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의 부활

취향 공동체 ‘문토’ 이미리 대표

찾았다, 내 마음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소셜 살롱 문토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문을 열었다. ‘문토’는 ‘묻고 토론한다’는 의미다. 사회에서 나는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다 좋아요”라고 말하며 대세를 따른다. 이곳에서는 다르다. 왜 좋은지, 왜 좋지 않은지를 분명하게 묻고 치열하게 답한다. 적당히 사회화된 개인으로 사는 데 익숙하던 이들이 이곳에 오면 겉옷을 벗고 가면도 벗는다.
둔감해진 촉수들이 깨어나고, 잠자던 감각이 기지개를 켜는 시간. 퇴근한 이들이 다시 소셜 살롱 문토로 출근하는 이유다. 모임이 열리면 회원들은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클래스에 합류한다.

예를 들어 ‘오늘의 가사’ 모임은 일상의 조각으로 가사를 써보는 시즌제 멤버십 모임이다. 스쳐 지나가지지 않는 맴도는 말들이 있다면, 모아서 작사를 하고 멜로디에 얹어본다. 이 모임의 리더는 작사가이자 뮤지션인 임유정이다. 신청 요강에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와닿는 문장이나 글귀, 노랫말을 노트에 적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 이들은 2주에 한 번, 수요일 저녁 7시 30분에 만나 10시 30분까지 ‘내 인생의 가사’를 만든다. 준비물은 ‘편안한 마음’, 수강료는 25만 원이다.

‘오늘의 가사’뿐 아니다. 어떤 이들은 영화를, 어떤 이들은 음악을, 또 어떤 이들은 음식에 대해 묻고 토론한다. 모임은 점점 많아져 최근에는 재테크 모임, 마케팅 모임도 생겼다. 이들이 묻고, 또 찾는 답은 사실 ‘나 자신’이다. 문을 연 건 평소 영화와 연극에 관심이 많던 이미리 대표지만, 문토는 현재 자기 생명력을 갖고 분화,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집요한 질문을 통해 나는 어떤 작품에 반응하는 사람인지, 어떨 때 기쁘고 또 어떨 때 감동을 느끼는지 알아간다. 직장에서의 공적인 삶을 마치고, 사적인 시간이 시작되면 이들은 삼삼오오 합정동의 어느 골목으로 모여든다.


좋은 질문은 좋은 나를 만든다

문토에서 활동 중인 ‘거기서부터 쓰기’ 모임.
다방면의 경로로 찾아내는 건 결국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취향이다.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고, 또 같을 수 없는 나라는 세계다. 문토를 기획한 이미리 대표는 자신 역시 질문을 통해 고유한 관점과 시선의 집합인 취향을 길러왔다고 말한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특별히 불만이 있거나 불만족스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남들이 좋다고 해서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 아니라 나만의 좋은 것, 나라서 더 좋은 것이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취향을 알아가는 건 삶을 풍요롭게 만들죠.”

처음엔 작은 소모임이었다. SNS에 ‘퇴근 후 함께 연극 워크숍을 해보자’는 제안을 올렸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반응했다. 취미 공동체와 취향 공동체가 다른 점은, 그저 모이는 것만으로 좋은 동호회와는 달리 매번 유의미하고 깊이 있는 모임을 갖기 위해 애쓴다는 점이다.

‘결국은 경제다’ 모임.
근황 토크나 사담보다는, 주제에 대한 토론에 집중한다. 때문에 문토에서는 ‘좋아하는 것이 명확하고, 주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인 리더가 함께한다. 예를 들어 현대 미술 모임에는 미술 전문지 에디터가 리더로 참가해 동시대 현대 미술의 현재를 살피고, 미술관에서 작품을 같이 관람하기도 한다.

취미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 좋아하는 것을 나눈다는 건 비슷하지만,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취향을 쌓아간다는 점이 문토가 가진 차별점이다. 실제로 음악 공동체에서 ‘묻고 답했던’ 이는 “뾰족했던 나의 취향이 더 넓어진 것 같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경험의 틀과 자장의 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새로운 만남을 통해서만 세계를 넓힐 수 있는데, 이 역시 혼자의 힘으론 쉽지 않죠. 문토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 시야와 관점, 취향의 스펙트럼이 넓어집니다.”

‘모더니스트 키친’ 모임.
어른이 될수록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가는 곳만 가게 되는 이들에게는 반짝이는 경험이다. 이미리 대표 역시, 모임에는 회원으로 참석할 때가 많다. 그도 모임을 통해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미식이나 먹는 행위에 관심이 없었는데, 요리 모임을 하면서 삶에서 충만하게 먹고 마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어요. 바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핑계로 나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한 끼를 대접한 적이 없다는 걸 알았죠. ‘끼니를 때우며’ 살던 제가 요리 모임에 참여하면서 나를 위해 좋은 식재료를 고르고 정성껏 차리는 과정이 얼마나 충만한 시간인지를 알게 됐어요.”


혼자를 넘어 ‘같이’의 힘

‘음악의 이해’ 모임.
새롭게 알게 된 취향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든다. 연극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의 경우 직접 작품을 만들어 올리는 데까지 다다르기도 한다. 대학에서도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며 ‘몸짓’에 관심이 많았던 이미리 대표는 문토 연극 모임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을 만나면서 그 깊이가 더욱 깊어지는 걸 느꼈다.

“삶의 연륜이 쌓였다는 건 그만큼 몸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삶의 모자이크가 많다는 뜻이더라고요. 또래 친구들과 할 때와는 다른 감동이 있었습니다.”

글쓰기 모임도 마찬가지다. 일단 모임이 있으면 ‘어떻게든 쓰게 된다’는 장점이 있는데, 이렇게 써낸 글들이 모이면 한 권의 문집으로 나오기도 한다. 석 달 동안 글쓰기 모임을 완주한 뒤 독립 출판물을 펴낸 이도 있었다. 혼자였다면 쉽게 도전할 수 없었을 일들이, 소셜 살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모임 시간을 누구나 참가하기 부담 없는 시간으로 정하다 보니 평일 저녁이나 휴일이 될 때가 많아요. 문토 라운지에 모이는 이들도 퇴근하고 찾아오는 직장인들이 많고요. 저 역시 다른 분들이 쉴 때 일하고, 일할 때 쉬는 방식이 쉽지는 않지만 이곳에 찾아오신 분들이 지친 얼굴로 들어왔다가 뿌듯하고 즐거운 얼굴로 돌아가는 걸 보면 아무리 늦게 문을 닫아도 그 시간이 풍요롭게 느껴집니다.”

‘생각하는 주방’ 모임.
어떤 모임에는 회원으로 참여했던 이가, 다른 모임에서는 리더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 모임에 참여하던 한 회원은 ‘이직의 비법’이라는 모임의 리더가 되기도 했다. 모임을 통해 그의 다채로운 이력이 알려져 이 부분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위한 강좌를 개설한 것이다.

파일럿식으로 시작된 강좌는 모이는 이들의 수요에 따라 더 길어지기도, 더 커지기도 한다. 이미리 대표를 비롯해 문토의 기획자들은 각 모임의 매뉴얼과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데 참여한다. 전문가의 일방적인 가르침이나 학원식 사교육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문토의 방향이다. 어디까지나 ‘묻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도록 한다.

“숨겨져 있던 자기 안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데 모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취향은 알수록 더 세밀해지기 때문에 역으로 더 넓은 범주로 확장될 수 있죠. 앞으로도 보다 다채로운 모임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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