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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이들을 위한 심폐소생 백영옥 작가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글에도 시제가 있다면 백영옥 작가의 글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는 것도, 오지 않은 미래를 관망하는 것도 아닌 현재를 응시하고 돌파하고 기록한다. 누군가는 그걸 트렌드라고 부르는데, 동시대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값진 재능이다. 덕분에 그의 글은 생방송처럼 시차 없이 독자에게 도달한다. 내가 느낀 걸 그도 느낀다. 느꼈으나 표현할 수 없던 말들을 그가 적는다. 그는 ‘최전선의 작가’다. 시대의 흐름, 마음의 소리와 실시간으로 공명한다. 그 꾸준한 감응이 독자를 그의 글 앞으로, 청취자를 그가 진행하는 심야의 라디오 앞으로 이끌었다.

먼저 그를 세상에 널리 알린 소설 《스타일》과 《다이어트의 여왕》은 2000년대 중·후반 도시의 풍경과 그 도시 안에서 하이힐을 신고 분투했던 이들을 담은 일종의 르포르타주다. 《스타일》로 2008년 1억 원 고료의 ‘세계문학상’을 받고, 동명의 드라마가 제작돼 화제를 얻기 전까지 그는 100번 넘게 신춘문예에 낙방하며 ‘80세 전에는 등단하겠지’ 생각하던 문청이자 직장인이었다.

1매짜리 카피를 쓰던 카피라이터일 때도, 8매짜리 북 리뷰를 쓰던 인터넷 서점 직원일 때도, 30매짜리 인터뷰 기사를 쓰던 패션지 기자일 때도 어쨌거나 그는 계속 썼다. 퇴근 후에도 졸음을 참아가며 소설을 썼다. 그리고 그는 작가가 됐다. 아니 그 이전부터 그는 쭉 쓰는 사람(作家)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쓴다. 작가가 되기 위해 쓴다.

이 작가의 자리에 단어를 어른으로 바꿔도 무방하다. 그에게 작가나, 어른은 명사가 아니다. 동사다. 그는 작가이자 어른이면서, 작가가 되어가는 중이며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는 묻는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최근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라는 산문집을 냈다. 수없이 무릎이 꺾였던 그의 청춘에 아로새겨진 실패담을 담았다. 2012년 출간 이후 10년 만의 재출간이다.


어차피 인생에서 성공은 희귀한 일이에요.
실패가 다반사죠”


“내가 이십 대와 삼십 대에 걸쳐 쓴 인생의 오답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세상엔 죽도록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꿈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좌절된다.
하지만 내가 쓴 틀린 답을 조금씩 고쳐 나가며 사십 대에 이르러 마침내 꺼낼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중



“10년이 지나고 보니 젊은 날의 제가 오히려 청춘이나 어른의 정의가 비교적 명확했구나 싶어요. 지금은 오히려 더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수록 더 모르겠고요. 20대, 30대의 저는 40대, 50대, 60대가 되면 살면서 쌓아온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인사이트를 공유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작동이 안 되는 시대잖아요. 코로나 이후는 우리가 아무도 살아보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10년 전에는 없던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모르는 걸 물어볼 수 있다. 윤여정 배우도 “일흔은 처음이라 잘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살아낸 사람이 갖게 된 여유다. 세상이 곧 나고, 내가 곧 세상 전부인 것처럼 팽창했던 젊은 자아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기 어렵다. 그런 나를 좋아하기는 더 어렵다.

그의 20대도 실패와 실연의 연속이었다. 대학 입시도, 연애도, 취업도, 등단도 쉽지 않던 그 시절의 그는 삶을 노량진 컵밥 거리에서 파는 주먹밥처럼 꾸역꾸역 삼키며 살았다. 뭘 해도 되지 않고, 뭘 하든 되겠느냐는 냉소가 멱살을 잡아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래서 백영옥 작가는 절대로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때의 나에게 고맙다. 그렇게 온몸으로 인생의 어퍼컷을 맞고도 버티어준 내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인생에는 두 가지 후회가 있대요. 했던 일에 대한 후회랑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요. 전자는 어떻게는 삶의 자양분이 돼요. 후자는 그냥 후회죠. 저는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일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해요. 실패를 어떻게 자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자기 전략이 생기고 이것이 성장의 바탕이 되죠. 어차피 인생에서 성공은 희귀한 일이에요. 실패가 다반사죠. 저도 2030에는 체력이 좋아서 많은 시도를 했어요. 지금은 체력이 안 되지만(웃음).”


