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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18)

문학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이름 프란츠 카프카에게 下

문학으로 충만한 사람에게

어쩌면 우리는 ‘간결한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글을 쓰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쓰고 또 쓸 수밖에 없을 때요.
그러고 나면 정답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수는 있으니까요.
문학의 효용은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 아닐까요?
오랫동안 천천히, 당신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겠습니다.
© shutterstock
프란츠 카프카. 한번 발음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것 같은 이름! 문학을 아끼는 사람에게 당신 이름은 문학의 다른 이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에 입학한 첫해, 전공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젊은 교수가 “20세기 중요 작가 중 단 한 명을 꼽으라면 프란츠 카프카를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던 말을요. 기뻐하세요. 당신은 돌이킬 수 없이 중요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상상하지 못한 일인가요, 아니면 내심 기대하던 일인가요? 저는 후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기 전에 당신은 그동안 쓴 모든 원고를 불태워달라고,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부탁했다고 하지요. 문학 앞에서 보인 당신의 자세와 열정을 생각하면 그 말조차 문학을 표현하(려)는 다른 방식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평생 결혼 앞에서 망설였지요. (당신의 우유부단함과 결심을 번복함으로 고통받은 여성들에게 위로를!) 보험회사와 법률회사에서 일하는 내내 괴로워했습니다. 엄격했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고통을 받았고요. 왜 그랬을까요? 당신을 평생 괴롭힌 건 단 한 가지였습니다. ‘문학에의 헌신’을 방해하거나 방해할지도 모르는 요인들! 당신은 문학에 모든 걸 내건 사람이었으니까요. 누군가 당신에게 문학에 관심 있는지를 묻자 당신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지요.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문학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며,
다른 것이 될 수도 없습니다.”
-
《프란츠 카프카》, 편영수, 살림, 54쪽.


너무나 진지하고 단호한 대답이라 저는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어요. 죄송합니다. 당신을 비웃을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히려 깊이 감탄하고 있는 걸요. 그 마음을 이해해요. 무지렁이 같은 저 또한 문학이 아니라면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는 걸요. 그 흔한 토익시험을 대비한 적도, 취직시험을 준비해본 적도 없었네요. 저는 생활을 위한 ‘불안정한 경제활동’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남은 시간을 몽땅 시 쓰는 데 사용했어요. 돈을 벌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시 쓰기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시 쓰는 일의 가치를 가장 높이 두는 건 변함없어요!)

프란츠, 웃음이 터지려 한 건 순도 높은 당신의 진심 때문이에요. 무언가에 맹렬한 사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길만 보고 가는 사람에겐 ‘바보 이반’에게서나 볼 수 있는 광채가 나오지요.

삿된 마음이 개입할 틈이 없는 사람. 순수해서 지독한 사람. 깨끗한 투신! 성자의 순진을요. 당신을 보며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너무나 사랑해서, 실리를 따지거나 의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

이런 태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꽤 어려운 일이지요. 마음에서 저울을, 사리사욕을, 올 수도 있는 다른 미래를 지우는 일이니까요.

당신만큼 대단한 작품을 써낼 수도 없겠지만, 저 또한 문학에 지금보다 맹렬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누군가 꿈에 부풀어 있는(허공에 떠 있는 거나 다름없죠!) 저를 불러 세우고, 바늘 같은 것으로 찔러 터트렸다면 놀랐을 거예요. 어리둥절해졌겠지요. 프란츠, 지나친 사랑을 생각하면 좀 슬퍼집니다. 그 태도에 ‘지혜’가 결여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문학에 투신한 당신 때문에 곤란하고 피로한 적 많았을 거예요. 왜 안 그러겠어요? 당신은 늘 생각했겠죠. 나는 너무나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쓴 글은 태어날 당위가 있기에 태어나야 한다. 당신은 소설이 “쓰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한 사람이니까요.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은 존재하기 위해 태어나는 글이었어요. 그건 당신 자신과 문학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을 넘어서는 일이지요. 어떤 글은 그렇게 태어나 고전이 됩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고 시를 짓고 세상에 대한 자기 생각을 씁니다. 무엇이 우리를 쓰게 하나요?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을 해놓고 먼 데를 바라봅니다. 창가 나무들이 저마다의 푸름을 몸 밖으로 한껏 밀어내고 있어요. 이파리들이 흔들립니다. 잎들은 날 수 없는 작은 새들 같죠. 이파리들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는 나뭇잎 소리일까요, 바람 소리일까요? 바보 같은 질문인가요? 저는 ‘바보 같은 질문’에서 문학이 태어난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세상에서 부조리한 일을 겪는 인물에 대해 주로 썼습니다. 스무 살 때, 당신의 단편소설 〈변신〉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땐 당신에게서 문학적 스킬을 ‘재빨리’ 훔쳐내 배우고 싶었습니다. 벌레가 된 인물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말도 안 되는 일을 독자가 납득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설득해야 하는지 파헤쳐본다고 야단이었지요. 시간이 흐를수록 벌레화(化)되는 주인공의 행동을 분석했습니다. 당신보다 더 짜릿하고 충격적인 글을 써보겠다고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개가 말을 하는 소설을 썼었죠!) 그땐 애송이였고 오해가 컸습니다.

또 미완성 장편 《성》을 읽으며 주인공이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쓸 일이냐고, 친구에게 흉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제 성에 들어갔어?” 친구가 물으면

“아니, 아직도.” “이제는?” “이 바보는 영영 못 들어갈 모양이야!” 불평을 늘어놓으며 책을 읽었지요. 죄송합니다. 당신이 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당신은 부조리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낸 거지요. 얼마 전 〈변신〉을 다시 읽어봤는데 놀랐습니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슬픔이 밀려오더군요. 당신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조만간 《성》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읽을 때마다 다른 걸 보게 되는 게 고전의 묘미 같습니다.

프란츠, 어쩌면 우리는 ‘간결한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글을 쓰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쓰고 또 쓸 수밖에 없을 때요. 그러고 나면 정답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수는 있으니까요.

문학의 효용은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 아닐까요? 오랫동안 천천히, 당신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겠습니다. 그걸로 충분해요.

박연준
파주에 살며, 일주일에 세 번 발레를 배운다. 창문, 숲, 기러기를 좋아한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등을 썼다.
  •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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