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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취향 (37) 밤 산책길

반려동물과 함께 걷기 좋은 밤 산책길 best 4

글·사진 : 서경리 기자

다섯 살 반려견 마리. 나는 마리와 함께하는 밤 산책을 좋아한다. 마리는 호기심이 많아 걸을 때마다 여기저기 코를 박곤 하는데, 낮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고 골목길에서 차가 수시로 튀어나와 위험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좁은 골목길을 마리와 지날라치면 불편한 시선들이 마리에게로 향하곤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마리를 위해 산책을 포기할 순 없어 선택한 것이 인적 드문 밤의 골목길 산책이다.

밤 산책은 들썩이던 낮의 분주함이 가라앉아 차분하게 호흡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어둑한 골목길, 어둠은 시야를 한 꺼풀 가리기에 소리에 더 예민하게 된다. 낮의 번잡함이 지나간 자리엔 바람이 나뭇잎을 두드리는 소리라든가 낮은 담장 너머로 TV에서 들려오는 축구 중계 소리, 술 취해 비틀거리는 청춘의 술주정이 밤의 정적을 채운다.

마리는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곳곳의 냄새를 수집한다. 마리를 따라 걷다 보면 계절마다 피는 꽃의 향기나 비 온 뒤의 젖은 흙냄새, 바람에 실려 온 어느 노포의 구수한 숯불 냄새까지, 바쁘게 오가느라 놓친 계절의 변화와 골목길 일상이 코끝에 생생하게 와 닿는다.

밤길을 걷는다는 건 제법 근사한 일이다. 마리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 밤 산책은 내게도 특별한 의미로 와 닿는다. 밤을 걷는 일은 내면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 그저 ‘걷다’라는 행위가 아닌, ‘길을 걷는다’는 데서 ‘인생의 방향을 찾는다’는 다의적 의미가 있고, 여기에 ‘밤’을 붙이니 ‘낭만’까지 더해진다.

실제로 밤길을 걷다 보면 한껏 감성에 젖어들게 된다. 낮 산책은 오늘 할 일에 대한 고민이 주라면, 밤 산책에는 궁극적인 삶의 방향에 대한 고심까지 들어간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진짜 살고 싶은 삶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결국 ‘하루가 참 감사하다’라는 말이 쏟아져 나온다. 지금 내가 살아 있고, 두 발로 걷고 있고, 내가 사랑하는 마리가 곁에 있고…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있을까. 나와 보폭 맞춰 걸으며 사방으로 궁둥이를 씰룩거리는 마리를 보며 다시금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어 본다.

한낮의 열기가 식어 어슴푸레 어둠이 내려앉은 하루의 끝, 반려동물과 함께 걷기 좋은 산책길을 소개한다.



맹꽁이 우는 여름밤
상암 난지천공원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365


한여름 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월드컵공원. 인적 드문 산책로가 산란기를 맞은 맹꽁이들의 구애로 요란 벅적하다. 다섯 개의 월드컵공원 중 하나인 난지천공원은 난지천 줄기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꼬불꼬불 산책로가 나 있는데, 밤이면 물안개가 어슴푸레 피어나 몽환적인 밤 풍경을 자아낸다. 깨끗하게 정비된 공원에선 반려견이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이나 담배꽁초를 주워 먹을 염려가 없다. 특히 축구장만 한 너른 잔디에서 강아지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가까운 거리에 메타세쿼이아 길과 서울 최대 규모의 반려견 전용 놀이터(1638㎡)도 있다.



‘견생샷’ 맛집
서울숲
서울 성동구 뚝섬로 273


서울의 허파, 서울숲은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도심 속 힐링 스페이스다. 면적 49만5867㎡ (약 15만 평)의 대규모 부지에 잘 가꾸어진 산책로와 울창한 숲, 너른 잔디밭이 갖춰져 있다. 워낙 부지가 넓어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지만, 또 길을 잃은 대로 색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팔색조 매력이 있다. 공원 초입의 거울정원을 지나 은행나무숲이 있는 수변 쉼터에 가면 붉게 물든 석양과 은은하게 번지는 숲의 조명, 화려하게 불 밝힌 도시의 건물을 배경으로 ‘견생샷’을 남길 수 있다. 숲 주변으로 반려동물 동반 카페나 식당이 많아 숲을 산책하고 나와 간단한 음료와 식사를 즐기기에도 좋다.



파노라마로 즐기는 서울 야경
남산 둘레길
서울 용산구 남산공원길 105


남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둘레길 산책로다. 총 7.5km의 산책로는 북측 순환로와 산림숲길, 야생화원길, 자연생태길 등 다섯 개 코스로 이어지는데, 반려견 출입이 허용된 구간은 북측 순환로와 야생화원길 두 구간이다. 반려견과 걷기에는 북측 순환로를 추천한다. 남산 케이블카 맞은편 입구에서 시작해 국립극장까지 이어지는 3.4km 구간으로, 폭이 넓은 데다 경사도가 낮아 반려견과 편안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서울 야경은 남산 둘레길 밤 산책의 묘미. 남산공원을 갈 때는 걸어서 올라가거나 버스,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대중교통 이용 시 이동가방(케이지)은 필수.



‘밤에도 운동장에서 신나게 놀개’
초안산 근린공원
서울 도봉구 해등로3길 48-11


도봉구 주민들의 휴식처, 초안산 아래 조성된 초안산 근린공원 창골지구 잔디마당에는 반려견을 위한 놀이터가 있다. 안전 펜스 안에서 리드줄 없이도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꾸며져 있어 바깥 활동을 좋아하는 반려견에겐 최적의 장소.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운영하니 열대야를 피해 늦은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대형견과 중소형 견의 놀이공간을 나누고 맹견의 출입을 막아 반려견과 보호자 모두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곳곳에 음수대와 배변봉투를 두어 편의를 도모하고 그루터기 장애물 등을 설치해 재미를 더했다. 입장은 무료지만 동물 등록을 한 반려견과 13세 이상의 보호자만 들어갈 수 있다.
  •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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