한국 사회에는 힘을 내는 기술이
너무 많이 축적돼 있어요”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 때마다,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릴 때마다 사람은 도리 없이 어른이 된다. 시간이 흘러 들리지 않는 것의 바깥과 안을 모두 보게 되는 것. 사강은 이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중



결국 그는 서른 중반에 소설가로 등단했고, 당시 그의 작품만큼이나 작가가 유명해진 덕분에 인터뷰가 밀려 글 쓰는 시간을 쪼개야 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래서 그는 행복해졌을까. 그의 글을 빌리자면 “24시간 운행되는 롤러코스터를 안전바 없이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극찬에는 독설이, 이해에는 오해가 따라붙었다. 그때 알았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걸.

더구나 등단을 했다고 해서 자연스레 글만 쓰는 삶이 펼쳐지는 건 아니었다. 소설로 먹고사는 일은 《해리포터》 시리즈로 한 해에 600억 원을 번 조앤 롤링 정도나 돼야 가능한 일이고 대부분의 소설가는 강연이나 외고 등을 겸해야 한다. 백영옥 작가의 또 다른 재능은 성실함인데, 그는 한 번에 연재를 6~7개 할 정도로 근면한 글 노동자로 살았다. 시간을 15분 단위로 나누어 살던 시절, 편집자들이 그의 ‘일중독’을 걱정할 정도였다. 마감을 잘 지키는 필자는 편집자에게 얼마나 고마운가. 또 그 글의 내용이 윤택하다면 얼마나 반가운가. 백영옥 작가가 지금도 일간지에 200회가 넘는 칼럼을 쓰고 있는 비결이다.

“마감이 정해진 글은 어디에서든 쓸 수 있어요. ‘약속은 지키는 게’ 제 유일한 장점이기도 해요. 내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직업인으로서, 직업윤리를 지키겠다는 근육 같은 거죠. 소설은 좀 달라요. 또 다른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몸 한군데가 망가져요. 소설을 쓰는 동안은 다른 세상에 사는 기분이에요. 실제로 한 편을 쓰고 나오면 세상이 달라져 있기도 하고요.”

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을 쓸 때는 인천국제공항행 버스를 타고 공항에 갔다. 주인공 사강은 항공기 승무원이었다. ‘실연이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해 누군가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지’를 아는 그는 불면과 불안, 거식과 폭식으로 이별의 폭거에 이재민이 된 이들을 그러모아 아침 일곱 시에 따뜻한 제철음식으로 정성스런 한 끼의 식사를 대접한다.


백영옥 작가가 진행하던 심야 라디오도 그런 곳이었다. 그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라디오 디톡스 백영옥입니다〉 〈라디오 북클럽 백영옥입니다〉의 DJ로 매일 새벽 두 시에서 세 시까지 청취자 곁에 머물렀다. 잠들지 못하는 이들의 사연이 모이던 당시 라디오는 ‘심야의 응급병동’ 같았다고 회고한다. 그는 매일 직접 클로징 멘트를 썼다.

“한국 사회는 상처가 많아요. 힘듦도 많고요. 힘을 내는 기술은 너무 많이 축적되어 있고 힘을 쥐어 짜내서 살고 있거든요. ‘의지의 한국인, 힘내세요!’ 이런 말을 공공연히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전투적으로 살면 당연히 데미지가 생겨요. 삶이 전쟁이 되니까요. 난도질당한 이들을 보면 이 집단적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 아득해질 때도 많았어요.”

그가 2018년에 펴낸 산문집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는 그런 이들을 향한 다정한 마음이 담겼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다. 당신의 삶이 아프면, 울고 싶으면 울라는 메시지다. 더구나 코로나 이후의 우리는 다 같이 ‘강제 일시 정지’ 상태다. 다 같이 멍한 상태로 헤매는 중이다.


관객이 있는 고백은 스스로에게 충실할 수 없어요.
나만의 일기장이 필요해요”


“우리말에 ‘속상하다’라는 절묘한 표현이 있죠. 내 몸속이 ‘상한다’라는 뜻인데 괴롭고 슬픈데도 눈물을
밖으로 밀어내지 못하면 몸속의 울음이 우물처럼 고여 썩을 수 있다는 뜻일 거예요. 그렇게 보면, 속이 쓰릴 때 나오는 위산이나 스트레스 호르몬이라는 코르티솔도 어쩌면 눈물의 다른 형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중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가는 이어서 말한다. “그렇기에 허황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 삶을 조금 더 행복한 쪽으로 바꾸기 위한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이부자리 정리와 환기예요. 별일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컨디션에 영향을 줘요. 책상을 치우는 일도,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일도 생각보다 힘이 세요. 자기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렇게 완결된 경험이 필요해요. 미완인 채로 바람을 맞고 서 있지 말고, 바람이 들어오는 문을 닫는 거죠.”

