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하며

살롱, it 수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벨 에포크 시대의 살롱이 배경이자 주인공입니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가 살롱에 모여 예술과 삶을 치열하게 논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지요. 18세기 말~19세기 초 프랑스 파리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황금시대였습니다. 화려하고 휘황찬란했으며, 예술과 문화가 여기저기 꽃피며 수준 높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1900년대 초반 근대의 경성도 비슷했습니다. 천재 문학가 이상(李箱)이 운영하는 제비다방에는 예술인들이 모여 지적 담론을 주고받았고, 이는 현대문학의 시조격인 ‘구인회’ 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몇 해 전부터 대한민국에 때아닌 살롱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헤어살롱도, 룸살롱도 아닙니다. 18세기 프랑스나 근대 경성에서 유행하던 바로 그 살롱입니다. 처음 보는 이들이 ‘취향’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여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각자의 취향을 공유합니다.

살롱 부활의 이면에는 현실 도피적 황금시대 콤플렉스가 자리합니다. 현실이 척박할수록 영광스러운 과거를 그리워하는 법이니까요. 경성의 ‘모던뽀이’를 추억하고, 개화기 의상이 다시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현대판 살롱 유행의 주역은 30대를 주축으로 한 밀레니엄 세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커뮤니티 플랫폼을 중심으로 살롱의 존재를 알리고, 멤버를 모으고, 프로그램을 홍보합니다. 살롱 문화를 전파하는 공간 스타트업 역시 30대가 주축입니다.

살롱 공간에서는 수다 그 이상이 꽃핍니다. 허구한 날 만나는 친구와 하나 마나 한 넋두리(도 물론 중요하지만)를 주고받기보다는, 또 학연과 지연을 매개로 겉도는 대화를 주고받기보다는 ‘알맹이 있는 수다’를 추구하는 이들이 모입니다. 더 의미 있고, 더 가치 있는 것을 찾는 고민들이 모이는 공간이 곧 살롱인 셈이지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치열하게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이들에게는 인사이트가 생깁니다. 취향 공동체인 살롱이 많아질수록 누구나 주인공인 세상, 각자의 점들이 빛나는 세상에 가까워지는 듯합니다. 고유성이 빛나는 개인들이 많아진다는 건 더 나은 사회로 한 발 내딛기 위한 청신호로 읽힙니다.

거대 담론을 앞세워 떠들썩하게 세상을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듯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의미와 가치를 전파하며 세상을 바꿔나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소영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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