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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기록 〈귀향〉 조정래 감독

치유와 회복을 꿈꾸는 영화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숙제하는 마음으로 상영관에 들어갔다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왔다.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이라는 한결같은 마음이, 영화 〈귀향〉의 기적을 만들고 있다.
준비 기간 14년,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 나온 영화 〈귀향〉의 기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 쓰이고 있다.
2016년 2월 24일,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10년을 함께한 스태프들에게도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집에 가라”고. 처음에 선한 동기로 시작했더라도,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 있다 보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 처음에는 영화를 포기하고 싶어지고, 나중에는 ‘스스로의 다짐’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조정래 감독이 몇 번이고 겪은 과정이다. 그래서 이해한다. ‘여기까지 함께 와준 것만도 고맙다. 그러니 이제 그만해도 된다.’

“그런데 안 떠나요. 저처럼 정신 나간 사람들이 모였던 거죠. 오히려 자기 사재를 털어서 영화에 쏟아부었어요.”

막내 스태프까지 〈귀향〉을 ‘내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런 주인의식은 〈귀향〉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있었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을 결심한 뒤 ‘천 원 한 장 받지 않고’ 촬영에 임한 배우 손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 영화에 참여해야 한다. 배우로든, 스태프로든, 후원자로든, 관객으로든”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에는 7만 5000여 명의 후원자의 이름이 흐른다. 〈귀향〉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쌈짓돈이 모여 〈귀향〉의 종잣돈 11억 6000만 원이 됐다. 세계 영화사에 유례없는 후원 규모다.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것도, 영화가 개봉할 수 있었던 것도 다 후원자들의 힘입니다. 개봉 날, 눈물이 많이 났어요. 긴장이 풀렸는지 독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인터뷰를 소화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아서 응급실에 갔어요. 병원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좋은 영화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더라고요. 또 울었습니다.”


국민이 함께 쓴 참회록

영화 〈귀향〉
2월 24일이 오기까지 14년을 기다렸다. 스물 아홉이던 감독은 마흔셋이 됐다. 할머니들의 기다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시작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소속 국악 동아리 ‘바닥소리’는 나눔의집으로 봉사활동을 갔다. 조선어를 쓸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위안소에서 ‘소리’는 할머니들의 유일한 동무였다. ‘바닥소리’의 북 치는 고수였던 조정래 감독은, 그곳에서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소녀들’이라는 그림을 본다. 패전한 일본 군대는 위안소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소녀들을 불태운다.

이 그림은 그 아비규환에서 가까스로 도망친 할머니의 공포와 죄책감을 담고 있었다.

“그날 심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너무 무지했구나 싶었어요. 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날 그곳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화염이 사라지고, 옷에 핏자국도 사라지고 깨끗해진 소녀들이 하얀 나비가 되어 날아갔습니다.”

한 점의 그림, 하룻밤의 꿈이 영화 〈귀향〉의 모티프가 됐다. 멀고 먼 타지에서 숨진 20만 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나비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은 그때 정해졌다.

“〈귀향〉은 고발하거나 복수하기 위한 영화가 아닙니다. 치유와 회복을 꿈꾸는 영화예요. 저 역시 속죄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살아 돌아온 피해 할머니들의 정서도 분노나 복수심이 아니에요.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세요.”

평균 나이 15세,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의 나이다. 동무들과 내기로 공기놀이를 하고 내기에 이겨 동무의 노리개를 빼앗았다가 어머니에게 회초리를 맞을 정도로 천진한 나이, 주인공인 14세의 정민(강하나)은 경상남도 거창에서 중국의 위안소로 옮겨진다.

“모든 배우들이 연기 연습을 6개월에서 3년은 했어요. 리딩만 수백 번 했죠. 대사가 틀려서 NG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회차를 줄일 수 있었고, 예산도 줄일 수 있었죠.”