일단 뭔가를 시작했다면, 그가 가장 권하는 일은 ‘비밀정원을 가꾸는 일’이다. 24시간 연결된 세계인 SNS나 유튜브로 실시간 생중계되는 삶이 아닌, 아무도 볼 수 없는 나만의 정원을 가꾸는 일.

“관객이 있는 고백은 스스로에게 충실할 수 없어요. 나만 보고, 나만 들리는 일기장을 따로 마련하세요. 과도한 디지털에는 반작용과 부작용이 있어요. 무한대의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게 돼요. 보는 것에만 길들여져서 다른 감각을 잃어버려요. 예쁜 차를 한잔 시켜놓고, 그 차의 사진을 찍느라 마실 타이밍을 놓쳐요. 시각에 치우친 감각의 리밸런싱이, 스스로를 돌보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산문은 근육으로, 소설은 심장을 녹여가며 쓰는 그가 10년째 머물고 있는 곳은 일산의 한 작업실이다. 작업실 앞쪽으로는 호수공원이 호젓하게 펼쳐져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작가에게 필요한 건 ‘자기만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라고 했는데, 이곳이 백영옥 작가에게는 자기만의 방과 다름없다. 여기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돌본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열두 시 이후에는 거의 쉬어요. 삼시 세끼 요리를 만들어 먹고,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맛집도 안 가요(웃음). 산책하고 책 읽는 단조롭고 규칙적인 삶이죠. 좋은 점은 변화가 큰 세계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거예요. 호수공원에 나가면 죽단화도 피고 장미도 피고 때가 되면 맹꽁이도 울거든요. 천천히 걸으면서 수국이 피었구나, 작약이 피었구나 알게 되죠. 이팝나무와 조팝나무가 어떻게 다른지도 보이고요. 삶이 심심해지면 매일 다른 게 보여요.”

그의 외할머니는 다 죽어가는 식물도 며칠을 돌보면 살려내는 식물 박사였다. 아마 외할머니가 2021년에 살아 돌아온다면 마스크로 모든 표정을 가리고, 앱으로만 소통하는 시대에 길 잃은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 될 것이다.

사람이 한평생 모은 지식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검색 만능, 유튜브 만능 시대가 허탈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어른은 유연한 것이고 어른은 모르는 걸 물어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다시 적는다. 10년이 지나면 또 어른의 시간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고. 하지만 이건 안다.

“지금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삶의 어느 때에는 너무 커 보이기도 한다는 걸.”


외상 후 스트레스’보다
외상 후 성장’이라는 말을 믿어요”


“내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던 날, 다친 곳을 한 번 더 크게 다친 날, 다시 빨강머리 앤을 만났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끌어안으며 말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넘어지고 배우며 자라는 중이라고.”
-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중



2016년 백영옥 작가가 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35만 부가 팔리며 ‘엄마와 딸이 함께 읽는 책’이 됐고, 보노보노·곰돌이 푸 등의 입을 빌려 말하는 캐릭터 에세이는 하나의 장르가 됐다. 2018년에는 후속작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을 냈다. ‘빨강머리 앤’은 그가 살다가 무릎이 꺾였을 때 비밀의 정원에서 만나는 친구다. 앤은 말한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참 멋진 일이에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거잖아요?”

“근육도 사실은 찢어지면서 근력이 생기잖아요. 인생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실패가 때로 삶을 찢어놓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당사자만 할 수 있어요. 앤의 어린 시절도 고난의 연속이지만, 앤은 고집스럽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발견했어요. 저는 ‘외상 후 스트레스’보다 ‘외상 후 성장’이라는 말을 믿어요.”

한때 가장 트렌디한 글을 쓰던 그는 지금 치유의 글쓰기를 한다. 경쟁과 성공에 분투해 악마는 프라다를 입고, 강박적으로 스타일과 다이어트에 매달리던 시대는 저마다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를 남겼다. 이 숱한 상처를 딛고 어떻게 ‘외상 후 성장’에 이를 것인가가 이제 그의 화두다. 그의 말대로 상처와 상흔이 성장의 동력이 된다는 걸 믿는다면, 우리 성장판은 여전히 닫히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맞이하는 내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울 것이다. 앤의 말대로, 아이든 어른이든 공평하게 주어지는 내일은 ‘아직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은 날’이니까.
  •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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