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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의 일상 그린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의
이수연 작가

“나의 장애는 개성일 뿐, 동정의 대상이 아닙니다”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네이버 웹툰에서 정식 연재를 목표로 고군분투 중인 ‘병아리’ 작가 수는 지난해 6월 기준으로 14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그리는 만화는 독자 호응에 따라 ‘도전만화’ ‘베스트도전’의 단계를 거쳐 ‘웹툰’ 코너에 오르게 된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독자들의 몫으로, 이들 반응이 정식 연재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1년여 전 본격적으로 연재를 시작, ‘도전만화’를 거쳐 지금은 ‘베스트도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나는 귀머거리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다룬 작품으로 ‘장애’라는 소재를 ‘눈물’과 ‘감동’ 코드 없이 담담하고 유쾌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이 만화를 그린 작가는 스물일곱 살의 이수연씨. ‘라일라’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그는 선천적 청각장애인이다.
“말 잘하고 똑똑한 애”

수연씨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다. 어머니는 딸에게 수화(手話) 대신 구화(口話)를 가르쳤다. 수연씨의 배에 쌀가마니를 얹어가며 발성과 발음 훈련을 혹독하게 시켰다. 덕분에 수연씨는 듣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입 모양으로 소리를 읽을 줄 알게 되었고, 의사소통에 거의 문제가 없을 정도로 소리 내 말할 수 있다.

네 살 때, 어머니의 등에 업혀 인천 집에서 서울에 있는 한 특수학교로 통학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을 보냈을 때 다른 학부모들이 “수연이는 말도 할 줄 알고 심지어 똑똑한데 왜 특수학교에 보내느냐?”고 물어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수연씨의 어머니는 ‘이제 우리 애를 사회에 내보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일곱 살 때 수연씨는 일반 유치원에 입학했다. 초중고 모두 일반학교를 나왔다.

수연씨는 어렸을 때부터 학구열이 남달랐다. 주로 책을 읽었다. 들을 수 없는 그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지식 습득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선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수 없었기에 친구들에 비해 정보 습득 양이 현저히 떨어졌다. 고3이 되자 친구들은 노트 빌려주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다. 자막 있는 인터넷 강의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장애인에게 불리한 교육환경에서도 수연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이유를 가족에게서 찾았다.

“어머니가 배움에 대한 열의가 커요. 유치원 교사 자격증부터 풍선 아트 자격증까지 땄어요. 장애인 딸을 두지 않았으면 안 배운 게 없었을 거예요. 무엇보다 우리 가족은 제 장애를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개성이라며 존중해줬죠. 부모님과 언니의 성격 자체가 웃음이 많고 유쾌한 편이에요.”

수연씨가 발산하는 긍정의 에너지는 가족에게서 나왔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위기의 시절은 있었다. 중학교 시절,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따돌림이 시작된 것이다. 친구들은 ‘장애’를 가진 친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놓는 수연씨에게 어머니는 오히려 “친구들을 이해하라”고 말했다. 세상에 내 편은 없었다. 수연씨는 어둠의 동굴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죽음도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사람이 ‘키팅 선생님’이었다.

“교회에 있는 비디오방에 틀어박혀 영화만 봤어요. 그때 우연히 본 영화가 〈죽은 시인의 사회〉예요.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을 외친 키팅 선생님 덕분에 자살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말 잘하고 똑똑한 애”라는 아줌마들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듣지 못한다’는 핸디캡이 있음에도 공부를 잘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수연씨는 미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만화는 고2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글쓰기에도 재능이 있어 상도 많이 받았다. 틈틈이 소설 습작도 한다. 서울대 미대에 입학, 동양화와 국문학을 전공했다. 문학 장르 중엔 시를 가장 좋아한다. 선으로 표현하는 동양화와 문학적 감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시는 서로 닮았다.

초중고 시절 내내 ‘귀머거리’로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수연씨. 대학에 들어가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대학 측에서 속기 도우미를 지원해준 것이다. 수업 내용을 실시간으로 타이핑하는 속기사가 그의 귀가 돼주었다.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그의 장애를 이해하고 인정해줬다. 덕분에 그에게 ‘대학 시절’은 언제 돌이켜봐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


‘한국의 호킹’으로 불리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와의 만남도 큰 이정표가 됐다.

“선생님의 제안으로 다른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캘리포니아에 간 적이 있어요. 미국의 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와 생활환경을 견학하러 간 거였어요. 현지 식당에 밥 먹으러 들어갔는데 텔레비전 방송에서 장애인을 위한 자막이 나오는 거예요.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지금은 서울대QolT 산업기술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장애인산업인력양성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센터와 전문교육기관이 협력해 장애인을 위한 특별반을 편성하고 속기 도우미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수연씨는 영상편집 과정을 듣는 중이다. 언젠가는 외국에 가서 영화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당장이라도 가고 싶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고 일단 영어가 큰 걸림돌이죠. 영어 구화를 배우는 것도 힘들지만 일단 영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영어발음을 교정해줄 사람을 구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해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수연씨가 외국에 가서 영화공부를 하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가 자랄 때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서비스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자막 있는 외국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봤다. 친구들 사이에 인기 있는 만화 대신 먼 나라의 애니메이션을 볼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 끼진 못했지만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영상물을 접할 수 있었다. 영상 매체에 매력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외국에 나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이유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방송을 전혀 안 보는 건 아니다. 수연씨가 주로 보는 프로그램은 방송 내내 자막이 난무하는 프로그램이다. 요즘엔 다수의 외국인 패널이 출연하는 〈비정상회담〉과 김태호 피디가 만드는 〈무한도전〉을 즐겨 본다.

