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우-뉴트로

이지언 하플리 대표

한복 입던 대학생, 코리안 뉴트로 패션 이끌다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전통은 더 이상 고리타분한 옛것이 아니다.
‘트렌디’하고 ‘힙’한 흐름이다. 1020세대는 복고의 향수가 아닌, 새로운 장르로 전통을 바라본다. 레트로를 재해석한 ‘뉴트로’의 유행이 그렇다. 전통 한복을 요즘의 것으로 풀어낸 패션 브랜드 ‘하플리’는 뉴트로 패션의 유행 중심에 있다.
“하플리가 만드는 옷은 ‘매일 입는 한복, 특별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일상 한복’입니다. 하플리는 ‘한복(hanbok)’과 ‘적용하다(apply)’의 합성어로, ‘한복에 일상을 적용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죠.”

청년 창업가 이지언 대표는 2015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모던 한복’을 내세운 패션 브랜드 ‘하플리’를 론칭했다. 하플리의 옷은 전통과 모던,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지던 근대 서울, 경성 패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이 대표는 하플리를 한국 전통 복식이 아닌 ‘코리안 뉴트로 스타일’로 정의한다.


대학 3학년 시절, MD를 꿈꾸며 취업을 준비하던 이지언 대표는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아 모던 한복을 즐겨 입고 다녔다. 종종 한복 입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한 달 만에 3000여 명의 팔로어가 늘었다고. 피키캐스트에 ‘일반인의 흔한 한복 화보’로 소개되며 54만 뷰를 기록할 만큼 화제를 모았다.

“제 사진을 보고 ‘한복 어디서 구했냐, 이런 한복 스타일은 처음 본다’며 관심을 많이 가져줬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이 한복에 관심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취업에 고민이 많을 때였어요. ‘한복을 일상 패션으로 제안하는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기왕이면 졸업 전에 창업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망해도 학교로 돌아가면 되니까요. 그렇게 3년째, 아직도 졸업을 못했어요, 하하.”


이지언 대표는 평소 즐겨 찾는 모던 한복 브랜드를 모아서 2015년 9월 홍대에서 팝업 스토어 하플리를 열었다. 그의 패션 취향을 궁금해하던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뤄 첫날에만 400여 명이 방문, 하루 매출 1000만 원을 넘겼다. 이후로도 3개월에 한 번씩 마켓을 열었다. 초기 자본 500만 원으로 시작한 하플리는 1년 사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와 ‘윤민창의투자재단’에서 1억 원의 투자를 받고 매달 2000~3000만 원의 수익을 올리며 고공 성장했다. 지난해 연 매출이 3~4억 원을 웃돈다.


하플리의 자체 브랜드를 만든 건 2017년이다. 기존 한복을 유통하는 데 한계를 느낄 즈음이었다. 이지언 대표는 하플리만의 특색 있는 무언가를 찾던 중 ‘경성 패션’이라는 콘셉트를 떠올렸다.

“전통 한복에 양장과 기성복을 녹여냈어요. 우리나라 복식사에서 한복이 기성복과 가장 잘 어우러진 때가 1900년대 초반, 개화기(근대 경성)예요. 한복에 레이스 양말을 매치하고, 양산을 들고 하이힐을 신었죠. 그때의 복식을 재해석해서 2018년 ‘경성 아가씨’라는 여성복 라인을 만들었습니다.”


남성복 ‘조선호랑이’ 론칭

지난 3월 7일 와디즈 펀딩을 통해 처음 선보인 하플리의 유니섹스 라인 ‘조선호랑이’.
전통 복식을 공부하기 위해 책과 논문을 찾았다. 전문가만큼은 아니지만, 원하는 디자인 조합은 자신 있었다. 한복과 기성복의 요소요소를 가져와 새로운 한복, 전에 볼 수 없던 ‘하플리’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 브랜드 콘셉트를 짜고, 시안을 찾고, 재봉사와 의논해서 제품을 만들고 샘플을 확인하기까지, 모든 공정에 그의 손이 닿았다.

“디자이너라는 말은 과분해요. 저는 기성복과 한복의 좋은 요소를 가져와서 편안하고 예쁘게 새로운 옷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한복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플리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바느질하고 패턴을 뜨는 전문가가 아니라 브랜드 디렉터죠.”

이 대표는 모던 한복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도 진행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는 사회적 기업 ‘마리몬드’와 함께 진행한 ‘하플리X마리몬드’는 나오기가 무섭게 완판됐다. 이후에도 무궁화잡화점, 디자이너 혜강 등과 협업하며 새로운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3월 7일에는 디자이너 다이노와 협업한 하플리 최초의 남성복 ‘조선호랑이’ 라인도 와디즈 펀딩을 통해 공개했다.

“조선호랑이는 잊힌 조선의 강호, 호랑이를 우리 옷에 녹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남성·유니섹스 디자인 라인입니다. 진취적인 한국인의 기상을 호랑이 형태로 그려낸 한반도 지도, ‘맹호기상도’를 새롭게 해석했죠. 깃이나 흉배와 같은 한복의 섬세함을 살린 한국 스트리트 패션으로, 청바지부터 조거팬츠, 운동복과도 잘 어울리는 옷이에요.”

하플리의 조선호랑이는 와디즈 펀딩 개시 3분 만에 목표액 1500% 달성, 24시간 만에 7000%를 넘기며 7000만여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날 리워드 부문에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모금 기간은 열흘 남았는데, 재킷 라인은 이미 완판됐다.


재구매율 80%, 하플리즈

을지로에 있는 하플리 쇼룸.
하플리를 즐겨 찾는 이들 대부분은 일상복으로 한복을 입는다. 한복이라는 특수성 속에서도 재구매율이 80%에 달할 정도. 이지언 대표는 하플리를 찾는 단골손님을 ‘하플리즈’, 줄여서 ‘플리’라고 부른다.

“저 혼자 하플리를 운영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하플리의 성장은 하플리즈 덕분입니다. 인스타그램에 하플리를 검색하면 해시태그(#)로 6000여 개의 피드가 떠요. 고객 피드백이 좋아요. 광고비를 쓰지 않아도 ‘플리님’들이 입소문을 내주죠. SNS에 ‘착샷’을 올려주는 것만으로 광고가 됩니다. 이게 모두 우리 자산이에요. 나 혼자만의 아이디어나 기획, 실행이 아니에요. 항상 고객들에게 먼저 물어보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기에 고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지언 대표가 하플리를 만들 때 세운 카피는 ‘한복을 트렌드로 만드는 하플리’였다. 3년 만에 이 말이 현실이 됐다. 하플리는 이제, 전통과 유행의 흐름 안에서 뉴트로 열풍 그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야구 선수들은 홈런을 치기 위해 만 번의 스윙을 해요. 손이 까지도록 스윙을 연습해야 몸에 감이 생겨서 공이 올 때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는 거죠. 사업도 똑같아요. 무언가를 유행시켜야지, 터트려야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계속해서 올라가려는 ‘습관’을 기르면 공이 올 때 칠 수 있는 거죠. ‘닥치고’ 일하다 보면 실력이 오르고, 실력이 오르면 선택의 기회가 많아져요.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것도 능력이죠. 서핑할 때 서퍼는 항상 다가오는 파도를 기다리며 노를 저어요. 파도가 오지 않아도 계속 팔을 움직여야 파도가 왔을 때 올라탈 수 있습니다. 우리 걱정은 보드 위에서 헤엄칠 힘을 잃게 되는 거예요. 내가 멈춰 있진 않는지, 자만하지 않는지 늘 되돌아보며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 2019년 04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07

201907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07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