유명 배우를 캐스팅할 수 없어 오디션으로 선발된 배우들은 역설적으로 극의 사실성을 더했다. 위안소로 지어진 세트장에 들어갈 때면, 춥고 스산한 기운을 느꼈다는 이들은 “연기도 이렇게 무서운데, 실제로는 얼마나 더 무서웠을까”라며 울었다고 한다.

“극 중에서 소녀들이 겪는 일은 다 증언집에 있는 내용이에요. 탈출하다가 죽은 소녀에 대한 묘사가 여러 번 나와요. 돌아가신 20만 명에 대한 기록은 없잖아요. 살아 있는 238명의 기록이 전부인데, 산 자의 기억 속에 있는 죽은 자의 기록을 살리고 싶었죠. 사실 증언집을 읽으면 10장 이상 읽기 힘들어요.”

현장의 스태프들은 소녀들을 살뜰히 대했다. 힘든 촬영을 마친 뒤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배우들에게 달려왔다.

“비록 영화였지만 소녀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한결같았어요. 현실과 영화의 구분이 안 되는 거죠. 관객들도 영화가 끝나면 배우들을 보고 막 미안하다고 하세요.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에 배우들이 참석했는데 이들을 안고 엉엉 우는 거예요. 영화 속에서 죽었던 소녀들이 서 있으니까요. 보통 영화를 만들면 스태프들은 지겨워서 안 보거든요. 그런데 이들이 후반 작업 마치고 상영관에 가서 티켓을 사서 다시 봤어요.”

조정래 감독은 2012년 영화 〈두레소리〉를, 2015년에는 〈파울볼〉을 만들었다. 모두가 의미 있었지만 〈귀향〉은 그의 인생을 바꾼 영화다.

“남성인 저로서는 영화를 통해 영원한 속죄를 하는 마음이죠. 영화를 준비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나 전쟁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내가 저지른 일 같은 죄의식이 생겼어요. 미국에서 시사회를 할 때 일본 와세다 대학교의 여학생이 저를 따라오면서 그러더라고요. ‘죄송하다’고요. ‘몰라서 죄송하고, 이 모든 게 다 죄송하다’면서 눈물 콧물을 뚝뚝 흘렸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전혀 통쾌하지 않았어요. 그 마음이 제 마음이었으니까요. 사실 할머니들을 무시하고, 잘 몰랐던 건 우리 자신이잖아요. 증언집을 읽고 직접 찾아가서 뵙는 게 힘들다면 2시간 동안 이 영화를 보셨으면 합니다.”


기적을 기록하는 영화


현재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는 44명이다. 20만 명의 100분의 1인 238명이 돌아왔고, 그중 5분의 1이 남았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89세, 지난 2월 또 한 분의 피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조정래 감독은 영화 〈귀향〉이 고령의 할머니들을 대신해 전 세계를 누비는 ‘문화적 증거’가 되길 바란다. 처음 〈귀향〉에 배당된 상영관은 51개였다. 이마저도 오래 버티지 못해 ‘병풍영화’ ‘풍전등화 영화’가 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귀향〉의 후원자들은 자발적인 홍보대원이 됐다. 포털의 게시판에 ‘귀향의 상영관을 늘려달라’는 청원을 올렸고, 예매율이 높아지면 개봉관이 늘어난다는 말에 티켓을 예매했다. 결국 〈귀향〉은 예매율 1위를 기록했고, 개봉관은 10배인 512개로 늘어났다. 개봉 날부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귀향〉의 기록은 3월 15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어 관객 320만 명을 돌파했다.

“〈귀향〉이 일으키는 기적을 보면서 아직은 살 만한 나라,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게 기적이잖아요. 예매율 1위, 박스오피스 1위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귀향〉은 국민들이 마케팅하는 영화예요. 국민이 주인인 영화죠. 후기를 보면 거의 논문 수준이에요. 그래서 들뜨기보다는 매일 더 겸손해져요. 처음 만들 때부터 영화가 피해 할머니의 수인 20만 번 상영되길 바랐는데, 이제 그 여정을 막 시작한 것 같아요.”
  • 201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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