“일전에 김태호 피디가 자막을 많이 삽입하는 이유가 청각장애인을 위한 측면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몰라요.”

예능 프로의 과도한 자막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된다.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화면의 반을 차지하는 과장된 자막에 ‘공해’라고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가 있는 방 안에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함께 있게 한다면 둘 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요. 장애가 무의미해지죠.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장애는 ‘불편함’일 수도, 그냥 ‘다름’일 수도 있는 거예요.”



‘베스트도전’ 코너에서 별점 점수 1위

수연씨가 웹툰 연재를 시작한 이유는 ‘세상에는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많이 봐주길 바란단다. 만화를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장애를 이해한다면 친구가 장애를 가졌다고 오해하거나 괴롭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수연씨는 더 조심스럽다. 자신의 그림이 청각장애인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사게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언론 노출도 꺼리는 편이다. 심지어 웹툰 연재 초기에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절친인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도 청각장애인인데 회사 동료가 ‘네 이야기’라며 추천해준 만화가 《나는 귀머거리다》였대요.”

아버지 회사 동료는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애완견 ‘다루’를 보고 조심스레 물어왔다. “혹시 댁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 다루 아니었어요? 이 만화 그 댁 따님이 그린 건가봐요.”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몇몇 친구들에겐 출연 사실을 알렸다. 각 등장인물 캐릭터는 닮았거나 당사자가 좋아하는 동물로 묘사했다. 수연씨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인 강아지다. 덕분에 부모님, 언니 모두 ‘강아지’가 됐다. 재미있는 점은 동물로 표현했음에도 각 캐릭터가 실제 외모와 닮았다는 거다.

에피소드에 대한 독자 댓글 반응도 뜨겁다. 현재 ‘베스트도전’ 코너에서 별점 점수 1위다. “감동적이다”는 기본이고 “힐링 받고 간다” “슬픈 내용일 줄 알았는데 빵빵 터졌다” 등 호평 일색이다. “장애인이 그린 웹툰이라길래 보기 전엔 얼마나 힘들게 살까 생각했는데… 걱정할 필요 없겠는 걸, 작가분이 너무 잘살고 계시네”라는 댓글은 수연씨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청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즐겁게 잘살 수 있다’는 게 수연씨가 만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댓글 중에는 청각장애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뤄달라는 요청도 많다. 그럴 때는 정보 제공 차원에서 소재로 적극 활용한다. 43회 ‘도우미 지원’ 편이나 구화 시리즈가 그 예다.

본인이 장애인이거나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댓글이나 메일도 많이 받는다. 주로 자녀에게 구화와 수화 중 어떤 걸 가르치는 게 좋겠냐고 조언을 구하는 메일이다.

“구화와 수화, 정답은 없어요. 실은 저도 잘 몰라요. 그럴 땐 엄마에게 물어보죠. 엄마는 왜 내게 구화를 가르쳤냐고. 판단은 각자 하는 거죠.”

《나는 귀머거리다》는 1월 말 기준으로 총 49회의 에피소드가 올라와 있다. 49회 속에 담긴 청각장애인의 일상은 비장애인의 일상과 다르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다. 예술가에게 있어 ‘남과 다르다’는 건 ‘개성’으로 인정받는다. 수연씨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 “사람마다 머리카락 색깔이 다르듯, 남들과 다른 개성일 뿐”이라고 말한다.

수연씨는 소리는 듣지 못하지만 음악도 즐길 줄 안다. 그를 음악 세계로 인도한 것은 세계적인 록그룹 ‘퀸’이었다.

“보통 청각장애인은 음악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잖아요. 아니에요. 남들이 음악을 귀로 들을 때 전 온몸으로 들어요. 록음악을 듣고 있으면 소리가 주는 울림을 느낄 수 있어요. 퀸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음악이, 멜로디가 물결처럼 보여요.”

록그룹 ‘퀸’의 라이브 공연을 처음 봤던 날의 ‘짜릿한 전율’은 벅찬 감동이었다. 그 날 이후 가슴을 뛰게 만드는 사운드의 향연인 록페스티벌도 즐겨찾게 됐다.

“무대 앞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해요. 음악이 주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어요.”

언젠가는 그의 바람대로 드라마 〈나는 귀머거리다〉를 텔레비전에서 볼 날이 올 것만 같다. 아! 그전에 수연씨가 텔레비전에 나올 것 같다. “안녕하세요. 저는 《나는 귀머거리다》를 그린 작가 ‘라일라’ 이수연입니다.”

이수연씨의 동의하에 독자 댓글 반응이 뜨거웠던 에피소드 한 편을 게재합니다.
  • 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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