선생님의 추천으로 특성화고 조리학과에 입학해 한식·양식·중식 가리지 않고 배웠습니다. 대학에서는 한식을 전공했고요. 한식은 차분하면서도 섬세한 제 성격과 잘 맞았어요. 병과에 관심을 가진 건 대학 때 우연하게 ‘떡 동아리’에 들어가면서예요. 쌀을 불리고 빻고 찌는, 하나하나의 공정이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떡 본연의 맛에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졸업 후 병과점과 외식업체에서 수년간 일하고, 전통궁중병과연구원에서 수학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 자그마한 병과점을 열게 됐습니다.”



#한식, 느리지만 정성스러운 음식

골목마다 제과제빵점이 즐비하지만, 병과점은 흔치 않은데 왜 하필 병과에 꽂혔나요.

“학교에서도 한식은 제일 인기 없는 학과였죠(웃음). 동기들 대부분이 제과제빵이나 호텔조리의 길로 떠났어요. 하지만 저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았어요. 한식과 병과는 우리나라에 국한돼 있고, 극히 일부만 종사하잖아요. 이 분야에서 달인이 되고 싶었어요. 대학 시절 호텔 연회장에서 일해봤는데, 으리으리한 건물, 빠르게 돌아가는 주방 분위기가 저와 맞지 않았어요. 취사병으로 군대 생활을 할 때는 사람 머리만 한 국자로 볶고 끓이는 대량 급식에 질려버렸어요. 요리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다수를 위한 식탁보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을 다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양식보다 한식으로 마음이 갔고, 그중에서도 섬세한 변주가 가능한 병과에 매료됐습니다.”


임오반의 약과는 한입 깨물면 바스락 부서지면서 입안에서 소금과 후추가 톡톡 터져 달고 짜면서도 매콤한 맛이 납니다. 전통 한과가 맞나 싶을 정도로 현대적인 맛이에요. 프랑스 과자 밀푀유처럼 켜가 나 있어 식감도 색다르고요.

“흔히 먹는 꽃모양 약과는 다식 틀에 찍어 만들어서 다식과라고 불러요. 제가 만드는 약과는 켜가 살아 있는 개성식 약과입니다. 원래는 정사각형으로 모가 나서 모약과라고 부르는데, 저는 먹기 쉽게 직사각형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후추와 소금을 굵게 빻아서 식감과 감칠맛을 살렸어요. 어떻게 하면 전통 한과에 현대적인 맛을 심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한창 유행하던 ‘솔티드 카라멜’을 맛보고 단맛에 짠맛과 매콤한 맛을 접목했어요. 전통의 조리 방식은 지켜가되 맛과 디자인에서 현대적인 감각과 재미를 주는 거죠.”



#빵 대신 증편, 소시지 대신 버섯을 넣은 한국식 브런치

메뉴 구성이 알찹니다. 이곳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임오반 새참’을 소개해주세요.

“새참은 식사와 간식, 그 사이에 있어요. 주전부리보다 무겁고, 식사보다는 가볍죠. 한국식 브런치라고 보면 됩니다. 빵을 대신해 증편을 구워서 올렸어요. 막걸리 효모만 써서 뭉근하게 발효시키는데, 부드럽고 쫀득한 식감에 달큼한 맛이 나요. 여기에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푸성귀나 버섯, 대추조림, 제철 과일을 곁들였죠. 그 위에는 유자드레싱을 뿌렸고요. 요리에 사용하는 재료 대부분은 충북 옥천에 사시는 저희 할머니가 텃밭에서 재배한 신선한 농산물이에요. 오미자나 금귤은 지역 농부들에게서 직접 받아서 쓰고, 음식을 담는 접시는 도예작가의 작품이죠. 전통의 맛을 체험하는 분들이 귀한 음식을 대접받는 기분을 느끼셨으면 해서요.”


숙성한 유자주머니를 올린 셔벗도 새롭습니다.

“화채를 모티브로 만든 셔벗은 먼저 배를 곱게 채 썰어 접시에 구절판처럼 둥글게 펼치고 그 위에 유자셔벗이나 석류셔벗으로 색 조합을 맞추고 숙성한 유자주머니를 올리죠. 유자주머니는 6등분으로 칼집을 내서 유자의 속을 파낸 다음 유자 속과 밤, 대추, 석이버섯을 채 썰어 조물조물 무치고, 김치소 넣듯 껍질 안에 다시 넣습니다. 이를 실로 동동 싸매 100일 이상 숙성시켜 내놓죠.”


손도 많이 가고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군요.

“약과를 만드는 데도 최소 3일이 걸려요. 기름을 쭉 뺀, 적당한 당도의 약과를 만나기까지 필요한 기다림이죠. 가을과 겨울이 제일 바쁜 시기입니다. 사과로 정과를 만들고 오미자청을 담그거나 유자를 손질하며 1년 치 장사를 갈무리하죠. 덕분에 지금은 어깨, 다리 안 아픈 데가 없어요. 노동에 비해 남는 게 없는 장사죠(웃음).”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요.

“한 노신사가 약과를 맛보고 ‘어머니의 손맛이 난다’며 좋아하셨어요. 또 우연히 들른 손님이 ‘맛있네, 어떻게 이런 걸 생각했지?’라고 하셨는데, 처음으로 ‘내 길을 잘 가고 있구나’라는 믿음과 확신이 생겼어요.”


전통을 지킨다는 건 쉽지 않은 길이에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한과를 먹고 맛없다고 느낀 경험이 있을 거예요. 부모님 세대는 집에서 한과를 만들어 먹어서 맛에 대한 기억이 있지만, 제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시중에서 파는 맛없는 한과를 전통의 맛으로 착각하죠. 그러다 보니 한과는 멀리하고 양과를 즐겨 찾아요. 이렇게 계속 가다 한과 본연의 맛이 잊히지 않을까 걱정돼요. 저 같은 소시민이 작은 가게로나마 전통을 이어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맛을 오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임오반은 전통 병과의 맛을 지켜나가되,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공간이에요. 전통의 맛과 저의 창의적 시도 하나하나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또 하나의 새로운 맛이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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