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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에이즈 백신 개발에 도전하는 강칠용 교수

분자 바이러스학 발전에 기여한 1세대 학자

사진제공 : 강칠용 교수
문명의 발달과 함께 신·변종 바이러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에볼라 바이러스를 비롯해 에이즈 바이러스, 신종 플루, 조류독감 등이 대표적인 예다.

새로운 바이러스는 대항할 만한 치료제나 예방약(백신)이 없고,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빠르게 확산된다는 점에서 매우 위협적이다. 바이러스의 예방과 퇴치가 인류 공동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세계 학계가 주목하는 한국인 바이러스 전문가가 있다. 에이즈 백신 개발에 도전장을 내민 강칠용 교수가 그 주인공.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University of Western Ontario) 미생물학 및 면역학과(Microbiology & Immunology)에 재직 중인 그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기술을 적용, 세계 첫 에이즈 백신 탄생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관련 기술은 이미 70여 개국에서 특허를 받았다. 그가 개발한 백신은 현재 인체를 대상으로 안전성-면역작용-효능을 검증하는 총 3단계의 임상시험 중 2단계를 앞두고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1983년 처음 그 정체가 밝혀진 이래 많은 연구진이 예방과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해 감염자의 생존 기간을 늘리는 정도의 약물만 출시됐을 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를 비롯해 인체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들을 주로 연구하던 그가 에이즈 백신 개발에 뛰어든 것도 그 때문이다.

“백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병원성을 줄인,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그대로 이용하는 생백신과 추출한 바이러스에 화학 처리를 해 활성화되지 못하도록 만든 상태에서 만든 사백신, 그리고 바이러스 구조의 일부 단백질을 이용해 만든 백신이 있어요. 에이즈의 경우 생백신 사용은 불가능하고, 사백신으로 만들 경우 추출할 수 있는 바이러스의 양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단점이었습니다. 상용화하려면 대량생산이 필수니까요. 그래서 사백신으로 만들되, 유전자 변형을 통해 바이러스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해 마침내 찾아냈습니다. 그 기술이 특허를 받은 것이죠.”

강칠용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Siebens-Drake Research Institute. 웨스턴 온타리오대가 그를 위해 특별히 만든 건물이다.
웨스턴 온타리오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개발한 백신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토론토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소도시 런던에 자리 잡고 있는 웨스턴 온타리오대는 의과대와 경영대가 특히 유명하다. 1878년 설립돼 3만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인 이곳에서 강 박사는 1992년부터 1999년까지 7년간 자연대학장을 지냈다.

자연대학장은 수학・응용수학・지질・물리・천문・ 동물・식물・화학 등 9개 기초과학 분야 외에 세포학・해부학・미생물학・생리학・약학・생화학 등 의과대학의 일부 학과를 의과대학장과 공동 관리하는 중요한 보직. 학교 역사상 계열을 불문하고 동양인이 학장직에 오른 건 그가 처음이었다.

당시 오타와대(University of Ottawa) 미생물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웨스턴 온타리오대가 제시한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학장직 외에 “나는 실험실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 연구소를 하나 만들어주면 가겠다”는 그의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인 것. 현재 그의 연구실이 있는 건물이 학교가 당시 그를 위해 새로 마련한 공간이다.


인류 복지에 기여한다는 사명감


경남 하동 출신인 그는 건국대 축산학과 2학년을 마친 뒤 덴마크로 유학을 떠났다. 1959년 신설된 건국대 축산학과는 당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신입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축산학과 1기생이 된 그는 1961년 ‘한국-덴마크협회’가 주관하는 농업 연수생 시험에 합격, 덴마크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가는 일이 쉽지 않던 시절, 일본에서 화물선을 타고 덴마크까지 가는 데 꼬박 40일이 걸렸다. “거대한 파도가 덮칠 때면 배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다시 떠오르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그래도 기대와 희망을 품고 가는 길이라 크게 힘들다고 느끼지는 않았다”고 한다.

덴마크에서 학부를 졸업한 그는 1966년 캐나다로 왔다.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영어권 국가로 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토론토대학 부설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보조 연구원으로 일하며 바이러스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맥매스터대 대학원 과정에 장학생으로 입학, 3년 만에 석·박사 학위과정을 마쳤다.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주말도 없이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연구에 매진해 5편의 논문을 냈다. 이들 논문은 모두 주요 학술지에 실렸다. 대학원생으로서는 흔치 않은 성과였다.

그의 연구 성과를 소개한 간행물들.
실력을 인정받아 1971년, 바이러스학 권위자였던 미국 위스콘신대 하워드 테민 박사 연구실에 박사후 과정생으로 합류했다. 테민 박사는 ‘DNA에서 RNA가 만들어지고, RNA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진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가설을 발표, 학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인물. 감염된 RNA에서 DNA를 만드는 ‘역전사 효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197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는 테민 교수를 도와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레트로 바이러스뿐 아니라 정상 세포에도 역전사 효소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 스승의 노벨상 수상에 크게 기여했다. 이 시기에도 3년간 일하며 주요 학술지에 9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박사후 과정을 마친 그에게 교수직을 제안한 대학이 무려 20곳에 달했다.

“그중 텍사스의대가 테민 교수님의 연구 환경과 똑같은 공간을 마련해주겠다고 해 연봉도 묻지 않고 수락했습니다. 이후 캐나다 오타와대학 미생물학과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캐나다로 돌아왔지요. 오타와대에서 10년간 근무하고 1992년 5월에 여기로 와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캐나다 존스턴 총독으로부터 다이아몬드 주빌리 메달을 받는 모습.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영연방국 각 분야 유공자들에게 수여한 영예로운 훈장이다.
분자 바이러스학 1세대 학자로 평생을 바이러스 연구에 바친 그가 거둔 학문적 성과는 적지 않다. 지금까지 135편의 논문을 펴냈고, 1993년 캐나다 학자들도 가입이 어렵다는 왕립 캐나다 학술원(Fellow of Royal Society of Canada Academy of Science)에 한인으로는 처음 이름을 올렸다. 1999년에는 ‘한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호암상 의학상을 받았다.

“인류 복지에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연구의 동력이었다”는 그는 “남은 삶 동안 이루고 싶은 두 가지 꿈이 있다”고 말했다. 백신 개발에 성공해 에이즈의 위험에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돼 있는 저개발 국가 국민들에게 백신을 무료 공급하는 것과 인류가 바이러스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세계적인 바이러스 학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문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다.

꿈을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 활기가 넘쳤다.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다’며 화물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던 스무 살 청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70대 중반인 지금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강의하는 강칠용 교수. 이국 땅에서, 소수민족인 그가 세계적 학자로 우뚝 선 비결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시간을 쏟으라”는 그의 조언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 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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